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족사관고등학교” 이런 학교를 버려도 좋은가?(2)
[칼럼] “민족사관고등학교” 이런 학교를 버려도 좋은가?(2)
  •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6.21 03: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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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희 전 민사고 교장의 현장생활 보고서

"정부는 2019년 11월에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특목고)를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 2025년 3월에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발표하고, 이런 내용 을 골자로 하는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을 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의하면,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는 초기의 자립형사립학교로 지정된 학교의 하나이지만, 자사고에 속하는 학교의 ‘일괄 일반고 전환’의 대상으로서 설립 29년이 되는 해에 본래의 건학이념을 포기하든가,아니면 학교를 폐쇄하든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설립 초기의 목표는 화려하고 환경은 탁월하나 내실은 초라했다

 

영국 이튼 칼리지의 잔상

학교의 설립자인 최명재 이사장이 그 동안 학교의 건물을 짓고 시설을 갖추어 드디어 공부할 학생들을 만나게 된 것은 보통 즐거움이 아니었다. 아마도 맹자가 언급한 군자의 삼락(三樂) 즉,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즐거움”을 이제는 꿈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서 보장받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학교의 출범 당시까지 학교의 대지를 제외한 모든 건물과 시설을 갖추는 데 8백억원이 투입되었다고 하였다. 그에게는 이것이 도박은 결코 아니었다. 자신의 꿈이 실현된다면 아직도 얼마든지 쏟아부을 태세가 있어 보였다. 그야말로 화려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 이사장이 지닌 화려한 목표는 학교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직접 방문해서 보고 온 영국의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라는 사립 고등학교이다. 그리고 학교의 입구에서부터 줄을 지어 준비해 놓은 노벨 수상자의 흉상이 하나 둘 좌대 위에 올라가는 것을 상상만 하여도 흐뭇하고 보람되기 이를 데가 없었을 것이다.

영국의 이튼 학교는 참으로 대단한 학교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빛나는 역사를 엮어온 과정에서 중추적 인물들을 가장 많이 생산한 고등학교이다. 이 학교는 1440년에 세워진 학교로서 학문, 종교, 정치, 산업, 예술, 군사 등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화려한 별들을 배출하였다. 그들 중에는 나라를 일구고 전쟁에서 이기고 세계를 가르친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있다. 특히 세계 1차, 2차 대전에 종군하여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졸업생의 수가 무려 2000여명에 달하고, 그 학교의 교정에는 그 이름을 세겨 놓고 있다. 어떤 해의 동기생 중에는 70%가 전몰하였다고 한다. 최 이사장의 뇌리 속에는 이튼의 학교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적어도 애국과 사명과 헌신의 정신으로 국가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보람으로 여기는 영재를 찾고 엘리트로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였다. 중학교 정도로 시작하여 천천히 만들어 가면 좋을 텐데, 왜 고등학교를 한꺼번에 완성하고자 하는가고 물었다. 다른 생각은 없고 본인의 나이가 당시에 이미 75세인데 아이들이 공부를 끝내고 세상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자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텐데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서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민사고가 위치한 산 기슭언덕 넘어 분지 모양의 땅이 있는데 거기에 공과대학을 세우고 싶다고 하였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한 것은, 좀더 철저하게 계획하고 원하는 학교를 더욱 충실히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 지금 당장 덤비듯 하는 것은 좋은 학교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로 봐서는 그냥 건물과 실외활동을 하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준비가 되었지만, 정작 학교의 교육과정과 그것에 따라서 요구되는 공간과 설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물론 일반학교가 갖추지 못하는 시설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생각하는 영재학교의 조건에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그냥 물리적으로 학교를 연다는 것이다. 아마도 교육자적 구상이라기보다는 사업가적 계산에서 만들어진 계획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학교를 시작하려면 함께 종사할 교사진을 좀더 미리 확보하고 함께 협의하면서 앞으로 만들어질 학교에 대한 구상과 목표를 충분히 연찬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거의 혼자서 학생들에게 어떤 복장을 입히고 어떤 규칙을 지키게 하고, 공부와 생활의 어떤 습관을 제대로 가르쳐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게 하고, 계속적인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수준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단지 학생의 선발에 관해서는, 우선 요구되는 전문적 조언을 받기로 하였던 것 같다. 교육개발원의 조석희 박사가 영재급 학생의 선발을 위한 워크솝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였던 것으로 들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상한 학교이기도 하였다"

 

우선 교복과 모자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 의도는 알겠지만, 젊은 아이들의 자기 관리를 위한 취향이나 개성은 전혀 고려의 대상에 없고, 어떤 점에서 그야말로 튀는 복장으로 일반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듯하였다. 학교에서는 교사들도 개량 한복을 입고 모자도 쓴다. 행사 때에 교사는 갓을 쓰고 행사에 임하며 일상 시에는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학생을 대한다. 여교사는 항상 정자관을 쓰게 하였다.

그리고 전교생 조회를 비롯한 행사에서는 “교훈”과 “영어상용의 목적,” 이 두 가지의 구호를 제창하였다. 교훈은 어색하다면 어색하고, 별로 어떤 가치 의식을 순간이나마 특별히 느끼게 하는 뜻깊은 내용도 없이 평범하고 진부한 구절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 교   훈 >

민족주체성 교육으로 내일의 밝은 조국을.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

출세를 위한 진로를 선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자.

이것이 나의 진정한 행복이고 내일의 밝은 조국이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영어상용의 목적을 제창한다.

< 영어상용의 목적 >

영어는 앞서간 선진 문명 문화를 한국화하여 받아들여 한국을 최선진국으로 올리기 위한 수단이며,

그 자체는 결코 학문의 목적이 아니다.

나는 처음에 이 구호문을 보았을 때, "교훈"에서는 설립자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전통문화에 담긴 민족의 정신적 유산을 기억하고 음미하면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어상용의 도구적 용도를 감추어 놓고 있기에는 어딘가에 자기모순으로 표출된다고 느껴 그 의도를 명시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설립자 최 이사장이 학교를 열면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말로써 표현되는 것이나 진행하는 작업의 방향에서 보여준 과정과 결과, 그리고 열정과 몸에 익혀진 감각은 현실성이 거의 없는 복고적 스타일이었다. 한편으로 감복할 만한 대단한 열정을 볼때마다 나는 기회가 닫는 대로 도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저러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미래를 살아갈 국가의 동량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찾아왔다. 물론 이사장은 나름으로 미래의 변화를 생각하고 그 대응책을 구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놀라운 학생들의 부정적 반응"

 

첫 학기가 끝나 갈 무렵의 어느 날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자문교수단이 함께 학교를 방문하였다. 그동안의 진행과정을 평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선 눈에 띈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교실 수업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교사들의 근무환경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거의 한 학기를 보낸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지금도 수학, 과학, 음악의 수업이 기억에 남아 있다. 수학 시간에 교사는 다섯명의 학생들을 앉혀 놓고 가르치고 있었다. 수업의 방식은 당시의 일반적인 학급규모인 40여명의 교실수업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저런 수업이라면 학급당 5명의 교실수업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학교실에도 토론과 탐구활동이 어떤 방식으로도 있을 텐데, 지금도 구태의연한 주입식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주 비경제적이지도 하거니와 별로 교육적이지도 못한 수업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음악교실에서 교사는 학생 5명을 앞에다 두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음악을 소단위 수업으로 진행하는 것보다는 합반을 하더라도 규모를 확장하여 합창이나 중창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대로는 음악의 수업이 수학교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생물시간이 있었다. 많은 학습자료와 표본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실험이나 관찰을 하는 시간은 아니었다. 기억 속에 남은 것은 교사가 꽤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면서 수업을 하였다는 것이다.

개학한 지가 몇 달 되지 않았던 시기에 교사의 근무환경이 바뀌었다. 즉, 내가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교사들은 개별 연구실이 배당되었고 거기서 수업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사들이 모두 한 교무실에 모여 있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최 이사장의 답이 이러하였다. 각기 독립된 연구실을 배정하였더니 교사들이 자기 방에서 자고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교사들에게 본래의 연구실을 돌려주라고 권하였다. 선생이 피곤하면 잠깐 눈을 감고 쉴 필요도 있고, 수업 시간에서만 아니라 학생과 개별 상담을 할 때나 교사의 수업 준비를 위해서도 방해받지 않는 개인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학생이 교사의 연구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나 혼자서 연구하다 멈춘 흔적 등을 볼 때마다 선생님이 무엇을 하는가를 잠깐 감지하는 것, 그것도 교육적 경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다음 방문 때 원상 복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대 연구자문단은 방문일정을 마치기 전에 재학생 30명을 한 곳에 모았다. 교사들로 하여금 자리를 비우라고 부탁하고, 여러 가지의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즉, 며칠 후에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면 집으로, 고향으로, 혹은 모교에 가서 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면, 내가 지금 다니는 민사고를 자랑하고 나와 같이 이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같이하자고 권하고 싶은가? 그렇게 해 보겠다는 학생은 손들어 보라고 하였다. 30명의 학생 중에서 오직 2명만 손을 들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서로 얼굴을 보기만 하고 손을 들지 않았다. 당시에 그들의 학업을 위한 모든 비용을 학교가 부담하던 때이다. 그런데도 생각보다는 다른 놀라운 반응이었다. 그 이유를 학생들에게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학교측에 그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연구자문단은 그냥 문제로서 안고 돌아왔다.

 

"초기부터 국제적 인재육성을 구상하였다"

 

최명재 이사장은 고집도 세고 추진력도 뛰어나지만, 학교운영에 관련하여 전문가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말은 비교적 잘 듣는 편이었다. 어떤 때는 전문가의 말에 너무 쉽게 반응하여 학교의 프로그램 운영에 예상치 않은 문제성 조치도 있었던 것 같다.

교육개발원 원장 재직시에 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3국인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방문하였을 때 듣고 생각한 두 가지 정보를 귀국하여 만난 최 이사장과의 자리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나는 영재교육에서 각자의 영재적 잠재성을 발견하기 위한 방안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수준의 국제적 교류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영재교육을 위해서는 아이들이 각자가 어떤 영재성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가를 발견하기 위한 기회, 즉 그 영재성이 발휘될 수 있는 학습의 장을 체계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의 일과계획을 이렇게 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즉 오전에는 주로 기본교과들을 중심으로 수업을 계획하고, 오후에는 학생들이 각기 자신의 잠재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학습의 장으로 수업시간을 계획하고,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이런저런 수업을 선택해 보도록 할 필요가 있다. 단지 취미나 관심에 따라서라기보다는 학생도 교사도 잠재적 능력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학습경험의 장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한 학습경험은 자연히 여러 교과의 교사들이 제공할 것이고 학생들은 선택적으로 몇 개의 특정교과를 이수할 것이다. 어떤 교사들에게는 다소 집중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교과전공의 성격에 따라서 다소 한가한 교과와 수업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하여 이사장은 기업가적 반응을 하였다. 즉, 오후에는 여러 과목의 수업이 제공될 것인데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게 된다. (내가 나중에 민사고의 교장이 된 후에 그런 적이 있다고 했더니) 교사들이 말하기를 당시의 이사장은 그러한 시스템을 교사의 능력평가의 기회로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교사들은 경쟁적 긴장으로 시달렸다고 하였다. 방법은 유사했으나 목적이 달라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나는 바로 위의 만남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도 하였다. 핀란드의 헬싱키를 방문하였을 때,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이인호 교수가 당시의 주 필란드 대사로 근무하던  중이었다. 이 대사는 저녁에 나와 일행을 대사관저에 초청하여 함께 만찬을 하는 자리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헬싱키의 어느 고등학교는 미국의 마사추세츠주의 사립 고등학교들의 상호인정체제(accreditation system)에 회원학교로 참여하여 학생교류와 학점교류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 최 이사장의 귀를 자극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보스톤의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하여, 이인호 대사에게 급히 연락하여 주소를 받아 전해 주었다.

최 이사장은 일찍 국제학교를 생각한 적은 있다고 했다. 나중에 그 아이디어가 발전된 정도를 물었더니 이야기 중에 국제학교는 당시의 민사고처럼 무상으로가 아니라 유상으로 다니는 학교로 운영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꽤 시간이 흐른 후에 듣기로 독립된 국제학교보다는 현재 학교의 한 계열, 즉 민사고에 국내계열과 국제계열로 양립시켜 운영할 것이라고 하였고, 후에 민족반과 국제반으로 운영되었다. (지금은 무계열로 통합되어 있다.)

아마도 영어상용정책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영어 능력이 크게 향상되면, 학생들의 진학도 국내대학에 한정하지 않고 영어 사용 국가의 명문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상하였고,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졸업생들을 배출할 구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3차회 계속)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  dhl9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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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2021-06-24 15:51:37
전국민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오는 국가의 정책에 정말 우려가 됩니다. 뛰어난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지도자로 육성되어야 하는데 이 학교는 존속되고 더욱 발전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