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수 전 서울과학고 교장

국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적 기능의 하나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찾아서 잘 길러야 한다. 그러한 인재의 육성은 국가를 위해서만 아니라 지구촌의 번영과 평화와 복리의 증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인재의 발굴과 양성을 위한 제도적 구조와 기능은 그 자체로서 교육의 기회를 창출해 분배하기도 한다. 그러한 교육의 기회를 정의롭게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적 구조와 정책적 방향,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지 검토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최병수 전 서울과학고 교장의 과학영재 양성을 위한 제안을 소개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과학영재교육에서 출발한 과학기술 확보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야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는 국가 간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오직 인적자원에 의존해서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핵심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에 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 중국, 일본 등과 같은 나라는 하나같이 과학기술이 앞서 있는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은 현재도 뛰어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많은 예산으로 쏟아 붓고 있다.

우리나라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과학입국이라는 기치하에 과학 인재를 중시하였다. 박정희 정권 때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KIST를 설립하고 과학기술자 양성과 중화학공업에 많은 투자를 하여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전환하였으나, 그후 언제부터인가 과학입국이라는 말이 국가의 기본 정책에서 슬며시 사라졌다.

우리나라가 현재 11대 경제 대국으로 먹고살 만큼 단시일 내에 잘살게 된 기본 바탕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작금의 우리나라는 2만 불의 국민 소득을 달성한지도 10년이 넘어가는데 선진국대열로 들어가는 3만 불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 밑에서 맴돌고 있다. 

이는 핵심 원천 과학기술의 확보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떨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주 수출 품목인 전자 제품, 자동차, 조선, 바이오 산업, 건설 등에서 핵심 원천 과학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한계에 부딪혀 고전하고 있다. 이러한 핵심 원천 과학기술 확보는 과학영재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재교육은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국가 기본 정책이다.

영재에 대한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양하지만, 우리나라 「영재교육진흥법」에서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영재학교는 평등교육을 국가 이념으로 하는 (구)소련에서 1950년대 스탈린 시대에 시작하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것으로 보면 과학 영재교육은 이념을 떠나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앞장서서 실시해야 하는 국가 기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에 매몰되어서 영재교육을 귀족교육으로 치부하여 소홀히 다루게 되어 핵심 과학기술 인재난을 겪지 않도록 국가적인 핵심 정책으로 해야 할것이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기 위해 1983년도에 ‘과학고등학교’를 설립하고 2002년도에는 「영재교육진흥법」을 제정하여 2003년도부터 ‘과학영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과학영재학교라고 할 수 있는 학교가 <표 1>과 같이 8개교(서울과학고등학교, 한국과학영재학교, 경기과학고등학교, 대구과학고등학교, 대전과학고등학교, 광주과학고등학교,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가 있다.

과학영재학교는 과학과 수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라면, 과학예술영재학교는 과학과 수학 뿐만이 아니라 예술 분야를 강화하여 융합적 사고를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이다.

이들 과학영재학교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운영하는 일반 과학고(한성과학고, 부산과학고 등 총 20개교)와는 달리 특별법인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운영되는 학교이다. 과학고등학교는 1983년도에 경기과학고등학교가 설립된 이후 많은 과학고가 설립되었으나, 국가의 핵심 과학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 더욱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기 위해 2002년도에 「영재교육진흥법」을 제정하고 2003년도에 부산과학고를 한국과학영재학교로 전환하였다. 그 후 일반 과학고를 과학영재학교로 전환하거나 새로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과학영재학교와 일반 과학고등학교는 어떤 점이 다른가?

첫째, 교육과정 운영에서 과학영재학교는 학교장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이고, 일반 과학고는 국가 수준에서 정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영재학교는 <표 2>와 같이 교육과정이 각 학교마다 추구하는 인재상에 따라 차이가 많고, 일반 과학고는 각 학교마다 큰 차이가 없다.

이에 따라 영재학교의 교과서는 각 학교의 특성에 맞게 개발해서 이용하고 있지만, 일반 과학고는 국가에서 개발한 교과서를 이용하고 있다. 서울과학고만 해도 2012년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65종의 교과서를 학교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쓰고 있다.

둘째, 학생 선발은 학교장의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선발 과정을 보면 과학영재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3단계 과정을 통해 선발한다.

1단계에서는 서류 전형으로 선발하고, 2단계에서는 1단계 통과자 중에서 영재성, 문제해결력과 창의성 등을 평가하고, 3단계에서는 2단계 통과자 중에서 1박 2일이나 2박 3일 동안 심층면접, 실험 평가, 조별활동, 단체 활동, 글쓰기 등을 통해 창의성과 리더십, 인성 등을 최종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선발 과정을 통해서 학생 개개인의 영재성, 창의성, 리더십, 인성 등 을 검증한다고 본다.

셋째, 과학영재학교는 무학년제로 운영하고 있다. 과학영재학교 입시에 지원하는 요건은 중학교 1학년 이상이거나 동등한 자격을 갖춘 학생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입시 때부터 무학년제를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입학 후에도 필수 과목을 제외하고 학년에 관계없이 학생 개개인의 취향과 수준에 맞게 선택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이에 따라 심지어는 1,2,3학년이 같이 수강하는 과목도 생긴다. 이에 반해 일반 과학고는 중학교 졸업자에 한하여 입학을 허가하고 학년제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넷째, 학생은 전국 단위로 모집한다. 일반 과학고는 시교육청와 도교육청 지역으로 묶어 모집 하지만, 과학영재학교는 학생 본인의 특성과 적성에 맞는 과학영재학교를 지역에 관계없이 전국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다섯째, 과학영재학교는 학점제로 운영하고 있다. 과학영재학교는 <표2>와 같이 일정한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 일반 과학고는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으나 과학영재학교는 원천적으로 조기 졸업을 할 수 없다.

대신에 과학영재학교는 카이스트나 포스텍과 같은 특성화 대학에서 수강하는 과목을 선 이수하여 학점을 인정받는 AP 제도를 도입하여 대학에서 조기 졸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였다.

여섯째, 과학영재학교의 학교장은 교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교사 자격증이 없는 박사급 교사를 공개 모집하여 특별 채용할 수 있다. 과학영재학교의 학교장은 공개 모집 절차에 따라 일반 교사와 박사급 교사를 선발하고 전출을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받고 있다. 특히 박사급 교사는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채용할 수 있다.

일반 과학고는 교육청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으며, 교원은 반드시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교장은 교사 자격증과 관계없이 공모에 의해 영재교육 전문가를 선발하여 임용할 수 있다.

과학영재학교의 문제점과 해결책은?

2003년도부터 과학 영재학교가 설립되어 14년째 운영되고 있지만, 그동안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해결책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 예산이 안정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현재 학교 운영 예산은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도교육청에서 지원받고 있다.

시·도교육청의 예산 사정에 따라 영재학교에 지원되는 예산은 천차만별로 다를 뿐만 아니라, 매해 예산을 삭감하려는 예산정책과 투쟁하여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시·도의회에서는 그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산을 삭감하려고 매년 시도하고 있다. <표 3>은 2014학년도와 2015학년도 과학영재학교의 학교 소재 지역 출신 학생 비율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영재학교의 예산은 중앙 정부에서 확보하여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렇게 되면 학교마다 고르게 예산을 분배할수 있다. 둘째,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교사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제외하고 영재학교 교사의 대부분은 일반 중고등학교의 교사 중에서 모집하고 일부는 박사급 교사를 채용하고 있다. 이들 중고등학교 교사 중에서 석사나 박사 학위와 실력을 갖춘 교사들이 지원을 꺼리고 있다.

그 이유는 난이도가 높은 강의 준비, 연구 활동지도와 여러 가지 잡무 등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승진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일정 부분 연구 수당을 지급하여 사기를 높이고 잡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영재교육 지원 센터를 학교 안에 설립·운영하여 입시업무나 입시 개선 연구, 교육과정 연구, 난이도가 높은 업무를 맡아서 지원하면 된다. 특히 실력 있는 박사급 교사는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영재학교는 여학생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입시에서부터 여학생의 지원율이 현저히 낮다. <표 4>는 학년별 및 성별 학생 현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학생 친화적인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여학생 비율을 일정 부분 할당제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여학생 할당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넷째, 연구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테크니션 확보가 미흡하다. 영재학교에는 각종 첨단 기자재가 설치되어 있다. 이 기자재는 학생들 연구 활동에 매우 긴요하게 활용된다. 이러한 기자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테크니션이 확보되어야만 연구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다. 유능한 테크니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과학영재학교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재교육진흥법」과 동시행령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개정되어야 한다. 이 법령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루빨리 법이 개정되어 과학영재학교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란다.


많은 문제점에도 성과를 내고 있는 과학영재학교

과학영재학교의 문제점과 짧은 역사에 비해 영재학교 운영의 성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15년도 영재학교 4개교 졸업생 452명 중 403명이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에 이공계 진학자가 403명으로 90%에 육박한다.

참고로 1989년도에 일반 과학고로 출발하여 2009년도에 영재학교로 전환된 서울과학고의 경우 25회의 졸업생 중 서울대학교 1781명, 카이스트 876명, 포스텍 155명, 연세대 267명, 고려대 127명, 유학 26명 등 3605명을 배출하였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박사 학위를 717명 (국내 297명, 국외 420명)을 배출하였고, 그 중 221명(국내 165명, 국외 56명)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나머지 졸업생들은 삼성전자나 구글 등 국내외 연구소에서 핵심 연구원으로 종사하고 있다.

이러한 서울과학고 성과로 볼 때 앞으로 모든 과학영재학교 졸업생들은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세계 이공계를 이끌고 갈 리더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