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생각’이란 뜻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또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헤아리는 정신 활동’을 말한다. 인간의 ‘정신’은 ‘지정의(知情意)’, 즉 지성(知性)과 감정(感情), 의지(意志)가 모여 하나로 구성된 ‘마음’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지정의가 하나로 모인 ‘마음의 움직임’이 곧 ‘생각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의 공부는 학습과 기억으로 인지한다 
우리의 주제인 공부에서 ‘생각’이라는 것은 어떻게 작동할까? 우리가 아는 공부는 내적 동기의 감정을 바탕으로 자기 결정의 의지를 모아 앎의 지성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의 뇌에서 작동되며, 이것을 공부에서는 ‘인지’라고 한다. 인지 또한 지정의, 즉 마음의 움직임이니 이는 곧 생각함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이리하여 생각하는 인간은 뇌의 인지 활동에 의해 ‘공부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KBS에서 방영되면서 관심을 모았던 「공부하는 인간」에서는 ‘호모 아카데미쿠스(Homo Academicus)’라고 일컫기도 했다.
인지심리학에서 공부는 ‘학습’ 그리고 ‘기억’과 ‘망각’을 포함하는 인지과정으로 설명된다. 학습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거나 할 수 없던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기억은 이러한 반복된 학습이 누적되어 뇌에 저장되면서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학습은 다양한 경험에 의해 나타나는 행동의 변화이고, 기억은 반복된 학습이 누적되어 나타난 뇌의 변화라는 것이다. 즉, 기억은 학습을 통해 나타난 인지적 변화이다. 따라서 학습 후 학습내용을 기억해야 진짜로 배웠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학습한 내용을 기억해야 더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다. 하지만 뇌는 학습한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하며, 학습된 내용이 저절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제대로 기억할 수 있다. 
인지심리학에서 인간의 정신활동을 컴퓨터의 정보처리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정보처리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학습은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이라는 기억의 구조에서 부호화(符號化, encoding), 저장(貯藏, storage), 인출(引出, retrieval)이라는 과정을 통해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진행되는 인지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학습이란, 감각기억에 들어온 정보 중에서 주의가 이루어진 것만 단기기억으로 넘어와서 다시 부호화를 통해 장기기억으로 저장되는 ‘수동적인 학습 과정’과, 이미 저장되어 있는 기억을 회상하여 문제해결을 위해 사고하고 추론하면서 기억을 한층 강화하고 확장하는 ‘능동적인 학습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때 단기기억에서 주의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호화 되지 못한 기억은 모두 망각되며,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도 자주 인출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망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학습에서 망각은 인지과정의 자연스러운 작용이며 필연적인 과정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기억을 인출하려는 노력, 즉 ‘기억 꺼내기’를 자주 하면 할수록 그 기억이 오래 간다는 것이다. 학습한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을 자주 인출해야 한다.


생각을 생각하는 내 머릿속의 눈이 메타인지다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

 

                     

 

 

 

 

 

 

(KBS시사기획창 ; 전교 1등은 알고 있는 공부 ) 

 

 

‘생각하는 인간’은 동물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인간만이 가지는 ‘또 다른 생각’이 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 즉 인지과정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인지활동을 위에서 모니터링 하는 인지에 대한 인지라는 의미에서 이것을 ‘메타인지’라고 부른다. 일종의 내 머리 속의 거울인 셈이다. 이 메타인지는 나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생각인 것이다. 한마디로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인간이다.
여기에서 그럼 나 자신을 아는 것,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인지와는 무엇이 다른가? 간단히 비교하면, 인지가 지식을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인 반면, 메타인지란 자신의 지식 상태를 파악하고 그 지식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메타인지는 지식 그 자체가 아닌 방법에 대한 지식인 것이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인지가 어떤 과제 혹은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여 어떤 해답을 얻기 위한 지적 활동이라면, 메타인지는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선택과 계획 그리고 얻어진 해답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모니터링 하는 사고 활동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메타인지란 인지의 능동적인 지적 활동을 통해 지식의 효율을 높여 문제해결의 열쇠로 만들어내는 뇌의 창의적 기능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는 기억의 구조와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이에 대한 답은 컴퓨터의 정보처리 과정으로 인간의 인지과정을 이해하던 초기 정보처리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1990년대 초부터 뇌과학의 발달과 함께 인지심리학에 도입되면서 뇌기반 학습이라는 학습과학으로 학습과 관련된 우리 뇌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즉, 학습을 통한 기억은 컴퓨터의 정보처리처럼 정보가 감각기억에서 단기기억으로 넘어와 뇌의 특정 부위에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는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학습은 지각된 정보로 생성되는 일종의 전기적 자극에 의해 뇌세포가 반응하여 시냅스 회로가 만들어진 후 이것이 계속 강화되면서 장기기억으로 유지되는 복잡한 병렬적인 정보처리 과정임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기존에 단기기억이 단지 정보를 식별하여 저장하는 기능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오히려 정보를 연결하고 구성하는 처리 기능이 더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과 이를 전체적으로 관장하는 메타인지에 의해서 작동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보의 저장이 아니라 정보 처리가 중심이라는 의미에서 단기기억을 ‘작업기억’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우리도 앞으로는 단기기억 대신에 ‘작업기억’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개념의 연결망과 수학적 지식의 스키마 형상>

 

다시 말해 뇌 기반 학습과학이 말하는 학습이란, 감각기관의 자극을 통해 외부에서 감각기억으로 들어온 정보 중에 주의를 기울여 지각된 것을 ‘작업기억’에서 넘겨받아 부호화 과정을 거쳐 용량과 기한에 제한이 없는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과정이다. 또한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는 문제해결과 같은 필요에 의해 인출되어 ‘작업기억’에서 재구성됨으로써 더욱 공고화되고 확장된다. 뇌에서 학습이라는 인지과정은 작업기억에 의해 정보를 부호화해 저장하는 상향처리 과정과 기억을 인출해 정교화하는 하향처리 과정의 상호작용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인지과정이 ‘메타인지’에 의해 통제되고 조절된다는 데 있다.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는 깨우치는 앎을 추구한다 
공부란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얻어지는 배움의 과정과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의 작동에 의해 가치 있는 앎에 이르는 깨달음의 과정을 포괄한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가치 있는 앎은 지식의 획득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학습을 통해 획득되는 ‘지식(知識)’의 본질도 파헤쳐 보자. 지식의 ‘지(知)’는 눈에 보이는 사물과 귀에 들리는 소리를 감지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지각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판단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즉, 자극으로 들어온 정보를 감별하여 ‘기억하는 앎’이다. 이러한 앎은 인간뿐만 아니라 웬만한 동물도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반면 지식의 ‘식(識)’은 사물이나 현상의 감별을 통한 앎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뜻이나 원리를 파악해 내는 앎을 말한다. 즉, 입력된 정보를 생각하고 궁리하여 깊은 뜻을 알아내는 ‘깨우치는 앎’이다. 한마디로 지(知)가 뇌의 정보 저장이라는 기억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식(識)은 기억 영역뿐만 아니라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가치판단 영역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깨우치는 앎’은 현상의 보이지 않는 의미와 원리를 깨닫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인간 특유의 능력이다.
이런 면에서 지식(知識)의 본뜻은 인‘지’의 ‘知’와 인‘식’의 ‘識’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철학에서는 지식론을 ‘인식(認識)론’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이리하여 진정한 학습은 박제화된 지식을 기억하는 ‘知의 앎=기억하는 앎’이 아니라 살아있는 지식을 깨닫는 ‘識의 앎=깨우치는 앎’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깨우침의 앎은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의 능동적인 작동으로 더 가속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부를 잘하는 비결은 결국 메타인지에 있었다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가 학습과 어떤 관련이 있고 왜 그리 중요한 것인지 알아보자. 앞의 1장에서 모 고등학교 1학년의 전교 1등 학생과 중위권 학생이 같은 수학 문제를 푸는데 걸린 시간을 비교하면서 2분 23초와 13분 33초라는 11분의 차이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지식을 똑같이 갖추고 있음에도, 어떤 학생은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는데 다른 학생은 많은 시간과 해결의 어려움을 겪는 원인은 결국 무엇일까? 바로 자신이 가진 자원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느냐의 메타인지 능력의 차이에 있다. 실제로 국내외 다양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생들이 문제해결에 실패하는 원인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자원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메타인지가 수학공부에서 창의력 신장과 문제해결력 향상의 핵심 전략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최근 뇌과학의 발달로 더욱 명백히 증명되고 있다.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학교 성적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뇌가 전전두엽(앞이마엽) 피질의 두께와 부피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학교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전전두엽 피질 부위의 회백질이 더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뇌의 전전두엽은 주로 추상적인 추론을 한다든지 어떤 판단이나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계획을 세우거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동기부여나 주의집중 등을 관장한다. 이러한 뇌의 고차원적인 사고력과 창의력은 모두 메타인지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전전두엽이 발달되어 있고, 메타인지 능력이 높다는 것이다. 이 메타인지 능력은 개인별로 편차가 매우 크다고 한다. 게다가 흥미로운 것은 초등학교 수학영재 간에도 메타인지 능력에 개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 국내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한다고 할지라도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소위 문제풀이 기술의 습득이나 선행학습에 의한 효과에 의존하는 잘못된 영재교육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메타인지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는 다르게 IQ보다 성적을 더 잘 예측하는 변수라는 것이다. IQ가 성적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IQ는 성적을 25% 정도밖에 설명해 주지 못하는 반면, 메타인지는 성적의 40% 정도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또한 IQ와 메타인지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서 IQ는 선천적인 요인이 강해 훈련을 해도 나아지기 어렵지만, 메타인지는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메타인지 능력은 IQ와 같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훈련으로 공부 잘하는 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머리가 참 좋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기억력을 대변하는 IQ가 아니라 사고력의 지표인 ‘메타인지 능력’이 좋은 머리라는 것이다. 결국 메타인지가 공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셈이다.


메타인지적 지식은 성적 좋은 공부로 만든다.  
이제 본격적으로 메타인지의 실체에 바짝 다가가 보도록 하겠다. 지금부터는 공부 잘하는 뇌를 만드는 ‘메타인지 학습법’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공부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내외 메타인지에 대한 수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메타인지는 우리의 뇌에서 세 가지 측면으로 작동한다고 밝혀져 있다. 메타인지는 인지에 대한 지식과 인지에 대한 경험, 인지에 대한 조절 이렇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인지에 대한 지식’이란 학습자가 학습과 관련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메타인지적 지식’이라고 한다. 인지의 ‘지정의’ 중에 ‘지(知)’에 해당된다. 메타인지적 지식은 먼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리고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잘 구별할 줄 아는 ‘자신에 대한 지식’이 우선한다. 다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지거나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지식’이 있다. 인지과정에서 알게 되거나 획득된 과제에 대한 정보의 특성과 그 정보의 처리방법에 관한 것들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과제 해결을 위해 어떤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가를 판단하는 ‘전략에 대한 지식’이다. 이때 비로소 획득한 지식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인지 상태에 대한 파악, 과제의 내용에 대한 분석, 과제의 해결을 위한 전략은 순차적이 아니라 거의 순식간에 자동화되어 이루어진다. 
메타인지적 지식은 과제의 해결책을 찾아주므로 결국 성적을 올려주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 어떤 문제의 해결은 먼저 자신이 공부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아니면 착각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준비하고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문이 생긴다.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생각하는 게 그리 어려운가? 어린 아이들도 그 정도는 판단할 텐데? 그것 때문에 과연 청소년이나 어른들까지 성적이 좌우될까? 하지만 이 조차도 착각하게 만드는 뇌의 심오한 작용이 있다. 뇌는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본능적으로 안다고 착각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심리적으로 편안해지고 스트레스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뇌의 본성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잘하는 공부’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의 뇌는 끊임없이 안다고 착각하게 한다
사람이 동물보다 더 똑똑한 이유는 메타인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더 많이 안다고 해서 더 잘 아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더 잘 알게 된다는 뜻이다. 다른 동물들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거의 모른다. 컴퓨터와 로봇은 전혀 모른다. 모르는 건데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거기서 공부는 멈추게 된다. 그러면 성적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어? 내가 안다고 생각했는데 틀렸네. 모르고 있었구먼...’, 그래서 한 번 더 공부하면서 알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공부 전략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한 번 더 공부하고, 아는 것은 더 확고하게 하는 효율적인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만큼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아는 능력이 공부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배운 내용을 복습할 때, 눈으로 읽으면서 익히는 반복읽기와 셀프테스트를 하도록 하는 두 방법 중에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전자를 선호한다. 다시 읽으면서 복습하는 게 훨씬 효과적인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이렇게 생각하도록 뇌가 착각에 빠뜨린다. 왜냐하면 셀프테스트할 때 많이 틀리게 된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생기고, 그것 때문에 기피하고 싫어한다. 반면 그냥 읽어 나가면서 편하게 공부하면 쉽다. 그래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안 받고 쉽게 이해가 잘되는 것 같으니까 기분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긴다. 그래서 ‘나 이거 너무 잘하고 있어’라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그걸 계속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만만하게 만든다. 이것이 공부를 망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위권 학생일수록 자기 공부에 대한 착각이 많은 이유다.
반면 셀프테스트에서 틀려서 스트레스가 생기면 좌절감이 온다. 물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좌절감을 싫어한다. 좌절감이 생기면 기분도 안 좋아지고 학습동기도 떨어지고 더구나 잘못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사실은 잘 공부하고 있는 건데... 문제는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셀프테스트는 많은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 때부터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를 모르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때 종종 생기는 좌절감은 공부에서 필요악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안다고 착각하려고 하는 나의 뇌를 일깨우지 못하면 우리 뇌는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인 셈이다.


안다고 착각하는 뇌를 즉문즉답으로 일깨워라
메타인지 학습법에서 메타인지적 지식을 확보하기 위해 위에서 예로 든 셀프테스트와 같은 방법을 ‘자문자답(自問自答)’이라고 한다.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과 대화함을 이르는 말이다. 인지심리학에서 이와 같이 배운 것을 몇 분 동안 되새기면서 스스로 질문하는 것을 ‘반추(反芻, reflection)’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등하교시 길을 걸으면서 배운 내용을 떠올려 서로 연결 짓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깨달음이 반드시 온다. 어제와 오늘 수업 시간표를 떠올려 보면서 어제 배운 내용이랑 오늘 뭐 배울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억의 배 이상이 남게 된다. 기억을 꺼내려고 시도해서 성공하면 나중에 다시 기억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꺼내려는 노력을 한 것이니까 그냥 배운 내용을 또 읽는 것보다 훨씬 낫다. 기억의 되새김질인 반추는 그 자체로 유용하다.
하지만 초등학생 수준에서 자문자답 방식으로 스스로 공부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보통 인지발달 과정에서 초등학교 3∼4학년 정도가 돼야 공부라는 맥락 안에서 기본적인 메타인지 능력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등학생에게는 엄마나 교사의 발문을 기반으로 한 ‘즉문즉답(卽問卽答)’의 방법이 유용할 것이라고 본다. 즉문즉답은 소크라테스가 무지를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반어법과 산파술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문답법’(대화법이라고도 함)의 초보적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발문의 기술은 주로 반어법에 해당한다.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무지를 깨우치려 했던 문답의 내용과 형식을 빌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국가’, ‘법률’에 이르는 40여 편에 가까운 『대화편』을 저술해 자신의 사상을 후대에 함께 전했다. 위작 논란이 있어 정확한 편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직접 저술하여 남긴 책이 없다. 공자도 마찬가지다. 공자의 『논어』도 공자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스승과 대화하면서 깨우친 내용들을 저술한 것이다.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 말하는 반어법과 산파술은 무엇일까? ‘반어법’이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무의식적인 무지의 대상에게 모르는 것처럼 가장한 질문을 계속 함으로써 상대가 자신의 무지를 의식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리고 ‘산파술’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의식적 무지의 상태에서 질문을 계속함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 올바른 진리를 깨닫도록 이끄는 방법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상대가 지혜를 낳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어머니의 직업인 산파에 비유하여 산파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반어법과 산파술을 각각 별개가 아니라 반어법 가운데 이미 산파술을 적용하고 산파술을 쓰면서 또한 반어법을 이미 포함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무의식적 무지에서 의식적 무지로 이끈 다음 그로부터 참다운 진리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대화를 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특히 ‘생각공부’에서는 최고의 교육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발문식 즉문즉답의 메타인지 학습법으로 공부하면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5배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먼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을 반복하면서 관련 개념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더 많은 사고 노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이 모르거나 착각한 부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문자답도 똑같은 효과를 가져다준다. 마음속 자기와의 대화는 우리가 메타인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아이들에게 마음속으로 스스로 묻고 답하는 즉문즉답의 기술을 가능하면 일찍이 익히게 하는 것은 잘하는 공부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설명하기와 수학일기로 메타인지를 강화하라
즉문즉답을 통해 어느 정도 수학적 개념이나 원리가 이해된 상태에서는 ‘즉해즉설(卽解卽說)’, 즉 이해한 것을 바로 말하게 하는 방법이 매우 좋다. 아이들이 말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부터 생각을 읽어버리게 된다. 나의 말이 나의 생각인 것이다. 아이들은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정말 알고 있는지 모르는 지, 또는 잘못 알고 있는 지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공자가 “귀로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눈으로 본 것은 기억만 하게 되고, 손으로 직접 써 본 것은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 것처럼,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굳이 복습으로 문제풀이를 공책에 하라는 것보다는 그날 배운 것을 실생활에 적용한 수학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도 더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수학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바로 앎과 모름을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자 깨달음의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수학일기의 내용은 기상과 취침 시간, 공부와 놀이 시간, 용돈의 수입과 지출 같은 수학과 관련된 실생활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쓰게 하는 것이 보통의 일기와 다른 점이다. 이러한 수학일기 내용을 가지고 엄마가 아이에게 발문하고 아이가 스스로 문제까지 만들어 보도록 하면 그야 말로 금상첨화가 된다.
메타인지적 지식이 수학적인 문제해결에서 발휘하는 효과는 문제의 주어진 ‘조건, 목표, 방해 요인’을 명확하게 분석하여 전략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도 명백해 진다. 즉, 메타인지 기술을 사용함으로서 문제의 특성을 조건으로 이해하여 전략적으로 부호화하거나 시각적인 모델로 나타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계획과 전략을 선택하게 되며, 풀이를 방해하는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성공적인 해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메타인지는 문제의 요구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선택하거나 특정 전략을 광범위한 상황에 수정해 적응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때문에 수학교육자들은 문제해결의 과정에 메타인지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메타인지적 경험은 감정 실린 공부로 만든다
두 번째 ‘인지에 대한 경험’이란, 학습을 하는 도중에 발생하는 ‘감정(感情)’을 말하며, ‘지정의’ 중에 ‘정(情)’에 해당된다. 이를 ‘메타인지적 경험’이라고 한다. 메타인지적 경험의 감정은 신념과 태도, 동기, 인내, 자신감 등의 긍정적 면뿐만 아니라 불안, 압박, 싫음 등의 부정적 감성까지를 포함한다. 당연히 긍정적인 감정이 메타인지의 작동을 더욱 활성화하여 공부 잘하는 뇌를 만든다는 것은 자명할 것이다.
우리 뇌의 변연계에서 기억은 해마가 감정은 편도체가 담당하는데, 이 둘은 서로 밀접한 협조체제로 작동한다. 지각된 정보가 편도체를 거치면서 감정을 수반한 정보로 변해서 해마로 들어올 때 장기기억으로 오래 남게 된다는 것이다. 편도체를 거치지 않은 억지로 암기한 무미건조한 정보는 그 만큼 빠르게 망각한다는 것이다. 즉 ‘감정 실린 지식’이 기억으로 더 오래 남는다는 말이다. 지식은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감정은 지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렇게 메타인지적 경험은 기억의 작동을 활성화시켜 학습 효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행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메타인지적 경험은 과제 수행의 앞에서 뿐만 아니라 과제 수행 중과 과제를 끝마친 후에도 발생한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공부가 아니라 편안하고 즐거운 공부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몇 배의 학습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의 첫 구절이자 한문 시간에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배우면 기쁘다’는 말이다. 즉 공자는 ‘공부는 재미있어야 잘한다’고 말한 것이며, 좋은 감정이 공부하는 마음을 만든다는 말을 한 것일 게다. 재미가 공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이 되는 셈이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수학교육의 중요한 목표를 ‘인성’ 함양에 두고 있다고 했다. 인성은 인간의 사고, 태도, 행동의 기본 바탕이 된다. 교육에서 인성이 생략되면 ‘지(知)’는 가능하지만 ‘식(識)’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인성이 따르지 않는 ‘앎’과 ‘깨달음’은 박제된 지식이요 암기된 지혜일뿐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박제된 지식을 기억하는 앎에 매달리는 붕어빵식 학습은 ‘모방’을 뛰어넘을 수 없다. 
살아있는 지식을 깨달음의 앎으로 탐구하는 창의적인 학습은 메타인지적 경험을 통해 내적 동기와 즐거움, 올바른 신념과 태도 같은 인성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창조’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정(情)’이 바탕이 되는 ‘지(知)’가 ‘식(識)’으로 확대되며, 다시 ‘식(識)’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식(識)’을 열어 갈 때 ‘창의’가 움트고 ‘창조’가 꽃피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살아있는 앎과 깨달음’,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창의와 창조’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메타인지적 조절은 요령 있는 공부로 만든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인지에 대한 조절’이다. 이것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필요한 전략적 행동과 의사결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메타인지적 조절’이라고 한다. ‘지정의’ 중에 ‘의지(意)’에 해당된다. 메타인지적 조절은 자신의 인지 활동과 노력을 계획하고, 점검하고, 수정하는 관리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해결 과정의 관리적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계획하는 것, 문제 해결 과정을 점검하는 것, 문제 해결할 때 무엇을 할지 결정하여 그에 적절하게 시간을 배당하는 것 등이 있다.


메타인지적 조절에 대해서는 퇴계의 『성학십도』 마지막 열 번째 ‘제10 숙흥야매잠도(第十 夙興夜寐箴圖)’라는 공부에 대한 잠언을 들 수 있다. ‘숙흥야매’라는 말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夙興 ; 일찍 숙, 일어날 흥) 밤늦게 잔다(夜寐 ; 밤 야, 잠잘 매)는 뜻인데, 그만큼 시간을 아껴서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실천해야 할 공부에 대해 일곱 가지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숙오(夙寤 ; 일찍 잠에서 깨어남), 신흥(晨興; 새벽에 머리를 맑게 함), 독서(讀書;  글을 읽음), 응사(應事; 일에 대응하는 자세), 일건(日乾; 낮이 다할 때까지 부지런하게 노력함), 석척(夕惕; 저녁에도 항상 조심하고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음), 겸숙야(兼夙夜; 낮부터 밤까지 자신의 정신과 기를 가다듬음)가 그것이다.


나의 지식, 감정, 행동 순으로 생각을 생각하라
시중에 널려있는 공부법 책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바로 메타인지적 조절에 관한 내용이다. 무슨 비법인 양 ‘공부기술’이란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21일의 법칙’, ‘3-3-3 실천법’, ‘반복의 3원칙’, ‘완시스(완전학습 시스템)’ 등등 공부법이 마치 수학 공식처럼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공부기술 공식은 결국은 아이들에게 조금의 틈이나 여유도 용납하지 말고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관리하고 공부하라는 그야말로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문제해결 능력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순위는, 메타인지적 지식이 가장 크고 다음이 메타인지적 경험이며, 마지막으로 메타인지적 조절은 그리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일관된 결과이다. 즉, 문제해결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메타인지적 지식이라는 것이며, 메타인지적 경험은 그것을 돕는 촉매제의 기능을 하고, 메타인지적 조절은 오히려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행동의 변화라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작심삼일’을 생각하면 이해할만 하다.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지금까지 살펴본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에 연구 결과가 말해주는 명백한 진실은 무엇보다도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되는 자신의 ‘앎에 대한 되새김’이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뇌에서 작동하는 메타인지는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왜’라는 물음 없이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흔히 ‘아무 생각 없는 공부’, ‘그저 시키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공부’, ‘내가 생각할 필요 없이 엄마와 학원에서 알아서 해주는 공부’ ⋯ 등등이 모두 나 자신에 대한 ‘왜’라는 물음을 깡그리 지워버리는 공부들이다. ‘왜’라는 물음이 망각된 공부는 죽어라고 학습한 기억조차 망각시켜 버린다는 것이 뇌과학에서 말하는 진실이다. 진정한 공부란 자신의 내적 동기와 선한 감정이라는 촉매 작용에 의해 한층 더 풍부한 생각으로 확산해 나가는 학습이 될 때 비로소 ‘깨달음’의 창의와 창조의 열매로 결실 맺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을 알아야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난다
“너 자신을 알라.”
우리는 이 말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고 있다. 원래는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의 기둥에 새겨진 말로 탈레스가 쓴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된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라는 말이다. 즉,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때에만 참다운 지식의 획득은 가능하며, 또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메타인지의 관점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이미 2500년 전에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메타인지는 역사적으로도 철학과 공부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가장 경계한 무지는 자신은 알고 있다는 오만과 착각이다. 우리 아이들의 공부에서도 그렇다. 아이들은 무슨 나쁜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가 오만과 착각에 빠지면서 스스로 “나는 내가 안다는 것만 알고 있다”는 자기만족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했던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만을 안다”는 말처럼 자기 성찰, 즉 메타인지가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작동해야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이제 엄마가 아이의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알기에는 아직 버겁다. 따라서 엄마가 소크라테스가 되어서 아이에게 “너 자신을 알아라”고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