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만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무릇 강(講)을 해나가는 규칙은 매일 과정(課程)을 세워 요지를 이해하되, 1구절이면 1구절, 1편이면 1편을 착실하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연후에야 바야흐로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전하께서는 성학(聖學)에 뜻을 두고 자주 경연(經筵)을 여시지만, 끝내 강송(講誦)만 위주로 하여 다루는 양이 너무 많으십니다. 이렇게 되면 비록 기록하는 문자는 많더라도 몸을 돌이켜 실천하는 요체(反躬實踐之要)를 얻는 데에는 부족할 염려가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영조 4년 5월 2일)

영조는 붕당정치의 어려움 속에서 탕평책과 균역법을 추진한 개혁군주이다. 그리고 자신을 군주이자 스승, 즉 군사(君師, philosopher king)로 자리매김하면서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고, 스스로도 인용문에서처럼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러나 이날 경연에 참석한 우참찬 정제두(鄭齊斗, 1649~1736)는 영조의 공부 방식이 너무 조급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매일 많은 양을 읽고 외우지만, 그 내용을 심사숙고해서 자신의 몸에 익히는 데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정제두의 이러한 조언은 조선 시대에 지향했던 올바른 공부 방식을 염두에 둔 말이다.

《소학》을 기반으로 하여 몸을 닦고, 이어서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을 통해 이치를 깨닫는 일련의 순서는 주자가 제창한 이래 모든 학습자가 이정표로 삼아 왔다. 영조도 그 순서대로 공부를 하는 중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공부의 양이나 속도가 아니라 질과 방향이었다. 당시 영조의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도 과정(課程)이라고 하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그 의미는 크게 보아 오늘날과 다르지 않았다. 매일의 공부일정을 정하여 착실하게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일련의 계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그 의미는 오늘날과 조금 다르다.

조선 시대와 현대의 과정(課程)의 차이

우선 초등단계에서는 여러 가지 과목을 동시에 공부하지 않았다. 현대의 초등학교에서는 시간표에 따라 매일 여러 과목을 동시에 이수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심지어 교육과정, 즉 커리큘럼(curriculum)이라는 용어가 라틴어의 ‘currere(말이 경주한다)’에서 유래했다고 이해한다. 즉 교육과정이란 여러 말이 경주하면서 도달점에 도달하듯이, 여러 과목을 공부하면서 학습목표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매일의 과정을 어지럽게 하는 일일 뿐이다. 초등단계에서는 올바른 공부의 순서에 따라 한 단계씩 철저하게 익히는 일이 중요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매일의 공부 양이 학습자마다 달랐다. 《천자문》을 예로 든다면, 어떤 아이는 하루에 10자도 익히기 어려워하고 어떤 아이는 20자도 문제없이 익힌다고 할 때, 두 아이의 하루 공부 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천자문》에서 다음 교재인 《사략》이나 《소학》으로 넘어가는 시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현대처럼 미리 정해진 양을 주어진 시간에 공부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이 자연스럽지 않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매일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양을 공부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공부했는가’였다.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질이나 방향 문제와 관련이 있다. 공부의 질은 학습한 내용을 충분히 자신의 지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고, 공부의 방향은 학습에 대한 흥미를 배가하는 것을 말한다.

공부한 내용을 자신의 지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오늘 무슨 내용을 학습했는지, 그 내용이 자신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숙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유형원 같은 사람은 ‘아동의 능력이 100이라고 할 때 공부 양은 80정도만 부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머지 20은 아동 스스로가 생각할 여유를 갖는 데에 할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 또한 공부에 대한 흥미를 배가하는 것은 오늘 학습한 내용이 자신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었어야 가능하다. 오늘 학습한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또 자신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일 공부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할 수는 없다. 이점에서 보면 공부의 질과 공부의 방향은 두 가지 별개의 사안이 아닌 게 된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 과정의 의미는 세부적인 면에서 오늘날과 동일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긴 것이고, 현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조선 시대의 과정은 오늘날의 교육 개선에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학습 본래의 측면에서 본다면, 학습자의 능력에 따라 공부 양을 조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학습자 스스로 학습한 내용을 반추하여 자신의 지식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공부는 학습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조선 시대의 과정은 학습 본래의 측면을 강조한 일련의 학습계획 같은 것이 된다.

이에 비하여 현대에는 학교, 특히 근대식 학교의 효율성 측면에서 교육과정의 운영방식을 구안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과정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는 과정을 ‘학습자의 관점에서 보는가’ 아니면 ‘학교의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나타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을 인정할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가진 어떤 편견은 재고될 필요가 생긴다. 그 편견이란 과정의 의미나 성격이 원래부터 지금과 같았다고 단정하는 것을 말한다. 학습에서 과정이란 학습 목표를 제대로 성취하는데에 필요한 합리적 계획 같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그러한 합리적 계획으로서의 과정은 반드시 현재와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다.

만일 현대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벗어내고 과정을 과정 자체로서 접근하게 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정형화된 틀은 여러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현대 학교제도의 여건 속에서라도, 보다 학습 본래의 측면에 부합하는 과정을 구안하는 데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필자가 교육과정이라는 용어 대신에 그냥 과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에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이러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교육과정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그 용어 자체가 근대적 방식을 요약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논의하였듯이, 과정이라는 용어는 전통적으로 학습과정(學習課程)을 의미했다.

올바른 학습의 전체 이정표 같은 것은 있지만, 학습자가 이수하는 과정은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조선 시대의 과정이라는 용어는 학습자가 자신의 역량과 교과의 성격을 감안하여 스스로 구안하는 학습계획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더욱이 현대와 같은 교육과정의 강제성, 즉 특정 시간에 특정 과목을 특정한 양만큼 공부하도록 하는 제도적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에, 학습자의 자기조절능력, 시간관리능력은 오늘날보다도 더욱 요구되었다.

조선 시대의 모든 학습자가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자신의 학습과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 맞는 과정을 마련하고 그 과정에 따라 학습을 진행하려고 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조선 시대의 과정에 대한 이해 방식은 그저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될 수는 없다. 그 속에는 현대의 교육과정관이 제공할 수 없는 어떤 측면이 들어 있고, 그것은 오늘날의 교육을 이해하거나 개선하려고 할 때, 중요한 준거로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만일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목표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학습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면, 근대식 교육과정관 하에서 약화된 우리의 학습능력은 보다 향상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을 과정에 따라 디자인해 갈 수 있다면, 교육과 삶이 분리된 현재의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