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철 박사

《미국 공교육 개혁, 그 빛과 그림자(The Death and Life of the great American school system: How Testing and Choice are undermining Education)》는 1991년도부터 약 2년간 미국 조지부시 행정부에서 교육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당시의 미국의 교육개혁 운동을 주도적으로 선도한 다이안 래비치(Diane Ravitch)가 2010년도에 출판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출간되었다(번역 윤재원, (한국통신대학교출판부 펴냄)). 저자 래비치는 부시 행정부에 참여하기 전까지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교육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부시 행정부에서 일을 한 이후 2009년도까지 Brookings 연구소와 Stanford 대학의 Hoover 연구소 등에서 지속적으로 미국 교육개혁의 기본 방향, 전략 등을 수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래비치는 testing(시험/평가), accountability(책무성), choice(학교선택제), market(자유시장원리), competition(경쟁), incentives(보수/당근), standards(성취기준) 등과 같은 개념들(신자유주의적 개념)이 교육개혁의 기본 원리가 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이에 매진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에 의한 교육개혁의 결과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다양하게 수행되고, 그러한 연구의 결과들이 위와 같은 원리에 입각한 교육개혁 정책들의 실패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자 래비치는 지금까지의 그의 신념을 바꾸고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대안들을 제시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래비치는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 어떻게 ‘개종’하였으며, 올바른 미국 교육의 개혁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미국의 교육정책이 설정되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지난 30년간의 미국 교육개혁의 전 과정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우리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미국 교육개혁 과정에 숨겨져 있었던 의미 있는 이야기들도 풍부하게 소
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논의함으로써 우리는 미국 교육개혁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 교육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내일의 우리 교육을 어떠한 방향으로 설정하여야 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의미 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우리의 평가체제(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시험:일제고사)와 고교 체제가 어떻게 변화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 우선 본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미국 교육개혁의 전개 과정에 대한 저자의 성찰적 비판의 내용들을 간략히 훑어보았다.

1. 미국 교육개혁의 전개 과정

이 책에서 래비치는 미국 공교육 개혁의 주요 과정을 1) 위기에 처한 국가(A Nation at Risk, 레이건 1983), 2) 미국교육 2000 프로그램(America 2000 Program, 부시 1991), 3) 미국 교육목적 2000(Goals 2000 Program, 클린턴, 1997), 4) 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NCLB 부시, 2002)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각 개혁 정책에 대한 저자의 성찰적 비판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위기에 처한 국가 (A Nation at Risk, 레이건, 1983)

《위기에 처한 국가》는 레이건 행정부의 교육부 장관 Terrel Bell 이름으로 1983년 발간된 연방 정부의 보고서 이름이다. 이 보고서는 발간 즉시 여론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보고서는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미국 교육의 여러 가지 위험한 징후들, 예컨대 1) SAT 평균점수 하락, 2) 고득점자수의 하락, 3) 국제비교시험 점수 저조, 4) 기능 문장해석에서의 문맹자 수 증가, 5) 대학에서의 보충과목수의 증가, 6) 군대와 기업에서의 보충 훈련 필요성의 증가 등의 문제들에 대한 경각심을 고조시켰다.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책으로서 1) 졸업요건의 강화: Five New Basics 설정(영어4년, 수학3년, 과학과 사회, 컴퓨터1/2년, 외국어2년 필수), 2) 각 교과의 목표 제시(Standards 제시): 모든 주와 국가가 여러 교과 영역에서 체계적인 ‘Curriculum Standards'를 개발할 것을 장려, 3) 대입요건 강화, 4) 수업일자 확대: 180일에서 200일이나 220일, 5) 숙제 많이 내주기 등이었다.

이러한 대응 정책에 대한 래비치의 평가는 후하다. 학교 개혁의 초점을 학교 경영 체제의 변화보다는 교육의 본질적인 측면, 즉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느냐’에 관계되는 ‘교육과정 기준’에 둔 점은 바람직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를 현장에서 구현할 전략적 방법의 구안과 실천에서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이 실패는 나중에 ‘평가에 기반을둔 책무성 지향 정책’을 낳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미국교육 2000 프로그램(America 2000 Program, 부시, 1991)

부시(George, H. W. Bush)는 1988년 자신을 ‘교육대통령’으로 표방하고 1989년 1월 취임 후 곧바로 주지사 중심의 국가정상회의를 소집해 미국 교육의 개혁을 위한 ‘Goal 2000'을 수립, 발표했다.

그 후 이를 더 정교화 시켜 1991년 《미국교육 2000 프로그램》을 작성해 보고서로 발행했다. 그러나 이 안은 국회에서 민주당의 반대로 인해 법안으로 통과되지 못하여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내 모든 아동들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에서 입학하도록 할 것.
2) 세계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장 잘 하는 학생들이 되게 할 것.
3) 적어도 90% 이상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할 것.
4) 모든 학생들이 어려운 교과목을 잘 이수하게 할 것.
5) 모든 성인들이 문장 해석력을 가지며 세계화된 경제 세계에서 유능하게 할 것.
6) 모든 학교에서 마약, 음주, 폭력 문제가 없어지게 할 것.

래비치에 의하면 위의 목표 중 어느것도 2000년도까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부시 행정부는 목표 달성의 어려움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국가수준의 성취기준의 개발과 평가의 시행을 권장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교육목적 2000 프로그램(Goals 2000 Program, 클린턴, 1997)

클린턴(Bill Clinton) 행정부 역시 ‘학교의 무책임성’을 규탄하면서 주(州)별로 각 교과별 성취기준의 개발과 그에 입각한 시험/평가의 시행을 장려, 이를 법안으로 제안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법령화하지는 못했다.

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NCLB, 부시, 2002)

2001년 1월 23일, 부시(George, W.Bush)대통령은 취임 3일 후, 백악관에서 500명의 미국 교육관계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NCLB(No Child Left Behind)를 발표했다. 2001년 가을, 이 안은 국회 양원에서 통과, 2002년 1월 법령으로 공포되었다. 그 후 28쪽의 문서가 1100쪽의 법령집으로 구체화되었다.

발표 당시 모두가 이 안에 대하여 찬성하고 저자 자신도 이 안에 대하여“흥분하고 낙관적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어떻게 목표에 도달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고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주는 주 시험/평가 제도를 실시한다. 숙달기준(Proficiency Level)은 3등급으로 설정하며, 숙달의 정의는 주에서 결정한다.
2) 연방지원을 받는 모든 공립학교의 3학년에서부터 8학년까지의 학생들은 모두 매년 수학과 영어 시험을 본다. 고교생의 경우는 고교 시절 1회만 시험을 본다.
3) 2013~2014년까지 100%의 학생들이 숙달수준에 도달해야 하며, 도달 시안 계획표를 작성, 제출하도록 한다.
4) 모든 학교와 학교 구에서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매해의 도달 수준’을 작성한다.
5) 충분한 발전을 매해 이루지 못하는 학교들은 그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 명명하며 5년째까지도 목표에 도달 못하는 학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조화한다.
6) 재구조화하는 방식은 5가지(차터 학교(Charter School)로의 변화, 교장과 교원교체, 운영 주체의 개인화 등)가 된다.
7) 모든 주는 주 수준이 아니라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시험’ (NAEP: 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al Progress)에 참여한다.

이러한 개혁안에 대하여 래비치는 다음과 같이 평가, 술회하고 있다.

1) 이 정책에는 교육적 이상이 없다. 학교 개혁에 대한 기술공학적 접근으로서 ‘국어(읽기)’와 ‘수학’ 점수에 근거를 둔 ‘성공’이라는 개념으로 학교 교육을 잘못 정의하였다.
2) 제한된 훈련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일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3) 산 같은 자료(data)만 양산하고 교육받은 시민을 양성 못하였다.
4) ‘평가의 질’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다.
5) 학교 개선 방법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처벌적 법이었다.
6) 나(래비치)는 2006년 11월 30일까지 이 정책을 강하게 지원, 동의하였었다. 그러나 그날 이 정책이 ‘실패’하였음을 깨달았다.

2. ‘학교선택제(School Choice)'와 ’낙오방지법(NCLB)'에 대한 비판

이와 같이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30여 년간의 교육개혁 정책들을 개관하는 가운데 래비치는 80년대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학교선택제’와 최근 10여 년 간 시행되어 온 ‘낙오방지법’에 대하여 집중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의 비판 내용을 약술해 보기로 하자. 특히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정책에 대하여 부시행정부의 ‘낙오방지법’은 부시행정부 집권 8년간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그리고 부시의 뒤를 이은 오바마 정부도 교육개혁 정책(RITT: Rise To the Top) 이름은 달랐지만 부시행정부의 낙오방지법을 근본적인 수정 없이 거의 유사하게 추진해왔다.

학교선택제(School Choice) 비판

1950년과 60년대에 School Choice 제도는 1954년도에 통과된 「학교통합법(School Desegregation Law)」을 피해 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남부 지역에서는 「학교통합법」을 반대하며 ‘학교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사립학교 건립을 장려하고, 학생이 선택한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등록금을 제공했다. 그러니까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전까지 ‘학교선택제’는 교육계의 주요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주로 백인 학생이 통합을 피할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제학자였던 시카고 대학의 Freedman이 은퇴를 하고 레이건의 자문위원이 된 이후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바우처(Voucher) 제도 및 학교선택제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90년대 선택 가능한 학교로는 1)Voucher Schools, 2) Privately Managed Schools(개인이나 기관이 운영하는 학교), 3) Charter Schools(계약학교)의 3가지 유형이 있었다. 그러나 이 중에서 ‘바우처 학교’는 점점 ‘계약학교’로 바뀌게 되었다. ‘바우처 학교’는 보통의 정규 공립학교가 아니라 사립학교이며, ‘개인운영 학교’는 공립학교이나 개인이나 기관이 정부의 보조를 받아 운영하는 학교이며, ‘계약학교’는 모두 공립학교이다.

「계약학교법」은 1991년 미네소타 주에서 처음으로 통과되어 다음해 첫 계약학교가 설립된 후, 2001년2300개교에서 2009년 4600개교로 확대되어 갔다.

그리하여 학교선택제 정책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계약학교’의 효과로 집중되었다. 래비치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바우처 제도의 효과는 일찍이 ‘효과없음’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계약학교’의 효과에 대한 연구들도 ‘효과없음’으로 확인되었다.

예컨대, RAND연구(2008)와 필라델피아 연구(2009)모두 ‘계약학교’는 보통학교와 학업성취에서 ‘차이 없다’는 결과를 확인하였다. Stanford 대학의 Raymond 교수팀 연구(2009)도 15개 주 2403개의 계약학교 중 37%는 보통 공립학교 보다 높으나, 46%는 동일하며, 17%는 낮다는 결과를 얻었다. 전체적으로 뚜렷한 효과는 없다는 결과였다.

학업성취 면에서뿐만 아니라 교육 격차의 완화라는 면에서도 학교선택제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래비치는 관찰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학생은 결과적으로 계약학교에 입학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실제로 2009년 뉴욕 주의 경우 집 없는 가정 학생들 5만 1316명 중 111명이 차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확대되고 있다. 현 오바마 정부도 이 제도를 강조하고 있다. 뚜렷한 경험적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선택제‘는 지난 20년간 미국의 엘리트 집단을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이라고 래비치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일반 공립학교의 발전을 위한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라고 그는 부언하고 있다. 학교선택제는 결국 공립학교 교육을 부실화시키는 힘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그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NCLB 제도(Accountability 포함) 비판

이 정책은 미국 공교육에서 ‘평가와 책임’이라는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시절, 미디어는 ‘시장 친화적’이며, ‘숫자로 표현되는 자료/증거에 기초한 변화’를 개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데이터를 중시한 교육정책은 통계학자와 경제학자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은 교육과정이나 학생들의 경험은 고려하지 않고, 교사와 학생을 평가해 이들에게 ‘교육의 질’이란 교육과정도, 수업(교수)도 아닌 숫자로 나타난 ‘데이터’ 그뿐이었다.

이 정책의 효과에 대한 정량적 평가의 결과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학년 읽기(국어)의 경우 이 정책이 시행되기 이전인 2000년에서 2003년 동안 학생들의 성적은 5점이 증가한 반면, 이 정책이 시행된 이후인 2003년에서 2007년까지는 3점이 증가하였다. 8학년 읽기(국어)의 경우 1998년부터 2007년간 성적의 증가는 전혀 없이 모든 해에 걸쳐 동일하였다. 수학의 경우도 국어와 거의 동일한 패턴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NCLB 정책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정책의 성공 여부를 나타내는 또 다른 중요한 양적 지표는 교과별 숙달 수준에 도달한 학생들의 비율이었다. NCLB 정책이 도입된 지 몇 년 후인 2007년 ‘읽기(국어)’의 경우 텍사스 주는 4학년, 8학년 학생의 85.1%가 숙달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동일 학생 군에 대한 미국 국가수준 학업성취평가인 NAEP 시험에서 나타난 텍사스 주 4학년, 8학년 학생들의 숙달 수준 비율은 18%였다. 주 수준의 평가 결과와 국가 수준의 평가 결과가 너무나 달랐다. 테네시 주의 경우 주 평가에서의 숙달 수준은 90.1%인데 비해 NAEP 시험에서는 26%였다. 네브라스카 주에서는 이 비율이 90.5% 대 34.8%였다.

숙달기준을 주마다 임의로 선정하여 심각한 차이가 있었을 뿐 아니라 보다 공신력이 있는 국가 평가시험의 결과와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다. 한마디로 NCLB 정책의 효과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장치조차 제대로 갖추어 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외에도 여러 가지 양적 분석 데이터에 근거하여 래비치는 NCLB 정책 전반에 다음과 같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1) 책임을 강하게 물으면 ‘교육의 목적’이나 ‘학습’과는 무관한 ‘점수’를 올리는 일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목적을 부패시킨다.
2) 점수를 올리기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들이 동원된다. 속임수(cheat)가 많아지고(계약학교가 4배 더 많다), 못하는 학생을 시험에서 빼거나, 시험 범위를 좁히며, 통과 기준을 낮추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히 시험 준비를 위한 자료 개발과 프로그램 개발에 수백만 $를 쓴다.
3) 점수를 올린 교사에게 보상을 크게 하는 것은 평가/시험을 위한 수업만을 강조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교육과정의 범위를 좁히고, 점수를 부풀리게 한다.
4) 시험 대상 과목 이외의 과목 시간을 축소하게 되고, 시험 대상 과목의 지식보다는 시험기술, 전략을 중시하게 되며, 반복과 암기가 주된 공부 방법이 된다.
5) 정답을 묻기 위한 검사/평가의 결과 자료들은 너무 협소하고, 부정확하며, 잔인하다. 이런 검사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재지 못한다. 잴 수 있는 것만으로 교육을 정의하면 교육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단순한 데이터보다는 ‘전문적 판단’이 포함되어야 한다.

3. 미국의 현재까지의 교육개혁 전개과정에 대한 저자의 견해

레이건 시대의 교육개혁에서부터 최근 부시 정부의 교육개혁에 이르기까지 30여년의 미국 교육개혁의 역사를 온몸으로 직접 부딪쳐 가면서 저자가 체득한 경험의 진수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교육의 개혁/개선이란 국가 정책에서 ‘개선/개혁’이 무엇이며, 누가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의 상충 때문에 미국 교육개혁 운동은 계속적으로 표류했다.

2) 현재의 교육개혁 정책은 학교를 개선하는데 성공할 것 같지 않다. 현재의 학교 교육정책은 학교를 보다 무력하게 할 것이며, 시민들의 지적 능력을 더 낮추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3) 현재의 교육의 문제는 ‘교육 비전’의 문제이지 ‘교육 경영’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의 변화 자체가 건전한 교육 프로그램을 보장하지 않는다. 학교 개선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육과정과 교수-학습 과정을 발전시키고, 교사와 학생이 가르치고 배우는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있지 학교 체제를 어떻게 조직, 경영, 통제하는가에 있지 않다.

4) 성공적 교육의 필수 조건은 1) 강한 교육과정, 2) 좋은 교사, 3) 효과적 수업, 4) 학생의 강한 학습 동기, 5) 풍부한 교육 자원, 6) 교육을 중시하는 지역사회 문화 등이다. 그리고 가난한 소외 계층 아동들을 위한 좋은 교육의 조건은 1) 조기교육과 의료 보조, 2) 교사의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작은 교실’, 3) 과외의 수업 시간, 4) 그들 가족에 대한 특별 보조 등이다.

5) 시험이나 평가가 재는 것만 중시한다면 학교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시험/평가는 유용하나 교육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잴 수 없는 것들이다. 잴 수 있는 것들은 잴 수 없는 것들보다 덜 중요하다. 시험제도를 강조할수록 진정한 교육의 목표(Goals)는 사라질 것이다.

시험 점수만 강조하면 ‘배움 자체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사라지게 된다. 시험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으면 점수를 높일 수는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보다 중요한 다른 것들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높은 점수’는 ‘나쁜 교육’을 의미하게 된다.

6) '돈‘이라는 ’보상‘에 의한 점수의 향상은 교육의 질의 향상이라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7) 미국 교육의 목적은 모든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계약학교가 지역에서 좋은 학생들만 선발해 가도록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공교육은 민주사회의 근본이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의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정책은 공교육의 질을 낮추고 위험에 빠뜨리게 하고 있다.

8) 양적으로 수치화된 자료(Data)를 절대시하고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교육을 운영하는 기업적 학교운영은 교육의 본질을 오도하게 된다. '데이터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Data-driven)' 개혁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Data-informed)' 개혁이 되어야 한다.

9) 시장 원리는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치로는 부족하다. 경찰의 보호는 모두에게 똑같이 필요하듯 공교육의 혜택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가 발전하려면 서로 공유하고 협력하여야지 기업처럼 서로 경쟁해서는 안 된다.

10) '좋은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학교는 잘 고안된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은 학교 개혁의 출발점이다. 교육과정은 교사들에게 교육의 목적에 대한 중요한 방향, 명료성, 초점을 제공한다.

4. 우리의 교육개혁 정책에 제공하는 질문

우리의 교육정책은 미국의 교육정책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우리 스스로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교육정책들을 공부하고 그것을 우리의 교육에 적용시키려는 노력을많이 하여 왔다. 그 적용의 결과가 우리 교육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미국의 교육정책의 전모에 대해서는 물론 우리의 특수한 교육의 문제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래비치의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벤치-마킹해 왔던 미국의 교육개혁 정책들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있다. 래비치의 비판의 내용들을 음미 하면서 우리가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 논의, 합의해 나가야 할 우리 교육의 논쟁적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1.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종류의 고등학교들이 있다.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과학영재고, 과학예술영재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를 포함하는 소위 ‘특수목적고’, 과거 실업고로 불리던 다양한 종류의 직업특성화고, 대안적 특성화고, 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과학중점일반고, 자율학교, 일반고 등 일반인들은 알수도 없는 다양한 유형의 고교들이 있다.

학교 선택의 가능성 확대를 지향한 교육정책의 결과이다. 이들 중 직업 특성화고나 대안적 특성화고, 그리고 일반고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들은 모두 정부의 지원을 더 받으며, 더 우수한 학생 자원을 보유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일부 학교가 좋아질수록 그 이외의 일반 고등학교는 점점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교육의 세계 역시 양극으로 이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교 선택의 확대에 따른 이러한 의미의 고교 체제 다양화 정책은 어느 정도나 바람직한 것인가?

2.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도부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시험을 표집 시행에서 전집 시행으로 전환하고 초6, 중3, 고1 학생들은 매년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의 5과목에 대하여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다(초6은 2015년부터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한 시험 점수 결과를 근거로 교육청 평가, 학교평가, 교장평가, 교사평가를 하려는 정부의 정책(현재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게될 것)은 어느 정도나 바람직한 것인가?

3.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시험 결과를 토대로 교사의 ‘우수성 정도’를 평가하고, 그러한 평가 결과를 토대로 ‘보상을 변별화(Differentiated Incentives)’하는 제도, 즉 보너스의 차등화 제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며 어떻게 운영해야 할 것인가?

4.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서 시장(Market)과 경쟁(Competition)의 원리는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 경쟁의 원리를 강화하는 것이 교육의 질의 향상을 담보할수 있는가? 우리나라 경우, 시장의 원리를 존중하여 자율을 확대하면, 그 모든 자율은 ‘입시에서의 효율’을 위한 방편으로만 활용되고, 경쟁은 ‘입시에서의 좋은 결과’를 목표로 이루어진다. 자율과 경쟁, 자유경쟁을 기본 원리로 하는 시장주의는 그래도 존중되어야 하는가?

5. 위에서 말한 여러 원리들은 미래의 우리교육의 지향 및 작동의 원리로서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수정되어야 할 것인가? 수정되어야 한다면 어떤 원리로서 대치되어야 할 것인가?

이상의 문제들은 우리가 정밀하게 검토하여야 할 수많은 교육관련 문제 중에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엇보다 본 저에 피력된 래비치의 주장과 견해가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를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주장 중에서 우리가 수용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예민하게 가려내야 한다.

연후에 우리의 문제들을 가능한 한 철저하게 분석해 보고, 래비치의 제안들을 적용시켜 볼 수 있다. 미국 교육개혁 정책의 수립과 시행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바꾸어가면서까지 자신의 과거 업적을 비판한 그 성찰적 비판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필요는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