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 해는 우리나라 수학 교육계가 그 어느 해보다 유독 떠들썩했습니다. 바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확정을 앞두고 ‘수학 학습량 경감’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했기 때문입니다. ‘수포자’가 무더기로 생기는 원인이 과도한 학습량과 어려운 내용 때문이라는 입장과,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 벌어진 뜨거운 논쟁이었습니다.

 

현행 교과서가 2017년에 초등학교 1∼2학년부터 또 바뀝니다. 교과서 개정이 너무 잦다보니 익숙해질만 하면 바꾼다는 불평이 끓이질 않지요. 우리 아이들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인데, 손바닥 뒤집듯이 이렇게 자주 바꾸니 당연한 반응일 겁니다. 물론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개혁이라면 미래를 준비하는 선택이기에 감수할 수밖에 없겠지만요.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수포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 차례 교육과정을 바꾸는 교육개혁을 시도해 왔습니다. 그때마다 치열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는데, 미국에서는 이를 가리켜 ‘수학전쟁’이라 부릅니다. 얼마나 뜨겁고 치열하기에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쓰는지 좀 의아하지만요. 하지만 사생결단을 방불케 하는 전쟁 같은 논쟁 과정을 거쳐 모든 국민이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교육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그들의 문화는 참으로 보기 좋아 보입니다.

 

미국은 ‘수포자’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2001년 부시 정부 때부터 ‘NCLB(No Child Left Behind ; 아동낙오방지법)’을 제정해 10여 년간 시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실패로 막을 내리자,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CCSS (Common Core State Standards ; 공통핵심학력기준)’이라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2010년에 발표해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변화는 그동안 10여 년을 넘게 미국 수능인 SAT에서 계산기 사용을 허용하던 것을 2016년부터는 제한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입니다.

 

미국의 ‘수학전쟁’과 ‘CCSS’는 우리나라 새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을 두고 벌인 논쟁에서도 화두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수학교육의 내용 수준을 높이고, 학습량도 늘리는 추세인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려 하느냐는 주장입니다.물론 이는 ‘CCSS’를 좀 곡해한 것이긴 하지만요.

 

“어느 나라에나 수포자는 있습니다. 이들에게 수학교육의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학습량을 줄이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집니다”고 걱정하거나 “사교육 과열을 해결하려면 학습량을 경감하고 내용 수준을 낮춰야 한다지만, 그렇다고 입시 경쟁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과 내용을 쉽게 하는 게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힘들어도 인내해야 한다. 수학은 어려운 것이니까 ….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수학은 어렵지 않습니다. 수학은 어렵게 가르치지 않아야 합니다. 초·중·고가 역점을 두어야할 것은 수학이 아닌, 수학교육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학자가 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학을 못하는 것이 어찌 아이들 책임입니까?”

 

학습량 경감을 주장하는 쪽의 반론입니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수학 자체가 아니라 ‘수학함(doing math)’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아니라 수학함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학교 수학에서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가장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수학적 ‘개념’이라는 것도 사실은 수학학(學)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 수학교육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특히, 초등수학에 대하여 영국의 유명한 수학 교육학자인 스켐프(Skemp)가 한 말에 귀 기울여 봅니다.

 

“다소 놀랄지 모르나 초등수학을 명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결국 많은 교사들조차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도 그 이유는 모르면서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초등이란 단어는 단순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초등수학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개념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입체적인 분석을 해야 본래의 의미와 배경을 살릴 수 있다”

 

‘  1%5Cdiv%20%5Cfrac%20%7B%201%20%7D%7B%202%20%7D%20 ’의 분수셈은 뒤집어서 곱해서 ‘ 2 ’라고 쉽게 답하지만, 그림으로 나타내는 건 배운 적이 없어 못하겠다고 한다면, 이것이 올바른 수학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는 ‘완성된’ 수학적 지식과 기능을 머릿속에 주입하는 교육이 낳은 결과일 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수학교육이라 그동안 믿어왔던 것이죠.

 

진정한 ‘수학함’과 수학교육은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생각거리’를 제공하여 스스로 원리와 방법을 깨우쳐 가는 ‘점진적인 수학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이러한 수학교육은 모든 선진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대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수학교육이 그렇지 못해 ‘수포자’를 대량 양산했다면, 기존에 가르치고 배웠던 내용과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물론 배워야할 내용이 너무 많고 어려워서 그렇게 ‘수학함’이 불가능했다면, 학습량을 줄이고 내용 수준을 낮추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 부분은 다행히 진지한 논쟁의 결과로 다음 새 교과서에서는 어느 정도 해소될 듯합니다. 물론 가장 큰 쟁점이었던 고등학교 이과 수학에 ‘미적분Ⅱ’를 그대로 남겨두기로 한 결정에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