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철 박사

 

새 해부터 초등학교 1~2학년에는 새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새 교육과정인 ‘2015 개정 교육과정’은 2018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적용되고, 2019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에까지 적용되며, 2020년에는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적용하게 되어 2020년부터는 모든 학교급의 모든 학년에서 2015 개정 새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해방 이후 우리는 13~14차례 정도 교육과정을 개정해 왔다. 세계와 사회의 변화에 발을 맞추고 세상의 여러 선진국을 쫓아가기 위한 교육적 노력이었다.

그리하여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어느 정도 교육 선진의 꿈에 접근하게 되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우리의 교육 발전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려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선진의 꿈이 실현된 것은 물론 아니다. 꿈에의 접근과 꿈의 실현 사이에는 아직 엄청난 괴리가 있다.

그 괴리를 우리는 줄기차게 메워야 한다. ‘무학년제’는 교육에서의 선진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구현해 내어야 할 미래의 과제 중 하나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그다음 개정에서, 그다음 개정에서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이후의 개정에서라도 이루어내야 할 필연의 과제인 것이다.

무학년제란 무엇을 의미하며, 왜 이루어 내야 하는지,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실현이 가능한지, 그리고 이의 실현을 위해 차기의 개정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무학년제는 어떤 것인가?

무학년제는 교수-학습 상황에서 학습 집단을 구성하는 방식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학습 집단을 학년의 구분 없이 구성하는 방식이다.

학습 상황에서는 자연 연령에 기초한 학년이라는 기준보다는 학생 개인의 전반적 발달의 수준 차이에 기초한 학습능력이라는 기준이 더욱 적합하고 효율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하에 여러 학년의 학생들을 하나의 학습 집단으로 구성하는 것을 허용, 장려하는 방식이 무학년제의 기본 개념이다.

무학년제의 개념이 이렇게 간단명료하고, 교수-학습 상황에서 보다 타당한 학습 집단 구성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초·중등학교의 모든 학사 업무는 학년제(와 학급교실제)를 기반으로 하여 운영되기 때문에 학년제 운용 하에서 무학년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학교 조직이나 운영상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일시적인 혁명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변화인 것이다. 무학년제의 핵심 개념은 ‘선택’이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과목들을 국가 나 학교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다.

학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선택의 대상(주로 교과목)을 학년 단위로 편성하고 동일 학년 안에서만 선택을 허용하는 ‘학년 내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학년과 관계없이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학년 간 선택’을 허용하고 장려하는 제도이다. 무학년제하에서 학생의 선택은 최대화될 수 있다.

이 제도하에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 대상으로서의 교과목들은 ‘학년’이라는 틀 안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학년의 벽을 넘어 학교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교과목들이 선택의 대상이 된다.

고등학교 1학년 과목이 도전적이지 않은 1학년 학생은 자신의 수준에 맞추어 좀 더 도전적인 2학년이나 3학년 과목을 이수할 수 있다.

3학년 과목이 자신에게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3학년 학생은 좀 더 낮은 수준의 2학년이나 1학년, 또는 중학교 수준의 과목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학습자의 발달 수준과 학습할 대상의 내용 수준과의 최적의 연합’이 이루어져 교육의 극대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무학년제라는 용어는 학점제라는 용어와 결합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학년제는 개념상으로는 학점제와 무관하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점제는 ‘교과별 이수 성취기준에 도달한 학생에게 학점을 부여함으로써, 각 과목별 학점이 누적되어 설정해 놓은 최소 졸업학점에 도달하는 학생에게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로 정의된다(교과부, 2010: 147).

이러한 의미의 학점제는 무학년제를 도입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운영될 수 있다. 학점제는 과목 이수와 졸업 여부의 양적, 질적 기준과 관련되는 개념이지 학습 집단 구성 방식과 관련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점제는 무학년제에서도, 학년제에서도 모두 시행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무학년제는 학점제와 함께 운영될 때 강력한 교육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 경우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 흥미, 진로의 차이에 따라 학년에 구분 없이 교과목을 선택, 이수함으로써 학점을 획득하고, 그 결과 여하에 따라 보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졸업을 할 수 있게도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학생들의 다양한 개인차를 최대로 고려한 교육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무학년제와 학점제가 결합된 고교 교육과정 운영 체제는 현재까지 알려진 제도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학생 선택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그리하여 자율과 창의가 싹틀 수 있는 학교 풍토 조성의 핵심이 되는 무학년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무학년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하나?

학년제의 유연한 운영

무학년제의 기본 정신은 ‘학생 선택의 영역 확대’이다. 학년 내에서의 선택을 넘어 학년 간 선택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학년제의 기본적인 특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학년제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학년 간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고, 학년 내 선택만 가능하게 하는 학년제 학사 운영을 수정하여야만 한다.

과격한 방안으로 학년제를 전면 폐지할 수도 있고 보다 유연한 방안으로 학년제와 무학년제를 혼합 운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학년제를 전면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여하튼 무학년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학년제 일변도로 되어 있는 고등학교 학사 운영 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학생 선택 대상 교과목들의 다양화

학년 간 선택을 허용하는 학사 운영 제도만으로 무학년제가 제대로 시행될 수는 없다. 학년 간 선택을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학년의 벽을 넘어 의미있게 선택할 만 한 교과목들이 별로 없다면 무학년제는 제대로 시행되기가 어렵다.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적 운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무학년제는 선택의 대상 교과목들을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는 학년제보다도 교육적 효과는 부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무학년제가 학년제보다 더 우월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학년 내에서뿐만 아니라 학년 간에서도 학생들이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교과목들이 개설, 제공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무학년제를 운영하는 선진 외국의 학교들에서는 무수한 선택 교과목을 개설, 운영하는 것이다.

‘학교 프로그램의 다양화’란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유형의 교과목들을 개설하여 학생의 선택을 다양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학교 프로그램의 다양화는 무학년제를 그 정점으로 하는 것이다.

세밀하게 구분된 정교한 단계형 교육과정의 설정

무학년제로 운영하려는 교과의 내용은 난이 정도에 따라 여러 개의 단계로 구성되어야 한다. 각각의 단계는 하나의 과목이나 강좌의 형태로 위계화된 체제를 구성하게 된다.

예컨대 수학 교과를 무학년제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학 교과를 일정한 단계로 위계화하고(핀란드의 경우는 14단계로 구분), 각 단계의 교육 내용을 한 학기 또는 반 학기 동안에 이수할 수 있는 하나의 과목이나 강좌로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단계는 섬세할수록 효과적이다. 예컨대 고등학생 중에는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실력을 갖춘 학생도 있고 대학 이상의 실력을 갖춘 학생도 있을 것이다.

무학년제의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고1 학생이라도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이나 대학 수준의 수학을 배울 수 있도록 단계가 다양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14단계 정도라면 고등학생들의 수학적 능력에서의 다양성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위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계화의 정도는 과목의 성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수학이나 외국어(영어)처럼 학생들의 개인차가 심한 교과는 위계화의 정도를 세밀하게 하여 그 단계의 수를 많이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교과는 위계화의 정도를 단순하게 하여 하위 단계의 수를 적게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단계의 수를 많이 하건 적게 하건 무학년제를 내실 있게 시행하기 위한 핵심적인 조건은 무학년제를 실시하고자 하는 대상 교과를 다양한 수준으로 적절하게 구분한 위계화된 교육과정을 구안하는 일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이 없다면 무학년제는 성공적으로 시행되기 어렵다.

학생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배치검사의 구안 및 시행

적절하게 위계화된 단계별 교육과정 및 그에 기초한 과목이나 강좌가 있게 되면, 특정 학생을 어느 단계의 강좌에 배치하느냐가 그다음 문제가 된다.

예컨대 고1 첫 학기 시작 시 해당 교과를 신청하는 학생들을 그들의 수준에 맞는 단계에 배치하기 위한 제도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즉, 신뢰할 만한 배치검사(Placement Test)가 사전에 개발되어 있어야 한다. 이 검사를 통하여 모든 학생들이 어느 단계의 강좌를 들어야 할 것인가를 합리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검사의 결과 고1 학생 일부와 고2 학생 일부가 수학의 14단계의 강좌 중 8단계 수준의 실력을 보인다면 그들은 학년과 관계없이 8단계보다 1단계 높은 9단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한다.

만약 이들이 최고 단계인 14단계 정도의 수준을 보인다면 그들은 수학을 더 이상 듣게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최고 단계보다도 더 높은 특별 단계를 개발,수강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수학적 능력을 최대한도로 신장시키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학년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수준에 가장 적합한 단계의 강좌를 듣게 되며, 그 결과 최대의 지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

단계 내 성취 정도에 대한 평가 방법 및 평가 결과의 단계 간 비교 방법의 구안

무학년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학년제가 시행되는 대상 교과의 각 하위 강좌를 일정 기간 이수한 후에 이루어지는 여러 종류의 평가 방안들이 사전에 잘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일단은 각 단계별 강좌 이수 후에 해당 단계 내 학생들이 보이는 성취 정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결정되어야 한다. 상대평가로 할 것인가, 절대평가로 할 것인가, 점수로 표현할 것인가, 등급으로 표현할 것인가, 등급으로 한다면 몇 단계 등급으로 성취 정도를 표현할 것인가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단계 내 성취 정도를 단계 간 성취 정도와 어떻게 동등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위 단계 강좌에서의 ‘수’와 차상위 단계 강좌에서의 ‘우’를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의 방법을 사전에 결정하여야 한다. 이 문제에 모두가 동의하는 절대적인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최선의 동등화 체제를 사전에 설정해 두지 않으면 무학년제 운영은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의 동등화 체제를 가능한 한 정교하게 개발해 놓아야 한다.

현행 내신 및 대입제도와의 갈등 문제 조율

현행 고교 내신 등급 산출에 의하면 성적이 우수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이 수강하여 수강 학생 수가 많은 과목이나 강좌에서 좋은 등수를 받을수록 내신 점수는 유리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도전적인 과목을 선택하기보다는 자기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이 수강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비록 배우는 것이 적다고 할지라도 좋은 내신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내신 체제 하에서는 무학년제의 정상적 도입이 어렵게 된다. 그럼으로 높은 단계의 과목이나 강좌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그 숫자는 적다고 할지라도 내신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 방식으로의 내신 제도의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능시험에서도 문제가 있다. 현재의 제도에 의하면 수능시험 문항의 난이도는 평균적인 수준에서 보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으나 우수한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강한 도전감을 자극할 정도로 높지는 않다.

따라서 수능시험과 관련된 교과에서 학생들은 수능시험에서 제시되는 수준의 난이 정도만큼만 공부하지 그 이상의 수준을 공부하지 않게 된다.

이런 경우 다양한 단계로 위계화되어 있는 과목에서 학생들은 일정 수준 이상 단계의 강좌는 수강하지 않게 되어 무학년제가 정상적으로 시행되기 어렵게 된다.

이 문제는 상위 수준의 학생들을 보다 예민하게 변별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수능시험 제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교원 및 교실의 충분한 확보

무학년제가 충실하게 이루어지려면 다양한 종류와 수준의 강좌가 개설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강좌를 운영할 수 있는 교원의 확보가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정규 교사의 확보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교원 인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교원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감당할 수 있는 복수전공제를 강화하고, 복수전공 교사에 대한 우대가 요구된다.

다양한 유형의 강좌를 제공하는데 적절한 교실의 확보도 필수적이다. 교실 수가 양적으로 충분해야 하며 질적으로 적합해야 한다.

교과나 강좌의 성격에 부합하는 교과교실제의 완전 성취는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고급수준의 교육운영은 그만한 비용을 요구하게 된다.

학교 교육 운영 체제에서 최고급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학년 선택제가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정교한 물리적 시설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차기 교육과정은 어떤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하나?

첫째, 선택과목의 종류와 수를 다양화하고 확대한다. 무학년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교과목(강좌)들이 개설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일반계 고교에서 선택으로 제공되는 교과목 수는 100개 선에서 정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의 수가 아니라 학교가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의 수이다.

학교가 학교 교육과정 편제를 구성하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이 과목의 숫자는 미국이나 핀란드의 학생들이 자신의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과목 수보다 훨씬 적은 숫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교육계 내부에서까지도 선택 과목의 확대 필요성 에 대한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학생 선택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확대한다. 계열의 분화보다는 학생들의 개별적 선택에 의하여 계열이 만들어지는 ‘개인 맞춤형 교육과정’을 지향하도록 한다.

우리의 경우 일반계 고교에는 실질적으로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 계열의 두 계열만 존재하여 개인의 다양성을 거의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개인이 만들어가는 과정’은 교육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 온 제도였다. 우리는 다시 ‘고정된 계열’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회귀하는 등 선진형 교육과정과는 반대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셋째, 다양한 단계들이 정교하게 계열화(위계화)된 교과별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우리의 고등학교 교과별 교육과정 체제는 단순하고 단편적이다.

수학 교과의 경우 7개의 과목이 전부이다. 핀란드의 경우 고급 수학이 14개, 기본 수학이 9개 등 총 23개의 과목(강좌)이 개설되어 있다.

즉, 수학에서의 학생들의 넓은 개인차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기 위하여 난이 수준을 달리한 다양 한 단계의 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것이다. 정교하게 단계화된 교과별 교육과정의 개발은 선진화된 교육과정 체제의 필수 조건이다.

넷째, 고등학교 졸업에 필요한 필수 이수 단위 수를 상회하여 이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하도록 한다. 우리의 경우 모든 학생들은(일반계 고교생들) 한결같이 204단위만을 이수하고 졸업을 하게 되어 있다.

그 이하는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원하는 학생은 204단위 이상을 초과하여 이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학생들은 고교 교육을 통하여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무학년제의 효율적 시행의 배경 조건이기도 하다.

다섯째, 주요 교과영역별 필수 이수 단위 수를 상회하여 이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하도록 한다. 학생들은 학교가 설정한 교과목 영역에서 학교가 설정한 이수 단위 수만을 이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즉,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과목들을 학교가 설정한 수준 이상으로 이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과목 선택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한정되어 있고, 주어진 이상의 이수 단위 수를 초과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우리의 교육과정은 여전히 개인 학생들 수준에서는 획일적이다. 이런 교육과정 체제에서 무학년제는 불가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교과 영역에서, 자신이 원하는 과목들을 원하는 만큼 이수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과정 체제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발견된 적성을 최대로 신장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 현행의 단위제를 학점제로 전환한다. 현행의 단위제에서는 이수 시간만 만족시키면 졸업이 가능하며 이수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여 그 안에 개인의 다양한 차이가 고려될 수 없다.

학점제는 이수의 질을 따지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에 대해서만 학점을 부여하고 이러한 학점수가 일정 수에 이를 때 졸업을 허용하는 제도로서 학생들의 다양한 개인차를 수용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학점제의 시행은 무학년제를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는 발전된 교육 과정 체제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

일곱째, 현행의 내신 점수 산출 방식을 개선한다. 현행의 교과별 석차백분율을 기준으로 한 내신제도는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억제함으로써 무학년제의 시행을 저해하며 결과적으로 교육과정 선진화의 심각한 장애 요소가 된다.

같은 수업을 듣더라도 소집단 수업에서의 1등과 대집단 수업에서의 1등은 내신 점수에서 큰 차이가 나게 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내신에서의 유리한 점수를 얻기 위하여 점점 규모가 커지 는 집단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다양한 유형의 교과 학습 상황이 사라지게 된다.

여덟째, 현행의 수능시험 제도를 개선한다. 고3이 끝날 무렵 한 번만 응시하게 되어 있는 현행의 수능제도는 무학년제의 시행을 어렵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수능 시험과 관련된 현행의 교과목 체제는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강력하게 방해한다. 교육과정 체제를 아무리 다양하게 정교화해도 그것이 수능시험 체제와 유효하게 관련되지 않는 한 학생들은 그러한 선진화된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된다.

수능시험을 일 년에 여러 번 치를 수 있게 하고, 시험의 교과목 체제를 좀 더 다양하게 설정하여야 한다. 수능이 선진화된 교육과정 운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수능 시험 자체를 선진화하 여야 한다. 

아홉째, 교육과정 시행의 외적 조건으로서의 학교 교육여건을 개선한다. 무학년제를 포함한 학생 선택 교육 과정을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 여건을 대폭으로 개선하여야 한다. 교사의 수를 늘려야 하며, 교과 교실제를 보편화하여야 한다.

단위 학교의 크기를 줄이며, 학급당 학생 수는 지속해서 축소해야 한다. 교육 시설을 다양화, 고급화하여야 하며, 이 모두의 기본 조건으로서 교육 예산을 지금보다도 훨씬 더 증액하여야 한다.

이는 교육과정 자체의 개선은 아니지만, 교육과정이 실천되는 맥락으로서의 학교 현장 여건의 개선이므로 교육과정 자체의 개선만큼 중요한 개선의 대상인 것이다.

열째, 고교 교육체제 및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지속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보다 바람직한 미래의 교육과정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 연구 이상으로 종합적이며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2015 교육과정을 진정한 수준의 무학년제를 수용할 수 있는 선진형 교육과정으로 전환하고, 내실있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류의 정교한 연구들이 수행되어야 한다.

연구 수행을 위한 체계적인 계획이 종합적으로 수립되어야 하며, 장기적인 연구 수행을 위한 물적, 인적 지원이 확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