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그 적들(2) : 세 가지의 절대적 악재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절대적 악재(惡材)”라는 것은, 문제의 악성적 요소가 활성상태에 있는 한, 민주적 삶 자체가 제대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소극적으로 말해서, 특히 절차적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볼 때,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세 가지의 악재가 작용하는 심각성만큼, 민주주의는 부분적으로 결함을 지니거나 그 순수성을 잃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궤멸(潰滅)의 수준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말해 본다면, 민주적 방법 혹은 과정은 악재적 특성이 어느 정도로 순화 혹은 소멸되었느냐--혹은 악화되지 않은 상태에 있느냐--의 정도에 따라서 우리는 그만큼의 민주주의가 성공한 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러한 악재가 다음의 세 가지 차원의 범주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사회적-상황적 조건이고, 둘째는 도덕적-인성적 바탕이며, 셋째는 이지적-계몽적 수준이다.

첫째, “상황적 균열”의 양상

조직의 구성원들이 유지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의 특징이 통합성을 잃은 채로 분열이 지배하며 전체가 혼돈의 양상을 보이는 상태이다. 그야말로 제도나 생활의 실제가 어지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본래 그 사회의 구성체들이 원천적으로 파편적 폐쇄성을 지니고 있거나, 대내적으로 특히 자연적 혹은 사회적 특징으로 인하여 소통이 단절되어 활성화가 부진한 상태에 있거나, 통치적 구조의 경직성이 작용하여 자율적 상호작용이 어려운 경우이다. 지역적 혹은 집단적 특성으로 인하여 구성원의 적대적 분열, 배타적 독선이나 폐쇄, 강압적 지배, 선동적 회유, 규범적 혼란 등이 사회 혹은 조직을 특징짓고 있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유지와 성장을 어렵게 하는 결정적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본래 파편처럼 분화된 작은 단위의 집단들이 병존한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는 대내적으로 일종의 민주적 체제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정돈되고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한 경우가 없지 않다. 고대 신라의 화백(和伯)과 같은 제도가 그 사례이다. 많은 정치이론가들이 그랬듯이 민주주의는 소규모의 국가에서 실천이 용이하고 그만큼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오늘과 같이 대형화된 조직 혹은 국가에서 사회적 통합을 위한 규범의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민주주의의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루소(J. J. Rousseau)는 인간이 자연상태에 있을 때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였으나, 홉스(T. Hobbes)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가 된다고 하였다. 맹자(孟子)는 본래의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고 하였으나, 순자(荀子)는 악하다고 하였다. 자연적 본성에 대한 의견은 이렇게 다를 수 있으나, 민주주의는 본성적 특징보다는 사회적 학습을 요구하는 제도적 삶의 형태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정체)는 자연적 상태의 인간사회에서 저절로 형성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며, 오히려 절차적 세련성을 기하기 위한 학습을 요구하는 제도이다.

사회적 통합을 위한 구성원의 관습 혹은 전통이 자리 잡고 있거나, 통치적 원리에 의한 형식적 혹은 비형식적 학습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불시에 발생한 자연적 재해, 대외적 전쟁, 혹은 대내적 분쟁을 겪는 혼란의 상태에서는 민주적 질서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상황의 안정적 기반은 민주적 질서의 시도와 정착과 발전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상황적 균열을 소극적으로 방치하거나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세력은 민주주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악성적인 장애물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그러한 불순한 세력에 저항하고 경계하고 비판하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일구어 가는 제도의 원리이며 행동의 규범이고 생활의 양식이다.

둘째, “인성적 폐쇄성”의 수준

이러한 차원의 악재에서는 구성원의 일반적 자의식이 미성숙한 수준에 있다. 관용, 배려, 개방 등의 공동체적 덕성의 내면화가 부실한 상태에 있으며, 참여, 준법, 정직, 협동 등의 기본적 규범의 의식과 실천적 동기가 해이해진 도덕적 풍토가 지배한다. 민주주의적 삶의 질은 제도적 체제나 절차적 규칙을 익힌 기계적 습관화의 정도를 넘어 도덕적 정조(情操)와 인성의 세련성을 향상시키는 만큼 개선된다.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갈등과 충돌도 없는 평화로운 상태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안정된 질서는 오히려 구성원의 개성이나 존엄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전체주의 혹은 독재체제에서 잘 길들어진 상태의 전형적 모습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구성원들 간의 갈등 혹은 대립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문제의 상황에서 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것은 민주적 조직의 구성원들은 개체적 정체의식(正體意識)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독재사회의 경우처럼 외재적 강제에 의해서 갈등 혹은 대립을 억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유한 규칙 혹은 방법에 의해서 해결한다. 성숙한 민주주의자들은 타율적으로 관습이나 규칙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공동체적 규칙의 입법(제정)에 참여하고 제정된 규칙의 준수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인성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동료와 연합하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줄 안다. 이러한 협동적 심성은 폐쇄적 이기심에 기초한 이해관계의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방적 연대의식과 세련된 덕성의 체질화에 의해서 형성된 인격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공동체로서 요청하는 도덕적 정조(情操)와 인성의 세련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 학습의 장을 체계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학습경험은 적어도 학교제도와 같이 의도적으로 계획된 모든 학습의 장에서 상시로 유의하고 확인하는 교육적 과제로 의식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고 난폭한 무법자들을 방치한 상태에서, 흔히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반목과 대결의 물리적 제압을 통하여 다수결이라는 규칙을 강행한 결과는 민주주의적 생활과는 먼 거리에 있는 생활의 양태이다. 이러한 풍토는 바로 민주주의적 규범들의 정착을 어렵게 하는 가장 사악한 민주주의의 적에 해당한다.

셋째, 우민(愚民) 상태의 방치

민주주의가 정치체제이든, 생활규범이든, 활동절차이든, 어느 것으로 이해되든지 간에, 사회나 조직의 구성원들을 자연상태 혹은 방임상태에 두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민주주의는 자체의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규칙과 지식, 당면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과정과 판단의 기술 등을 학습하고, 그것을 생활화하는 가치와 안목과 이념에 관한 균형 있는 이해를 요구한다. 바로 그 수준만큼, 민주주의를 탁월하고 정의로운 사회적-정치적 체제로서, 그리고 생활의 양식으로서 지니는 본질적 가치와 도구적 효율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범주의 악재를 해소하거나 제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안정적 실천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이지적 성숙성은 민주적 사회 혹은 조직의 발전을 위한 충분조건에 해당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성장적 동력은 기본적으로 구성원의 이지적 차원의 역량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결코 투쟁이나 폭력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의식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일반화되지 않았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향유하기 위한 권리를 주장하고, 교육에 의한 계명의 노력이 진행되어 왔다. 제도적 조건의 쟁취와 사회적 여건의 구축을 위하여 역사적으로 세계의 여러 곳에서 수없이 많은 갈등과 충돌과 분쟁이 있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민주주의의 “복음”으로 인식되었으나, 많은 경우에 일종의 “재앙”으로 경험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해방 이후의 초기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민주주의로 인하여 상당한 정도의 혼란과 부조리가 발생되는 사회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적 삶의 경험이 일천하고, 충분한 이해와 학습을 통한 삶의 원리를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제도적 체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실제로 반민주적인 행태가 난무하는 시기라고 할 정도의 불안정한 사회를 지속시켜 왔다.

민주적 규칙과 생활이 요구하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반성적-합리적 이해와 실천적 습관의 세련성이 도달한 수준, 즉 “계명된” 경지만큼, 사회와 그 구성원들은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고, 자아의 실현과 성장의 삶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을 평등하게 보장받는다. 독재사회에서는 폭력 혹은 회유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고 있으므로, 결국 구성원(혹은 민중)을 우민상태에 둔 채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발전과 일상적 생활의 성숙한 개화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면서, 의도적 혹은 방만적 우민화(愚民化)를 조장하거나 방치하면, 이는 바로 민주주의의 실현과 안정과 성장을 불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악재가 된다.

교육의 과제

위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을 어렵게 하는 세 가지의 악제를 두고 논의하였다. 물론 그 이외에도 크고 작은 악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붕괴되는 과정의 원인들을 세 가지의 범주로 구별하여 논의하였다. 그런데, 위의 세 가지를 악재라고 언급하였지만,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악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으로 고찰하여, 긍정적으로 발상을 전환하면, 그러한 악재들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안정적 체제와 발전적 기반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조건이고 과제라고 할 수도 있다.

첫째의 악재, 즉 사회적 상황의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데는 유능한 정치적 지도력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구성원(민중)의 준법생활과 습관적 적응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둘째의 악재, 즉 도덕적 미숙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사회적 규범의 내면화를 통한 인성과 습관의 세련도를 높인 만큼 민주주의적 생활의 성숙성을 평가받을 수 있다. 셋째의 악재, 즉 이지적 능력의 부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제해결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반성적 사고와 자율적 판단의 학습을 충분히 경험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악재들을 극복하고 성장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체계적인 교육이 요구된다. 물론 좋은 가정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의 규칙과 원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실천적 생활의 기본적 학습은 체계적인 학교교육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그 충실을 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