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장래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는 부모는 없겠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은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된 아이에게조차 돌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미래 모습에 대한 바람을 주저 없이 드러낼 정도로 그 기대감이 조금은 유별난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때보다 불안해 보인다. 아이들의 진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부모들의 마음속에는 ‘아이들이 커서 먹고살 것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한가득 들어있다. 부모는 자녀들이 세상의 빠른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불안해한다.

부모들은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조한다. 공부를 해야 원하는 대학에도 가고 원하는 직업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부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만, 부모의 신념을 아직은 먼 이야기로 생각해 공감하지 않는 다른 한 편의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강조를 강요로 받아들이게 되고 공부에는 더욱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을 두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공부해야 해.”

이쯤 되면 그나마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간직해 두었던 순수한 희망 사항마저 공부를 하기 위한 천박한 미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진로란 대체로 어떤 직업을 갖느냐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떤 직업인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왔고 또 생각하도록 은연중에 강요받아 왔다.

학년 초마다 학교에서 배부되는 학생환경조사서에는 부모와 자녀가 원하는 희망 직업을 쓰게 되어 있다. 거기에 적힌 희망 직업에 기초해서 진로 지도가 이루어지고 진학을 위한 진로활동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희망 직업과 취업을 전제로 한 진로교육은 한창 진로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 시기 아이들의 삶과 뭔가 잘 들어맞지 않는 점이 있어 보인다. 청소년기, 특히 사춘기의 특징은 반항이다.

이것은 그동안 부모나 외부환경에 의해서 형성된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의심하며, 과연 그러한지를 직접 확인해 보려는 실험적인 행동을 해 보기도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확신에 근거한 의미 찾기를 시작하는 때가 왔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탐색한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잘하고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즐거워하고 어떤 것에 화를 내는지를 알아채게 된다.

그동안 원하는 직업을 자신의 미래 모습으로 그려 왔던 아이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발견하게 된 자신의 모습과 그 직업인의 모습 간의 간극을 발견할 수도 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 진로였다면 아이들은 억압에서 오는 분노를 느낄 것이다.

희망직업에 대한 바람은 여전한데 자기 능력의 한계를 깨달은 아이들은 좌절감을 맛볼 수도 있다. 또한 직업에 따른 사회적 인식의 실상을 깨달은 아이들은 앞으로 닥칠 성인 세대로의 진입에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

복잡하고 심층적인 심신의 변화와 성장을 겪고 있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진로 탐색을 직업과 취업 가능성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대신, 아이들의 존재적 특성을 고려한 관점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돈 벌기 위해 태어난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사람은 고유의 목적과 가치를 갖고 태어났고 그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야 한다. 무엇을 하는 기능인으로서만 아이들의 진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서 어떤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장래희망을 동사형으로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꿈을 동사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를테면 명사형으로 표현된 ‘의사’라는 꿈 대신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돕는다’와 같이 어떤 직업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서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직업으로서의 의사는 도구일 뿐이고 더 중요한 것은 의사가 되어서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만 가능한 꿈 서술 방법인 셈이다. 동사형으로 꿈을 서술하게 되면 혹여나 원했던 의사가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는 다른 직업을 찾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꿈을 동사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세계적인 건축설계그룹 팀하스의 하형록 회장의 제안이다. 하형록 회장은 두 번의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후 이웃을 위해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면서, 자신의 꿈을 동사형으로 정한 후 그 꿈을 이루며 살고 있다. 하형록 회장은 2016년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두 번의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심장 이식 수술을 받기 전, 그때까지는 저 자신의 성공과 출세에 목표를 두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 명사형의 꿈을 위해 살아왔지만, 다시 살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을 ‘돕는’ 삶을 살겠다고 동사로 표현하고 제 결심을 다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편한 길을 따라 명사로 표현된 사회적 위치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꿈을 동사로 표현하고 그 꿈을 좇아 어렵고 힘든 길로 가는 것을 꺼립니다. 그러나 저는 기꺼이 이 후자의 길을 택했고 이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웃을 돕기 위해 살겠다고 제 꿈을 동사로 표현하고, 그 꿈을 정직하게 실천하고자 한 희생이 제 성공의 지름길이 되었다는 것을…."

사람에게는 누구나 개성이 있고 능력이 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개성과 능력은 세상에서 필요한 곳에 연결될 때 비로소 보람 있게, 의미 있게 꽃 필 수 있다. 그 연결점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우리 부모와 어른세대가 할 일이다.

보람 있는 방향을 따라서 가다 보면 거기에서 직업도 따라 나온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부모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