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석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

국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적 기능의 하나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찾아서 잘 길러야 한다. 그러한 인재의 육성은 국가를 위해서만 아니라 지구촌의 번영과 평화와 복리의 증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인재의 발굴과 양성을 위한 제도적 구조와 기능은 그 자체로서 교육의 기회를 창출해 분배하기도 한다. 그러한 교육의 기회를 정의롭게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적 구조와 정책적 방향,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지 전문가 의견을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이규석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의 견해를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과학기술 인재 양성 위해 창설된 과학고의 현황

과학기술 혁신이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이 매우 절실하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우리나라는 ‘과학입국’이라는 지상 최대의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마련했는데, 그중 하나가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이었다. 특히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로서는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구체적 방안의 하나로 1983년, 3개의 과학고등학교를 창설했다.

당시 자녀가 있는 학부모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과학고는 지금과 달리 전국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어서 과열 경쟁이 유발되기도 했지만, 이후 1988년 1개, 1990년 1개, 1991년 1개, 1992년 4개의 과학고가 잇달아 개교하였고, 2016년 현재 20개의 과학고가 우수한 교원과 시설 및 기자재를 확보하여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사이 6개의 과학고가 영재학교로 전환했음에도 현재 20개의 과학고는 여전히 인기 있는 학교로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토대를 닦고 있다. 2016년 과학고의 모집 정원은 총 1357명에서 1300명으로 소폭 감소했지만 지원자는 5452명에서 5631명으로 증가하였다 <표>참조.

과학고는 고급 과학 능력을 갖춘 과학자, 과학기술자 양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과학적 성취 능력과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을 면접 등 선발 전형을 통해서 모집하고 있다. 학급당 학생 수도 20명 이내 기준으로 일반계 학교보다 적으며, 학년 당 학생 수도 적어서 가장 많은 세종과학고가 128명, 경북과학고와 제주과학고는 32명이다.

학생 수로 보면 소규모 학교로 자기 주도적 학습 및 심화교육을 하기 좋게 되어 있다. 과학고가 설립된 지 22년이 지난 2005년, 한국과학영재학교(2003년 과학고로 설립)가 처음으로 과학영재학교가 되었다. 그 후 1983년 과학고로 개교한 경기과학고(2010년 전환), 광주과학고(2014년 전환), 대전과학고(2014년 전환), 1987년 개교한 대구과학고(2011년 전환), 1988년 개교한 서울과학고(2009년 전환)가 영재과학고가 되었다. 그리고 2015~2016년 개교한 세종과학예술영재고, 인천과학예술영재고 등 과학영재고는 모두 8개 학교이다.

과학고가 안고 있는 문제들

1) 과학중점학교와 영재학교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

현재 과학영재고는 전국단위로 우선 선발을 하고, 과학고는 영재고 입시가 끝난 다음에 지역 선발(과학고가 없는 세종시와 광주시는 다른 지역의 과학고 지원 가능)을 하고 있다. 과학중점고는 일반고와 같이 지역별 배정을 하지만 일반고보다 먼저 입학 사정을 하며 현재 대부분 학교에서 이과 희망자가 넘치는 상태에 있다.

무엇보다도 과학고는 수능, 내신 등 입시 경쟁에 내몰려 설립 취지에 맞는 인재 양성 교육이 미흡하다. 또한 외국어고등과 함께 특목고로 분류되어 교육과정, 학생 선발 등에서 자율성 확보가 어렵다.

2) 신입생 선발의 어려움

과학고는 영재고의 ‘영재성 판별’과 같은 시험을 치르지 않고 최근 5년간 자기 주도적 학습전형으로 중학교 내신과 면접으로만 선발 하고 있다. 짧은 시간 면접으로는 학생의 잠재적 역량을 파악하기 어렵고, 중학교 내신이 석차 백분율에서 성취도로 전환되면서 내신에 의한 변별력도 없어져 ‘미래 과학계를 이끌 인재 양성’이라고 하는 특목고의 설립취지에 맞는 과학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가진 학생을 판별하기가 너무 어렵다.

선발 시기도 영재고는 1학기에 선발이 이루어지지만, 과학고는 영재고 선발이 끝난 후에 입시가 진행되기 때문에 마치 영재고가 전기고이고 과학고가 후기고처럼 관계 형성이 되어 우수한 학생의 선발기회를 빼앗기고 있다.더욱이 영재고는 복수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수한 영재고 탈락자가 과학고를 지원하는 사례도 점점 줄고 있다.

3)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영재고는 교과를 자율적으로 개발·지도하는 반면, 과학고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 따라 지도하고 있어 개설된 교과목의 다양성이나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깊이가 매우 제한적이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도 전문교과는 ‘인정도서’로 개발되기 때문에 교과서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교과서는 활용이 잘 되지 않고 많은 선생님들이 자체 교재를 개발하여 지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선행교육방지법」에 묶여 조금만 심화된 수업을 하고 그에 따라 정기고사에 출제를 하면 교육청으로부터 교육과정 위반이라고 시정명령을 받는다.

예를 들어 같은 ‘화학I’ 과목을 지도하더라도 일반고 학생에게 가르치는 깊이와 폭에 비해 우수한 과학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깊이와 폭이 다른데 실제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수준 높은 질문을 하기 때문에 ‘화학II’나 ‘고급 화학’ 수준의 설명을 해주어야 할 때도 많다. 그런데도 정기고사 시험지를 교육청에 제출해서 문제에 대해 일일이 소명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4) 조기졸업 축소

재학생의 70~80%가 조기졸업을 하던 이전과 달리 ‘10%의 조기졸업과 40%의 상급학교 조기입학 자격부여’라는 제도로 전환을 한 후 과학고는 더욱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첫째, 대부분의 학생이 조기졸업을 하던 시절에는 교육과정도 조기졸업에 초점을 맞춰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만 조기졸업을 허락하는 실정에서 조기졸업을 하는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배려를 받지 못하고, 진급하는 학생들도 일단은 ‘상급학교 조기입학 자격부여’라는 제도를 이용해 입시에 도전하면서 안정적으로 학업에 매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둘째, 3학년까지 진급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을 위해 좀 더 풍성한 교육과정과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대학과정 선이수제(AP) 과목 도입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그런데 AP과목 운영에서조차도 문제가 있다.

AP과목을 쉽게 이수할 수 있는 우수한 학생들은 2학년을 마치고 이미 졸업을 한 상태이므로 남은 학생들이 모두 AP를 잘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수준차가 있어 수강신청 단계부터 갈등이 심각하다.

5) 대학 입시

최근에 과학고는 대학입시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목고를 입시에 우대하지 못하도록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조차 ‘특기자 전형’을 폐지하고 ‘일반 전형’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과학고 학생들의 선발 비중이 급격히 줄고 있다.

과학고 학생들은 일반고와 마찬가지로 9등급제 상대평가를 하는데 거의 균질한 상위권 학생들을 한 줄 세우기를 해서 내신으로 1차 선발을 하므로 소질과 적성에 따라 자율적 탐구활동에 매진하기보다는 학교 공부에 매달려 내신 올리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따라서 내신 비중이 큰 일반전형에서 일반고 학생들에게 밀리고, 절대평가를 해서 내신에 대한 부담 없이 여러 가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탐구활동과 소질 계발에 매진하는 영재고에도 밀리고 있다.

6) 고교-대학의 연계

과학고에서 우수한 학생이 AP 과목, 대학개설 선이수제(UP) 과목 이수를 통해 교과 전문성 관련 내용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나 미흡하다. 특히 인재(영재) 교육이 대학과 연결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렇지 못해서 초·중등 인재교육이 대학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7) 행·재정적 불리

과학고는 일반계 학교와 같은 시도교육청 또는 지역청 관할로 자율성을 제한받고 있다. 「영재교육법」에 의해 운영되는 영재고와 비교하면 행·재정적인 면에서 많은 제약이 있다.

과학고 설립 목적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발전 과제들

과학고는 창의적 과학 인재를 조기 발굴, 육성하여 이공계 과학기술 인력 양성 기반을 마련하는데 설립 목적이 있다. 이들은 국가 경쟁력 강화의 역군이 되도록 양성되어야 한다. 과학과 윤리, 융합인재양성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힘을 써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문제점을 토대로 과학고 설립 목적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발전 과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과학고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 해소

지금까지 살펴본 과학고의 문제점 대부분은 과학고 정체성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된다. 과학고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이루어지도록 관련 문제점들을 전면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한 복합적 처방이 필요하다.

2) 신입생 선발

영재학교와 유사한 학생 선발 다변화와 다양한 진학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과학고와 영재고 모두 특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여 신입생의 특성에 따라 선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 선발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어야 하고, 적어도 영재고와 같은 시기에 선발을 하는 것도 검토되어야 한다.

3) 교육과정 편성 운영

온·오프라인 상에 프로그램을 통해 열린 기회를 제공해 주고 과학고의 우수한 창의 과학교육이 일반고 중점학교에도 확산할 수 있게 한다. 대학과정 선이수제(AP), 과학창의연구(R&E), 과학 상상실현(I&D), 대학개설 선이수제(UP) 등을 통해 일정 부분 대학 학점 이수 인정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교육과정도 좀 더 풍성하게 개발하고, 교육과정편성에 자율권을 확대해서 1학년 ‘8개 과목’ 한정과 같은 제한을 풀어야 한다.

4) 조기 졸업

현재 일부만 허용하는 조기 졸업을 검토하여 실효성 있게 확대하거나, 과학영재고처럼 3년의 전 과정을 이수하든가 조기 졸업 제도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

5) 대학입시

과학고 학생들에게 기존 입시 제도를 벗어나 5개 과기특성화대학과 새로운 연계체제를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일반대학에서는 특기자 전형과 같은 다양한 입시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6) 고교와 대학 연계

초·중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온 우수한 인재가 대학과 연계되도록 연구 검토되어야 한다. 우수 인재 교육을 받은 학생이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인재양성 교육이 단절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7) 과학고 설립 법적 근거와 지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상 특수목적고인 과학고와 「영재교육진흥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과학영재학교와 사이에 특화된 부분을 확실히 하여 어떤 경우라도 과학고가 행·재정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개교한 지 오래된 과학고에 낡은 실험기구와 기자재 등을 교체하여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꾸준히 행·재정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

8) 유전자 가위, 복제 등 끝없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학과 윤리에 관한 기초적인 교육이 더 이루어져야 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인문학이 고사 직전에 있다고 할 만큼 이공계의 약진이 계속되고 있으나 세계는 융복합시대에 들어와 있다. 과학고 교육과정뿐 아니라 교육 전반에 이 정신이 흐를 수 있는 토대가 과학고에 더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