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웅 서강대 교수

한국교육의 ‘패러다임 전환’

우리나라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1995년 5월31일 발표한 5·31 교육개혁안은 그 방향이 국가 중심, 공급자 중심에서 시장 중심, 수요자 중심으로 옮겨가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는 점과 개혁의 범위 면에서 전 교육체제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과는 차별화 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일컬어지는 이 개혁안은 김영삼 정부를 넘어 다음 정부들에까지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다시 말하면, 이명박 정부의 경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면서까지 김영삼 정부의 교육정책을 심화, 발전시키고자 한 것은 보수 정권의 특성상 이해할만 하지만,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기형적 신자유주의의 강요’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5·31 교육개혁안의 흐름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5·31 교육개혁이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5·31 교육개혁안이 발표된 지 20년 만에 발간된 『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안병영·하연섭 저)은 이론적·실천적으로 매우 귀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이 저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련 자료가 유실되고 기억이 흐려지는 가운데 당시 개혁가들의 시대적 고뇌와 정책의지 등을 포함하여 ‘살아있는’ 정책과정을 복원하고자 했다는 데에 가치가 있다.

둘째, 연구방법론적으로 방대한 원 자료에 대한 문헌분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 개혁안의 수립과 정책의 실천과정에 참여했던 주요 인사들(30여 명)에 대한 집중적인 면담을 통하여 교육개혁의 과정을 생생하게 복기하고 있다는 점도 이 저서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셋째, 5·31 교육개혁안의 입안과 개혁의 추진과정에 대하여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정책학적인 분석 틀에 따라 이론적 논의를 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저서는 언론기자들의 기사 작성과는 차원이 다른 학술적 담론을 제시해 준다.

이러한 작업은 공저자 가운데 한 명인 안병영이 김영삼 정부(1995. 12.∼1997. 8.)와 김대중 정부(2003. 12.∼2005. 1.)에서 두 차례 교육부 수장으로 교육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책임지고 있었고, 또 한 명의 공저자인 하연섭은 안병영의 연세대 행정학과 제자이자 동료교수로서 김대중 정부 시절 안병영 교육부총리의 정책보좌관(국장급)으로 교육정책 형성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들 공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교육정책에 대한 이론적 안목과 실천적 경험으로 인하여 이 저서는 5·31 교육개혁과 관련된 기존의 다른 문헌이 하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정치적 효과가 극대화된 교육개혁안

이 저서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한국교육의 역사적 전환’에서는 5·31 교육개혁의 의의와 경과를 소개하고 있다. 2부 ‘문민정부의 교육개혁’에서는 5·31 교육개혁의 창안과정, 집행과정, 그리고 평가를 다루고 있다.

3부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의 교육개혁’에서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의 방향과 함께 주요 영역별 추진과정을 분석하고, 이들 정부의 교육개혁에 대하여 ‘권위주의적 자율화’라는 말로 압축하여 평가하고 있다.

4부 ‘결론’에서는 위에서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정책의 미래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보론’에서는 성공적 개혁의 조건으로서 장기적 조망, 전체사회와의 연관구조, 점진적 개혁추구, 지도자의 결단, 사회적 합의 추구, 역사적 시간의 선택, 집행능력 등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필자는 교육개혁위원회(이하 교개위)의 상임 전문위원으로서 5·31 교육개혁안의 수립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 저서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 매우 친숙하다. 이 저서를 읽으면서 개혁과정에서 느꼈던 열정이 되살아나고 당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경험이 몸속에 남아있다는 사실과 이것을 학문적 담론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5·31 교육개혁에 대한 저자들의 이론적분석을 통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체험의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책의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교개위의 교육개혁안은 대통령이 질문을 던지고, 교육부가 이에 대해 정답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대통령 보고 형식을 통한 개혁안 발표는 언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는 가운데 정치적 효과가 극대화 되었고, 교육부는 그만큼 정책집행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 시절 네 차례에 걸쳐 발표된 교육개혁안은 교육부에서 크게 4개 영역, 120 과제로 구분하여 그 실천을 책임지고 있었고, 대부분 교육개혁안은 관련 법령 제정 또는 개정 절차를 거쳐 교육정책화 되었다.

둘째, 5·31 교육개혁안과 관련된 주요정책의 집행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교육대통령’을 자임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은 바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개혁을 주도했던 교개위 이명현 상임위원(당시 서울대 교수), 교개위 위원으로 있다가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박세일 수석(당시 서울대 교수), 그리고 개혁안의 집행을 책임지고 있던 안병영 장관(당시 연세대 교수) 간의 인간적인 네트워크를 기초로 한 일종의 규범적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비록 IMF 금융위기 상황으로 인하여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교육개혁을 위한 교육재원(GNP 5% 교육재정) 확보를 위해 애쓴 교개위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필요한 재원이 확보되지 않은 교육개혁안은 정치적 구호 또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넷째, 당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교개위의 개혁안과 상관없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갖고 교육정책을 결정하여 집행하였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5·31 교육개혁안이 수월성에 편향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교육정책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는 형평성의 제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복지종합대책(1997~2000)’을 수립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그의 정책감각으로 말미암아 진보적 성향의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총리로 중임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육정책이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

끝으로 5·31 교육개혁의 추진과정에서 ‘상대적’ 실패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시간의 촉박함과 교육공무원 집단에 대한 심리적·물질적 보상체계의 미흡이다. 전자와 관련하여 저자들이 개혁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로 ‘미래한국교육위원회’의 창설을 건의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교사의 자발적 참여 없는 개혁은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평범한 진리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든 교사들이 개혁안의 수립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줄 필요가 있
다.

다만 사회 전체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대결이 점점 더 심해지는 가운데, 교육정책과 관련해서도 나타나고 있는 교원집단 간 분열로 인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지혜가 요구된다.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百年之大計)’로 성립하려면, 교육분야 내부의 관점과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저자들이 ‘사교육 경감 정책’에 대하여 “공교육 활성화가 사교육 경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오류를 통찰력 있게 제시하고 있듯이, ‘교육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른 분야와의 연관구조 속에서 함께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교육정책은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5·31 교육개혁 성공 경험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