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후조 고려대, 교육과정학 교수

1. 교육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고 사회를 사회답게 가꾸는 일이다. 100년을 산다는 사람에 대해 이상적인 요구지만, 사람답게 길러진 사람은 개인적으로 전인적이요, 사회적으로 홍익인간적이다.

지향하는 사회상은 정권 차원의 3~4년이 아니라 더 길게 보고 그려주어야 한다. 20~30년 앞에 후손들이 살아갈 사회상을 그려보면 거기에는 여야도 없고 이견도 적다.

정치적으로 과잉독재에서 과잉민주화로, 경제적으로 과잉성장에서 과잉분배로, 사회문화적으로 과잉획일화에서 과잉다원화로 나아가는 듯하다.

우리와 우리 사회는 이런 극단을 점점 감당가능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성숙, 경제적 풍요, 사회적으로 감당가능한 다원화 등을 소망한다.

우리 교육은 좋은 모습의 ‘추구하는 인간상’을 그릴 뿐 그들이 만들어갈 사회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교육은 그래도 될지 모르겠지만 공교육은 그러면 안된다.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 그들이 만들어갈 지향하는 사회상,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상이 어우러진 교육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2. 문명

최근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장차 100억 인구에 70억 명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자연과 온갖 사물이 센서와 지능을 갖는 신물활론(neo-animism)의 시대로 나아간다고 한다.

AI, 로봇, 휴머 노이드, 사이보그, 클라우드, 빅 데이터, 자동화, 자율 주행 등으로 인간은 지능 기계와 그들을 연결한 가상세계와 공존하는 행동 및 가치 습관을 익혀야 한다.

특정 분야에 고도의 지능과 판단력을 가진 AI 등으로 인해 인간의 존재가치와 효용가치가 위협받는 시대다. 지구촌 문명의 발전은 현생인류 자신과 그 삶의 터전인 지구생태계의 지속가 능성을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삼을 때가 도래한 듯하다.

이에 따라 교육도 심각한 도전을 맞는다. 교육은 본래 ‘전대의 가르침이 후대의 삶의 개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가 이를 부추기고 있고, 실제로 스마트기기를 다루는 데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낫다. 지식의 폭증, 지식 유효기의 단축, 지식 접근성의 용이, 모든 지식 습득의 불가능 등으로 인해 학교는 ‘지식의 체계적 전수와 습득’이 제 기능이 아니라고 사회에서 그렇게들 말하고 학생들이 그렇게 알아듣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전대의 가르침이 후대의 삶의 개척에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I가, 로봇이 다 해주니까 사람은 그것을 즐기면 될까?

사실 AI도 미미한 낱낱의 데이터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챗봇을 보면 AI를 기르는 것은 한 아이를 기르는 것과 다름없이 손과 정성이 많이 간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더 스마트해져야 한다. 학교 지식의 체계적 전수와 습득은 더 고도화되어야 인간은 지능기계를 창안, 설계, 제작, 수리, 관리, 통제, 개선할 수 있다.

탄탄한 기초 기본 지식 위에 진로별 심화 특수 전문 직업 지식을 더해야 한다. 지식이 폭증하니 이제 핵심과 지름길로 아이들을 인도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사회 풍조는 공부 안 해도, 특히 어려운 수학, 과학, 기술(공학) 공부를 안해도 세상을 잘 살아갈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인문사회나 예술 분야는 특히 이런 호도를 심하게 한다. 과학혁명 이후 4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 과학기술을 모르고는 인간의 존재가치와 효용가치는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학교 공부나 시험에서 수학, 과학, 기술의 비중이 지금보다 높아져야 한다. 교육이 과학 기술정보 문해력(SW, 코딩, 프로그래밍, computational thinking)을 소홀히 해서는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을 수 없다. 이렇게 무시하다가는 21세기 신문맹자를 양산하는 교육이 될 것 같다.

모두의 상식이, 사회적 자본이 무엇인가에 의해 고교와 대학 교양교육의 줄기도 잡혀야 한다. 일부 편견이지만 건전한 상식에 기반을 두어 이론을 형성하고 좌절없는 공부를 시키는, 결국 나이 들어가면서 누구나 알게 되는 바를 가르치고 배우는 인문사회 교과목들은 더 통합되어야 하고, 비중은 지금보다 대폭 더 줄어야 한다.

인간의 도리나 책임은 가르쳐서 될 일이라기보다 사회적 질서를 분명히 그리고 바로 세우고, 그에 따른 이해득실을 분명히 하면 된다.

우리의 대입시는 이런 문명사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안선회 교수가 진단하고 처방한 것은 종합적이고 복잡하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다. 그중에 제안자가 오래전부터 제안한 타당성 있는 입시, 치를 만한 입시, 진로별 입시가 들어간 것은 참 다행스럽다.

3. 진학계 고교의 진로별 교육과정(진로탐색과정)]

어디서부터 잘못 꿰어진 것일까? 제안자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입시의 기본 질서가 안잡혔다. 그것은 고교 교육의 주기능에 대한 판단의 착오에서 온 것이다.

전문 연구자나 정책결정자들이 교육의 대중화에서 오는 착시에 근거해서 대입시를 이리저리 바꾸어왔기 때문이다.

두뇌가 명석하거나 부잣집 아이들을 중심으로 고졸자의 10%가 대학을 가던 시절을 연장해서 오늘날 80%가 대학을 가는 제도에 이리저리 맞춘 것이 오늘날 입시다.

국영수 중심이 핵심인 것이 그 증거다. 고교는 졸업 후 대학의 다양한 학업 세계로 나아가고, 사회의 다양한 직업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다.

그렇다면 고교 체제나 학교의 종류나 그 교육 과정, 수업, 평가는 진로에 따라 설계되는 것이 마땅하다. 필자와 관계된 교육 과정만 하더라도 진학계의 그것은 지난 120년 이상 고교 1학년 위주의 공통필수 교과목 위주로 처방되어 왔다.

정작 고교 공부의 꽃과 열매인 2,3학년의 공부하는 모습은 암흑상자다. 학교서 알아서 해주라는 것이다. 결국 국영수 중심, 국영수사, 국영수과의 문이과 양분의 교육과 대입시가 계속되는 원인이다.

비평준화의 단점을 극복해보겠다는 평준화라고 묘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을 두루 불러 모았을 뿐이지 해주는 것은 3학급의 고교나 30학급의 고교나 오십보백보다.

학교 선택이고 교사 선택이지 학생들에게 변변한 선택을 주지 못한다. 문이과 양분, 국영수 편중, 진로 무시라는 점에서는 같다.

본인들이 그렇게 배웠고, 본인들이 경외하는 미국 고교가 그렇기 때문에(제대로 돌아가는 고교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듣고 본 것이 그것이었기에 거기에 머물고 그런 악순환은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2, 3학년의 공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학계 고교 교육과정은 3학년 즈음에 무엇을 선택하여 집중해서 공부하고 그것은 대학의 어디로 향하는 준비냐는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결국 고교 1학년은 전체 공통, 2학년은 인문, 자연, 예술, 체육의 계열별 공통, 3학년은 인사, 경상, 국제, 실험실 공학, 현장 공학, 정보, 이학, 보건의료, 미술디자인, 음악공연, 연극영화영상, 체 조육상(개인), 구기(단체) 등의 진로탐색 과정별로 선택과 집중해서 공부하고 시험 치러야 할 것이다.

고교 개설 교과목이 총 200여 개는 되어야 한다. 학생의 적성과 소질이 조기에 발현되고, 분야의 전성기가 일찍 도래하는 예술과 체육 분야는 더 일찍 선택과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거점학교), 교육과정의 과정, 과목도 세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인문사회계는 더 통합하고 분화를 최대한 더 미루어야 한다. 고교에서 인문사회계의 진로탐색과정들 간의 서로 다른 특성화된 교과목은 3~5개에 불과하도록 설계하면 된다.

특히 여학생들이 2차, 3차 산업혁명기인양 수학, 과학, 기술 영역을 외면하는 풍토를 혁신해야 한다. 한 학교로서는 진로별로 분화된 과정, 교과, 과목을 다 개설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학교 간에 협력하고 역할분담 해야 한다. 현재처럼 학교 간에 초록동색의 교과목 개설로 경쟁하고 고립되는 풍토는 없어야 한다.

일정 지역 학교들은 한데 모아서 하나의 학교인 양 (school cluster, school coalition) 경영되어야 한다. 학생의 지원이 적은 분야(예술, 체육)는 더 넓은 지역에서 학생을 모으고(기숙사를 갖추고), 학생의 지원이 많은 분야(문이과)는 더 좁은 지역에서 학생을 모으면 된다.

규모가 작은 학교는 더 적은 수의 ‘과정’을 개설하고, 규모가 큰 학교는 더 많은 수의 ‘계열’을 개설한다. 일정 지역 내의 10~20개 학교들이 협력하고 역할분담하면 학생들이 원하는 진로별 학습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줄 수 있다.

평준화, 비평준화 이념 논쟁은 진로별 학습기회 보장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학교가 선택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진로별로 공부하게 해준다,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한다, 개별 과목을 특성화해두고 학교 간에 협력하는 거점(중점)학교를 운영한다, 학생 선택을 보장한다는 것도 무식한 사람들 사이에나 통하는 거짓말이고 짝퉁일 뿐이다.

4. 진로별 타당한 대입시: 모집단위별 바탕 학습으로서 교과목 ‘종류와 수준’

진로별 입시는 대학의 모집단위(계열, 학부, 학과, 전공 등)의 바탕 학습을 제대로 확인하는 입시이다. 모집단위별 적격자 선발의 입시이다.

입시의 타당성이다. 입시의 다른 가치(공정성, 객관성, 투명성, 신뢰성 등)는 여기에 종속되어야 하는 최고의 가치를 말한다.

이것이 입시의 기본 질서다. 이를 어기면 대학은 아무것이나 성적 좋은 것을 가지고 오라는 식의 교차지원과 같은 입시 흥행을 노리고, 수험생은 더 나은 등급을 받기 위해 장래 공부하는 것과는 무관한 시험을 치고 그 결과를 제출하는 입시의 허점을 노리는 편법이 판친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프랑스 혁명 후에 만들어졌지만 200년 이상 건재한 것은 타당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타당성 높은 입시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학의 각 모집단위에서 그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바탕 학습 과목이나 경험(활동, 창의적 체험활 동)을 우선순위로 해서 적어낸다. 입학처 등에서 이를 종합하고 바탕 학습이 동일한 것과 다른 것을 정비한다.

이렇게 하면 전국의 모든 계열, 학부, 학과, 전공 등의 바탕 학습의 공통분모가 완성된다. 이것은 특정 학과를 진학하려면 고교에서 특정 과목을 공부하고 활동을 하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모집단위별 공부할 교과목의 ‘종류’는 대교협, 교육부 수준에서 결정된다. 모집단위별로 공부할 교과목의 종류가 전국단위에서 정해지면 그다음으로 대학이나 학생들의 수준(학습능력)에 따라 해당 교과목의 최고 수준이 결정된다.

공학계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전국단위에서 예시한 ‘물리’를 공부해야 한다. KAIST 등은 물리를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UP(AP)수준으로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모집이 안 되는 대학의 공학계는 물리를 고1수준, 심지어 중3수준을 요구할 수도 있다. 대학은 학생이 성취한 수준 다음부터 공부시키는 곳이다.

즉 모집단위별로 바탕학습해야 할 교과목의 ‘종류’는 전국 단위에서, ‘수준’은 대학별(모집단위별)혹은 학생 수준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입시의 근간이다. 이것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이것을 우선 세워야 한다. 약간의 첨삭은 있겠지만 그래도 이것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 학생, 고교, 대학, 사회를 살리는 길이다.

성취나 도전 수준에 대한 ‘거품(과열 경쟁)’을 빼기 위해서는 바로 공부하는 교과목의 위계나 순서가 교육과정상(학교의 교과목 이수 안내서)에서 분명해야 하고, 차하급단계과목에서 80% 이상 성취를 전제로 차상급 단계의 과목 이수를 하도록 질 관리를 하면 될 것이다.

진로별 입시, 타당한 입시는 고교별 학생부, 전국 단위의 학업성취도나 수능, 대학별 고사 등에서 관철되어야 하는 가치다.

안선회 교수가 제안한 모든 대입시의 종류, 가치는 이것을 바탕으로 할 때 바로서기 시작한다. 입시의 기초질서를 세우지 않고 이것저것 고쳐봐야 늘 불안하고 불만투성이가 된다.

5. 내신, 학생부

평가도구에서 선택형은 없애고, 논·서술형, 프로젝트를 수행한 포트폴리오, 실제의 수행형을 더 늘려야 한다. EBS 연계도 수명을 다했고, 수능도 빈사상태다. 학생부의 평가결과도 문명 변화에 맞게 협동학습하게, 역량을 익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취 평가제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과거 ‘수많이 주기’에서 이제 ‘A많이 주기’를 학부모, 학교, 교사, 학생이 다 원하고 공모한다.

다 같이 망하는 길이다. 절대평가라는 이름으로 일부 전문가들이 지지했고, 교육부가 조장했다. 다음 학습을 계속적,성공적으로 학습하는데 바탕이 되는, 진로에 핵심이 되는 교과목의 평가는 허술하면 안 된다.

그 평가는 정직하고 엄정(rigour)해야 한다. 평가한 결과는 진로에 핵심, 보안, 교양에 따라 결과를 기록해야 한다. 각각 엄정한 정도를 달리 해야 한다. 핵심교과목의 평가 결과는 ‘원점수, 집단평균, 표준편차, 이수자수’ 의 4수치를 정직하게 기록하면 된다.

이를 가공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사용자의 몫이다. 보완교과목의 평가결과는 우수, 보통, 미흡으로, 교양교과목의 평가결과는 통과, 미흡으로 하면 된다.

학습, 시험 부담을 가질 것은 가져야 하고, 느슨하게 즐기면 공부할 것도 있으면 된다. 학습에서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추천서는 담임 교사가 한 장만 쓰고 어디를 지원하든지 그것을 사용하도록 한다. 그래야 이 현령비현령 입시를 막고 교사의 부담도 준다.

6. 고교부터는 약점 보완형이 아닌 강점 강화형 교육

사람은 팔방미인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한 가지 잘해서 먹고 살아간다. 특히 전문가 집단은 더욱 그렇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 전체 사회의 모든 교과목을 공통으로 공부하여 기초 기본 교양을 익히는 중학교까지는 약점 보완형 교육을 해도 되지만, 각 집단의 사회 각 분야의 일부 교과목이 관여하는 진로에 따라 서로 다른 심화 특수 전문(직업) 교육을 하는 고교부터는 강점 강화형 교육을 해야 한다.

H. Gardner의 MI를 살펴보아야 한다. 수를 잘 다루는 사람, 말과 글을 잘 다루는 사람, 손을 잘 쓰는 사람, 음악을, 공간을 잘 다루는 사람이 서로 돕고 의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대입시도 너무 많은 가치를 한꺼번에 추구하기보다 기초 질서부터 챙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