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증기기관은 공업화 시대의 도래를 알렸고,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들어 항공시대의 첫 발을 내딛게 했다. 가깝게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명하면서 우리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으며 최근에는 IoT(Internet of Things), AR(Artificial Reality), VR(Virtual Reality) 등의 기술들이 개발되며 또 한번 삶의 방식에 전환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세계적인 과학 기술의 변화와 맞물려 우리나라의 과학 정책을 기획, 조정, 자문, 평가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박영아 원장을 만나 과학 기술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과학기술의 미래가치를 창조하는 글로벌 기획·조정·평가 전문기관

“KISTEP은 1987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부설 과학기술정책연구평가센터로 출발해 1993년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STEPI)를 거쳐 1999년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됐습니다.”

박영아 원장의 말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1987년부터 시작해 30년 가까이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KISTEP은 국가 과학기술 정책을 기획하고, 정부 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할 뿐 아니라 미래사회 과학기술을 예측하며, 국가R&D사업 성과 등 각종 사업의 평가까지 맡고 있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기관이다. 또한 매년 한국 사회 대표적 이슈를 선정해 경제적 파급 효과와 이슈 대응력을 종합 분석한 ‘KISTEP 10대 유망기술’을 발표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가상·증강현실 기술(VR·AR)을 평가한다.

왜 KISTEP이 ‘과학기술의 미래가치를 창조하는 글로벌 기획·조정·평가 전문기관’을 표방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평가정책의 핵심은 무엇일까?

“저희는 자율평가체계의 정착과 연구자 중심 정성평가 확대를 통해 질적 수준 제고 뿐만 아니라, 피평가자·평가자간 신뢰에 기반을 둬 평가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유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평가문화의 변화를 위해 KISTEP은 ① 부처의 평가 자율성 및 책임성 강화 ② 고유임무 중심의 기관 평가 강화 ③ 창의적·질적 성과중심평가 ④ 연구자 중심 정성평가를 핵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부와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2014년 63.7조 원에 육박합니다. GDP 대비 세계 최고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과학기술분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과학기술분야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그러다 보니 각 정부부처의 정책 방향이 다르거나 중복되는 사업이 많아 중복 투자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 심의위원회라는 곳에서 부처 간 예산을 심의·조정하게 되는데 KISTEP이 위원들을 도와 함께 진행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교부된 부처별 예산이 집행된 후 KISTEP은 사업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여부를 평가한다. 또한국고지원규모가 300억 원이 넘는 연구 개발 사업 진행시에는 KISTEP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며 이 조사에 통과해야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야말로 국가과학기술연구개발사업은 준비부터 기획, 조사, 분석, 평가 전 분야에 걸쳐 KISTEP의 손을 거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다. 달아나는 선진국, 쫓아오는 후발국 “우리나라의 과학 인프라 경쟁력은 6위, 기술 인프라 경쟁력은 세계 13위 수준입니다.”

2015년 IMD 세계경쟁력 연감에 발표된 우리나라의 위치다. 불과 70여 년 전까지 주권도 없이 살아왔고 6.25전쟁까지 겪은 이 좁은 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순위의 과학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성장한 과학 수준 만큼 우리의 삶도 빠른 속도로 윤택하게 발달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기술이 개발되고 발달하고 발전하면서 후발 주자들의 추격이 무섭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그렇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 격차는 ‘12년 1.9년에서 ‘14년 1.4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앞서고 있는 기술도 있고 중국이 앞서는 기술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과학기술 수준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데서 더욱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진국에겐 ‘품질과 기술 경쟁’ 부분에서, 중국 등 후발국에겐 ‘급성장과 가격 경쟁’ 부분에서 동시에 밀리는 ‘넛크래커(nutcracker)’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세계가 알아주는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였지만 그 이상으로 진보하지 못했기에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혁신이 없이는 급성장하는 후발국들에게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뺏기게 될 것입니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의 이러한 현실을 이성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KISTEP은 과학기술 중심으로 ‘사회 전반의 혁신’을 유도해 나갈 필요성에 공감하고 과학기술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혁신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살펴보면 사람의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냈다. 즉 이러한 혁신을 위한 기초는 인재양성에 있다. 하지만 박 원장은 대한민국 교육이 과학 인재를 잘 육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 시스템으로는 앞으로 50년도 끌어갈 수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해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할 수 없음은 불 보듯 뻔하다.

딥러닝(deep learning)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배움의 양식과 방법, 새로운 철학의 학제, 입시제도, 취업구조, 교육과정, 교사양성의 변화가 시급하다. 박 원장은 1957년 10월 세계최초의 인공위성이었던 스푸트니크(Sputnik) 1호가 구소련에 의해 발사되자 그 충격을 계기로 미국이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고, 교육과정에서 수학과 과학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뉴프론티어 정책(New Frontier Policy)을 통해 개혁을 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알파고의 충격을 새로운 시대의 ‘융합교육과 창의인재육성’을 위한 혁신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박 원장은 “과학은 결국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고 했다.

때문에 그동안 경제발전이나 경제성장에 치중해 왔던 KISTEP의 역할이 이제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공재(건강·안전·복지·환경 등)로 탈바꿈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무성이 더 중요한 시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