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원장, 사회복지학과 교수

누리과정을 둘러싼 논쟁 등 교육과 복지정책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가장 확실한 복지는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출발선부터 공정하고 공평한 교육기회가 부여될 때 우리사회가 부담해야 할 복지 부담이 완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과 복지는 다른 개념이 아닌, 같은 맥락에서 현실을 진단하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교육과 복지에 관한 담론 형성을 위해 전문가의 견해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첫 번째로 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원장의 글을 싣는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복지정책과 복지국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교육분야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다. 복지 이념이 안정된 삶의 보장, 기회균등, 평등 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은 어찌 보면 복지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정책이나 복지국가에 관한 문헌에서는 교육정책은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좀 예외적인 상황이 영국인데 영국은 사회정책이라는 학문분야에서 교육정책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필자는 교육정책과 복지정책의 통합적 사고가 한국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며 복지국가의 수립이라는 과제 역시 교육정책을 제외하고 논의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원장,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통적 복지국가의 복지정책

전통적인 복지정책이나 복지국가의 기본원리는 ‘유급노동(paid work)’에 기반하고 있는데 유급노동에 종사하는 경우 복지급여가 주어지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복지급여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실업과 질병, 그리고 노령과 같은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어 유급노동의 기회가 사라지고 소득중단의 위험이 발생되면 실업보험, 공적연금, 건강보험 등이 개입하여 소득을 유지시키는 것이 전통적 복지국가의 기본원리였다.

물론 극빈층에 대해서는 유급노동과 무관하게 복지급여가 주어졌지만 유급노동이 복지급여의 조건이라는 원리가 주로 적용된 것이 우리가 아는 소위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사하던 전통적 복지국가였다. 전통적 복지국가에서는 교육문제는 복지국가의 주요 이슈이기보다는 주로 ‘국민복지최저기준(National Minimum)’ 같은 시민적 권리의 입장에서 다루어졌다.

교육권이 복지권 같은 사회권(social rights)의 일종이며 사회권이 시민적 권리의 매우 중요한 한 축을 구성한다는 논리정도가 전통적 복지국가에서 주로 언급되던 내용이었다.

교육정책과 복지정책이나 복지국가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전통적 복지국가에 대한 재편 필요성이 제기된 1990년대 후반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전통적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에 거센 공격을 받으며, 성급한 시각이지만 일각에서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위기를 넘어 해체까지 언급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복지축소나 복지의 경제적 역기능을 강조하던 신자유주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는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전통적 복지국가에서 강조되던 소득보장 중심의 복지정책이나 이에 기반한 복지국가와는 성격이 다른 새로운 유형의 복지정책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 소위 ‘제3의 길’이라 불리던 복지국가의 새로운 방향을 역설하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제3의 길’로 대표되던 전통적복지국가의 새로운 복지정책 노선은 최근에는 ‘사회투자전략(social investment strategy)’ 혹은 ‘사회투자복지국가(social investment welfare state)’라는 시각으로 모아지고 있다.

새로운 복지정책으로서의 사회투자전략

사회투자전략은 과거의 완전고용시대의 노동시장 조건의 변화, 그리고 저출산·고령화라는 새로운 경제사회적 흐름에 대응하는 한편 전통적 복지국가의 부작용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 전통적 복지국가의 부작용은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사람들에 대한 소득보장이 실업을 더 영속화시키거나 빈곤탈출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빈곤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으로 높은 복지급여를 제공하는 사회에서는 일정부분 타당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회투자전략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와 정규직 완전고용의 종말로 상징되는 노동시장의 변화였다. 과거 제조업중심의 완전고용사회에서는 특별한 교육훈련과 고도의 인적자본 축적 없이도 노동시장에서의 구직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된 노동시장조건에서는 무숙련과 비숙련은 노동시장에서 적응이 어렵고 일단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면 다시 복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학령기에 인적자본을 제대로 축적하지 못한 경우는 실업과 빈곤의 덫에서 탈출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면서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적 기반 구축이 매우 중요한데 기존의 전통적인 소득보장 위주의 복지정책으로는 ‘신’사회위험이라 불리는 이러한 문제를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다.

이러한 노동시장구조 변화는 과거와는 새로운 복지정책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시행되는 교육복지프로그램 등 관련프로그램은 개선의 여지가 너무 많다.

아동, 청소년기의 인적자본의 중요성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와 노동시장의 변화는 개인이 보유한 인적자본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특히 아동기의 인적자본을 제대로 축적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아동기에 불리한 지역사회환경과 가족환경에서 양육되는 경우 인적자본을 제대로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하여 그 이후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까지 학교교육에서 이탈하거나 정상적 학교교육을 이수해도 좋은 노동시장으로 들어갈 확률이 낮아지며 실업과 빈곤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동기의 정상적 성장을 위한 복지정책이 매우 중요해진다.

이런 이유로 많은 선진국들에서 아동 빈곤율 감소라는 것이 화두로 떠올랐으며 아동기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영국의 Sure Start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프로그램은 아동기에 인적자본 형성의 불이익이 평생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아동의 정상적 성장을 위해 아동교육, 아동보육, 부모교육 등의 지원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지역사회의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학교시설개선, 지역도서관 시설 개선 등의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한국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도입되었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 그것이다. 이 정책은 일단 아동기의 불리한 인적자본 형성의 개선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지적되었듯이 실효성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비판이 제기된다. 예산의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불안정하며 관련 인력들의 불완전한 지위가 사업의 지속성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동기의 불리한 교육환경이 학교교육 하나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부모의 고용상태나 가족환경 등의 개선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여전히 구조적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유사한 프로그램인 드림스타트프로그램이나 지역아동센터같은 조직과의 유기적 연계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교육복지 통합적 접근의 중요성

아동기의 정상적인 성장에서 공식학교교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학교교육만으로는 취약계층 아동의 정상적 성장을 지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아동청소년기의 인적자본형성과 연관된 모든 관련기관들의 유기적 협조와 지원구조가 될 수 있는 행정체계의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역단위에서 아동기의 인적자본과 관련된 지원기관들은 교육부(학교, 유치원), 복지부(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여성가족부(건강가정지원센터), 행정자치부(주민센터), 고용노동부(고용안정센터) 등이 산재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고질적인 중앙집권적 행정구조로 인해 지역단위의 일선기관들의 유기적 협조와 지원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각 단위기관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아동청소년에 대한 통합적 지원이란 개념이 성립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교육복지사업과 관련 프로그램들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각종 프로그램들이 지원, 집행되는 행정체계의 근본적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은 선진국들에서 하는 모든 아동청소년기의 프로그램들이 시행 안 되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들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진짜 효과가 있고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아동기에 비해 청소년기의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약하다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 학교 이탈이 대부분 중고등학교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고등학교의 부적응문제와 학교 이탈자에 대한 프로그램이 더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 중고등교육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 상당수가 노동시장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청장년기의 교육의 중요성

노동시장의 구조변화는 성인기의 교육문제를 재검토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워낙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첨단 산업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에서 이탈된 성인이 장기간 실업상태에 머물 경우 영구적 실업상태로 전락되어 빈곤층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고등학교, 대졸자 그리고 노동시장에 진입했으나 노동시장 외부에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청년들을 위한 고용창출사업(New Deal for Young)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취업성공패키지’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중하층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기 위한 상담, 직업교육 등의 지원이 이루어진다. 2014년의 경우 약 20만 명 정도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6개월 이상 취업에 성공한 비율이 20%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목적 자체가 취업능력 향상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성인교육프로그램과의 연계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성인교육은 ‘평생교육’이란 이름으로 여러 기관들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이 역시 개별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목표에 과도하게 집중하여 다른 프로그램들과의 연계가 체계화되어 있지 못한 점이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워낙 강하고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청장년층이 많아지고 있다. 산업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노동시장 밖에서의 안전성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시장 밖의 성인과 노동시장안의 불완전 고용층에 대한 끊임없는 인적자원향상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한다.

교육, 고용, 복지의 통합적 접근

우리나라에서는 교육복지라는 용어가 학계와 언론에서 그리고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육복지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아동기 혹은 청소년기, 그리고 청장년기에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가 한 가지 문제에 기인하지 않기 때문에 해결책도 한 영역의 정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약계층의 아동의 인적자본 형성은 학교의 문제이자 가족과 부모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부모의 노동시장 지위 그리고 불리한 지역사회환경이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안의 교육과 학교 밖의 교육, 부모지원을 위한 복지정책, 취약계층 청년과 부모에 대한 고용지원정책이 통합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금수저’, ‘흙수저’논란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계층이동성 악화문제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공식교육이 불평등의 완화수단이라기 보다는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복지로 표현되는 취약아동에 대한 지원책은 어떻게 불리한 지역, 가족에 놓여있는 아동청소년기 아동에게 기회균등을 제공하는가에 맞추어져야 한다.

과연 지금까지의 교육복지 프로그램, 그리고 이와 연관된 복지정책과 고용정책들이 기회균등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프로그램은 많으나 제대로 된 효과를 가져올 프로그램은 없다는 점을 냉정하게 성찰해야 할 시기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종 프로그램들을 체계화하고 통합화해야 한다. 정책결정과 집행체계가 지역단위에서 통합되지 않으면 미래는 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