[에듀인뉴스] ‘수학은 어렵다’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보편화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수학교육 청사진들이 넘쳐나면서 대부분 어떻게 수학을 공부해야 문제를 잘 풀고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수학을 어떻게 하면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는지, 내 삶과 수학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에 대한 담론은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에듀인뉴스>는 반은섭 싱가포르한국국제학교 교사와 함께 입시에 활용되는 수학을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려는 세태를 근본적으로 반성해보고 앞으로 어떤 수학교육이 필요할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자 한다.

인터넷에서 '수포자'를 검색하면 수만 건의 수포자 예방 광고 포스터를 볼 수 있다.(사진=네이버 캡처)
인터넷에서 '수포자'를 검색하면 수만 건의 수포자 예방 광고 포스터를 볼 수 있다.(사진=네이버 캡처)

이제는 학생들이나 수학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조차도 '수포자'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합니다.

어떤 사교육 단체에서 조사한 바로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약 50%가 수포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잠재적 수포자까지 합하면 70%가 수포자라고 하는데, 잠재적 수포자는 또 무엇이며, 이런 통계자료가 어떻게 나온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수포자’라는 단어를 너무도 쉽게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 매체에서도 수포자 문제를 다루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교육청에서는 한 술 더 떠 ‘수포자 구출 작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수학 클리닉’을 만들어 ‘수포자’들을 치료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터넷 검색 창에서 수학클리닉을 검색해 보십시오. 수십 페이지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수학클리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클리닉’은 병을 치료하는 병원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수학을 못하는 것이 병인가요? 저만 마음이 불편한가요?

다른 나라의 상황이 궁금했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싱가포르의 현지 학생들이나 교사들에게 수포자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들은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수포자라는 단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단어였습니다.

외국에서 출판된 수학 도서들의 번역서를 보면, 수포자라는 단어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수학 도서들에선 수포자라는 단어가 없는 게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수포자’나 ‘수학클리닉’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이 단어들을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경쟁 문화 내지는 타인과 비교를 즐겨하는 사회문화적 요소에 기인하는 현상일 것이라고 추측해 봤습니다. 일종의 낙인 프레임에서부터 유래된 것이죠. 심지어 수학교육 전문가들은 '수포자' 프레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가득 실은 ‘수학 열차’는 오늘도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지금 상황에서는 문제 풀이 만능의 마을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그 마을이 결코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곳은 수학만 잘하는 몇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기루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양한 나무들이 같이 살아가는 숲에는 ‘잡목’이 없습니다. 수학 교실은 학생 각자의 개성이 공존하는 수학 숲입니다. 정답만을 중요시하고, 당장의 성과만을 강요하게 되면 작고 연약한 수학 나무들은 적응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수학 생태계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결국 모든 학생들이 피해를 보죠.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나 그렇지 않은 학생 모두가 수학을 싫어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탄 수학 열차가 산꼭대기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수학교육 철학을 구축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수학교육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제가 최근에 출간한 책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의 독자분들에게 이메일이 많이 옵니다. 수학에서 인생의 지혜를 찾고 감동해 수학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로부터 책을 써줘서 고맙다는 이메일을 받을 때 마음이 뭉클합니다.

그들은 일관되게 수학을 잘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따뜻한 수학 이야기가 신선했다고 고백합니다.

시대와 장소에 관계없이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이 수학을 잘하고, 또 좋아합니다. 여러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학생이 수학을 어려워합니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수학이 정말 어렵고 누구나 잘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수학 정말 어렵습니다.

수학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과목이지요. 탄생 배경부터 어려웠습니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수학은 소수의 천재들만이 취미생활로 즐기던 학문이었습니다. 답을 빠르게 찾는 수학이 아닌, 생각하고 깨닫는 수학이었습니다.

겨우 100여 년 전부터 일부의 사람들이 대중들을 위해 문제를 만들어 놓은 형태가 지금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수학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또 수학은 전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모국어 이외에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교육 내용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학 학습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수학의 개념이나 지식을 암기하고, 문제를 많이 풀어봐야 할까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가 발전시킨 수학을 스스로 탐구하면서 감동을 얻는 ‘좋은 공부 습관’을 기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수학 학습의 목적입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습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무슨 일이든 가능하게 만든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남긴 말입니다. 정확한 답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학 공부를 통해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학 문제 풀이를 통해 반성하는 태도를 기르는 습관도 기를 수 있습니다.

어떤 수학 개념을 적용해 문제를 풀다가 잘 안 풀리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요. 길이 막혔으면,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습관도 기를 수 있지요.

다시 ‘수포자’, ‘수학클리닉’과 같은 단어를 생각해봅니다.

수학은 가뜩이나 차가운 수식을 다루는 학문인데 이런 말들이 오가는 삭막한 수학 교실에서 어려운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이고 자존감마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중하고 개성이 넘치는 수학 나무들이 아름다운 수학 숲에서 누구나 수학을 자유롭게 음미할 수 있는 수학 교육 문화가 정착되길 바랍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을 하기 보다는 시스템과 환경을 바꾼다고 하지요. 수학 생태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아마 우리가 '수포자'나 ‘수학 클리닉’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쓰지 않는 시스템과 환경을 마련하는 일부터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반은섭 싱가포르한국국제학교 수학교사/ 교육학 박사/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 저자
반은섭 싱가포르한국국제학교 수학교사/ 교육학 박사/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