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주 삼성고등학교 교사

국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적 기능의 하나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찾아서 잘 길러야 한다. 그러한 인재의 육성은 국가를 위해서만 아니라 지구촌의 번영과 평화와 복리의 증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인재의 발굴과 양성을 위한 제도적 구조와 기능은 그 자체로서 교육의 기회를 창출해 분배하기도 한다. 그러한 교육의 기회를 정의롭게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적 구조와 정책적 방향,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지 검토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하와주 삼성고등학교 교사로부터 국제고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인재 양성 방안에 관한 제안을 소개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21세기의 문명과 국제사회는 국제화 시대라는 거시적 측면과 지역적 특성이라는 미시적 측면을 두루 포괄하는 이른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의 흐름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사회존속과 사회변혁이라는 기능을 수용하는 교육에도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체제에서 국제고등학교가 차지하는 위상과 존재가치는 그 화두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규정되거나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특목고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국제고등학교(이하 ‘국제고’)의 현황과 법적 성격, 교육목표 및 추구하는 인간상을 간략하나마 정리하고, 국제고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논쟁이 되는 사항들과 과제들을 짚어봄으로써 국제고의 향후 비전과 발전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국제고등학교 현황

2016년 5월 현재, 전국적으로 설립된 국제고는 총 7개교이다. 그 학교들의 설립연도, 위치, 교원 현황, 학년·학급 수, 학생 수 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 표에서 보듯이, 국제고는 서울특별시 1곳, 부산광역시 1곳, 세종특별자치시 1곳, 인천광역시 1곳, 경기도 3곳 등 대도시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대전광역시에서 국제고 설립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국제고 설립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앞으로 각 시·도별로 최소한 1곳 정도의 국제고 설립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고의 경우, 학교의 설립 및 운영 주체는 청심국제고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각 시·도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의 형태를 띠는 것이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외국어고등학교가 주로 사립학교의 형태를 띠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그 배경과 향후 발전 양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제고의 학급 규모는 3개 학년 기준으로 대략 15~24학급이며, 학급 당 학생 수는 대략 25명 선에서 편성되고 있다. 교원 현황은 대체로 50~79명으로 교사 1인당 학생 수 비율은 대략 1:8 정도를 보여주고 있다. 국제고의 교원현황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사항은 원어민 보조교사의 수인데, 2~7명 정도로 다소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1)

1) 필자가 근무했던 서울국제고의 경우, 학생 총 인원 450명에 대해 원어민 보조교사의 수는 영어원어민 교사 7명(※2008년 개교당시에는 10명이었다가 점차 줄어들었음. 원어민 보조교사들은 단순히 영어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 수학, 과학, 영문학, 영작문 등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경우로 고용되었음), 중국어와 스페인어 원어민 강사 2명 등 총 9명으로, 이들은 모두 교수·학습의 정규 교육과정과 다양한 방과 후 교육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원어민 교사들에 대한 인건비와 주거비 지원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일체 지급하고 있다.

국제고의 학생 선발은 ‘국제고가 없는 전국의 시·도 중학교 졸업자들’을 상으로 진행되며, 학생들의 성비 구성은 국제고 전체적으로 남학생들이 30% 정도, 여학생들이 약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고등학교의 지위와 교육목표

1. 국제고의 법적 성격

현재 우리나라에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국제고들의 성격은 법적으로 특목고와 자율학교의 성격을 지니며, 이것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지위

국제고는 주로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0조에 근거하여2) ‘국제관계 또는 외국의 특정 지역에 관한 전문인의 양성을 위한 국제계열의 고등학교’로 설립되었다. 필자가 2007년에 시작된 개설 과정부터 참여하여 6년 동안 근무했던 서울국제고의 경우,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로 2006년 11월 24일에 지정·고시 되었으며, 서울특별시 및 국제고가 없는 시·도를 모집지역으로 하는 변경 고시가 2007년 3월 22일에 이루어졌다. 서울국제고를 벤치마킹하며 세워진 이후의 국제고들은 모두 거의 동일한 설립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제90조 (특수목적고등학교)
① 교육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학교중에서 특수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이하 "특수목적고등학교"라 한다)를 지정·고시할 수 있다.
1. 기계·전기·전자·건설등 공업계열의 고등학교, (중간 생략) 5. 과학영재 양성을 위한 과학계열의 고등학교 6. 어학영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계열의 고등학교, 7. 예술인 양성을 위한 예술계열의 고등학교 (중간 생략) 9. 국제관계 또는 외국의 특정지역에 관한 전문인의 양성을 위한 국제계열의 고등학교

나. 자율학교의 지위

국제고는 일반적으로 자율학교로 지정을 받는다. 이것은 학교 및 교육과정 운영상의 특례를 받는 것으로 해당 사항으로는 학년도 특례, 진급 및 졸업 특례, 교과용 도서 사용 특례, 학교운영위원회 구성 및 운영 특례, 수업 연한 특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항 역시 특목고와 관련된 「초·중등교육법시행령」3)에 근거한다.

3) 제105조 (학교운영의 특례)
① 법 제61조의 규정에 의한 학교(이하 "자율학교"라 한다)는 국·공·사립의 초등학교·중학교 및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교육감이 지정한다. <개정 2001.1.29, 2004.2.17> ② 자율학교를 운영하고자 하는 학교의 장은 교육감의 지정을 받아야 한다. <개정 2004.2.17> ③ 교육감은 다음 각호의 학교를 자율학교로 지정·운영할 수 있다. <개정 2001.1.29, 2004.2.17>
1. 법 제28조의 규정에 의한 학습부진아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2. 개별학생의 적성·능력을 고려한 열린교육 또는 수준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

2. 국제고의 교육목표 및 추구하는 인간상

전국의 7개 국제고들 중에서 부산국제고, 서울국제고, 인천국제고, 세종과학고 등의 교육목표 및 교육방침(교육중점)들을 정리한 아래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고가 추구하는 인재상은 하나의 공통된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

즉, 국제고가 추구하는 인재상은 각 학교들의 교육목표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국제적 인재(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것과 관계가 깊다. 이러한 인재상을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른 인성과 알찬 실력을 갖춘’, ‘지덕체를 겸비한’, ‘조국을 가슴에 안고 세계로 웅비하는’, ‘세계를 선도하고 조화롭고 품격높은’ 등의 표현들은 대한민국에서 길러내야 할 국제적 인재를 묘사하는 일면들로서 통합적으로 인식되어야 할 특성으로 보인다.

한편, 이러한 인재상을 구현하기 위해 국제고들이 설정한 교육방침(교육중점)은 크게 ‘정직, 성실, 봉사, 배려 등을 함양하는 인성교육’, ‘우리문화와 세계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문화교육’, ‘국제적인 소통을 용이하게 만드는 외국어교육’, ‘국제사회에 대한 기본지식과 국제적인 감각을 함양하는 국제화교육’, 그리고 ‘21세기 국제화 시대에 다양한 차원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리더십 교육’ 등 5개 영역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국제고의 교육과정이나 방과후학교 등 다양한 교육활동들은 위에서 언급한 ‘인재상’과 ‘교육방침’에 근거하여 구안되고 실현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진지한 논쟁을 요구하는 국제고등학교의 문제점들

특목고이면서 자율고인 국제고에서 기르고자 하는 인재상은 ‘국제적인 리더’이며, 교육의 주요 방침은 ‘인성교육’, ‘문화교육’, ‘외국어교육’, ‘국제화 교육’ 그리고 ‘리더십 교육’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항들을 구안하고 실현하는 데에는 진지한 논쟁을 요구하는 문제 영역들이 존재한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기에 그것은 ‘국제고의 정체성’, ‘교육과정의 구안 및 운영’, ‘수업방식 및 평가’ 그리고 ‘진로진학 지도’ 등 크게 4개 영역으로 정리될 수 있다.

국제고의 설립 및 운영 과정에 생겨난 이러한 문제 영역에 대하여 되짚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문제 영역들은 국제고의 비전 확립 및 발전을 위해 고려해야 할 발전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1. 국제고의 정체성(Identity)에 관한 논의

2005~2006년 당시, 서울특별시 교육감의 지시로 서울시교육청에서 ‘(가칭) 서울국제고 설립을 위한 연구 TF팀’4)에서 가장 먼저 고민했으며, 끝까지 고심했던 문제는 바로 국제고의 정체성 문제였다. 이것은 필자가 이후 서울국제고 개교 준비 팀원으로서의 활동과 서울국제고에서 근무하던 기간 내내 늘 뇌리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문제로, 이것은 거의 모든 교사들이 경험하며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4) 당시 박희송 교장을 단장으로 교육부파견 장학관1명, 한성과학고 교사 2명(필자 포함)등, 총 4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약 9개월 정도 가칭 ‘서울국제고’설립을 위한 기초 연구를 진행함

국제고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제기된 이슈들 중 하나는 국제고의 설립 형태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당시 국내·외 고등학교들을 탐색한 결과, 서울국제고의 운영 형태로 다음 세 가지 형태가 제안되었다.

첫째, 순수한 한국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월성 교육에 집중하는 국내 학교(National School), 둘째, 한국 학생들이 다수를 이루지만 외국인 학생들이 약 1/3~1/4 정도를 차지하는 혼합 학교(Mixed School), 셋째, 다양한 국적을 지닌 학생들이 모자이크 형태로 섞여 있는 국제 학교(International School)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세 가지 형태 중에서 현실적으로 ‘민족사관고’ 형태의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는 ‘국내 학교’의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나머지 두 형태에 대한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상되기도 하였다.

국제고 VS 국제학교

이후 국제고의 학생 지원 및 선발 과정, 교직원의 선발 그리고 교육과정의 운영 결과, 국내의 국제고는 국제 학교나 혼합 학교로의 가능성과 역량보다는 수월성교육을 추구하는 ‘국내 학교’로의 쏠림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외국 국적을 지닌 학생들이 입학하여 공부한 사례들도 있으나, 주류적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자연스럽게 국제고는 ‘국제학교’와는 차별성을 지니게 되었고, 학교명을 영어로 옮길 때에도 ‘International School’이 아니라 ‘Global School’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 여러 교육전문가들의 조언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제고는 거의 대부분 한국 국적을 지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제적 시각과 역량을 강화시키는 수월성 교육으로 향을 정하고 교육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국제고는 ‘순혈 집단’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국제적 역량’을 함양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교육과정과 교육활동을 보강해 외국 학생 및 교육기관들과의 교류 네트워킹을 강화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국제고의 발전을 위한 동인(動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제고 VS 외국어고

국제고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국제학교’와 달리 또 하나의 관심은 ‘외국어고’와의 차별성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면, 국제고는 외국어고와는 달리 별도의 전공학과들 두지 않으며, 교육 과정상 편제가 다르다.

즉, 외국어고는 영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 등 외국어별 전공학과가 있으며, 전공교과 총 이수 단위의 60% 이상을 전공 외국어로 하고, 전공 외국어 포함 2개 외국어로 전문교과를 편성 운영한다. 반면 국제고는 인문사회분야의 인재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며, 교육과정에서도 외국어에 치중하기보다 인문사회 영역을 두루 섭렵하며 특히 경제통상, 지역 문화, 국제기구 등 국제·문화 분야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부 교육전문가들 중에서는 국제고와 외국어고를 통합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으며, 나름 교육적 근거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학교의 설립 주체가 다르고, 여러 교육 외적 요인들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방안으로 여겨진다.

2. 국제고의 교육과정에 관한 논의

필자가 생각하기에 국제고와 관련하여 가장 이슈가 된 영역은 바로 교육 과정이다. 실제 필자가 2008년도에 개교한 서울국제고의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바로 교육과정을 구안하는 작업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가장 큰 도움을 준 연구는 홍후조 교수가 서울시 교육청의 발주를 받아 발행한 《서울국제고 설립을 위한 정책연구보고서(2006)》로서 귀중한 로드맵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국제고 관련 문서나 여타 문헌들을 살펴보면, 서술되어 있는 ‘국제화된 교육과정’, ‘세계를 지향하는 IB(국제교육과정) 구현’ 등과 같은 현란한 문구와는 달리 실제 교육현장에서 국제고의 특성을 담을 내용이나 기반은 매우 취약했다.

특히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의 총론에 언급된 기준이나 제시된 교과목들로는 교육과정 구성이 거의 불가능했으며, 교육청 차원에서도 교육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교육과정을 구안하거나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한 상황도 아니었다.

건물이나 시설을 세우면 학교가 그냥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고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구안하고, 그것을 제대로 교수학습으로 실행할 수 있는 교원들과 학생들을 모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교육과학부에서 주관한 ‘2009개정 교육과정 관련 연구시범학교’를 신청하여 국제고에 알맞은 교육과정 패러다임을 구안하며 실행할 계기를 갖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제고의 교육과정은 ‘인문사회 분야의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고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을 지향하며, 진로적성에 따라 교육과정을 이원화시키고 장차 국제공인 교육과정(IBDP)을 구현하고 지향하는 방식으로 틀을 잡게 되었다.

가. 인문사회분야의 수월성 교육과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

교육청의 방침에 의해 국제고는 자연계보다 인문사회분야에서의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제고의 교육방침으로 제기된 다섯 가지 교육 분야를 충족시키며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는데 적합한 교과목이 상당히 부족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규 교과목을 계획하고 구성하며 운영하는 일련의 시스템이 필요했다. 아래의 표는 서울국제고에서 연도별로 신규 교과목을 편성하고 운영한 사례를 나타낸다.

이 표에 제시된 교과목들은 우선 새로운 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는 원칙과 방법론에 대해 교육공동체의 승인을 받았으며, 해당 영역의 교사들이 최소 1년 동안 교과의 구성과 내용을 체계화시켜 서울시교육청에 신규 과목 신청을 하여 엄격한 심사를 거쳐 승인을 받은 과정을 전제로 하여 구성되었다.5) 이러한 과목들은 이후 교수-학습 과정을 통하여 피드백을 거치며 더욱 정교하게 보완 및 개정 작업이 이루어졌다.

5) Critical Reading and Writing 과목은 필자가 팀장을 맡은 과목으로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실시한 학교단위 수업 방법 개선팀 연구프로젝트 형식으로 연구보고서와 실험적인 교재가 편집되는 성과가 있었다. 보고서의 주제는 “비평적 읽기와 쓰기 (Critical Reading and Writing)를 통한 자기주도적 학습태도 고양과 영어구사력 제고 방안 탐색”이었으며, 당해 우수 보고서로 선정된 바 있다. 이 교과는 이후 많은 고등학교에서 차용되고 있다.

나. 이중적 교육과정(Dual-track Curriculum) 운영

국제고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진로특성을 반영하는 교육과정을 구안 및 운영하는 것은 국제고 초기부터 매우 진지하고도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사실 국제고 학생들의 진로는 국내외 대학을 망라한 다양한 전공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수준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구현해주는 교육과정을 갈망했다.

그래서 서울국제고의 경우, 개교 1년 후인 2009년부터 국내 대학을 주로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국제1과정, 국내 대학의 국제학부와 국외 대학을 주로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국제2과정을 각각 개설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두 과정은 진학 유형에 따라 과목 배치 및 이수학점 그리고 원어민교사의 교과목 수업 시수 등을 상이하게 편성됐다. 학생들은 학년마다 이 두 과정을 다르게 선택할 수 있으며, 입학 후의 선택과 이후 두 번의 이동을 허용하는 유연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

국제고 설립 당시의 숙원이며 장기 발전 과제 중 하나로 항상 손꼽히는 것이 IBDP(국제공인교육과정)를 구현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IB 교육과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하는 각 학교가 IB 교육과정이 지닌 우수성과 의의를 이해하고 실행을 검토한 후, 필요한 문서를 IBO에 제출하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수정 · 보완하여 IB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승인을 받기까지 대략 2~3년이 소요된다.

필자는 2010년 9월에 당시 서울국제고의 원어민수석교사이자 College Counselor였던 Brian Miner와 함께 아세아-오세아니아 IB 컨퍼런스에 참여하여 IB Coordinator 자격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당시 서울국제고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선발된 약 10명의 원어민교사가 한국인 교사와 함께 여러 교과목에서 ‘협력수업(Co-teaching)’을 하고 있었다.

이 비용은 모두 서울시 교육청에서 부담했고, 국제반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IB 프로그램을 충분히 이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귀국한 필자는 이에 대한 내용을 전 교원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당시 국제교육부장으로서 IB 도입 고려 단계(Consideration Phase)를 넘어 IB 후보학교 신청 단계(Request for Candidacy)에 필요한 작업과 예산을 살펴보면서 초기 서류를 제출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학교예산 및 관리, 기타 교육 외적 요인들, 학교-교육청 간 네트워킹과 관련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이 작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더구나 당시 교육여건을 고려하면 그때의 안타까움은 지금도 지울 길이 없다.

현재 국내 학교 수준에서 경기외고 국제반에서만 실시되는 IB 교육과정을 서울국제고에서 국제2과정의 차원에서라도 실시할 수 있었다면 학교의 위상과 여타 국제고들에 대한 파급 효과와 교육과정상 연구의 가치는 생각보다 엄청났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 추진 중인 ‘WASC 인증6)’도 나름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볼 수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국제고 차원에서 IB국제학교로서의 위상과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면 정체성 확보와 위상의 제고라는 효과와 함께 국내·외 진로진학 차원에서도 매우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6) Western Association of Schools and Colleges(WASC)는 미국 교육부에 의해 인정을 받고 있으며, 미국 내 6개 지역별 교육
과정인증기구 중 하나이다. 현재, California, Hawaii, American Samoa, the 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the Republic of the Marshall Islands, Fiji, East Asia에 위치한 학교들을 대상으로 교육활동에 대해 자문 및 인증과 관련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구는 EARCOS(the East Asia Regional Council of Overseas Schools)이다.
현재 Stanford를 비롯한 4년제 대학교, 2년제 전문학교, 중고등학교 등 약 4000개 정도의 공사립 학교들이 WASC로부터 교육
과정을 비롯한 교육 활동 전반에 걸쳐 인증 및 컨설팅을 받고 있다. 서울국제고는 2008년부터 WASC 인증을 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3. 국제고의 수업방식에 대한 논의

국제고의 수업방식을 홍보할 때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수업 시간 동안 교수-학습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내용과 외국어에 대한 유창성을 동시에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한 장점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일정 기간 동안 국제고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수업을 외국어로만 진행하고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고,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문제들이 노출되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수업을 진행한 결과, 고등학교 과목에서 중상 수준의 내용을 가르칠 경우 지력(知力)과 외국어의 유창성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경우는 제한적이었다.

반면 많은 경우 모국어의 사용과 모국어를 이용한 설명이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학업성취에도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외국어의 구사력과 확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국제고의 수업 방식은 상황과 교육내용에 따라 외국어 몰입(Immersion)의 정도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부분 몰입수업’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한국인 교사와 원어민 교사가 함께 가르치는 ‘협력 수업’이다.

협력 수업은 모국어 교사와 외국인 교사가 한 시간을 나누어 가르치던, 시간을 교차하여 가르치던, 시수 할당제로 가르치던, 내용 위주로 교수 시간을 분리하던 부분적인 몰입 수업을 교육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앞으로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4. 국제고의 진로진학 지도에 대한 논의

여느 특목고와 마찬가지로 우수한 선발 집단에 대해 획일적인 내신 9등급을 적용한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이른바 ‘내신’과 ‘수능’의 딜레마는 국제고의 진로진학현장에서도 절대 가볍지 않은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입 체제의 전반적인 개혁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대학입시의 경우, 불합리한 내신 9등급제의 기계적인 적용을 해제하고, 개인별 진로적성에 따라 포트폴리오 작업을 확대하면서 진로별 대학입시를 구현시켜주는 것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아울러 학교 차원의 국내외 입시 네트워킹과 시스템의 외적인 홍보보다는 학생들에게 만족과 실리를 주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 진학지도에 대해서도 인식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에서 특목고를 졸업한 다음에 미국의 Ivy League로 진학하는 패러다임은 매우 극소수의 사례에 한정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편화시키면서 학생들에게 진로인식을 심어주고, 교육활동을 다그치는 것은 학생이나 학부모 그리고 학교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필자가 서울국제고 2학년 학생들을 인솔하고 강소국 싱가포르를 견학한 뒤에 학생들이 ‘아시아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후 자연스럽게 우수한 학생들이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일본 등에 위치한 유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앞으로 국제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캐나다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도처로 진로진학을 고려하며 도전하는 정신과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유학도 학생들의 적성과 경제적인 상황, 향후 가능성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매우 실용적인 방식으로 수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진학을 지도하는 시스템도 보다 개선되고, 학교차원의 인적 네트워킹이 보다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지금까지 국제고에서 추구하는 인재상과 교육방침 그리고 문제 영역 등을 매우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국제고의 정체성이나 교육과정 그리고 다양한 교육활동들은 주어지거나 고정된 개념 혹은 사실이 아니라 교육공동체가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진로진학 지도라는 것도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이지 결코 인위적인 계산이나 절차가 아님은 분명하다. 좋은 리더십을 갖춘 관리자들과 성실하고 훌륭한 선생님들 그리고 탁월한 학생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근사한 과정을 만들어나갈지 자못 기대가 크다.

30년 넘게 가르치고 배우면서 깨닫게 되는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의 의미를 부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그들을 지켜보며 격려하고 사랑해주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