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의 의미와 위상 탐색

사교육비 문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고 고질적인 문제다. 교육의 경쟁이 강화될수록 사교육에 대한 수요도 커지게 마련이다. 현재 우리 교육은 사교육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져 공교육의 보완재가 아니라 공교육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에듀인뉴스가 사교육 현황과 실태를 진단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이혜영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초·중등학생의 대부분은 사교육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 통계청과 교육부가 실시하고 있는 <사교육비 및 사교육 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2014년 기준 초·중등학생의 약 70.6%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들이 사교육을 위해 지출한 비용은 약 18조 2천억 원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교육비 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사교육비가 정점을 찍었던 2009년에는 그 규모가 약 22조에 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사교육은 이제 공교육의 ‘보완재’나 ‘잔여’로서 공교육의 영향 과 규제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교육에 영향을 주거나 규제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사교육 참여 동기, 사교육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사교육의 의미와 위상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왜 사교육을 받는가?

통계청과 교육부가 실시하고 있는 <사교육비 및 사교육 의식 조사>결과를 보면 사교육 참여 결정 주체인 초․중 등학생의 학부모들은 사교육 증가 원인이 학교 교육보다는 우리나라의 사 회․문화적 풍토와 입시제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2011년 이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급을 막론하고 사교육 증가 원인을 ‘대학 서열화 구조’, ‘취업 등에 있어 출신 대학의 중요성’, ‘특목고, 대학 등 주요 입시에서 점수 위주 학생 선발’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학교 교육 측면의 요인은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만으로는 예체능 등 자녀의 특기 적성을 제대로 키워주지 않아서’를 다소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한 것 이외에는 사교육 증가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정도가 크지 않았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에 비추어 보면 교육 수요자들이 사교육에 참여하게 되는 주된 동기는 학교 교육의 질보다는 학력주의 사회 풍토와 대학 서열화, 입시제도 등 교육 경쟁 구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학교 교육이 채워줄 수 없는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것 보다는 학력주의 사회의 교육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욕구가 사교육을 받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 하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은 어떻게 진화해 왔나?

한국에서 사교육의 연원은 근대 학교제도가 도입되고 학력주의의 토대가 형성된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식민 지배 체제가 굳어져 가는 1930년대에는 학교의 수준과 유형에 따라 취업 기회와 임금이 결정되는 학력주의 관행이 깊이 뿌리를 내림에 따라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해 학교 교육을 받으려는 학력주의적 가치관과 행위가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어 가는 한편, 한국인에게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학교에 취학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입학 경쟁이 심화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상급학교 입학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과외수업이 성행하여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입시 경쟁과 이에 따른 과외수업의 성행은 광복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950년대 초등학교 취학 기회 확대로 인해 중학교 입시 경쟁이 계속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학생의 입시 부담과 학부모의 과외비 부담이 가중되었다. 이와 같은 입시 경쟁의 폐단을 해소 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이다.

1968년 7월 15일 교육부 장관은 중학교 입시 지옥으로 인한 과외수업의 폐단을 근절하고 학부형의 사교육비 부담 과중 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중학교 입학시험 제도를 전폐하고 학군별 추 첨제를 실시하여 무시험으로 중학교 입학을 시키겠다는 입시개혁안을 발표 하였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시행하게 된 배경 역시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와 별로 다르지 않다. 1973년 2월 28일 이 정책을 발표할 때 교육부가 고등학교 입시 제도를 개선해야 할 이유로 제 시한 것 중에 교육외적 교육비 부담,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 풍조, 학관의 발효 등이 들어있는데, 이는 과외 문제가 심각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획기적인 입시제도 개혁에도 불구하고 과외 열기는 지속되어 교육 당국은 과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부심하게 된다.

1970년대에 교육계에서 과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논의된 방안이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허용하여 과외에 대한 수요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과외를 현실로 인정하고 학교에서도 보충수업을 허용하자는 입장은 1970년대를 거치며 확산되어 갔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정부는 1979년 ‘과외 양성화’ 방침을 밝히고 중․고 재학생의 사설 학원 수강 허용, 사설 학원 증설 등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하였다. 

과외 양성화 논의와 조치는 1980년 7.30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과외 전면 금지 정책이 시행되면서 물 밑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정부는 과외가 정상적 교육이 아닌 추방되어야 할 행태이므 로 이를 허용하지 아니할 것이며, 위반 행위에 대해 철저한 단속이 이루어질 것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강력한 과외 금지 정책도 1980년대 중반부터 실효성이 떨어지고 잠재되어 있 던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다시 표출되 면서 이 정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1990년대 초반에 학원 수강을 허용하는 방안이 부각되었다.

학원 수강은 당시에 사회적인 지탄 대상이 된 비밀 고액 과외에 비해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법률 등의 수단으로 통제 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000년 4월 ‘과외에 관한 포괄적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지면서 사교육의 주종을 이루는 학원에 대한 법적 통제가 약화되어 사교육은 더욱 성행하게 되고 사교육비 규모도 엄청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교육에 대한 수요 감소와 사교육비 경감이 중요한 교육정책 목표로 떠오르고,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공교육 내실화’가 부상하게 되었다.

학교가 국민들의 교육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것 이므로 공교육을 내실화하여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충족시키고 사교육비도 경감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 아래 추진되고 있는 대표적인 정책이 ‘방과 후 학교’라고 볼 수 있다. 방과 후 학교는 이전의 특기 적성 교육, 수준별 보충학습, 방과 후 교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모든 방과 후 프로그램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운영체제를 갖추고 있다.   

사교육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

이상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의 사교육은 근대학교 교육과 그 역사를 함께 해왔으며, 공교육의 이면을 이루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 왔다.

사회적 지위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선망’의 대상인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욕구로 인해 사교육이 성행하고 이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 입시 제도를 개혁 하고 다양한 교육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사교육 수요를 줄이고 사교육 비를 줄이기 위한 일부 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교육의 기세가 약해지지 않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에서 살펴본 중등학교 입시제도뿐 아니라 대학교 입시제도 개편에서도 사교육 수요 감소와 사교육비 경감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새로 운 입시제도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사교육이 창출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시험을 도입하면 논술에 대비하는 사교육이, 고등학교 내신 성적의 비중이 높아 지면 내신 성적을 올리는데 유리한 사교육이 번창하는 식이다.

더구나 명망이 높은 대학 입학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사교육 경쟁은 고등학교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대학에 입학하는데 유리한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수준의 사교육 경쟁이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에서 살펴본 초․중등학교 학부모의 사교육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한국사회에서 사교육이 성행하는 이유는 사회적 기회 획득에서 학력, 학벌이 중시되고 사회적 명망에 따른 대학 간 서열이 뚜렷하여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공교육이 내실화된다해도 학력주의 사회 풍토와 이 속에서 형 성된 교육 경쟁 구조가 존속하는 한 사교육이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