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을 위한 토론, 그리고 토론을 위한 학습 (6)

이돈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토론수업의 단계적 절차

여러 가지 토론의 형식과 모형이 있지만, 토론을 통한 학습, 특히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심도 있게 토론하고 그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논쟁식 토론이다. 다른 형식의 토론은 논쟁식 토론을 그냥 느슨하게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토론이든 간에 토론은 그 자체로서 흥미를 유발한다. 승부를 가리는 경기로 진행될 때는 승리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토론자들은 먼저 의욕에만 차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토론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학습의 과정으로 수행되는 것이니만큼, 교육적 목적이 최대한으로 실현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토론에 의한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과정을 충실하게 밟을 필요가 있다.

1. 논제 이해의 단계

토론자들은 주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며 그 주제가 왜 논쟁거리가 되는가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토론에 임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논제의 성격을 바르게 인식하여야 한다. 먼저 그 논제(의제)가 사실, 논리, 가치, 처방, 정책 등의 어느 것에 관한 것이냐를 식별하여 그 성격을 인식해 두는 것은 바른 토론을 하기 위한 토론자의 가장 기본적인 작업에 속한다. 예를 들어, 다음의 진술들은 모두 토론의 논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각을 옳다고 해야 하느냐 옳지 않다고 해야 하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성격상 각기 다르다.

(1) 피고는 살인의 혐의가 없다. (사실)

(2) 둥근 삼각형도 있다. (논리)

(3) 신앙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보다 소중하다. (가치)

(4) 학습 능률을 위해서는 여덟 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한다. (처방)

(5) 의무교육은 고등학교까지 연장하여야 한다. (정책)

첫째의 논제는 피고가 살인의 혐의를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혐의를 둘 수 없느냐에 관한 것으로서 그 진위는 사실에 의해서 판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실적 논제라고 할 수 있다. 토론에서 찬성의 편에 있든지 반대의 편에 있든지 간에, 자신들의 주장이 옳고 그름은 사실과 일치하느냐 않느냐에 달려있다.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하는 사실적 근거가 진실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느냐가 토론의 주된 판단 기준이 된다. 사실적 진실성이 없다면 허위(거짓말)이거나 오류(잘못)이거나이다. 두 가지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즉 믿기 어려운 것이지만, 전자에는 후자보다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있고, 후자에는 전자보다 도덕적으로는 덜 심각하지만 주장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토론은 사실적 근거의 진실성을 밝히기 위한 논쟁이다.

둘째의 논제는 삼각형이면서 둥근 것이 있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으로서 논리적 가능성의 여부를 두고 토론하는 것이다. “둥글면서도 삼각형이라는 말은 모순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하면 둥근 삼각형도 성립한다. 그러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의 삼각형을 진정한 의미의 삼각형이라고 할 수 있느냐의 논쟁거리가 남는다. 도대체 삼각형을 왜 우리가 삼각형이라고 하느냐, 즉 삼각형의 정의를 두고 논쟁이 성립할 수 있고, 이러한 논쟁은 사실의 관찰을 통하여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삼각형의 개념(혹은 논리)에서 나온 논쟁거리이다. 이러한 논제는 논리적 논제라고 할 수 있다.

셋째의 논제에서와 같이, 신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모두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에 속하지만, 둘을 두고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느냐를 논하는 것은 가치적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가 나쁜가,” “바람직한 가 바람직하지 못한가,”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아름다운 가 추한 가등으로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하는 논제는 가치의 논제이다. 가치의 논제에는 때때로 사실에 대한 진실여부의 확인이나, 논리의 일관성과 타당성의 입증이 따라야 하거나 선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치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독특한 논쟁이 이루어진다. 논쟁의 궁극적 결론이 가치를 표현하고 있으면 가치적 논제라고 할 수 있다.

넷째의 논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나 처방이 옳으냐의 여부를 두고 논쟁을 하게 하는 것이므로 처방적 논제라고 할 수 있다. 의사가 어떤 질병을 진단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이 문제해결의 방도를 강구하는 것을 표현하는 논제는 이에 속한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한다라든가, “도난방지를 위해서는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면 된다라든가는 처방적 논제들이다.

다섯째의 논제인 정책적 논제하여야 한다의 형식으로 당위적 진술 혹은 선언을 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특징상 처방적 논제와 유사하다. 다만 정책적 논제는 사회적 문제와의 관련을 갖는 것인데 비하여 처방적 논제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책적 논제는 논쟁식 토론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논쟁식 토론은 정책적 논제에 대한 토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는 토론의 내용 혹은 주제로 삼을 만한 사회적 문제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이기도 하고, 다른 논제들은 논쟁식 토론의 논제로서 적절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작용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나 이론적 탐구의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쟁점으로 부각된 내용과 관련된 학생 자신의 경험이 있으면 그것을 조직하고 정리하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제에 관한 학설, 이론, 사례 등에 관한 연구 과제를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부과하는 것도 토론학습의 성과를 높이는 방법이 된다.

예컨대, “고교 평준화 정책은 유지되어야 한다라는 의제라면, 언제부터 그 정책이 시행되었으며, 그것을 입안할 당시의 교육상황과 정책결정의 사회적 배경은 어떠하였는가를 조사해 보게 한다든가, 현재의 각종 사회조사에서 나타나는 의견의 경향을 확인하는 과제를 부과할 수 있다. 혹시 그 정책을 시행할 최초의 사회적 여건과 현재의 상황은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가를 확인해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2. 논제 연구의 단계

토론자들은 주제에 관련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가능한 한도 내에서 관련된 이론과 지식을 폭넓게 정리하여 소화하며, 쟁점의 논거를 분석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사는 이 단계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토론이 단순한 말 연습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그 자체로서 주제와 관련된 지식을 획득하고 조직하고 분석하는 경험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자율적인 학습의 역량을 높이는 방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하여야 한다.

평준화 정책은 어떤 사회문제와 관련을 지니고 있는가를 심층적으로 연구한다면, 거기에는 입시위주의 교육의 폐해, 사교육비의 부담, 학교교육의 비정상화 등의 교육적 문제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생활 격차, 사회경제적 계층구조와 교육의 관련성, 학력구조의 변천과 사회변동의 형태 등의 문제에까지 관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연구는 구체적 문제의식과 강한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의미한 경험을 통하여 선택되고 조직된 지식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학습한 학생들의 마음에 정리된 지식들은 단편적으로 주입된 많은 지식들이 별로 활용성 없이 마음속에 그냥 내장되어 있는 상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3. 토론 준비의 단계

논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관련된 지식과 정보가 잘 정리된 상태에 있으면, 이제 토론을 어떤 전략과 기법에 의해서 수행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논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준비해야 한다.

주장하는 바의 확실한 사실적 증거를 제시하고 완벽한 논리적 추론을 구사하는 전략을 세워야 하고, 심판진이나 방청인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바가 최대한의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논변의 기법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동원하는 지식의 확실성, 전개하는 논리의 타당성, 주장하는 논지의 설득력, 수행하는 전략의 효율성 등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교사는 토론자가 자신의 주장을 펴는 전략을 세우거나, 상대방의 반론에서 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논거나 이유를 사전에 검토하거나, 같은 편의 토론자들을 지지하는 논거를 검토하는 과정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4. 토론 수행의 단계

토론은 긴장과 흥미가 함께 엉클리면서 진행된다. 계획하고 준비한 그대로 완벽하게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때때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상대팀의 비판이나 공격에 대응하는 순발력, 기동성, 적절성, 그리고 자극적 발언에 대한 인내심과 자제력도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팀 구성원 간의 현장적 협동능력, 성공적 분위기의 주도력, 실수에 대한 관용성 등이 어쩌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적정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예상치 않은 위기의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토론의 수행과정에서 학습될 수 있을 것이다.

5. 결과 검토의 단계

토론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돌이켜 검토해 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토론 그 자체에 대한 종합적인 혹은 부분적인 평가도 필요하지만, 토론자가 발언한 내용, 방법, 전략, 기술 등에 관해서 개별적으로 평가해 볼 필요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토론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얻게 되었는가를 반성해 보는 일이다. 쟁점에 관해서 무엇을 알게 되었으며, 어떤 면이 부각되었던 셈이며, 결론은 어떻게 내려져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는 단계가 필요하다. 아마 이 단계에서는 앞서 언급한 협의적 토론의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교과에 따라서는 토론 수업이 잘 활용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이 토론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좋은 주제와 의제를 개발하는 데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거의 모든 교과에서 토론 수업은 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문학에서 예컨대, 이광수의단종애사(端宗哀史)”와 김동인의 수양대군(首陽大君)”은 어느 쪽이 더욱 진실의 소설인가? 역사에서 만약에 학생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국의 트루만(Harry S. Truman) 대통령의 각료였다면,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서 일본에 원자폭판의 투하를 결정하는 데 찬성하겠는가? 의사결정을 위한 다수결의 원칙은 가장 탁월한 방안인가? 수학에서 확률에 의한 예측은 최선의 예측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학에서 생명공학에 의한 인간 복제는 허용되어도 좋은 것인가?

수업의 상황에서는 교사가 지도안을 작성할 때 다루는 단원에서 토론에 붙여 볼 좋은 주제가 무엇일 것인가를 두고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좋은 토론의 주제를 개발하는 것이 좋은 토론수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차적 조건이다. 그리고 교사는 주제에 따라서 어떤 형식의 토론을 진행할 것인가를 구상하여야 한다. 물론 그 구상의 과정에서 교사 자신의 의견만이 아니라 학생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