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을 위한 토론, 그리고 토론을 위한 학습(2)

이돈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토론에 임하는 자세

토론대회

모든 경기 혹은 시합에는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경기 혹은 시합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토론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그것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다투어 이겨야 하는 경기 혹은 시합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계획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해진 규칙을 준수할 것을 기본적 전제로 하고 토론에 임하게 된다.

< 자신에 대하여 >

첫째, 적어도 미리 계획된 토론에 임하는 사람은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열심히 연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관하여 충분히 파악하기 위하여 성의 있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토론의 장에서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듣고 적당히 말싸움이나 해서 요행으로 이기겠다는 자세는 올바른 토론자의 자세가 아니다. 상대방은 많은 것을 공부하여 토론의 장에 나왔는데, 나는 별다른 준비 없이 참여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행동이다. 이 말은 우연적으로 토론에 임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지닌 지식과 경험에 대하여 정직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잘 모르면서 억지로 말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태도는 자신에 대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세이다.

둘째, 토론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과 성의를 가지고 임하여야 한다. 내가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거나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데 토론의 장에 나가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잠간 관심을 가져 보는 것으로서는 좋은 토론을 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내가 시간과 노력을 바쳐 공부해 보고 공부한 것을 나름으로 익히고 소화하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또한 앞으로 주변이나 사회의 공동체에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공부하고 생각하고 토론할 가치를 충분히 지닌 분야라는 확신이 있어야 좋은 토론을 할 수 있고 그 결과도 유익할 수가 있다. 우연적인 토론의 장에 임하게 되었다면, 상대방의 노력과 경험 혹은 전문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항상 가질 필요가 있다.

셋째, 강압이나 폭력(혹은 폭언)보다는 설득을 통하여 대립된 생각이나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토론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순리로써 해결하면서 살겠다는 사람들의 방법이다. 강압, 폭력, 협박, 사기, 회유 등의 비합리적 방법에 의존하려는 습관을 가진 사람과의 토론은 불가능한 것이다. 토론은 민주적 삶의 방식이며 그 능력은 바로 민주적 시민의 기본적 자질에 속한다.

넷째, 토론에서 이길 때도 무엇인가를 배우지만 질 때도 많은 것을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여야 한다. 이길 때는 자신이 준비하고 생각하고 진행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질 때도 똑 같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상대방과의 논쟁 끝의 결과이다. 토론에는 상대방이 있다. 상대방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상대방이 공부한 바를 보여 주며, 대결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함께 경험하게 한다. 이기고 지고에 관계없이 토론자는 그가 성실히 거기에 임하였다면 이미 많은 것을 공부한 셈이다. 그러므로 이길 때는 너그러운 승자가 되고 질 때에는 명예로운 패자가 된다는 자세로 임하여야 한다. 우연한 토론의 장에서도 집요하고 체계적인 대결의 태도가 필요하지만, 상대방의 주장이 편 논리와 정보에 비하여 덜 준비된 자신의 수준을 지각한다면 깨끗이 승복하고 자신이 더욱 준비된 토론을 기약하는 것도 좋은 태도에 속한다.

< 타인에 대하여 >

첫째, 비록 의견을 달리 하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자세는 토론자의 기본적 자질에 속한다. 실제적 토론활동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하여 시작하고 또한 그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자유로운 의견과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견은 경우에 따라서 서로 충돌할 수도 있으므로 서로가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상대방에게 욕설을 한다거나 협박한다거나 하여 자유로운 발언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토론의 상황이 아니다.

둘째, 자기 팀(혹은 편)에 속한 동료는 말할 것도 없고, 상대 팀에 속한 사람, 토론을 지켜보는 청중, 그리고 심판, 지도교사, 진행자 등 토론의 모든 관계자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비록 토론의 대상은 상대 팀이지만 토론은 단지 토론의 당사자, 즉 서로 대결하고 있는 두 팀의 사이에서만 이루지는 것은 아니다. 청중, 심판, 진행자, 그리고 토론 팀의 관계자 모두가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역할을 무시하면 결코 공정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진행될 수가 없다. 우연적 토론의 상황에서도 실질적인 토론의 당사자 이외에 주변의 분위기가 있다면, 경우에 따라서 그들의 권고나 의견이나 충고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내가 전개하는 논의와 증거, 그리고 상대방의 논의와 증거에 대하여 정직하여야 한다. 자신이 전개하는 논의와 제시하는 증거는 비양심적으로 날조된 것이거나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인 양 우기거나 과장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그렇듯이 상대방의 논의와 증거도 성의를 다하여 정직한 것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물론 실수에 의하여 오류가 있고 잘못된 증거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토론의 과정에서 합당한 방법으로 지적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지 상대방의 불순한 동기가 관여하고 있다는 선입견으로 대응하는 것은 자신의 것도 상대방에게 그렇게 읽히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넷째, 경험이 부족한 동료나 상대에 대하여는 친절히 도와주려는 자세를 취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내 편에 속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 속한 토론자가 경험이 부족하여 혹은 실수로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하거나 의도와는 달리 잘못된 방향으로 발언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이기고자 노리는 것은 좋은 토론자의 자세가 아니다. 때로는 기다려 주고, 때로는 친절히 바로 잡아주고, 때로는 표현을 도와주는 것은 서로 경쟁하는 상대방에게 베푸는 배려일 수가 있다.

특히 논쟁식 토론에서는 한 쪽을 승자로 판정하고 다른 쪽을 패자로 판정한다. 토론의 판정은 결과적으로 어느 쪽이 다른 쪽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승자가 되게 한 것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욱 훌륭한 토론을 했기 때문에 승자가 된 것이어야 한다. 질 수밖에 없는 주장도 최선의 증거와 타당한 논리와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써 설득력 있는 전략으로 효율적으로 펴낸 것이라면 승자가 될 수 있다. 토론은 바로 그 다른 생각과 의견을 함께 검토하는 집단적 사고의 전략적 연습이다. 이 연습을 제대로 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규칙에 맞게 잘할 수 있고, 남의 주장을 또한 규칙에 맞게 잘 검토하여 더욱 좋은 생각과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기법을 익히게 된다. 좋은 토론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풍요한 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