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의 교육체제, 그 변화를 모색한다 ④

국가의 교육목표를 실현하려는 제도적 장치이자 교육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학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정치권을 중심으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학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학제가 무엇인지, 바람직한 학제개편은 어떤 방향에서 논의되어야 하는지 등에 관해 에듀인뉴스가 연속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학제개편 담론 형성에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편집자 주> 

김경애 한국교육개발원 자유학기제지원특임센터 소장

학기제 전환을 둘러싼 쟁점

우리나라 학기제를 간단히 살펴보면, 일제 치하에서는 새 학기를 4월에 시작하는 3학기제로 운영하다가 광복 이후 미 군정 시대에는 9월에 시작하는 2학기 제로 바꾸었다.

그러다 다시 61년 국가재건 최고회의의 결정에 따라 3월 신학기제를 시행한 이후 54년간 이를 유지해 왔다. 이후 정책과 여론의 관심이 바탕이 되어 몇 차례에 걸쳐 9월 신학기제 시행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정부에서는 1997년 제4차 교육개혁 안에서, 2006년에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에서, 그리고 2015년 ‘2015년 경제정책 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가을 신학기제 도입에 대해서 제안 및 논의한 바 있다. 이때마다 여론에서는 찬반 논쟁이 불거졌다.

하지만 결국에는 당장 시행하기에는 효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는 공론에 의해서 장기적 검토 과제로 남겨둔 채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학기제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 제기가 촉발된 이유와 무관하게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혹은 교육 부문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9월 신학기제가 3월 신학기제보다 유리한 점이 없다면 여기에서 논의를 종료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만일 9월 신학기제가 3월 신학기제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되면 현행 3월 신학기제를 9월 신학기제로 변경할 때 수반될 수 있는 문제를 가늠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실제 9월 신학기제로 전환해서 얻는 이익보다 전환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손실이 크다면 이 문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데 전환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손실을 줄일 수 있어서 그것이 전환의 유익에 견주어 감당할 만하다고 판단되면 최선의 전환 방식을 찾아 전환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정책 환경의 변화와 미래 대응

9월 신학기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현재의 3월 신학기제와 9월 신학기제의 장단점에 대해 논란이 있어 왔다.

먼저 3월 신학기제의 장점으로는 정부와 교육 회계연도 일치로 행정적 편의성이 있다는 점, 학생들이 새해와 봄을 맞이하면서 새 학년이 되어 1년 주기의 생체 리듬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이미 교육계와 사회의 모든 시계가 봄 신학기에 맞춰져 왔다는 점이 제시된다.

9월 신학기제의 장점으로는 학제의 국제통용성 제고로 인적 자원의 국내외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 학사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 긴 여름방학을 통해 학생들이 폭넓은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점, 조기 취업을 통한 산업인력 추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꼽힌다.

그런데 학기제 변화 필요성이 제시되고 논의되었던 시점마다 정책 환경과 사회 상황은 달랐다. 교육 부문의 정책을 결정할 때는 이전과 달라진 환경, 그리고 앞으로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미래 환경 변화 속에서 교육의 비전을 찾아 그 안에 관련 정책을 위치, 지워야 한다. 우선 이전에 학기제 변경을 논의했을 때와 현재 시점에서 달라진 상황으로는 학생 성숙도 향상, 학생 수 감소, 글로벌화의 진척, 기후 변화,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 변화 등이 있다.

첫째, 학생의 성숙도가 지속적으로 향상되어 현재는 과거보다 학생들의 신체적·정서적 발달이 빨라졌다(중앙일보, 2015년 1월 9일 자).

이미 6학년이면 사춘기가 시작되기에 이들이 현재보다 6개월 빨리 중학교급에 진학하여 중학생으로서 인정받고 교육을 받는 것이 발달단계에 더 적합할 수 있다. 둘째, 출산율 저하로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 9월 신학기제 도입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던 1995년 취학생 수가 연간 약 65만 명 이었는데 2010년 이후로는 연간 45만 명 정도이다. 그만큼 학기제 변경에 따라 일정 기간 학생 수 과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이전보다 줄어들 것이다.

또한 2017년부터는 우리나라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게 되는데 입직 연령이 6개월 빨라지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셋째, 세계화가 진척되고 있으며 점점 더 사회 시스템 전반에 있어서 국제 통용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에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삶을 고려하고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는 추세에서 자녀의 교육과 관련된 장애 하나가 제거되는 것은 국민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길이 된다.

또한 앞으로 생산가능 인구 감소에 대비해서 이민 정책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세계일보, 2014년 12월 23일 자; 조선비즈, 2014년 12월 22일 자) 학제의 일치화는 이민에서의 편익을 확대해 주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넷째, 기후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이후 학교에서 겨울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면 현재는 여름 냉방비가 더 부담되는 상황이다(한겨레, 2014년 12월 22일 자).

물론 이전보다 국력이 커진 상황에서 단순히 냉난방비 부담 정도가 학기제 선택의 중요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여름이 학교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 점점 더 어려운 기후조건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의 변화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삶의 풍경과 교육 시계는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가족이 일 년 중 활동하기 좋은 여름에 장시간 혹은 장기간 여행을 가거나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루고자 한다면 9월 신학기제가 이와 어울린다.

한국의 공식적인 1인당 국민소득은 새로운 국민계정 편제를 기준으로 2015년 현재 약 2만 8천 달러이지만 2021년에 4만 달러, 2024년에는 5만 달러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견된다(현 대경제연구원, 2015: 2).

이렇게 될 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재와는 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즉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삶의 양식을 현재와 다르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며 부수적으로 긴 여름방학 동안 가족 활동을 장려하면 저성장 시대의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질문하며

이상 3월 신학기제와 9월 신학기제의 장단점을 간단히 살펴보고 학기제 변화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갈 미래를 지향하면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크고 작은 질문들은 남아 있다. 첫째, 9월 신학기제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교육 문제가 무엇이며 실제로 얼마나 해결 가능한지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교육이 9월 신학기제를 통해서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9월 신학기제로 바꾸면 2월의 수업 파행 현상이 사라질 수 있는가?

학생 성숙도가 과거에 비해 빨라져서 생긴 학교급과 학생 간의 불일치 문제를 6개월 단축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전반적인 학제 개편이 필요한 것인가?

둘째, 긴 여름방학이 과연 학생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여름방학이 길어지면 그야말로 자연 친화적인 현장체험, 다양한 문화 경험, 봉사 등의 활동을 진작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사교육이 더 극심하게 될까?

긴 방학으로 인해서 학년 간 교육의 연계성이 약화되고 불리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미국 교육계의 우려(한국 경제, 2015년 1월 2일 자)가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가?

셋째, 국제통용성이 국제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지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국제통용성을 높이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외국 유학생들이 유입될 것인가? 아니면 국내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 가는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인가?

학생 수 감소에 대비해 유학생 유입이 시급한 부문이 대학이라고 한다면 대학은 현재 학기제의 국제통용성 부족으로 인해서 유학생을 원활히 유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대학은 학년과 학기가 유동적이기 때문에 전 교육 시스템의 변화 없이도 자체 노력만으로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봄 신학기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이나 호주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우수한 고등교육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때 과연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이 학기제로 인해서 발목 잡히고 있는 것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한국 경제, 2015년 1월 2일 자)도 겸허히 생각해 볼 문제다.

넷째, 교육 부문의 이해관계자 간 이 문제를 직면한 부담이 다르고 이에 따라 입장 차이가 존재할텐데 이를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질문이 제기된다. 학교급 간, 학부모나 교원, 그리고 행정가 사이에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특히 초중등학교와 대학교 간의 입장 차이는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각기 입장에서 어떤 이익과 불이익을 예상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신학기제 변경이 대한민국 교육계의 시스템 전반을 개혁하는 문제이자 국민 전체의 생활리듬을 바꾸는 중차대한 사안임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해서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엄밀하게 분석하여 유·불리를 따져야 할 것이다.

특히 아직 시행해 보지 않은 9월 신학기 제가 가져올 수 있는 실익에 대해서 면밀한 시뮬레이션과 데이터 도출이 요청된다. 그래야 이 결과를 현행의 3월 신학기제를 유지하는 것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연 전환의 과정에서 발생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예측되는 문제가 실제로 얼마나 가능하며 파급력이 큰 것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최소화하여 사회가 수용할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더불어 이러한 대대적인 개혁이 교육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촉진하여 공교육 전반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고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필자는 최근 9월 신학기제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면서 이 문제가 원거리에서 보았을 때와 깊이 들어가 따져보았을 때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연구(이혜영 외, 2016)에서는 학기제 전환의 방식으로 1) 교육과정 단축안, 2) 전환학기도입안, 3) 입학기준일 조정안 등 다양하게 마련할 수 있으나 전환 비용, 교육과정 개편이나 단축, 대학입학 경쟁률 및 취업 경쟁률 심화 등에서 부담이 크다는 점을 제시했다.

또한 교육 관련 집단이 전반적으로 9월 신학기제가 국제 통용성을 제고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비용 대비 편익이 낮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으며, 전환을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학기제 전환으로 경제, 문화 등 국민 생활의 제반 측면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만큼 구체적이고 타당한 대안 수립 및 비용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밝혔다.

9월 신학기제 변경에 따르는 손실과 이득을 양팔 저울 양쪽에 올려놓고 견주어 보면 아직은 전환의 실리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오히려 전환에 따르는 사회적 혼란과 비용의 무게가 무겁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저울질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순간 기울기의 방향이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재는 3월 신학기제안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라고 지적되어 왔던 2월 수업 파행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