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을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를 선언한 나라, 산림의 60%를 보존해야 하는 나라,
신호등을 거부하고 수신호로만 교통정리를 하는 나라…
은둔의 왕국 부탄에 대한 이야기.

김동우 여행·사진작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부탄 파로 공항

우리나라에서 부탄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네팔이나 방콕을 경유하는 방법인데 부탄 국적기인 드룩 에어와 부탄 에어라인을 이용해야 한다. 난 태국에서 드룩에어를 타고 인도 캘커타를 경유해 약 3시간 반을 날아 부탄 파로공항에 도착하는 코스를 택했다.

이륙 후 얼마쯤 지났을까, 멀리 어렴풋이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서히 고도를 낮추던 비행기는 기습적으로 산과 산 사이로 빨려 들어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파로 국제공항에 내려앉았다. 공항은 아담했고, 그 흔한 탑승 브릿지도 없다.

모든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려 걸어서 입국장까지 이동해야 한다. 입국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건 5대 국왕 부부의 사진. 행복해 보이는 국왕 내외는 멋들어진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있다.

‘행복’은 부탄이란 나라를 떠올릴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다. 부탄은 국민 총생산(GNP)을 버리고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 총행복도)를 선택한 유일한 국가다. 4대 국왕인 지그메 싱게 왕추크는 1972년 17세 나이에 GNH 개념을 내놓았다.

이후 그의 아들이자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옐 왕추크 역시 아버지의 이념을 따르고 있다. 밖으로 나가, 부탄에서의 5박 6일을 안내해 줄 가이드 페마 유딘과 드라이버 페마 도지를 만났다.

부탄은 외국인들의 자유여행을 정책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다. 외국인의 경우 부탄 정부에서 공식 승인한 현지 여행사를 통해야 하고, 전 일정을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1인당 하루 비용은 200달러에서 250달러가 든다. 여기에는 호텔, 식사, 가이드, 드라이버, 차량, 입장료 등이 포함된다.

부탄의 수도 팀푸

파로 공항을 떠나 부탄의 수도 ‘팀푸’를 향했다. 부탄의 수도 팀푸는 히말라야 산맥, 해발  2,400m 장소에 세워진 도시다. 아담한 부탄 공항은 모든 승객이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꼬불꼬불 낭떠러지 길을 따라 도착한 팀푸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쿠엔셀 포드랑 자연공원’이었다.

해발 2,500m 산 중턱에는 ‘도르덴마’, 혹은 ‘부다 포인트(Buddha Point)’라고 불리는 최고 높이(62m)의 좌불상이 있다. 팀푸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뷰가 일품이다. 두 번째 행선지는 ‘내셔널 텍스타일 박물관(National Textile Museum)’. 부탄의 옛날 전통 무늬에서부터 최신 트렌드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물 기술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부탄의 유기농 야채로 저녁을 먹은 뒤 나선 산책길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의식을 치르고 있는 장면이었다. “사진 찍으셔도 돼요.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거예요.” 유창한 영어 실력에 한 번, 친절한 마음씨에 두 번 놀랐다.

부탄에서는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용어인 종카어와 영어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로 수업하기 때문이다.

불교 국가, 부탄

부탄은 불교 국가인 만큼 이와 관련된 유적지가 참 많다. 티베트 불교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우리나라 불교 신자들의 방문도 늘고 있는 추세다. 부탄의 많은 불교 유적지 중 팀부에서 푸나카로 향하다 만나게 되는 도출라 패스(3,140m)에 세워진 108개 불탑은 꼭 봐야 할 명소다.

이 불탑은 인도 반군들을 소탕한 승리를 기념하고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지어졌다. 특히 도출라 패스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산맥의 드라마틱한 풍경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다.

푸나카의 황금 보리 길 사이에 있는 치미라캉(Chimi Lgakhang)도 볼거리다. 살아생전 술과 여자를 좋아해 ‘미친 스님’이라고도 불리는 드럭바 스님(디바인 매드맨)이 세운 치미라캉에는 유난히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들이 아이를 바라며 많이 찾아온다.

또 부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종’이다. 종이란 부탄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데, 우리식으로 말하면 행정청사다. 그러나 단순히 행정기능만 있는 청사가 아니라, 고승이 거주하는 불교사원과 사법부가 함께 있는 부탄만의 독특한 복합 청사가 바로 종이다.

종 내부는 크게 행정, 사법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스님들의 수행공간은 관광객 출입이 제한된다. 종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요새 기능이다. 과거 티베트의 침략에 대비해 망루처럼 높은 곳에 건설해 적의 침투를 감시하는 역할도 했다.

종은 각 지역마다 하나씩이 있는데 푸나카·팀푸(타시초)·파로종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푸나카 종은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손꼽힌다. 이곳은 5대 왕의 결혼식이 치러진 공간이며, 팀푸종은 부탄 국왕의 집무실, 파로종은 부탄 전통건축양식이 가장 잘 반영된 건축물이다.

부탄에선 종만큼 많은 게 사원이다. 팀푸에는 왕을 기억하기 위해 왕의 어머니인 왕비가 지었다는 불탑인 메모리얼 초르텐을 비롯해 다양한 사원이 있으며, 푸나카엔 카슘 율리 남걀 초르텐이, 파로엔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키추라캉 종과 티베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장소인 드룩겔 종이 있다.

행복한 나라, 부탄

<불교 경전이 적힌 룽다가 바람에 날린다.>

부탄 여행 일정 중 가장 고난도는 ‘탁상곰파(타이거 네스트;Tiger’s Nest)’였다. 가파른 수직 절벽에 자리 잡은 탁상곰파는 부탄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와 이곳에서 3년 3개월 3주 3일 3시간 동안 명상했고, 부탄 독립의 아버지 삽드룽과 같은 당대의 위대한 스승들이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탄의 성지 중의 성지로 꼽힌다. 부탄 여행은 이런 전통과 이들이 삶을 대하는 불교적 태도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낸 감사와 양보가 무엇인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운전할 때 소 떼와 야크 떼가 차 앞을 지나가면 차를 멈춰 세우고 가만히 기다려 줄 줄 아는 나라가 부탄이다.

또 길에 사는 강아지들을 위해 음식을 주고, 그들의 편안한 낮잠을 위해 그늘진 공간을 마련해주는 게 부탄 국민의 마음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부탄, 이곳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