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남 영훈중 교장

1.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

우리나라의 교육은 해방 후부터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의 이러한 눈부신 기여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는 대응을 함으로써 항상 개혁과 혁신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산업화 시대가 저물어 가고, 과히 지식 정보화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글로벌 지식 정보화 시대로 활발히 진입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이러한 인재를 과연 제대로 길러내고 있는가 하는 점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창의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대부분 동의하지만, 교육시스템과 교육정책들은 창의성 신장을 위한 자율화, 개방화와는 거리가 먼 채 유지 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인재를 길러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수월성 교육에 대한 편견으로 소홀히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무엇보다도 사는 곳은 달라도 배우는 것은 같아야 한다는 평준화 논리에 대중적 호응이 함께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별 능력과 적성에 따른 학습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개개인의 존재와 생활을 위한 학습권이 침해당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최근에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지식교육 위주의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인성과 공공의식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등한시됨에 따라 개인의 자의식과 지속가능한 공동체 발전을 위한 교육적 소임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운 실정이다.

2.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심각성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변하지 못해서 점점 커진 것이다. 세계는 변하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아직도 과거의 가치와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면 과언일까?

혹시, 세계의 변화에 발맞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포장만 바뀌고 내용은 그대로인 개혁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해방 후 지금까지 교육에서의 기득권이 약화되기는커녕 더 강화되는 정책들이 이어져 와서 그럴까? 아무튼 여러 가지 고민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1)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의 통제문화

세계는 창의성 교육을 위해 자율화 개방화된 교육정책을 지향하는데, 우리나라는 교육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의 획일적 통제와 폐쇄적 문화가 아직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의 교육정책은 폐기하고 새로운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이 이미 관례화되어있다. 시대적 요구나 철학적 가치, 교육적 효과는 정치적으로 포장되어 구호화 되고 오직 정권의 치적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 집행되고 평가한다.

최근 들어 지방 교육감들이 직선제로 선출됨에 따라 지방교육은 더욱더 정치화되고 있다. 교육감들의 정치적・이념적 편향에 따라 편 가르기식 교육정책이 추진되고, 단기적 성과와 포퓰리즘 성 격을 지닌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두가 대한민국의 교육인데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의 교육이 다른 것처럼 각종 정책들이 대립하고 주장된다. 당연히 이런 현실은 지식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는 자율화와 개방화 정책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새 단위학교의 자율화, 교육시장의 개방화는 사장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인 학생들의 역량을 키우는 일과 백년지대계인 교육의 장기적 목표를 실현하는 일은 등한시하게 되었다. 오로지 교육에 대한 획일적 통제와 지방교육의 폐쇄적 문화만이 지켜야 할 가치이자 목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 교육 평준화 정책의 한계

세계는 각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우수인재 양성에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특혜니 특권교육이니 하면서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교육 평준화 정책이 유지되면서 중・고등학교 및 대학 교육의 대중화와 진학률이 대폭 증대되었다.

이는 해방 후 급격한 산업화를 추구하면서 인적자원 수요에 부응하는 필연적인 정책이었다. 표준화 · 분업화된 생산체제로 소품종 대량생산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산업사회의 특성에 따라 교육도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단일화된 교육체제로 높은 진학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정책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기산업사회를 지나 지식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더이상 산업 사회적 교육시스템 속에 공 장식 교육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 것이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에 발표된 ‘5・31 교육개혁’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기본 방향을 자율과 경쟁, 창의, 다양화로 제시하였고, 지난 20여 년간 여러 정부에서 일부 수정을 거쳤으나 그 방향과 틀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상위 1% 혹은 0.1%의 우수한 인재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면서 바람직한 방향설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이론을 교육에 도입하고,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를 실현함으로써 공교육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한편으로 교육 평등주의 정책을 주장하는 빌미가 되었다.

일각에서 영재교육(수학, 과학, 예체능 등) 축소,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 국제중학교 설립 반대, 보편적 교육 복지 구현, 나아가 대학 평준화까지 주장하는 것이 그렇고, 실제로 이런 주장들이 일부 세력을 형성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적극 지원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교육의 이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더 커진다. 개인의 소질과 적성 그리고 발전 가능성에 따라 선택적으로 집중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교육적 책임에 더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무난하고 평균적인 인재를 교육하는 데만 중시하다 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과 역량이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하고 양성할 기회를 놓칠 우려가 있고, 이것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인류에게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고교평준화 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저마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한 교실에 모여 똑같은 학습을 하고,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받도록 강제하는 것이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평준화 교육이 가져오는 사회적 통합 기능, 평등교육 실현, 학교등급제 폐해 차단 등 설령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할지라도, 평준화 교육에 적합한 학습능력을 지닌 일부 학생들에게만 유리한 제도라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제대로 공평한 교육이 이뤄지려면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인별 능력과 적성에 따른 학습의 기회를 확보하고, 개개인의 존재와 생활을 위한 학습권이 존중받아야만 미래 세대의 성장과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

3) 표준화된 교육과정의 모순

또한, 세계는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위해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것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 한 가지로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수준과 속도로 학습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일이다.

사람의 학습역량은 개개인이 모두 다르고, 적성과 특기도 개개인이 다르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표준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그것이 더 효휼적이고 경제적이며,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적자원 양성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회적 기회와 공평성을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똑같은 상품을 동일 한 형태로 생산한다. 동일하지 않은 물건은 버려지거나 재가공된다. 이에 따른 교육시스템도 학생들을 특정한 제도와 틀에 맞춰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획일적인 원칙을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표준화된 교육과정, 표준화된 지도법, 일률적인 평가 등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지식 정보화 시대의 교육은 완전히 다르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물건을 잘 만드는 것보다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더 큰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있다.

구글은 공장도 없이 지식을 팔아 성공했고, 차량 공유업체 우버는 택시를 한 대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전 세계 택시 회사를 위협한다. 모두 지식정보화 사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지식 정보화 사회는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자신의 개성과 흥미에 따라, 학습능력의 차이에 따라 교육과정을 선택하고 이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지,덕,체 등이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지식 정보화 시대에서의 교육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빨리 학습하는가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무엇을 학습하였느냐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3. 우리나라 교육의 혁명적인 변화의 방향

교육이 만능은 아니지만, 교육을 통해 개인적 목표를 추구하고, 사회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으며, 공공의식과 자의식이 갖춰진 성숙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기에 학부모와 국가는 교육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학생들은 교육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실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실망과 문제들로 기대보다는 걱정거리로 전락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스럽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교육이 이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혁명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켄 로빈슨의 의견을 빌어 제시하고자 한다. 1)

1) Ken Robinson(2015), Creative Schools, 정미나 역,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혁명, 21세기북스, 2015. pp. 91-101. 내용 참조.

1) 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세계에도 관심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누구나 두 개의 세계에 산다. 하나는 자신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 말하자면 사물, 사건, 다른 사람들로 이뤄진 자신의 주변 세계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세계이다.

자신의 생각, 감정, 지각, 자 의식의 사적인 세계 즉 내면세계이다. 인간은 언제나 이 두 세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전통적인 지식 위주 교육 과정에서는 초점을 거의 우리 주변세계에다 맞추고 개인의 내면세계는 경시되었다.

그로 인해 인간적인 문제들 에 대한 인간적인 대응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 개개인의 정신과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줘야 한다. 교육이 환경과 사회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독자적인 생명체로서 불안, 두려움, 열망, 희망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자의식과 인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별 맞춤형 교육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2) 학생들이 온정적이며 능동적인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는 시민의식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학문적 수업으로 시민의식을 가르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학교가 일상에서 능동적인 시민의식을 실천하는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내에 서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한 학습과 실천이 이뤄진다면 사회에 진출한 후 성숙한 시민으로 생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 공공가치에 대한 신념, 자유와 책임에 대한 투철한 의식 등은 사회유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요소들이다.

아울러 정보의 공개와 공유, 적극적인 참여와 책임 등 실질적 민주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한 교육과 실천이 가능할 수 있도록 교육이 역할을 해야 한다.

3)  학생들이 경제적 책임감이 있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와 사회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경제적 번영을 위해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들도 교육을 통해 직업을 얻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지식 정보화 시대는 직업의 세계가 극심하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현행 교육제도가 설계의 초점으로 삼았던 직업 가운데 상당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한편 새로운 일자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과 인터넷의 혁명적 영향으로 5년 혹은 10년 후의 직업에 대한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현실은 학교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취업으로 이어지거나 전문적 역량을 갖춘 사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육이 경제적 목적을 제 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재능과 관심사를 아주 다양하게 길러줘야 한다.

교육에서 학업과 직업훈련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두 분야를 똑같이 중요시해야 한다. 교육과정을 통해 직업능력을 직접적으로 길러주기보다는 직업에 대한 인식과 탐색의 영역을 넓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학생들이 여러 종류의 직업 환경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직업 세계와 파트너십을 실용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4) 학생들이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다른 문화를 존중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접촉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행동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인간들의 공동체는 예외 없이 공통의 관습과 가치관 즉 문화를 지니고 발전시켜왔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들에게 이런 문화를 유지 · 계승하며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육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화들은 서로 얽히며 교류하면서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은 인간을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기여한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문화를 이해시키고 나아가 다른 문화를 이해시킴으로써 문화적 관용과 공존에 대한 인식을 장려해야 한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종교, 인종, 민족, 세대, 성별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며 수용하는 것을 단순히 윤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실용적인 책무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