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프랑스어학과…"10년 넘게 임용 티오 0명"
그럼에도 "서울대 불어교육과 정원 증원 및 교수채용 계속돼"
미래 유망산업 이끌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 “요지부동”
'학과 이기주의'·경직된 규제가 결국 구조조정 발목 잡아
퇴출 거부 측 입장, "자본시장 입맛에 맞는 구조조정은 기업의 대학 지배"

[에듀인 뉴스= 황윤서 기자]

최근 각 대학•학과의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찾고자 하는 논의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 전쟁’이 불가피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시대 흐름과 글로벌 경쟁력을 생각하지 않은 채 우후죽순 나열된 학과를 과감히 정리하고 시대 변화에 맞게 재편해 대학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린 것이다.

최근 고등학생들에게 제2외국어로 중국어와 일본어 등이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독일어와 프랑스어의 인기가 시들한 상황이다. 특히 대학의 독일어 학과 및 프랑스어 학과의 경우 지난 10여 년이 넘도록 ‘전국 국공립 중·고등학교 임용 시장'에서 신규 채용이 아예 없었다.

허나 독일어 교사를 배출하는 서울대 독어교육과는 교사를 전혀 뽑지 않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학년 정원 15명을 그대로 유지했다. 뿐만 아니라, 독어교육과는 2015년 4명이었던 전임교수를 이듬해 5명으로 늘리기까지 했다. 학과 역할이 위태롭게 축소된 상황에서 오히려 교수 채용을 늘리는 모순이 연출된 것이다.

이를 두고 사회적 수요가 줄어든 학과의 정원을 철밥통처럼 지키고자 ‘학과 정원 동결’이라는 부조리가 10여 년 이상 동안 지속되고 있음을 각성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학교 내 학과 이기주의와 경직된 규제가 현실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기능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원 감축 대상이 예상되는 학과 교수들은 교수 자리와 연구비 지원 감소 우려를 두고 강한 반발을 나타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A 교수는 "학과 구조조정을 해도 내 학과는 절대 안된다"고 강하게 저항하는 학내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A 교수는 " 대학사회의 특수성을 모른 채 학문의 영역을 자본시장의 입맛에 맞게 구조조정하겠다는 것은 기업의 대학 지배"라는 쓴소리도 덧붙였다. 이같은 분위를 볼 때 대학 학과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지려면 정부와 대학 간 이른바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을 판단된다.

서울대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많다"며 "합리적인 대학 운영보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연구역량을 최고로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재편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 학과(불어.독일어)는 번역, 통역, 무역, 외교 분야 전문가 배출 등을 위해 과 해당 학과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성엽 아주대 글로벌미래교육원장은 “서울대 독어교육과와 불어교육과는 지난 10년간 교사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며 “학생들이 임용고시를 붙지 못한 게 아니라 교사 자리가 아예 없어서 그런 것인데, 이들 학과 정원을 줄이고 다른 학과 인원을 늘리는 것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교육 수요자인 학령인구 감소로 교육계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가운데 교육 공급자인 사범대만 몸집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이같은 각성의 목소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 유망산업 이끌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 “요지부동”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맞물려 매우 각광받는 인기 학부이자, 미래 유망산업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코딩 등)의 경우 15년 동안 정원을 늘리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정원은 지난 15년간 55명으로 유지됐다가 올해 입시에서 70명으로 겨우 15명 늘어났다. 지난 15년 동안 동결 상태인 것이다.

AI 산업을 이끌 핵심 연구인력이 없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지만, 정작 관련 학과 정원은 늘리지 못한 웃지 못할 현실은 국내 대학의 위기를 타개할 구조조정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는 외국의 사례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인원은 2008년 141명에서 2020년 745명으로 10여 년 동안 5배 급증했다. 전 세계 소프트웨어와 AI 산업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연구개발 경쟁력은 이 같은 유연한 대학 시스템이 뒷받침했다고 할 수 있다.

허나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 대학들의 학생 총원을 늘릴 수 없도록 만든 '수도권정비기본계획'이라는 규제가 대학 구조조정을 막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기업, 공장 등의 수도권 집중을 막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달성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같은 규제가 도리어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인 것이다.

정원 확충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대학의 경우 학생 총원을 늘릴 수 없기에 수도권 대학에서 한 학과의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학과의 정원을 줄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원 감축의 대상이 되는 학과의 교수 등은 이에 극명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 정원이 감축되면 교수 자리도 줄어들고, 연구비 지원 등도 감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성장산업과 관련된 학과의 정원 확대나 신설 문제는 제자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대학 구조조정의 근본 목적은 '경쟁력 강화'이지만, 그 경쟁력 강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유연하고 신축적인 학과 운영은 대학 내 학과 이기주의와 경직된 규제의 벽을 사실상 넘지 못하고 있다.

잇따른 대학 정원 감축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안이 진행됨에 따라 해당 대학의 저항이 커지고 있다. 허나 4차 산업혁명, 인구구조의 변화,코로나19 등 교육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대학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데 힘이 실리고 있는 만큼, 해당 대학은 이같은 새로운 교육 제안을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