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명문 고등학교로 성장
학생을 찾으러 횡성에 온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들
국내 대학과 미국 대학의 차이
선발자료의 표준화와 사정자료의 다양화를 위하여

[이돈희 전민사고 교장의 학교생활 보고서]

 

-- 국제적 명문 고등학교로 성장 --

 

횡성의 학교에 찾아 온 아이비리그 대학

 

학생을 찾으러 횡성에 온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들

 

민족사관고등학교에는 한 때 국내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외국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나눈 적이 있다. 전자를 “민족반”이라고 하고 후자를 “국제반”이라고 하였다. 본래 민사고는 민족반으로만 시작하였으나, 1999년에 국제반의 인가를 받았고 2000년부터 정식으로 국제반 신입생을 모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계열의 구분은 2008년에 통합할 때까지 몇 년 동안 유지하였다. 나는 이 기간에 학교장을 맡으면서 진학과 선발의 제도에 관련한 여러 가지의 특이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실제로 민사고 졸업생들이 외국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부터였다. 이미 1999년에 미국의 코넬대학과 일본의 쓰쿠바대학에 각각 1명씩 진학하면서부터 해마다 그 숫자가 증가하였다. 국제반으로 졸업생을 낸 2003년에는 이미 외국(주로 미국)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누계가 46명에 이르렀고, 2007년에는 한해에 무려 82명의 학생들이 아이비리그 수준의 대학에 진학하였다. 내가 학교장을 그만 둘 당시까지의 총계가 220여명에 달하였다.

이렇게 외국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수가 매년 급격히 증가하게 되자, 한동안 해마다 미국과 캐나다의 명문 사립대학에서 학생선발업무를 담당는 관계자들이 집단으로 찾아와서 대학설명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1년에 약 10여개의 대학들이 찾아왔다. 물론 그들이 강원도의 횡성 산골에 있는 이 학교만을 위하여 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국내에 국제 프로그램을 둔 학교도 있지만,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권에 있는 고등학교들을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자기네의 학교를 홍보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곳의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온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자기 학교에서 공부하게 할 인재들을 찾아서 이곳에까지 온 것이다.

이 대학들은 소위 아이비리그라고 일컬어지는 명문대학군에 속해 있거나 이와 동격인 세계적 수준의 이름난 대학들이다. 자기네 나라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해마다 2백만명이 넘는 미국내의 학생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천하의 영재라고 할 수 있는 우수한 학생들이 세계의 각지에서 다투어 모여드는 대학들이다. 그런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영재들을 자기 대학에 유치하기 위하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아시아의 여러 곳, 특히 이곳 횡성의 산골에까지 찾아 온 것이다. 그들의 활동은 오늘날 경쟁력이 뒤진 국내의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고자 학생을 유치하려고 다니는 것과는 성격상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학이란 본래 학문적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과 연구의 기관이므로 할 수만 있으면 우수한 인재를 뽑으려고 하는 것은 한국의 대학이나 미국의 대학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들을 찾는 방식에 있어서는 서로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 차이가 단지 대학의 수월성을 유지하는 데도 문제이겠지만 하급학교의 교육을 좌지우지한다는 데도 교육적 긴장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세계적 수준의 명문대학에 졸업생을 입학시키는 일은 어느 고등학교에서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다른 고등학교들도 공통으로 느끼는 사실이지만, 국내의 소위 일류대학에 입학시키는 일이 그런 세계적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는 일보다 오히려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의 다른 학생들과 실력경쟁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육에 요구되는 실력 이외의 제도적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국내대학의 학생선발원칙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으므로, 거기에 맞추어 교육을 운영하면 상당한 정도로 전인교육도 영재교육도 그 본연의 것을 유보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이게 된다.

이에 비하여 아이비리그 수준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각기 평소에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여 준비하면, 대등한 수준의 여러 대학 중에서 자신을 선택해 주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명문급 대학 중에서 이 대학이 아니면 저 대학에서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이 대학의 선발제도에 맞추어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한다기보다는 선발제도가 허용하는 틀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살려 실력을 쌓아둔 증거를 충실히 보이면, 여러 대학이 경쟁적으로 학생을 데려가고자 한다. 이런 조건하에서는 고등학교가 자유롭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생긴다. 그 실례를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국제반 운영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학생선발에서 지나치게 기계적, 계량적 공정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누구를 맡아서 교육시킬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명쾌하게 선발과 탈락을 구별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어느 과목에서 몇 점, 어느 부분에서 몇 퍼센트, 어느 집단에서 몇 위인가 등 모든 것이 엄격히 계량화되어 있다. 우리의 대부분 고등학교가 경험하는 것이지만 민사고의 민족반(국내반) 학생들의 진학과정에서 볼 수 있는 현상도 비슷하다. 이런 제도하에서는 학생의 성취동기나 포부수준이나 창의력이나 잠재력 등이 선발과정에서 제대로 노출될 수가 없다.

만약에 미국의 명문대학들이 한국의 대학과 같은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널리 학생을 구하기 위하여 이곳 횡성에까지 온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선 미국의 학생들과 한국의 학생들을 같이 두고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대학들이 사용하는 SAT(Scholastic Aptitude Test) 혹은 ACT(American College Test) 성적이나 AP(Advanced Placement) 점수도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 점수들의 산술적 계산의 총점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제출한 각종의 전형자료의 계량적(quantitative) 수치보다는 판정관들에 의한 정성적(qualitative) 평가의 비중이 더욱 높은 편이다.

 

국내 대학과 미국 대학의 차이

 

미국 명문 대학팀의 대학설명회 

나는 민사고의 민족반과 국제반의 운영을 통하여 미국대학과 한국대학의 선발방식의 차이가 이 학교 학생들의 공부와 생활에 주는 영향에 있어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를 관찰할 수 있었다. 실로 놀라울 정도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민사고의 민족반 학생들은 국내의 대학에 진학하는 데 있어서 일반 고등학교의 학생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다. 우선 당시의 입시제도에서나 2008년부터 적용된 내신성적의 반영방식에서 그러하다. 아무리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학교라고 하더라도 “내신등급”이라는 것이 요구되는 한에서는 누군가를 강제적으로 최하위 등급에 배치해야 한다. 그 최하위 등급에 속하는 학생이 다른 학교에서라면 어렵지 않게 최상급의 등급에 속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은 그러하다. 그리고 학생수가 적기 때문에 고등급 비율의 산출에서도 불리하다. 나누는 분모의 수가 작기 때문에 예컨대 최상위 등급인 종합적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수가 극히 제한된다.

민사고는 학급당 학생수가 15명이고, 어떤 선택교과는 한두 명의 학생을 두고 수업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선택과목 중에는 30명이 넘는 수도 없지 않으나 이 경우에도 일반학교와는 사정이 다르다. 모두가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선발된 학생들이므로 항상 높은 등급을 유지하기가 힘들고, 그들 중에 누군가는 낮은 등급을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당시의 민족반 학생들은 동료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내신성적의 고등급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다. 사실상 한둘 정도의 아주 특별한 학생이 아니라면 아무도 고등급을 받아 갈 수가 없는 수도 있다. 고정된 하위 등급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고정된 상위 등급자도 거의 없게 된다. 그들이 내신성적의 관리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원천적으로 없는 셈이다. 단지 한 가지 길이 있다면 학교가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조기졸업을 시도하는 것이다. 민족반 학생들의 많은 수가 조기졸업을 택하고 또한 그렇게 하여 수준급 대학에 진학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는 조기졸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지는 않는 편이다.

나는 어느 날 조기졸업을 계획하고 준비 중에 있는 어느 2학년 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런 말을 꺼냈다. “공부란 서둘러서 단기간에 마치는 것보다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배우는 바를 차근히 음미해 가면서 즐기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했다. 학생의 대답은 이러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우리의 고등학교 3학년이란 결국 대학입시의 준비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인데, 점수따기식의 공부를 경쟁적으로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겠습니까?”고 하였다. 내가 들어도 정확한 말이었다.

절대평가에 의한 자기 평점(GPA: Grade Point Average)만을 받아가는 국제반 학생들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외국의 다양한 대학이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그런 공부를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대학들에 복수로 지원한다. 대개 민사고 학생들의 수준이면 미국 아이비리그 수준의 대학 여러 곳에서 입학허가서를 받는다. 성적은 등급 없이 절대평가에 의한 평점으로 매겨지고, SAT 시험은 준비된 때에 보면 되고, AP 시험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봉사활동이나 자기개발을 위한 활동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각종의 경시대회에 기회가 있을 때 참여한다. 동료와는 경쟁 상태에 있을 수도 있으나 결사적인 소모적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각자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에 매달리면 그만큼 경쟁력이 된다. 그런 경쟁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희생을 당해야 할 이유도 없고, 누군가가 하위등급을 받아야 하는 민족반 학생들의 경쟁과는 다르다.

민사고에는 100개가 넘는 클럽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활동을 계획하여 추진하다가 보면 그만큼 클럽의 수도 많아진다. 공부와 경쟁은 힘들지만 즐거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민족반 학생들은 국제반 학생들만큼 공부를 마음껏 즐기기도 어려우며 여러 가지의 활동을 계획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성적관리를 의식하여 자연히 불가피하게 활동의 범위를 넓히기를 자제하는 심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선발제도의 경직성 때문이다.

 

선발자료의 표준화와 사정자료의 다양화를 위하여

 

나는 오래전부터 대학선발제도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현행의 “수학능력시험”을 표준화할 것을 여러 차례 주장한 바가 있다. 민사고의 부자유스러운 민족반과 자유스러운 국제반의 대조적 생활과 공부의 방식을 관찰하여 깨달은 바를 근거로 해서 주장한 것이다. 대학선발의 기본적인 전형자료인 수학능력시험은 표준화하고, 수험생은 준비된 과목을 수시로 응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입시에 매달리는 시간적, 심리적 부담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수학능력시험을 표준화한다는 것은 성적의 분포를 일정하게 해 둔 상태, 대개는 주로 “정상분포곡선”이라는 통계학적 모양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상위, 중위, 하위의 성적들이 일정하게 분포된 상태가 되도록 문제들의 곤란도를 조정한 것을 말한다. 표준화되면 작년에 받은 점수나 금년에 받은 점수나 성적의 의미로는 같은 것이다. 지능검사가 표준화된 검사의 대표적인 것이고, 미국의 토플이나 SAT 등도 그렇게 표준화된 것이다. 우리의 수능시험도 표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그 필요의 절실성에 대한 의식이 별로 높지 않았고, 교육부와 전문담당기관이 해마다 치러야 하는 시험 그 자체에만 몰두한 나머지 표준화를 위한 다소 복잡한 작업을 시도할 여력이 없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서둘러 준비해서 시행할 필요가 있는 과제이다.

표준화되지 않으면 해마다 시험의 곤란도가 일정치 않은 것도 문제이거니와, 수능시험과 같은 대규모의 시험은 절차, 비용, 관리 등이 복잡하여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는 실시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그 시행시기가 고교 3학년의 말기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이런 수능시험에는 수험생이 결사적으로 거기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엔간히 준비된 교과목도 한 점수를 더 따기 위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고, 학습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언제나 수능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온통 안고 살아야 한다.

한번 실패하면 그 실패로 인하여 1년을 더 기다리거나, 아니면 자신이 바라던 진로와 대학을 영원히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러므로 수능의 반영률이 높은 현재의 제도하에서는 사력을 다하여 점수따기에 임해야 한다. 입시의 일차적 지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들이 점수따기의 공부에 매몰된 상태, 그것은 옳은 공부도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창의적 학습이나 균형적인 성장을 위한 경험의 기회마저 빼앗아 버린다. 경쟁적 심리에 시달린 긴장과 피로는 젊은이들의 심신을 심각하게 망가뜨린다.

미국의 대학전형 자료인 SAT는 우리의 수학능력시험과는 성격상 크게 다르다. 그것은 표준화된 것으로서 학년에 상관없이 시기를 선택하여 볼 수 있고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면 다시 볼 수도 있으며 어느 수준에 이르면 그것으로 끝내도 된다. 열심히 준비했으면 봄에 본 시험의 성적보다 가을에 본 시험의 성적이 더 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봄에 본 시험의 성적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면, 가을에 그 시험을 다시 볼 필요가 없고 이제 다른 활동을 해도 된다. 반드시 고등학교 3학년에서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볼 수 있다. 만약 시험의 범위나 방식에 변화가 생기면, 그 이전의 성적과 지금의 성적을 비교하여 환산하는 방식을 공식적으로 만들어 놓게 마련이다. 한꺼번에 모든 교과를 동시에 치르게 할 필요도 없고 준비된 교과를 준비된 시기에 보게 하면 된다. 그것은 표준화된 시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수능시험이 표준화되면 해마다 곤란도가 들쑥날쑥하여 지원코자 하는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데 생기는 혼란을 피할 수가 있다. 표준화 상태에 있으면 예년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성적이면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에 지원하기에 안전한가에 대한 예상이 해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면 해마다 입시전문기관들이 시험의 곤란도와 점수의 분포를 참고하여 어지럽게 발표한 각종의 새로운 조견표에 혼란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가 예외적으로 급격히 도약하였거나 급락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험생은 스스로 목표를 세워 자신이 성취한 내신성적과 함께 고려하여 안정된 준비를 할 수가 있다.

2008학년도부터는 대학선발제도에서는 수학능력시험의 성적과 내신성적을 등급화하였다. 등급화는 자연점수의 비교로써 생기는 소모적 점수따기 경쟁을 막기 위한 취지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능과 내신의 일회성, 즉 한 번의 기회로서 결정되는 한에서는 점수따기 경쟁이 해소될 수가 없고, 변별력에 문제가 있는 한에서는 대학이 변별을 위한 별도의 시도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의 대안으로 우리는 수능을 표준화하여 수험생으로 하여금 수시로 준비된 과목을 볼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내신성적도 총점의 계산보다는 최고 성적의 학기 혹은 학년의 것만을 참고한다든가 하여 성취도와 잠재력을 평가하고, 학생이 성장과정에서 이룬 각종의 학습경험을 폭넓게 평가하면서 다원적인 변별 자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학들이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을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참고삼아 우리의 제도와 비교하기 위하여 대체적인 절차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학생들이 지원하는 대학에 제출해야 하는 자료를 보면, (1) 고등학교의 학업성적, (2) SAT 혹은 ACT, PSAT(Preliminary SAT), 외국학생의 경우에 TOEFL, 그리고 AP 등의 성적, (3) 교과외 활동자료, (4) 대입논술(college essay), (5) 교사 혹은 학교의 추천서, (6) 기타 보충자료 등이 있고,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선발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학에 따라서는 동문에게 의뢰하여 면접을 하기도 한다.

선발의 형태로는 흔히 우리의 수시모집과 유사한 조기선발(early admission), 정시모집과 유사한 정시선발(regular admission), 그리고 주립대학들이 즐겨 실시하는 방식의 하나로 시기를 달리하여 접수된 지원서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사정하는 회전식 선발(rolling admission)이 있다.

학업성적에는 등급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상대평가라기보다는 절대평가의 성적이다. 대학들의 요구사항도 대학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고, 고등학교들의 성적 표기방식도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것들을 대학이 통일해서 요구하지는 않는다. 성적 산출에서는 과목에 따라 가산점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학이 주는 점수보다는 출신 고등학교가 배점의 가중치를 주고 대학이 참고하기도 한다. 대학은 역시 변별력이 있는 자료를 묵시적으로 요구하는 셈이다.

최근의 추세는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내가 재임하던 당시에는 시험성적의 기본자료인 SAT는 두 가지로 나누어 실시한다. SAT I은 독해(Critical Reading), 수학(Mathematics), 논술(Writing)의 3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각 영역별 800점 만점으로 총계 2,400점을 계산한다. SAT II는 수학, 외국어, 언어 청취력, 문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미국사, 세계사 등의 교과목 중에서 필요에 따라서 2~3개에 응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험은 1년에 7, 8회 실시된다.

AP(Advanced Placemant)에 해당하는 과목은 교양과목 수준의 것으로서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준비하여 응시하기도 한다. 그 과목의 수는 특정한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나, 대개 적게는 2개, 많게는 10여개도 택하나 보통 4~6 과목 정도면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민사고의 국제반 학생들은 학교가 개설한 19개 과목 중에서 한 학생이 6개 과목 내외로 수강하여 응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학업성적 이외에 봉사활동, 인턴, 경시출전, 그밖에 특별한 활동 혹은 경험 등으로 망라되는 교과 외 영역의 실적도 교과성적과 함께 중요한 자료로서 의미를 지니며, 대입논술은 자신의 생각과 품위와 개성을 표현하는 기회가 되는 자료이다. 그리고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교사의 추천서와 학교의 진학상담교사의 책임으로 작성되는 추천서, 그 이외에 자신을 알리기에 도움이 되는 보충적 자료가 있으면 제출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에서는 합격자 혹은 불합격자가 어떤 성적이 좋아서 혹은 나빠서 합격했다거나 불합격했다거나를 구체적으로 알기도 하고 짐작을 할 수도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미국대학의 경우에 지원자는 대개 막연한 짐작밖에는 확실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만큼 미국의 대학들은 엄격한 계량적 평가가 아니고 판정관들의 정성적 평가(qualitative evaluation)에 의한 합의를 통하여 합격의 여부를 결정하는 비중이 우리의 경우에 비교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러므로 학업성적이나 각종의 시험성적이 월등하게 뛰어났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선발되는 것은 아니고, 교과외 활동이나 대입논술이나 추천서 등에서 나타난 특별한 능력이나 성과가 함께 고려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사회 주변의 협력기관들이 학생의 능력을 변별하는 데 필요한 표준화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SAT나 ACT 등을 관장하는 기관은 주로 공신력을 구축한 민간기구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평가하고 적용하면서 입학의 여부를 결정하는 선발권은 완전히 대학이 소유하고 있고, 출신 고등학교는 학생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학생의 전형자료에 대한 익명성이 높고, 전형부서의 전문화가 잘 구축되어 있으며, 수험자의 대학선택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사정이 매우 다르기는 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에도 학생선발의 절차적 공정성에 철저를 기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에 못지않게 다양한 잠재능력을 폭넓게 고려한 인재선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