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지난 2016년 12월 9일, 교육부는 대학의 학사제도를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취업 장벽을 허무는 규제의 완화를 위한 정책 구상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개별 대학에 융합(공유) 전공의 개설과 선택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학기제를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하며, 집중이수제와 이동식 수업을 가능하게 하고, 프랜차이즈 방식의 외국 진출의 길도 열어두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구상은 비록 대학 교육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동안의 다소 경직된 폐쇄주의에 묶여 있던 체제를 ‘안으로, 그리고 밖으로’ 열어가기 위한 ‘신호탄’으로 들리기도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새로운 변화의 출발로 기대되는 바도 적지 않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은, ‘열린 교육체제’의 구상은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이미 문민정부의 시기인 1995년에 소위 ‘5·31 교육개혁 방안’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을 천명함과 함께 열린 학습사회의 구축을 구상하고 진행해 오던 실천과제에 속한다.

당시로써는 다소 막연한 발상의 수준에 있었지만 교육제도의 유연성을 지닌 개방적 구조를 제시한 바가 있다.

당시의 교육개혁위원회가 보고한 자료,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에서 기술된 바에 의하면, 열린교육체제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개방된 기회의 체제를 의미하며, 모든 국민이 자아실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복지국가(Edutopia)’의 건설을 지향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열린 교육체제에서의 ‘열림’은 두 가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는 ‘학교 안에서의 열림’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학교 밖으로의 열림’을 의미한다.

우선 학교 안에서의 열림은 지금까지 학교제도의 경직된 운영으로 인하여 극히 제한되어 있는 교육 기회의 선택폭을 확대하고,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기하며,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선 ‘열린 교실’의 운동을 실천해 온 교사들이 종래의 일제식 수업과 암기식 학습을 탈피하기 위하여 개발한 유연하고 다양한 교실 운영의 방식을 비롯하여, 최근에 성행하고 있는 체험학습, 방과 후 학교, 자율학기제 등과 같은 학습경험의 다변화를 기하려는 시도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학교 밖으로의 열림은 교육의 기회가 학교 교육이라는 한정된, 형식적 제도 속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평생교육의 이념,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교육’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학습사회의 제도적 기반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더욱 자세히는 여섯 가지의 열림의 과제가 언급되어 있다. 첫째, 교육 시기의 열림으로서 평생을 통하여 원할 때는 언제든지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열린 교육체제에서는 어느 수준의 학교 교육, 예컨대 고등학교나 대학을 입학함으로써 교육이 시작되고 졸업했다고 해서 한 개인의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인간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성장의 과제가 남아 있고 그만큼 교육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평생 교육과 취학 전 교육을 위한 기관과 기회, 그리고 프로그램이 나라의 어디에서나 활발하게 진행되어 온 것은 괄목할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교육장소의 열림으로써 첨단 전자정보기술의 교육적 활용이 극대화되어 교육에의 통로가 어디서나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1900년대에는 원격교육의 수준에서 언급하던 변화의 전망이었으나, 우리는 지금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에 살고 있다.

정보와 지식과 기술의 획득을 의미하는 학습은 제도적으로 고정된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교실, 교과서, 약간의 시청각적 기재에 의존하던 과거의 학습 여건을 넘어서 사이버 학교, 스마트 교육, 그리고 수없이 많은 종류의 각종 매체가 우리의 학습 생활을 바꾸어 놓고 있으며, 계 속적인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 

셋째, 교육기관 간의 열림으로써 학교와 학교, 학교와 사회교육 기관 간의 통로가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학교 간의 이동, 학습장의 공유, 전공과정 간의 협력 등이 용이한 체제가 구축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부문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넷째, 대학 교육의 열림으로써 학과의 벽을 낮추는, 예컨대 최소전공인정 학점제의 도입으로 다전공과 복합학문의 통로가 열려 있고, 시간제 학생, 대학 편입학의 자유로운 허용으로 학교의 문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대학들은 그동안 강도 높은 정부주도형 평가체제의 운영으로 상당한 정도의 질적 개선을 위한 긴장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 간 교류의 개방성, 대학과 산업체,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협력 체제는 크게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번 학사제도의 개편을 위한 계획이 얼마나 실질적인 성과와 결실을 가져올 것인가는 지켜볼만하다. 다섯째, 중등교육의 열림으로써 일반계, 실업계의 전학이 쉬워지고, 교육과정이 다양화, 특성화되어 교육 프로그램이 학습자에게 다양하게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이 부문에서는 특목고, 특성화고, 자사고, 마이스터고 등 다양한 학교가 출현하여 선택의 폭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나, 학생들이 학교 간에 이동할 수 있는 제도와 기회는 아직 크게 제한되어 있다. 

여섯째,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으로서 장애인, 도서 벽지 및 농어촌 학생을 포함하여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열린 교육 체제를 의미한다. 이 부문에서 아직은 만족할 수준의 실질적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 이외에도 열린 교육체제의 구축과 관련된 변화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실제로 초·중등교육의 수준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를 두어 외로운 섬처럼 존재하던 학교를 지역사회의 관심 속에 두게 하고,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채택하여 대학의 설립과 운영의 기회를 개방하고, 평생교육의 체제를 새롭게 구축하는 계획 등을 추진해 왔다.

문민정부의 출범 이래 가장 포괄적인 개혁을 시도한 ‘5·31교육개혁방안’의 진행 과정에서 그런대로 많은 성과를 거두어 온 것은 사실이다.

1995년 이전의 교육과 그 이후의 교육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삶의 여건과 환경에서 보면 교육개혁방안이 실천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교육이 그만큼 바람직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새로운 개혁의 과제가 삶의 여건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계속적으로 닥쳐오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과제를 심도있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취학 전 혹은 초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기관의 기능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가 있다.

우리의 초등학교는 전통적인 교육기관, 즉 글을 익히고 국민으로서의 초보적인 규범을 배우며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획득하고 취미를 개발하는 장소로 운영되고 있다. 유치원도 취학 전 교육기관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인식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돌봄’의 역할을 좀 더 폭넓게 감당해야 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가족의 구조와 기능이 바뀌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학교의 개념, 즉 지식의 교육에 관련된 자격증을 소유한 교사들만이 전담하는 학습의 장이라는 관념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본 학제, 6-3-3-4 제도의 경직성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여건에 따라서, 수요자 혹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서, 또는 국가적 목적에 따라서 학제는 다 원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성장 세대의 모든 국민은 똑같은 자질과 잠재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성장을 위한 욕구의 수준도 동일하지 않고, 지적, 사회적, 정 서적, 신체적 성장의 속도도 동일하지 않다.

학년제를 동년배 집단을 중심으로 설정하는 것보다는 영역별 성장의 특징에 따라서 유연하게 편성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분야의 영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전략을 위해서도 그렇고, 특정한 측면의 부적응아나 지진아를 적절하게 보호하고 보살피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셋째, 평생교육의 실현을 위하여 대학의 과감한 개방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평생교육의 개념은 특정한 기관이 전담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새로운 성장을 시도하는 학습자가 필요에 따라서 접근할 수 있는 교육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필요에 따라 ‘계속 학습(reschooling)’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기간학제의 교육기관이라도 제도적 개방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식기반사회는 교육을 통하여 일구어가는 사회를 의미한다. 체계적인 지식의 담당자인 학교라는 제도는 지식을 획득하고, 이해하고, 선택하고, 교환하고, 비판하고, 조직하고, 가공하고, 사용하는 기술과 능력, 그리고 관련된 윤리적 규칙을 익히는 곳이다. 필요로 하는 학습자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개방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