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지인의 자녀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겪은 이야기이다. 지인의 자녀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과학중점고등학교였다.

지인의 자녀는 중학교 3년 동안 교내 백일장과 교육청 백일장을 휩쓸 정도로 문학적 소양이 뛰어났고 음악적 재능도 풍부해 문학이나 음악 창작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던 아이였다.

입학한 첫해에 학교에 국어심화반이 개설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아이의 엄마는 이 국어심화반에 자녀를 참여시키기를 원했다.

과학중점학교라서 주로 이과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교실이 많이 개설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눈에 띈 국어심화반은 마침 자기 아이의 진로 방향에 딱 맞는 교실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신청하려고 하였으나 쉽지 않았고 결국에는 교감 선생님과의 면담을 거친 후에야 국어심화반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국어심화반은 과학중점학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는 문과의 최상위 학생들을 위한 입시대비용 특별반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국어 심화반에 들어가겠다고 눈치도 없이 설쳐(?)댔고, 입시 현실에 무지한 엄마의 티를 팍팍 낸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한다.

자녀에게 공부나 대학입시를 강요하지 않고 비교적 비경쟁적이고 자율적인 학습 태도를 강조하며 중학교 시기까지 자녀를 길렀던 부모들이 자녀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겪게 되는 학교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학부모 총회에서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듣게 되는 이야기는 학교의 교육 비전이나 학교장의 학교 운영 방향,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지원 시스템 등과 같은 ‘교육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학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명문대 합격자 수와 그 수가 최근에 얼마나 많이 늘어났는지를 설파하지만 이를 위해서 학교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되어 줄 것만을 당부한다.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영어 단어를 정해진 개수대로 외우지 않으면 청소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겁을 주는 경우도 있다.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해보면 더 분명하다. 학생 면담이든 학부모 면담이든 면담 내용이 성적에서 시작해서 성적으로 끝난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온 학생이 선생님이 자신의 성적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어 잔뜩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생리를 모른 채 고등학생이 된 순진한 학생들은 그렇게 씁쓸하게 고교생활 입문식을 치른다.

대학입시는 이미 인문계 고등학교의 절대목표이자 존재가치가 되어버렸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기관이라는 위치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 고 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배치표에 맞게 아이들을 변별하고 선발하기 위한 도구적인 성격을 띠는 기관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자.

대신 그 변별과 선발을 비교육적이거나 반교육적인 방법에 맡겨두지 말고 교육적인 방법으로 바꾸어 보자.

이를테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상위권 대학에 보냈는지 교문 앞에 써 붙이는 대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자신의 진로 적성에 맞게 대학에 보냈는지 현수막을 내거는 것이다.

성적과 점수 등의 숫자로 학생을 인식하지 말고 학생 한 명 한 명의 독특함과 고유함으로 학생을 인정하고 동기부여해주자.

학교의 명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성적 우수자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격려간담회를 열지 말고, 앞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잠재력을 가진 모든 학생들을 위한 신명 나는 파티를 열자.

졸업식장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학생과 교사여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명문 대학 합격생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좋은 고등학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고등학교 졸업생을 많이 합격시켰기 때문에 명문 대학이 되도록 하면 좋겠다.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대학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성적만이 아니라 교내 경시대회 실적, 독서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 등과 같은 학교에서의 모든 활동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고 자기소개서에 담아 학교생활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그 내용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이다.

그동안 교과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했던 것을 지양하고 학교 안에서의 다양한 비교과 활동까지 평가와 선발의 기준에 포함함으로써, 학생의 다양한 역량을 균형 있게 평가하겠다는 정책 취지이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와 의미가 좋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육활동의 내용이 아니라 평가의 내용이 되는 순간, 묘한 왜곡과 과열의 양상으로 변질되었던 사례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이미 학생부종합전형도 그런 기미가 보이고 있다.

순수한 관심에서의 동아리 활동이나, 순수하게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1~2년 뒤의 입시를 염두에 둔 일종의 스펙 쌓기와 같은 비교과 활동에 열을 올리게 될 가능성이 짙다.

상위권 학생들일수록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피로하고 경쟁적인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양상을 두고 마치 철인7종경기를 하는 운동선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다. 교육적 의도가 또다시 변별과 선발의 논리에 부딪혀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정말로 교육적인 활동이고, 다양한 꿈과 끼를 찾아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은 교육적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일들이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을 가려면 이러저러한 비교과 활동 기록이 있어야 하니까 책을 읽으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접근은 너무나 비교육적이다.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좋다는 식으로 모든 교육활동을 누적적이고 계산적인 관점으로 보는 시각이다.

교육에는 양적 관점보다 질적 관점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책을 읽고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예컨대 생명 현상에 대해서 가르치는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서 애정과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생명 현상의 신비에 대해서 설명하는 눈빛 속에서 학생들은 교사의 진정성과 생명 현상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교사는 단순 암기가 아닌 이해와 감동의 세계로 학생들을 안내한다. 사물에 대한 이해는 곧 내가 속한 이 사회에 대한 이해로 그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교육은 교실에서만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또한 대중이 모이는 광장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겨 삼삼오오 모여서 실행에 옮겨보기도 할 것이다. 과연 이런 일들은 꿈의 학교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나는 학교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학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지식과 인성을 갖춘 인격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인지 알고 있고,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회복할 필요가 있다. 교육을 잘하면 할수록 입시결과도 좋아지는, 그런 학교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학교 스스로 이 믿음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