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한영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부교수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놓았던 탄핵사건을 전후로 법 교육, 그중에서도 헌법교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 대한 흥미와 궁금증도 일부분 영향을 미쳤겠으나 보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민주 사회에서 척추와 같은 역할을 하는 헌법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더욱 원칙이 바로 선 안정된 사회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의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의 헌법교육도 미국이 사회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이를 돌파하기 위한 교육적 방안으로서 시작되고 확장됐다. 특히 워터게이트 사건을 전후로 한 미국의 상황은 지금 우리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미국의 헌법교육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지금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바를 되짚어보자.

1. 미국 법 교육의 역사

어떤 사회든 사회구성원들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은 국가의 바탕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가의 영역이 크게 확대되고 구성원이 증가한 근대 국민국가에 이르러서는 교육을 통한 민족개념의 형성과 국민의 탄생이 국가의 존립을 위한 첫 번째 과제이다.

이를 위해 강조되었던 교과는 종적인 시간의 축을 담당하는 역사와 횡적인 공간의 축을 담당하는 지리였으나 이민자들로 구성된 신생국가인 미국은 이와 같은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웠으므로 ‘민주시민’의 개념을 강조하는 사회과목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1900년대 초반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초기 사회과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사고, 정체성, 생활습관 등을 강조했기 때문에 학문적 성격이 강하고 학습 내용이 많은 법 관련 내용을 초·중등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1)

1) 아이러니한 것은 해방 후 미군정기인 1946년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사회과가 처음 도입된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 교육과정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법제(法制) 과목의 영향과 1948년 사회과 교수요목이 처음 발표되던 시기가 제헌헌법이 공포되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1949년 처음 발간된 고등학교 공민교과서가 헌법 교과서라고 봐도 무방할만큼 헌법 관련 내용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중등 교육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법 관련 과목이 분과된 것은 1997년 제7차 교육과정기부터였지만 헌법교육 관련 교과서에 한정해서 본다면 오히려 미국보다 헌법교육의 시기가 앞선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 때문이었다. 냉전이 첨예화되던 상황에서 적국으로 설정되었던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를 쏘아 올렸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교육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사회과의 경우 기존의 학생 경험, 흥미를 중시하던 아동 중심 교육과정에서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 개편하는 ‘신사회과운동’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

법학은 그 학문적 구조가 체계적이고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학문 중심 교육과정의 지향점에 부합하는 새로운 교육내용이자 교수학습방법으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본격화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 사회를 강타한 민권운동의 영향이었다. 1954년 학교에서의 흑백분리정책을 위헌으로 선언한 브라운 판결(Brown Vs Board)이 미국인들의 일상을 바꾸어놓으면서 법의 문제, 특히 헌법의 중요성에 많은 사람이 주목하게 되었다.

베트남전의 발발, 그리고 여기에 미군을 파병하는 것을 반대하는 의미로 완장을 두르고 등교한 고등학생들에게 학교 측이 등교정지처분을 내린 것을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보아 위헌 결정을 내린 1961년 팅커 사건(Tinker Vs Des Moines)을 계기로 헌법 내용을 중심으로 한 법 교육은 커다란 관심을 받게 되었다.

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유럽 전역을 뒤흔든 68 학생운동과 베트남전,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미국 사회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고 피로감을 느낀 시민들의 법과 질서 회복에 관한 요청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미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기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상대 당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한 것이 발각되어 결국 의회의 탄핵 압력에 굴복해 사임한 사건으로 제도와 절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미국 사회의 기초에 균열이 발생한 사태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준법교육을 중심으로 한 법 교육의 강화가 이루어져 전미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 ABA) 산하에는 청소년 법 교육 문제를 전담하는 청소년 법 교육 위원회(YEFC)가 설치되었고, 1978년에는 연방 차원의 『법교육지원법』이 만들어져서 전국적으로 법 교육 단체가 활성화되었다.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함께 시작된 1980년은 빈부 격차가 심화하고 복지는 축소하면서 범죄율이 높아졌으며 특히 청소년 범죄가 많이 증가한 시기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정부에 신설된 청소년비행예방정책국(OJJDP)은 법 교육 활동을 펼치며 기존의 시민성 교육으로서 법 교육과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또한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를 넘어서는 시기에는 평생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생활법 지식을 전달하는 시민법교육(Public Legal Education, PLE)이 확산되었다.

2. 헌법교육 관련 단체와 프로그램

헌법교육의 내용 요소를 크게 구분하자면 헌법의 개념과 역사 등 전체적인 내용을 학습하는 헌법 총론과 기본권론 그리고 국가기구의 구조와 운영을 배우는 통치구조론 등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미국 초중등교육의 정규교과에서 이 내용은 역사, 지리, 정치 과목 중 일부 내용으로 다루어지거나 헌법 총론과 기본권론은 주로 사회(Social Studies)나 공민(Civics), 통치구조론은 정부기구(American government) 과목을 통해서 교육한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국가적 차원의 교육과정이 존재하지 않고 주별, 교육구(School district)별로 교육과정이 정해질 뿐 아니라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 재량 폭도 넓은 편이라서 헌법교육 또한 국가 제도적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그보다는 법 교육에 관련된 개별 시민단체의 프로그램들을 학교에 보급하여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중심으로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더 낫다.

헌법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널리 보급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시민교육센터(Center for Civic Education, CCE)의 ‘The We the People : The Citizen and the Constitution program’을 들 수 있다. ‘We the people···’은 미국 헌법의 첫 구절로 이 프로그램은 미국 헌법의 주요한 내용을 유치원부터 12학년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중·고등 수준의 교재와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고 e-book으로도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미국 모든 주에 변호사 단체 및 시민단체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교사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연수를 시행하여 1987년 이래로 2,800만 명 이상의 학생과 7만 5,000명 이상의 교사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962년에 설립된 헌법기본권재단(Constitutional Rights Foundation, CRF)은 헌법 자체에 대한 교육보다는 미국 헌법상의 기본권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와 지역사회에 대한 시민참여를 이끌어내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CAP(Civic Action Program)는 기본권에 대한 교육을 통해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국내외 문제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2015년 현재 47개 주에서 2,000건 이상 진행되고 있다.

1975년 처음 발간되어 현재 제9개정판까지 판을 거듭하며 미국의 법 교육을 대표하는 교재로 널리 보급하여 활용하는 《Street Law:A course in Practical Law》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생들의 생활에 직접 관련된 법적 지식을 담아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 교재에서도 헌법의 체계와 특성, 기본권, 수정헌법 조항은 물론 미연방대법원의 판례들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어 결국 미국 법 교육의 바탕을 이루는 내용적 원천은 헌법 교육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헌법교육이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방식은 법과 관련된 기념일을 전후로 한 계기 수업과 각종 행사다. 미국에서 법의 날(Law Day)로 지정한 5월 1일과 미국 헌법에 서명이 이루어진 9월 17일을 기념하는 헌법의 날(Constitution Day)이 대표적이다.

특히 헌법의 날은 국경일일 뿐 아니라 법에 따라 공적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기관과 연방 기관들은 반드시 미국 헌법의 역사와 내용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헌법과 관련한 많은 행사가 전국에서 열린다.

3. 미국 헌법교육의 시사점

미국의 헌법교육은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를 통합하고 안정화하기 위한 보수적 역할, 그리고 기본권을 확인하고 신장하기 위한 진보적 역할을 모두 수행하며 미국 사회의 발전에 기반을 제공해왔다.

특히 베트남전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인권 신장의 요구,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탄핵 문제 등 사회적 갈등과 위기의 국면에서 법 교육이 담당했던 역할은 큰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에서 헌법교육은 지속해서 후퇴와 위축의 일로만을 걸어왔다.

헌법교육을 담당해야 할 사회과목은 지속적인 과목 축소와 시수 감소를 겪은 끝에 ‘법과 사회’ 과목이 폐지되고 엉뚱하게도 정치와 통합된 ‘정치와 법’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나마 입시에 불리한 많은 학습부담으로 인해 선택 학생들이 줄어들어 존립의 위기에 처해있다.

또한 제헌절은 국경일에서조차 제외되어 헌법의 내용은 고사하고 제헌절이 언제인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학생들조차 늘어가고 있다.

이는 지난 1989년 미국 헌법 200주년을 기념행사로 헌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2004년 ‘시민의 날’을 ‘헌법의 날’로 명칭을 바꾸어 헌법교육을 각 기관에서 의무화하는 한편 2005년 연방교육부에서 모든 학교에 헌법의 날 계기 수업으로서 헌법교육 프로그램 의무화를 선언하는 등 헌법교육의 중요성이 점차 강화되어가고 있는 미국의 흐름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존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감대로서 헌법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