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번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국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적 기능의 하나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찾아서 잘 길러야 한다. 그러한 인재의 육성은 국가를 위해서만 아니라 지구촌의 번영과 평화와 복리의 증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인재의 발굴과 양성을 위한 제도적 구조와 기능은 그 자체로서 교육의 기회를 창출해 분배하기도 한다. 그러한 교육의 기회를 정의롭게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적 구조와 정책적 방향,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지 검토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임번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체육고 인재양성 방안에 관한 제안을 소개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우리는 자원이 빈약한 나라이다. 한 가지 풍부한 자원은 오직 사람뿐이다. 이 하나뿐인 자원을 어떻게 모으고, 교육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고 국운이 달려있다. 체육고등학교는 체육 영재의 발굴, 전문성 제고와 글로벌 역량 강화를 통하여 대한민국 차세대 핵심 체육 인력을 양성하는 국가 인재 육성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이다.

엘리트 선수 육성을 위해 어려서부터 집중적인 훈련과 경기활동을 강조하는 스포츠 영재 교육은 성취와 조직을 강조하는 산업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자국의 스포츠 경쟁력을 높이려는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의 체육고등학교는 그의 한 예이다.

체육고등학교는 효율성과 속도 그리고 성장을 중시하던 개발 시대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체육고등학교의 존재 과정은 한국 체육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러내 주는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체육계의 인재 양성의 현황

1) 전국 체육고등학교의 규모

체육 분야 영재 육성을 위하여 각 광역지자체별로 체육고등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세종시를 제외한 16개 광역자치단체에 관할 교육청 소속으로 70년대 초반부터 설립되어 운영되어 오고 있다. 2016년 현재 3966명이 재학 중에 있다.

2) 체육고등학교 육성 스포츠 종목

육성 스포츠 종목은 육상, 체조, 수영, 역도, 복싱, 태권도, 유도, 레슬링, 사격, 펜싱, 양궁, 근대5종 등 엘리트 스포츠의 주 종목 내지 비인기 전략 종목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축구, 농구, 배구, 야구 등 프로스포츠 종목으로서 자생력 있는 인기 종목이나 단체 종목은 일반 학교에서 육성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3) 체육고등학교 교육과정

체육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보통교과(국, 영, 수, 사, 과, 예·체능, 생활 교양)를 오전에 이수하고, 전문교과(종목별, 운동부별 수업)는 오후 수업 시수로 이수한다. 전문교과는 진로탐구, 전공경기 체력, 전공경기 기술, 전공경기 실습 등의 과목명으로 개설되어 있다. 수업은 종목별 실기 중심의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4) 체육고등학교 입학 전형

각 종목별로 중학교 우수 선수를 내신, 전국대회 입상 실적 및 운동기능 검사, 운동적성 검사 전형을 통하여 선발한다. 평균 10% 정도의 국가대표 후보 선수를 포함하는 경기력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5) 체육고등학교의 지자체에 대한 기여도

각 시도 체육고등학교의 존치 의의는 소속 지자체에서 획득하는 전국체육대회 획득 메달 대비 30~50%의 공헌도에 있다. 올림픽 대회에서도 태권도, 유도, 사격, 양궁 등 우리나라의 전통 강세 종목에서 현재까지 34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6) 체육고등학교 졸업생의 진로

체육영재 육성을 위한 특목고로서 대학체육계열 학과로의 진학과 전문 직종으로의 진출에 괄목할 만한 실적을 나타내는 등 학교 설립 취지에 걸맞게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체육계열 학과에 졸업생의 80% 정도가 진학하고 있으며 10% 정도는 실업팀에 취업하고 있다.

e-school 운영을 통한 기초 학력 수준의 제고, 지역 유관 기관과의 연계 강화, 인권 친화적 운동문화 조성을 위한 인성교육 강조 등 전인교육의 실천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체육고등학교 운영의 문제점

1) 우수 선수의 수급 및 진로 진학의 선순환 연결 구조가 취약하다

학령인구의 자연 감소와 더불어 인기 종목 선호 경향성으로 인해 체육고등학교의 응시인원이 급감하고 있다. 특히 조정, 역도, 복싱 등 취약 종목을 중심으로 일반계 학교는 물론, 체육고등학교에서조차 정원 미달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운동부 육성 대학 및 실업팀의 감소와 체육특기자 선발 인원의 감축으로 인해 체육고등학교 진로 진학의 어려움이 한층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2) 스포츠과학을 활용한 전문 교과의 지도 체제 확립이 미진하다

전문실기(심화과목) 교과목 개설에 따른 전문 지도자 임용의 어려움 및 체육 특목고 교육과정 체제에 적합한 교수-학습지도의 특화가 미흡한 상태이다. 따라서 체력 육성, 부상 예방, 경기력 발현 등 체계적인 실기 육성 프로그램 운용이 미흡하고 빅 데이터의 활용 등 스포츠과학 활용이 부진한 상태이다.

3) 우수 체육 영재로서의 동인이 부족하다

학생 선수로서 훈련 및 출전으로 인한 학업결손의 문제, 은퇴 후 직업진로(취업)에 대한 불안감 등 현실적인 난제의 봉착으로 체육 영재로서의 최적 발전을 위한 동기 부여가 침체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전문 직업 시대에 적합한 직업 역량 배양이 미비해 선배 선수의 롤 모델이 결여되어 있는 실정이다.

4) 학업 결손으로 인한 학력 저하 및 인성 교육이 결여되어 있다

전국체전 등 각종 대회에서 광역시도 간 첨예한 메달 경쟁의 심화로 경기력 향상에 전력투구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학업 결손에 의한 기초 학력 저하 및 인성 교육을 소홀히 하는 역기능이 초래되고 있다. 이는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한 인문, 사회, 자연 등 고도 과학 기술의 표준지식에 대한 학습권 보장 및 인성 교육의 중점 과정으로서 운동정신(아마추어리즘)의 구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운동선수들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장기간 가정을 떠나 또래 집단과 합숙 생활을 지속함으로써, 다세대 가족 구성원과의 상호작용이 단절되어 독립된 성인으로 성숙하기 위한 기회가 제한되거나 박탈되어 의타심과 미성숙이 영속화된다. 또한, 극심한 스포츠 경쟁에서 겪게 되는 승리지상주의 풍조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가치관을 형성하게 한다.

5) 선택과 집중의 조기 인재육성은 선수 저변확대를 저해하여 경기력을 저하시킨다

체육고등학교는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청소년 스포츠클럽 및 일반 고교 학생 선수와 체육고등학교 선수 간의 경기력 차이에서 기인하는 엘리트 선수 수급의 저변 확대 단절 현상을 유발한 역기능에 대한 역사적 · 사회적 책임이 있다. 체육 영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악화와 후진적 운동문화에 의한 사회적 역기능의 청산이 아직 부진한 실정이다.

6) 시설의 노후화와 이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스포츠 분야의 경쟁에서 시설 및 장비는 경기력을 좌우하는 관건이 되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시설 및 장비의 도입은 경기력 제고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스포츠의 전 지구적 현실이다. 시설 노후화에 따른 학생 선수의 안전 담보와 경기력 증진을 위한 첨단 시설과 장비·경기용 기구의 지원 및 개선이 매우 열악한 실정에 있다.

7) ‘체육고등학교는 전국체전을 위한 학교다’라는 인식이 고착화되어 있다

‘체육고등학교는 전국체전을 위한 학교다’라는 인식이 지자체를 비롯한 교육청 및 체육 단체에 고정 관념화되어 있다. 따라서 미래 한국 체육을 짊어질 체육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특목고로서의 목표보다는 전국체전에서 지자체를 위한 메달 획득에 학교운영 목표를 집중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전국체전 탈락 선수는 기숙사 입사에서 배제되거나, 종목 전환을 종용당하거나, 심지어 일반 학교로의 전학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8) 체육고등학교 지도자의 처우가 매우 열약하다

체육고등학교 지도자는 노력이나 일과 비교하면 처우가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새벽 6시에 출근하여 새벽 훈련, 오전 훈련, 오후 훈련, 야간 훈련에 참여하여 학생 선수들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전지 훈련, 전국규모대회 참가 등 장기간 출장으로 혹사당하고 있다. 그러나 초과 근무수당이라는 명목의 소액 수당만을 받고 있을 뿐이다.

체육 영재학교의 발전을 위한 과제

1) 기능 중심 편향 교육에서 전문 직업역량 교육을 통한 진로 개척이 요망된다

전국체전용 지자체 선수 양성 역할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다드 체육 인재 양성을 지향하는 체육 영재학교로 운영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후진적인 선수 양성 체제에서 벗어나 전문 직업교육 체제로의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 학습 능력의 증진, 직업 적성 능력의 함양, 현장 중심의 창의적 체험 활동의 전개 등 직업 교육 프로그램이 강화되어야 한다.

체육 특목고 교육과정의 전문성 및 체계성 확보를 통한 체육고등학교 운영의 정상화를 목적으로 개편된 ‘2015개정 교육과정’의 현장 적용을 위한 수업의 특화가 요망된다. 종목별 우수 전문교사의 임용과 전입을 위한 인력지원 및 전문 지도자 역량 강화를 위한 각종 연수의 제도화 도입이 필요하다. 비정규 지도자인 코치의 신분 보장과 안정적인 급여 체계의 확립이 요구된다.

2) 신인 선수 발굴 시스템의 개발 및 과학적인 훈련의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우수 선수의 잠재력 측정, 경기력의 정확한 평가, 효과적인 트레이닝 방법의 선택, 경기수행 과정상의 제반 현상에 대한 대처 과정 탐색, 에너지 생성의 극대화를 위한 영양 섭취, 과학적 훈련 장비 및 경기 용구의 개발 등 훈련 외적 방법의 적용과 선수 개인의 최적 컨디셔닝 유지를 위한 운동생리학, 생체역학, 운동심리학, 운동영양학 등의 스포츠 과학을 훈련 과정에서 활용하여 경기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신인 선수 발굴을 위해서는 생명공학을 활용한 DNA 검사 및 성장판 검사 도구의 연구 · 개발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3) 지역사회 생활체육 및 엘리트 체육 거점학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청소년 체육 활동의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한 교육의 장으로서 학교 체육, 생활체육, 엘리트 체육의 연계를 모색하고 각종 체육 단체, 관계 기관과의 상호 지원 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으로 이에 대한 수요와 요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어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학교 체육의 정상화,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바탕으로 한 일반 학교의 스포츠클럽 동아리 활동의 리더, 그리고 지역사회 체육 센터로서의 거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하여야 한다.

4) 선진형 학교 운동부 운영을 위한 환경 인프라 구축이 요구된다

경기력은 시설, 프로그램, 지도자 및 행 · 재정의 지원을 통하여 제고된다. 현대 스포츠는 첨단 시설 · 장비 등 환경 인프라가 경기력을 좌우하는 관건이 되기도 한다. 육상, 체조, 수영 등 엘리트 스포츠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스포츠 거점학교로서 기반 스포츠 종목 육성을 위한 물리적 환경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학부모에 의한 후원 환경 개선과 소외계층 학생 선수의 장학 지원 확대를 통한 경기력 제고 및 진로 개척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의 조성이 요망된다.

5) 학업결손을 최소화해야 한다

전국체전 등 각종 대회에서 시 · 도 간의 첨예한 메달 경쟁의 심화는 승리 지상주의 풍토가 조성되어 학업결손에 의한 기초학력 저하 및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일반 학교 학생 선수는 물론, 체육 전문학교 학생 선수조차도) 훈련 및 연습 시간은 아침과 방과 후(1일 2회), 총 3∼4 시간 정도를 주당 3∼5회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 체육고등학교에서도 수업 전후 시간대에 1일 2회, 총 3∼4시간 정도를 주당 5회로 제한하는 훈련 및 연습 시간의 단축 방안을 검토하여야 한다. 아울러 최저학력제를 시행하여 일정 수준 이하의 학력 미달 학생 선수는 퇴출 조치를 취해야 한다.

6) 승리지상주의 목표를 지양하고 인성교육을 중시하여야 한다

목적 성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운동정신(아마추어리즘)의 고양, 인성교육 강화 및 학생 선수의 생활만족도 향상을 위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이 강화되어야 한다.

특수 목적 고등학교로서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교사 및 코치 등 지도자의 자주성이 보장되고 학생의 자유가 제약받지 않는 자율적 운영권을 담보하여야 한다.

 

미래 한국 체육을 선도할 글로벌 체육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제안

‘체육고등학교는 전국체전을 위한 학교다’라는 선수 양성체제에서 벗어나 미래 한국 체육을 선도할 글로벌 체육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목표를 재설정하고 대학체육계열학과 진학 및 전공 직종 진출을 위한 직업교육 체제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학업 결손을 최소화하고 최저학력제도를 시행하며 인권 친화적 운동문화 조성을 위한 인성교육 강조 등 전인교육의 실천이 강화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실기연습 시간 및 횟수를 최적화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스포츠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첨단 시설 및 기자재 등 환경 인프라 확충을 추진하며, 전공 지도 교사와 코치의 역량 강화를 위한 각종 연수의 제도화 도입과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

끝으로 군사문화 및 개발시대의 선택과 집중 정책으로 성공을 거둔 체육고등학교의 선수 양성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선수 저변 확대의 근간을 저해하여 경기력을 저하시킨 정책 실패의 명백한 사례임으로 체육고등학교의 존폐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