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국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적 기능의 하나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찾아서 잘 길러야 한다. 그러한 인재의 육성은 국가를 위해서만 아니라 지구촌의 번영과 평화와 복리의 증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인재의 발굴과 양성을 위한 제도적 구조와 기능은 그 자체로서 교육의 기회를 창출해 분배하기도 한다. 그러한 교육의 기회를 정의롭게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적 구조와 정책적 방향,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지 검토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천세영 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의 네덜란드 번영의 근원인 '자유교육'에 관한 글을 소개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네덜란드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절반, 인구는 우리의 3분의 1이고, 총 GDP는 우리의 절반이나 1인당 GDP는 약 5만 불로 우리의 2배 가까이에 이른다. 15∼16세기 대항해 시대의 주역이었으며 근대 이후 세계 강국으로서의 지위와 면모를 갖추어온 지 오래다.

도대체 네덜란드의 이러한 번영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아직도 그것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네덜란드가 1581년에 공화국으로 최초로 독립하였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건국 70년(1948년)과 비교해볼 때, 어쩌면 우리와의 이러한 차이는 400년 앞선 나라로서 당연히 갖춘 힘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분명 우리로서는 그 비결을 눈여겨보고 귀담아들어야할 것이다.

네덜란드의 번영은 어디에서 왔을까?

네덜란드는 158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운동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되고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종이 생산공장을 만든 곳도, 동인도회사라는 최초의 현대기업모형인 주식회사를 만든 곳도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의 땅은 정말 쓸모없는 땅이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물 텀벙 습지이며 폭풍우가 끊이지 않고 대부분 바닷물 아래에 잠겨있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바람을 이용하여 풍차를 만들었으며 유리온실에서 토마토와 오이를 기르고 튤립을 키우고 수출한다. 습지는 초지로 만들어 사람보다 많은 양과 젖소가 세계 최고의 치즈와 우유를 만들어 수출한다. 흐로닝언지역에서 발견된 천연가스로 한때 네덜란드는 ‘더치병’이라고 할 만큼 잠시 느슨해진 적도 있었으나, 400년의 역사를 지나오면서 개혁과 도전을 잊어본 적이 없다.

농업 국가일뿐더러 필립스와 유니레버와 같은 제조업은 물론 세계적 정유회사 셸, 맥주 회사 하이네켄, ING 보험회사와 KPMG 회계법인 등 소프트와 하드 부문 모두에서 세계 최고를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이러한 번영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잊지 않고 있는 하나의 정신으로부터 기원하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freedom)이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 로마교황청으로부터 독립하여 쟁취한 것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인권적 자유였다. 화란인들은 곳곳에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이룩했던 자유도시를 근대에 이르러 다시 세웠으며, 이 도시들은 모두 대학을 설립하고 국민 각자의 자유와 도전 정신을 일깨워왔다.

세계최초로 1993년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고 마약과 매춘마저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의 자유에 맡겨져 있는 자유의 도시 암스테르담은 오늘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젊은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네덜란드의 교육은 이러한 자유를 가르치는 전당일 것임에 틀림없다.

네덜란드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칠까?

유럽은 근대 교육제도의 발상지이며 네덜란드의 교육제도 또한 그 전통을 따른다. 유럽교육제도는 중세 대학으로부터 시작된 학문적 전통이 한뿌리라면 근대민족국가의 성립과정에서 형성된 국민교육의 전통이 또 다른 한 뿌리이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국민교육은 무상의무교육으로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는데, 전통귀족과 신흥유산자 계급의 독점지였던 대학의 문호 개방 요구에 적응하기 위한 선발제도로서의 문법학교나 김나지움과 같은 인문계 중등교육이 먼저 발생하고 여기에 직업 중등교육제도가 덧붙여지는 자연스러운 복선화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현대에 이르러 후발 주자로서 국가교육제도를 갖춘 미국과 한국 등 유럽을 제외한 나라들의 경우에서는 중등단계의 직업과 인문 간의 복선화가 유럽에서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미국처럼 단선형 중심으로 제도화되거나 한국에서처럼 인문교육과 직업교육 간의 불편한 동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네덜란드 학교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중등과정의 복선화가 2가지에서 3가지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이다. 즉 4년제 직업 예비과정인 vmbo(초급중등학교: voorbereidend middelbaar beroepsonderwijs), 5년제 초급(전문)대학 진학 과정인 havo (고급 중등학교: hoger algemeen voortgezet onderwijs), 6년제 고급(종합) 대학 진학 과정인 vwo(대학예비학교: gymnasium으로 통칭, voorbereidend wetenschappelijk onderwijs)이다. 각각의 비중은 대체로 6:3:1 또는 5:3:2 라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이 세 가지 트랙 중 한 가지 트랙을 정하여 학생들은 입학한다.

vmbo를 졸업하면 4년제 직업전문대학(lyceum으로 통칭)인 mbo(middelbaar beroepsonderwijs)에 진학을 하고 havo를 졸업하면 역시 4년제 일반대학(college로 통칭)인 hbo(hoger beroepsonderwijs)에 진학하며, vmbo를 졸업하면 4년에서 8년 기간의 종합대학(university로 통칭)인 wo(wetenschappelijk onderwijs) 에 진학한다.

우리 한국인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도대체 왜 20% 미만의 학생들만 대학에 가는가?’, ‘왜 유럽, 그리고 서구의 많은 국가들이 모든 정책 수단을 통해 대학진학률을 높이려고 하는데도 잘 안 되는가?’ 중등학교 한 곳(Esdal College)을 찾아서 직접 수업을 살펴보았다.

에스달학교, Esdal College에서 ‘College’라는 이름은 우리의 단과대학이 아니라 그냥 학교에 붙이는 보통명사일 뿐이다. 그렇지만 중등학교이니 에스달 중등학교로 부르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다. 에스달 중등학교에는 세 가지 과정이 함께 운영된다. 대부분의 네덜란드 중등학교가 그렇다. 즉 한 캠퍼스 안에 세 그룹의 학생들이 함께 다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매우 이해하기 힘들다. ‘어떤 기준으로 학생들을 분류 배치할까?’, ‘수업은 어떻게 할까?’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언뜻 보면 학습수준으로 보아 상중하반으로, 혹은 우열반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한편 이러한 궁금증들은 교실에 직접 들어가서 수업을 들여다보면 약간 그 의문이 풀린다.

중등2학년 지리수업, vmbo과정

트렐리 선생님의 지리 수업시간이다. 이 학생들은 5년 중등과정을 가지고 대체로 college 혹은 4년제 고급 중등과정 혹은 초급 고등교육, 사실은 직업전문교육기관으로 진학한다. 선생님의 수업은 지난 수업시간에 낸 숙제를 검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약간은 소란스럽지만 그래도 비교적 집중을 한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준은 중간수준이므로 약간은 소란스럽고 그래서 약간은 직설적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생님은 수업 중에도 무엇인가를 지속해서 기록한다. 학생들의 중간 평가도 기록하고 수업 진행 상황을 지속해서 기록하고 이런 것들이 쌓여 수행평가의 근거가 된다고 한다.

선생님의 설명이 잠깐 끝나고 학생들의 자습시간이 잠시 주어진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탐독하기도 하고, 노트에 정리하기도 한다. 잠시후 수업은 학생들의 질문과 토론으로 진행된다.

중등2학년 지리수업, havo과정

이 학생들은 5년 중등과정을 거치고 대체로 대학(university of applied science, 대학원이 없는 4년제 교육중심대학)으로 진학할 예정인 학생들이다. 수준으로 보면 havo보다 한 수준 위라고 하지만 네덜란드 개념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다른 진로일 뿐이다.

수업의 주제는 항구 도시 로테르담(Rotterdam)에 대한 탐구이다. 선생님은 미리 준비된 비디오를 보여준다. 그런데 vmbo반에 비해 비디오를 보여주는 양이 조금 적다. 로테르담 항구의 역동적인 물동량 움직임이 보인다. 학생들의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항구와 무역을 알게되고, 배에 대해서도 배우며 선원이라는 직업의 성격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비디오 시청이 끝나고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비디오 자료를 기반으로 활발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다. 학생들은 자신의 기존 지식에 기반을 두어 교사의 질문에 대해 응답하고 학생들 간 논의가 이루어진다.

한편 네덜란드에서는 교과서가 중요한 수업 교재로 사용된다. 교재는 기본교재(basic book), 수준별 교재(lesbook), 워크북(werkbook)으로 나뉘며 워크북에는 각종 멀티미디어 자료 안내 팁이 있다. 학생들은 자기 주도 학습용으로 멀티미디어 자료를 이용하고 수업 중에 틈틈이 팝업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학교 수업과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족집게 강의가 떠오른다.

한진 고텐버그 호가 로테르담 무역항에 정박해있는 장면이 나온다. 학생들은 역시 열중이 듣고 있다. 혹 이 아이들 중에 한글을 보고 관심을 두는 아이들이 있었을까? 비디오는 10여 분 동안 시청한다. 책만 읽거나 선생님의 말씀만 듣는 것보다는 훨씬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굳이 따분한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교실 어디에도 칠판과 분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전자칠판은 모든 교실에 갖추어져 있다. 화이트보드에 마커로 학생들의 토론 학습을 유도하는 키워드들만을 선생님은 기록한다.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판서는 사라지고 없다. 학생들의 토론은 계속된다. 비디오에서 본 내용에 기초하여 로테르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선생님은 조금씩 깊이를 더해가며 학습 내용을 심화시키며, 학생들은 생각을 모아간다. 가끔 논의에서 벗어나는 아이들도 보이지만 대체로는 집중되어 있다. 학생들이 답을 같이 찾아가도록 기다림의 시간을 준다. 수업이 끝났다.

중등6학년 지리 수업 vwo과정

이 학생들은 6년 과정을 마치고 4주 후면 졸업하고 가을이면 종합대학(대학원 과정이 있고 대체로 박사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중심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이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학생들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다. 경험 많은 할아버지 얌 선생님께서는 껌을 씹는 학생에게 다가가서 젊잖게 버리도록 유도한다.

교실의 크기는 다 다르다. 지리과 교실이다. 지리과 교실도 여럿이고 한국의 교과교실의 미래 모형을 보는 듯하다. 학생들은 그저 빈손이지만 열심히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주의를 기울인다. 전 세계의 농지 이용에 대한 인문지리학적 논의를 이어간다. 구수한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처럼 학생들은 이야기를 듣는다.

선생님의 얘기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은 이 학생들이 대학진학을 앞둔 학생들임을 이해하게 한다. 물론 스물대여섯 명의 학생 중 서넛은 약간 지루해 보인다. 이제 교과서를 꺼내고 참고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열심히 교과서를 보며 내용을 소화한다. 가끔 열중하지 않는 학생들을 혼내기도 한다.

학생들의 자습이 끝날 즈음에 학생들이 개인 혹은 그룹으로 질문을 시작하고 교사는 토론을 이어간다. 수업은 자연스럽게 끝나간다. 일찍 책을 다 읽은 학생 중 버스 시간이 급하다고 하여 조금 일찍 수업을 파하는 융통성을 보인다.

트렐리 선생님 담임반 지리 수업, 다시 4년제 vmbo 반

담임반이라서 처음에 학생들 생활지도에 관한 확인이 많이 이루어진 후 수업이 시작된다. 그리고 바로 로테르담에 대한 비디오 시청으로 들어간다. 학생들은 확실히 비디오 자료를 관심 있어 한다. 책과 같은 전통적 매체보다 멀티미디어 매체는 분명 매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havo반이 아닌 vmbo반 학생들이라 비디오를 보여주는 양이 조금 더 많다.

학생들을 비디오를 보면서 느낀 것 배운 것을 노트에 적고 토론 준비를 한다. 비디오 시청이 끝난 후 선생님은 비교적 직접 질문하고 설명한다.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질문하여 비디오에서 제대로 보았는지 확인한다. vmbo반에 비교하면 비디오 시청비중도 좀 더 많고 학생들의 자발적 토론보다는 교사의 유도적 토론이 좀 더 많아 보인다. 트렐리 선생님에게 다시 묻고 답을 듣는다.

‘교과서도, 선생님의 수업도, 학생들의 수업도 세 가지 수준으로 나누어 질 수 있는가?’, ‘나누어진다. 평가도 그러한가?’ 그렇다. 참 신기하다. 동일한 내용을 다른 수준으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언뜻 눈으로 보기에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vmbo, havo, vwo 과정으로 올라갈수록 아주 조금씩 새로운 개념 한 두 가지가 첨가된다. 그리고 vwo 과정에서는 한 두 개 나라에 대한 심화학습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과정에 따라 비디오 시청 분량의 차이, 토론방식, 평가방식 등이 달라진다.

선생님께 다시 “평가는 어떻게 하는가?”라며 평가방식에 대해 묻는다. 학습 목표가 처음부터 다르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학부모들도 그리고 전 사회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람메르트 교감선생님과의 대화

40년 경륜을 가진 선생님은 세상의 어른이 다 그렇듯이 요즘 젊은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않고 인생을 열심히 안 산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의 교육적 전통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사와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어떤 배움도 헛것임을 느꼈다.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네덜란드는 아주 최근 2∼3년 전에 초중고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무상공급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교과서 무상공급이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지 겨우 2∼3년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교과서의 구조는 과목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중등학교의 경우 기본서(이론서)를 중심으로 리딩북(lesboek)과 워크북(werkboek)으로 구성되며 다시 레벨별(vwo, hvo, vmbo)로 나뉜다.

대체로 책값은 비교적 고가라고 할 수 있는 지리 교과를 중심으로 기본서 30유로, 리딩북 10유로, 워크북 5유로이다. 물론 여기에 지리부도가 더해지는데 지리부도는 학생별로 지급되지 않고 교실에 비치된다. Esdal 학교의 경우 학생 1인당 교과서 구매 대금은 연간 300유로 정도이다.

2000년 이후 교과서 무상공급이 이루어진 후 교과서는 학교예산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나,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되면서 종이책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면서 교과서 재정의 효율화를 기대한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교육에 대한 탐구는 아직 멀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우리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애써 같은 잣대로 보려고 하면 볼 수가 없다. 거대한 대학의 역사가 있고 서구문화의 역사가 있다. 평가제도 하나로, 교과서 제도 하나로, 학교 제도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 큰 것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거기에 이르지 못하면 답을 못 구할 것이다.

네덜란드 교육에서 무엇을 배울까?

한국인의 관점에서 중학교 3학년이 된 네덜란드 학생이 고등학교 진로를 어떻게 선택할지 되물어본다. 대체로 4, 5, 6년제 중등교육과정의 선택비율은 5:3:2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정부와 사회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더욱 많은 학생이 학문중심대학(university)으로 진학하기를 원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의 선택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으로서는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안 가는 거지?’ 그러나 네덜란드의 학교와 선생님 학생과 학부모들은 우리의 궁금증과는 다르게 아주 간명히 대답한다. “가르친 대로, 배운 대로 각자의 적성과 소질을 익힌 대로 진로를 선택한다”고 대답한다. 네덜란드인들에게 대학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여기서 ‘아무나’라는 말은 진정으로 개인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정말이지 자율적으로 선택한 대학 안 가기’이지 한국에서처럼 ‘못 간 것’이 아니다.

‘왜 대학을 안 가요? 왜 가기 싫어해요?’라고 맥락 모르는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 이들은 안 갈 뿐이다. 왜냐하면 대학에 가야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궁금증은 한 발 더 나간다. ‘유럽에서야 복지가 잘 되어 있고, 학력 간 임금격차가 없기 때문에 무리해서 대학을 갈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하루빨리 학력 간 격차를 없애야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디디면 또 다른 교육적 사태가 보인다. 간명히 그렇지 않을 뿐이다. 유럽에서는 그리고 서구에서는 선진국에서는 그렇지 않을 뿐이다. 자기 적성에 맞는 교육 진로를 선택할 뿐이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고급수학을 배우면서 준비하여 박사학위까지 생각하는 학문중심대학에 가고자 한다는 것은 아직도 공부할 길이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러한 결과 대학의 교수가 되고 법률가가 되고, 기업의 CEO가 되고, 의사가 되는 이른바 전문직을 택하게 된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그리고 고등학교의 준비 과정이 썩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학문적 공부에 재능과 흥미가 있는 학생들은 이 길을 택한다. 물론 부모들과 사회는 더 많은 젊은이들이 학문중심의 고등교육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학은 여전히 최고의 학문기관을 고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답이 아니고 유럽도 답은 아닌 것 같다. 그 가운데 어디엔가 답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대학을 가는 세상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도대체 서구에서 대학은 어떤 의미인가?’를 묻고 답해야 ‘왜 서구인들은 동양인처럼 모두 대학 가려고 하지 않는가?’도 이해될 것이다.

잠정적인 답은 서구에서 대학은 학문연구기관일 따름이다. 그것은 누구나가 가야 할 최종 교육기관이 아니라 학문을 하려는 사람들이 가는 곳일 뿐이다. 그리고 학문을 할 수 있는 소질과 적성은 개인의 노력으로 길러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타고나며 서구인들은 이를 신이 내려준 은사 곧 카리스마요 달란트로 받아들인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달란트를 연마하여 도달하고 가꾸어야 할 것은 자신의 영달이나 흥미 만족이 아니라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명이다.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영광된 일이지만 자칫하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는 유혹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의 절규가 그것이다.

“신을 원망하나이다. 어찌하여 당신은 저 천한 못난이 모차르트에게만 영감을 허락하시었나요?” 신은 답했다. “살리에리여 너의 소명은 모차르트를 돕는 일이니라.” 살리에르는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았다. 살리에르는 지옥으로 모차르트는 천국으로 가는 것이 서구인들의 믿음이다. 교육도 그렇다. 선생님께서 판별해준 진로대로 따라가는 것이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다시 네덜란드의 선생님들에게 묻는다. “학교 졸업 후 진로 결정의 키는 누가 가지고 있는가?” 돌아오는 대답은 간명하다. “그것은 학생을 가르친 선생님과 학교의 교육적 권고입니다.” 물론 국가 표준화 시험에 해당하는 CITO 시험성적이 반영된다. 대체로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일수록 학문중심대학 진로를 선택하지만, 이 역시 우리처럼 1점 차이 선발이 아닌 참고자료일 뿐이다.

학생의 진로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학생을 가르친 선생님이다. 우리나라 선생님들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처럼 학생들의 진학과 진로에 대한 교육적 권고나 결정 권한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우선은 우리나라 학교 선생님들의 이러한 교육적 권위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네덜란드 교육으로부터 배우는 첫 번째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