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국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적 기능의 하나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찾아서 잘 길러야 한다. 그러한 인재의 육성은 국가를 위해서만 아니라 지구촌의 번영과 평화와 복리의 증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인재의 발굴과 양성을 위한 제도적 구조와 기능은 그 자체로서 교육의 기회를 창출해 분배하기도 한다. 그러한 교육의 기회를 정의롭게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적 구조와 정책적 방향,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지 함께 검토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두 번째 순서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문화예술분야 국가 인재 육성 방안에 관한 견해를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예술 교육의 두 가지 궤도

예술은 전공하는 사람보다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몇 배 많은 특이한 분야이다. 역사에 취미 있다 하더라도 직접 사료를 가지고 연구하기보다는 기존의 역사책을 읽고 배운다는 의미다. 물리학이나 조선공학을 취미로 읽거나 즐기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러나 음악이나 예술에 대한 취미는 연주를 듣거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포함해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직접적인 행위까지 의미한다.

전공자보다 훨씬 많은 동호인이 있는 분야는 체육이다. 국내 테니스 선수는 몇 천 명에 불과하지만, 테니스 동호인들은 수백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대학에 테니스와 관련된 학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테니스의 기량은 천차만별이지만 운동하는 원리는 학문적 체계를 요구할 만큼 복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예술은 대학에 전공학과들이 있고 심지어는 박사학위까지 개설할 정도로 심오한 분야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취학 전 아동을 위한 동네 피아노나 발레학원이 있기도 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같이 예술과 관련된 전문대학교나 대학원까지 존재한다. 예술교육은 항상 전문교육과 교양 또는 취미교육의 두 가지 트랙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두 궤도는 영원히 평행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다른 트랙으로 갈아타는 흥미로운 구조를 이룬다. 예컨대 아동 시절에 피아노나 미술에 재능이 있으면 한번쯤 예술계 중학교(이하 예중) 진학을 꿈꾸어본다.

교양교육에서 전문교육으로 트랙을 바꾸는 것이다. 다행히도 ‘예중’에 진학하면 그때부터 더욱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예술계 고등학교(이하 예고)를 진학할 즈음, 인생의 진로를 두고 심각한 결정을 하게 된다. ‘예고’ 진학은 곧 일생 예술가의 길을 걷는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궤도를 바꿔 일반계 고교로 진학하기도 한다. 필자의 초등학교 짝은피아노를 잘 쳐서 ‘예중’으로 진학했지만, 다시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내 고교 동창이 되었다. 그 후 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전문 트랙에서 하차한 경우가 된다.

반대의 경우는 더욱 많다. 취미로 예술을 하다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작심을 하고 ‘예고’나 ‘예술대학(이하 예대)’으로 진학하는 경우다. 심지어 일반계 대학을 다니다가, 혹은 졸업하고 ‘예대’로 재입학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기야 폴 고갱은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일하는 그림 동호인이었다가 35세야 전업 작가로 전환하여 인상파의 대가가 되었으니, 교양 트랙에서 전문 트랙으로 궤도를 갈아타는 일은 나이에 제한이 없다. 단지 실력만 있으면 트랙 변경이 가능한 분야가 바로 예술이다.

궤도 변경의 난이도는 예술 분야에 따라 매우 다르다. 조기교육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영화나 연극분야는 대학과정 이상에서 바꾸는 경우도 많다. 이 분야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 가운데는 법대나 의대 졸업생도 꽤 있고, 심지어 유수 대학원 출신들도 있다.

반면 조기교육이 치열한 음악이나 무용의 경우, 나이가 들어 궤도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20대를 전성기로 치는 발레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고 전공 트랙에 진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적성, 재능과 영재 발굴

예술을 일생의 취미로만 가진다면 다행이지만(한국의 취미 예술교육에도 문제는 많지만), 자신의 전공으로 삼고 일생의 생업으로 삼을 때 항상 불안한 것이 있다. 자신의 적성 또는 영재성이다. 예술계 대학까지 졸업하고 전업 예술가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일반 사회에 적응하여 다른 길을 찾기가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예술적 재능에 대해서는 두 가지 대립하는 학설이 있다. 아직 주류학설은 ‘재능과 적성은 후천적 환경과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이 믿음의 학술적 배경에는 20세기 후반 주류 교육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특수영역에 재능을 가진자가 그 영역에 종사할 때 창의성을 극대화한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서 음악 영재는 과학연구나 회사경영에는 재능이 희박하며, 음악분야에서 발굴하여 교육을 잘 시켜야 성공한다는 연구결과이다. 또한, 존 헤이스는 창의적 업적을 남긴 고전 작곡가들의 예를 들면서, 그들이 명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시기는 적어도 10년 이상을 작곡활동에 몰두한 이후였다고 증거를 제시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격언을 믿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는 이 학설을 충격적으로 뒤집는다. 잭 햄브릭 교수의 연구팀은 ‘예술분야에서 노력과 훈련이 실력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높아야 2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재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노력은 낭비라고 경고한다. 하루 3시간씩 10년, 총 1만 시간을전공에 투자하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된다는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학설이다. 살리에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모차르트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던역사적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어느 학설에 따르든지 ‘영재 발굴’은 중요하다. 선천적 영재이든 후천적 영재이든, 예술을 접하고 노력할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이나 무용, 일부 미술과 같이 어려서부터 영재 변별화가 가능한 분야는 더욱 그렇다.

‘영재발굴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여러차례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예술교육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전제조건은 전문교육과 교양교육의 두 트랙이 초등학교부터 병존하고, 두 트랙 사이의 이동과 변경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중요한 것은 ‘예술교양교육’이다. 악기를 익히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면서 아동의 적성을 찾는다. 특별한 재능이 발견된 학생은 전문교육 트랙인 일종의 ‘예술영재교육원’이나 ‘예술영재학교’로 이동해 전문교육을 받는다.

일정 기간 교육 후에 자신의 적성 여부를 다시 판정하고, 재능을 평가해서 전문교육 트랙을 계속 하든지, 아니면 교양교육 트랙으로 바꾸도록 한다. 또한, 교양교육에서 선발된 또 다른 영재가 전문교육 트랙에 진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상적인 두 가지 트랙 체계는 극히 일부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영재교육진흥법」 시행으로 여러 학교에서 영재교육원을 운영한 바 있지만, 그다지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다. 대학입시가 최종적인 목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중등교육의 폐해는 예술계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사전입시를 엄격히 금지하는 입시정책으로 영재교육원의 교육결과를 대입에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종 전문교육 기관인 예술계 대학입시는 결국 최종적인 또는 유일한 전문 인재 판별 기회이다. 예술계 입시의 지향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훈련된 기량을 평가하는가?’이거나 ‘잠재된 재능을 발굴하는가?’이다. 훈련된 기량은 정형화된 평가모델을 통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선발할 수 있었다.

미술계 입시를 대표했던 ‘석고 데생’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아그리파나 줄리앙과 같은 신고전주의 조각상들을 누가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가?’하는 기량 테스트이다. 실제 조각을 보고 그리니 묘사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고 해서 반세기 넘게 미대입시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입시생들은 학원에서 ‘데생에 대한 요령’을 배우고 수백 번의 ‘반복 훈련’을 통해 아예 외울 정도가 되었다. 기량 평가가 아니라 손으로 익힌 암기력 평가가 되었다.

잠재 능력발굴을 목표로 하는 한예종 조형과의 첫 입시과제는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모든 실기 시험장에 살아있는 염소를 끌고 와 ‘염소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묘사하라’는 문제였다.사실적인 묘사가 해답이 아니라 어떻게 보고 어떻게 그리는지를 보는 ‘창의적 잠재력 테스트’였다.

현대미술은 사실 재현이 아니라 비판적 창의력의 표현이기에 이후 미대입시의 변화를 주도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시험에 객관화된 평가기준을 명확히 적용하기는 어렵다. 평가위원의 능력과 양식을 최대한 신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대학 예술교육의 방향

예술대학의 교육목표는 ‘어떤 예술가를 육성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수만 명의 예술계 학생들이 모두 뛰어난 예술가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전업 예술가로 일생을 투신할 수도 있고 분야에 따라 예술 단체나 조직에 취업할 수도 있으며, 예술 분야의 교육자가 될 수도 있다.

각 대학의 성격에 따라 주된 목표를 정할 필요가 있다. 전업 예술가 양성이 목표인 대학에서는창의성 교육에 치중해야 하고, 취업이 목표인 대학은 협업 능력 실습이 그리고 교육자 양성이 목표인 대학은 실기뿐 아니라 교육학이나 심리학 등의 연관교육이 필요하다.

창의성이란 일정 정도 이상의 전문적인 지식과 실기능력을 연마한 후에 개화한다. 어느 정도 알고 익혀야 비판적 해석이 가능하고,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 콘서바토리(Conservatory, 예술학교)는 맞춤형 개인 지도와 도제식의 집중적인 훈련을 실시해왔다. 음악과 무용분야에서 체계적으로 기량을 연마하기에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예컨대 무용의 경우, 본격적인 실기훈련에 앞서 몸을 풀려면 2시간 이상의 예비 연습이 필요하다. 적어도 한 수업을 연속 4시간 이상 편성해야 하는 이유다. 디자인이나 건축설계도 한 주제에 집중하려면 6시간 이상의 연속성이 필요하다. 학점 당 1시간 강의를 원칙으로 하고, 2시간 이상 연속강의를 허용하지 않는 일반대학 체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

관현악곡은 한 곡이 보통 30분 이상의 길이다. 이를 전곡 연습하려면 적어도 6시간이 필요하다. 시간뿐 아니라 그만큼의 지도교수와 연습공간도 필요하다. 1시간 이상의 장편영화를 제작하려면 보통 1년 정도의 집중된 시간, 여러 인력과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비용이 소요된다. 이러한 교육환경을 일반대학이 부담하기는 불가능하며, 전문적인 예술대학 교육과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분야만 집중 훈련한다고 현대적인 창의성을 발현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적 창작의 기본조건인 비판적 사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장르와 분야를 가로지르는융합적 표현과 창조가 함께 요구된다. 이를 위해 융합적인 교육환경과 커리큘럼이 필수적이다. 강의와 수업은 한부분에 불과하며 캠퍼스 환경 전체가 융합교육과 실험의 장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상황은 매우 어둡다.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진행 중인 대학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예술계 대학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PRIME :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 사업. 이른바 프라임 사업은 인문예술계 정원을 축소하여 이공계를 확대하는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예술계 대표대학이었던 J 대학교까지 예술계 정원 200명을 감축한다고하니 여타대학들은 예술계를 지원·육성하기는커녕 축소하거나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전문적인 예술교육은 많은 교수인력과 수업시간, 막대한 시설과 예산을 투자함에도 불구하고 취업조차 되지 않는 전혀 쓸데없는 분야로 취급되고 있다. 대학은 더 이상 진리탐구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준비를 위한 기관으로 전락해버리게 되었다. 예대는 창작의 산실이기는커녕 애물단지가 되었으니 집중식 교육이나 창의성 교육을 추구할 여력이 있을까?

예술 기반교육의 필요성

몇몇 예대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국제적 수준의 예술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한예종의 경우 한 해 2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진출할 국내 예술시장은 매우 협소하고 열악하다.

발레의 경우 고정적인 보수를 받고 활동할 수 있는 발레단이 국내에는 2~3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매년 십여 명의 단원을 새로 뽑을 뿐이다. 오케스트라나 연극극단 역시 사정은 비슷하게 어렵다.

취업이라는 진로 자체가 없는 미술의 경우 한해 거래되는 미술 시장의 규모가 3,000억 원이다. 그나마 절반 정도가 해외 작품들이고 순수 국내 작가의 작품 총수입은 1,500억 원 정도이다. 한국미술협회에 등록된 미술가만 3만 명이니 1인당 1년 평균 수입이 500만 원인 셈이다.

몇 년 전 한 문인이 극심한 빈곤 끝에 영양실조로 숨을 거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가난한 예술가를 지원하는 이른바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다. 지난해 메르스 여파로 국내 공연예술이 극심한 불황에 시달려 공연티켓 한 장 사면 한 장을 덤으로 주는 ‘1+1지원책’까지 시행했다.

예술은 지원의 대상이 되었고 예술가는 구제의 대상이 되었다. 지원과 구제가 필요 없는 예술계를 만드는 근본적 해결책은 국내 예술시장의 발전뿐이다. 이를 위해 예술을 향유하고 작품과 공연에 지갑을 여는 ‘예술소비층’이 육성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도 전문적인 교육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예술 교양교육이다. 교양교육 트랙은 전문교육 트랙으로 궤도 변경할 예술가를 배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미래의 예술 소비층을 육성하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육시스템이다.

유소년기에 악기를 익히고 그림을 그리며 춤을 추는 예술에 대한 취미 또는 교양교육을 제도적으로 시행한다면, 이 교육의 수혜자들은 어느 길을 가더라도 평생 예술소비층으로 남게 된다. 또한, 어떤 분야의 진로를 가더라도 각 분야에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전 사회를 창의적 사회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교육시스템을 ‘예술기반교육’이라 부른다. 예술기반교육은 초·중등학교에 일정 시간 이상의 예술실기 및 체험교육을 의무화하고, 전문적인 ‘예술교육사’를 통해 예술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예술기반교육이 가장 효과적인 창의성 교육임을 간파한 프랑스는 1980년대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왔다. 프랑스에서 중산층이란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고,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하며, 일 년에 한 번 이상 사회봉사를 하는 계층’을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중산층은 ‘30평대 이상의 아파트에 살며 2,000cc 이상의 승용차를 소유하고, 일 년에 한 번 이상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계층’으로 규정된다.

프랑스의 중산층은 예술적이며, 한국의 중산층은 지극히 경제적이다. 이 차이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예술기반교육’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전업 예술가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예술은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술애호가’가 될 필요가 있다. 예술은 곧 창의적사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핵심 동력이며, 예술애호가 속에서만이 전업 예술가를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