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13) 협의적 민주주의의 발상
[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13) 협의적 민주주의의 발상
  •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5.1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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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적 민주주의의 발상

집단적 의사결정의 원리

세기의 전환이 있었던 시기를 전후하여 민주주의의 개념적 진화를 일깨우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고, 민주주의의 개념 자체가 함의한 기본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를 표면으로 부양시키려는 새로운 노력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협의(deliberation)의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학자로는 드라이제크(J.S Dryzek)이 있으나, 특정한 학파의 조직과 활동이 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기 보다는 같은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리고 협의적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는 정치적 행동에 관한 연구의 한 주제가 된 셈이다. 새롭게 개척된 분야라기보다는 이미 베버(Max Weber) 등이 문제 삼던 내용이기도 하고, 근래에는 듀이(John Dewey)의 민주주의 이론도 성격상 협의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협의적 민주주의자들은 주로 집단적 의사결정의 과정과 그 결과가 더욱 만족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된 관심을 두고 있다. 그 요지로 말하면 이러하다. 집단적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면,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 결정의 타당성을 높이는 데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적어도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 그 권리를 행사하는 기회, 그리고 거기서 발휘되는 역량 등이 함께 작용한 메카니즘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활발하게 참여하여 결정한 집단적 의사는 함께 숙의(熟議)한 결과이므로 그만큼 민주주의적 결정으로 돋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민주국가로 표방된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간다면 당연히 어떤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있게 된다. 말하자면, 시민의 한 구성원으로서 직접적이든지 혹은 간접적으로든지, 또 그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스스로 참여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수단과 몫이 주어져 있다. 물론,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안이 이미 논의되어 왔다면,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의사표현의 수단과 내용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문서를 만들어 표현하기도 하고, 대표를 선출하여 파견하기도 하며, 직접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집단적 투쟁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협의적 민주주의의 연구는 주로 시민들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어떻게 소통(협의)하며, 그리고 시민들이 실제로 어떻게 그런 소통의 장에 임하게 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협의과정의 유연성

민주적 협의론이 논의되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협의의 개념을 주로 공동선(혹은 공적 합리성)을 실현하는 데 요구되는 독특한 합리적 논의의 원리를 설정하는 데 주된 관심을 두었다. 그러므로 다소 형식적인 절차를 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협의론적 민주주의자들은 관심의 폭을 매우 넓게 설정해 놓고 있다. 우선 서로의 소통에는 강제성이 없어야 한다든가, 적어도 깊은 성찰을 요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책임있게 성의와 관심을 바쳐야 한다든가 등의 기본적인 규범의 준수를 요구한다. 비록 개인적인 견해라고 하더라도 더욱 넓은 시야에 관련시켜 소신과 의견을 밝히고,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수용하지 못하는 동료를 설득하는 데 있어서 인내와 배려, 그리고 개방적 자세로써 상대방과의 대화에 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체계적인 논리를 갖춘 주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적인 이야기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거나, 익살 섞긴 표현도 있을 수 있다.

물론 협박, 허위, 욕설, 권위적 명령 같은 것은 용인될 수가 없겠지만, 의사의 결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 표현이라면 경직되게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협의의 과정은 서로의 설득력이 작용하는 상황이다.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발언이거나, 진지하지만 지루한 연설이거나, 다소 농담 같은 말까지 허용하는 분위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협의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정치적 파당의 의도나 음모가 섞인 선전이나 선동을 위한 전략의 언어와는 확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협의의 과정에서 발언한 내용은 자신이 말한 것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특정한 행위나 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이나 의지의 표현 혹은 약속은 아니다. 그러므로 듣는 사람도 열린 마음으로 상대가 전하는 메시지 혹은 주장에 충실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모순이나 오류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대안을 함께 생각해 보거나 반론의 설득력을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있다. 특히 둘 이상의 주장이 대결하는 경우에,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토론의 결과로서 자신의 주장이 지닌 취약성이 드러나면 정직하게 인정하거나, 필요한 경우에 제3의 안으로 합리적인 절충을 시도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비록 서로 경쟁하는 방안들이 대립하였다고 하더라도, 승리한 쪽이 전적으로 정당하고 패배한 쪽이 전적으로 부당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어떤 주장이 상대방의 주장에 밀려 취소해야 할 경우가 있지만, 그런 주장도 다른 맥락의 경우라면 승리한 쪽의 주장이 지닌 의미나 가치 이상으로 중요한 내용을 언급하거나 환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생산적인 논의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그 내용은 기억되거나 달리 어떤 정책적 노력에 반영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협의의 과정에 중요한 것은 반드시 어떤 방안을 제안하거나 이를 검토하여 반대하고 지지하는 발언자의 목소리만은 아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경청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경청하는 사람들이 주어진 메시지 혹은 논의된 쟁점에 대하여 성의 있는 자세로 임하지 않고, 아예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공격적 동기나 반론적 태세를 강하게 가지고 있을 때에는 협의의 진행 그 자체가 별로 의미를 지닐 수가 없다. 물론 협의과정의 논의를 더욱 합리적이고 생산적이게 하기 위한 반론이나 공격은 대안적 방안을 찾을 때 반드시 필요한 움직임일 수는 있다. 공격을 위한 공격,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주장과 논의에 흠결이 발견되면 이를 수정하거나 아니면 대안을 찾는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협의적 민주주의에서는 형식적 논의나 절차보다는 거기에 임하는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합리성, 공정성, 생산성 등을 얼마나 성실하게 추구하느냐와 관련된 집단적 목표와 도덕적 동기가 선행적 조건이기도 하다.

협의과정의 개방성과 공공성

그리고 협의는 어느 편의 것이든지 간에 애초 주장의 수정(혹은 페기)을 예상하여야 한다. 그것을 거부하면 협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진부한 요식에 불과하다. 어떤 의미에서, 협의는 오류의 발견이나 수정의 가능성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드시 모든 방안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상호 간에 의견과 논의가 교환되면서 본래의 주장 혹은 방안은 수정되거나 조정되기도 하고, 어느 편이 다른 편에 비하여 전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평가되어 폐기되는 결론에 이르게도 한다.

아마도 협의적 민주주의는 대개 소규모의 조직에서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자 할 때, 가장 구체적인 효율성을 보인다. 대개 큰 조직의 문제를 그 자체로서 검토하기에는 복잡한 불편이 있으므로, 작은 규모의 전문적 기구 혹은 조직을 두는 것은 협의의 효율성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규모의 협의체는 특정한 주제에 관하여 철저히 확인하고 논의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의제와 주장에 관하여 의견의 교환이 용이한 만큼, 활발한 토론과 다방면의 체계적이고 즉시적인 검토가 가능하며, 결론에 이르는 전략적 과정은 능률적으로 통제될 수도 있다.

전문적 협의로서 의사결정이 완성되기도 하지만, 소규모의 전문적 조직이 협의한 결과를 검토하여 최종적인 종합적 검토를 한 연후에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협의는 단순히 최종적 의사결정을 위한 보조적 과정의 위치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최종의 종합적 검토는 의사결정의 합법성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요식에 불과한 것인가? 어느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두 단계는 협의의 충실성을 높이고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적”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심도 있는 협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는 충분한 민주적 결정의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협의는 바로 민주적 의사결정의 필요조건에 해당한다. 충분한 협의의 과정을 통하여 검토받지 못한 의사결정은 민주적 결정이 아니라고 한다면, 협의는 바로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이어야 하며 또한 핵심적 원리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성숙한 민주주의의 수준은 얼마나 심도 있고 충실한 협의의 과정을 밟았느냐로 말할 수도 있다.

민주국가의 구성원들은 공공적 가치의 실현을 위하여 협의를 통한 다양한 주장의 교환과 다양한 의견의 검토를 시도한다. 이러한 대화 혹은 논의를 통하여 구성원들은 어떤 절차, 행위, 혹은 결정이 그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가장 탁월한 것인가를 두고 논의하여 합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협의는 민주적으로 정치적 결정의 합법성을 충족시키는 데 요구되는 선제적 조건이다.

의사결정의 계량적 판단보다는 정성적 합리성에 집중

협의적 민주주의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단지 다수의 구성원들이 선호하는 바의 총화를 의미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서로 경쟁적인 여러 주장과 견해를 합리적 근거에 기초하여 검토하고 결정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의 원리를 의미한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시민들이 선호하는 결정은 개별적인 이기심의 총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결정에 앞서 이루어지는 협의의 과정을 통하여 충분히 집중적으로 검토된 결과라는 것이다. 둘째, 협의적 민주주의의 독특한 특징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핵심적 중요성을 최종적인 다수결과 같은 “정량적(quantitative)” 결정 그 자체에 두기보다는 오히려 결정에 도달하기까지의 집단적 숙의의 과정이 지닌 “정성적(qualitative)”판단에 무게를 둔다는 데 있다.

민주적 과정에서 협의는 특정의 구성집단이 지닌 정치적 힘의 작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성원 전체가 참여한 반성적 집단사고에 의한 합리적 판단을 통하여 공공적 가치의 실현을 지향하고자 한다. 협의적 민주주의는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경쟁이 아니라, 공공적 가치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과 이에 관련된 정보와 주장의 교환에 기초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구성원들은 자신의 사적인 관심, 편견, 욕구의 관철을 자제하고, 동시에 동료 구성원의 주장을 공적인 기준에 비추어 대응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통하여 의사결정의 타당성을 높이는 협동적 노력이다. 협의적 민주주의는 그 특징에 있어서 공공성이 합리적인 민주적 과정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편이다.

그리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정보는 단순히 제공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형식을 갖춘 근거에 준하여 확인된 것이기를 요구한다. 흔히 근거 없이 유행하는 소문 혹은 부실한 증거와 정보에 기초한 막연한 주장은 초도적 수준에서라면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에 이르기 전에 충분히 보완되고 검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시적 종교의 경우와 같이 소수의 시민들에게만 의미를 지니는 초월주의적 권위에 의존한 것을 사용할 수는 없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합리적 근거가 되는 공공적 특징은 공정하고 합리적이면서 새로운 정보 혹은 정교한 검증에 의해서 보장받게 된다.

협의적 민주주의의 이론가들 중에는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 한편으로,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논쟁을 통하여 주장하는 바를 주고받음으로써 합의에 도달하기도 하고 또한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협의를 위한 토론의 과정을 통하여 반드시 합의에 도달할 필요는 없으며, 충실한 협의의 과정은 그 자체로서 합리적이고 유익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도 한다. 주장하는 바의 근거, 논점, 그리고 견해를 교환하는 것만으로는 명확한 결과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많은 협의적 이론가들은 반론을 제기하고 계속적으로 토론하는 것 그 자체가 민주적 과정의 수준을 고양시킨다고도 말한다.

협의적 과정은 의견이 분분한 구성원들이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검토하며, 주장을 교환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들은 확실한 의사소통의 기준과 토론의 규칙을 열린 마음으로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구성원은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해가능하고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협의론을 선호하는 이론가들의 대부분은 구성원과 그들의 관점을 최대한으로 확보할 경우에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정치적 결과를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더욱 많은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더욱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면, 그만큼 정치적 의사결정의 결과는 더욱 타당성이 높고 합리적인 결과를 생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협의적 민주주의는 구성원 간의 대화와 논의와 설득, 그리고 상호간의 비판적 검토의 과정을 밟되, 문제의 성격과 상황적 특징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구성원의 완전한 합의에 도달할 것을 겨냥하는 셈이다. 이 점에 있어서 단순한 다수결로써 만족하는 방식보다는 철저하고 그만큼 민주적으로 충실한 실천적 원리임에 틀림이 없다.

몇가지 회의론

그러나 많은 협의론자들은 몇가지의 중요한 문제들을 지적받고 있다. 우선, 협의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표현의 방식, 토론의 형식, 문화적 특성 등이 어떤 형태로든지 제약을 받는다면, 어떤 구성원의 소리는 사실상 배제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협의과정의 결과 자체는 질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고 따라서 타당성도 그만큼 감소된다. 예컨대, 구성집단에 내재하는 구조적 편견이나 불평등적 분위기가 작용한다면, 실제로 협의의 과정에서 비민주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물론 원칙상, 그러한 편견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편견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절차와 성과를 보장받기는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니며, 협의적 민주주의는 또 다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불완전한 방안일 수밖에 없게 된다. 거기에 실패할 경우에는 결국 엄격한 의미의 협의적 민주주의는 그 자체의 특성만으로는 실현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될 수가 있다. 특히 인종, 언어, 관습, 성별, 지역, 신앙, 계층 등에 개방된 다원주의의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단지, 민주주의의 실천과정에서 절대적 완벽성을 전제로 하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어려우므로,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불완전성에 대한 관용을 기대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협의적 민주주의란 다른 이름으로 논의되는 “절차적 민주주의”와는 협의의 개념이 지니는 질적 차이라기보다는 절차의 개념이 지니는 정도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즉, 협의적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더욱 신중하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일 뿐인, 즉 일종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협의적 민주주의를 형편에 따라서 다소 느슨하게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엄격한 절차를 유지하면 협의적 민주주의가 되고 느슨한 협의를 수행하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되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상정하는 바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는 엄격히 말해서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이며, 완전주의를 지향하기를 고집하기보다는 다원주의를 수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란 이러한 상대주의적 가치관과 다원주의적 관용성을 암묵적 전제로 한 생활의 양식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의 양식은 현상론적으로 다양하고 가치론적으로 다원적이라는 신념을 전제로 할 때, 우리의 정체(正體)는 한편으로 절대주의나 독선주의를 거부하고 또 한편으로 전체주의나 독재주의에 저항하는 주체로 자임하는 것이 된다. 즉, 민주주의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절차주의와 협의주의는 민주주의의 개념에서 일관성을 지니는 원리들이다.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dhl9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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