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소장

 

[에듀인뉴스=지준호 기자] 지난 5월10일 새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 ‘외고,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 ‘고교학점제 도입’, ‘대입제도 단순화’ 등 큰 변화가 예상되는 다양한 교육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교육회의를 설립해 교육부의 일부 기능을 국가교육위원회(가칭)로 이관하는 교육부 개혁 공약도 내건 바 있다.

또한 지난 정권에서 논란이 된 누리과정 예산 문제도 개혁하겠다고 했고, 국정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취임 즉시 관련 정책을 폐기하는 조치를 취했다. 에듀인뉴스는 새 정부가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교육정책들에 관한 문제점과 개선점을 전문가를 초청해 진단하고 있다. 이번에는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소장의 고교 평준화 정책에 대한 제언'을 게재한다.

 

Ⅰ. 들어가며

우리 사회에서 대학서열화와 대학입학경쟁 문제가 과거 수십 년간 심각했다면, 고교서열화와 고교입학경쟁(이하 ‘고입경쟁’)이 격화된 것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이다. 이명박 정부는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표면상 수평적으로 다양한 학교 종류를 만들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특수목적고(이하 ‘특목고’)는 확대되었고,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와 자율형 공립고(이하 ‘자공고’)는 새롭게 도입되었다. 이 자사고는 기존의 영재 학교와 외고, 과학고 등의 특목고와 함께 일반고 위에 서열화된 학교로 존재하게 되면서 고교서열화의 심화와 고교 입시 사교육의 증가를 유발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고교평준화를 통해 비교육적인 과열 고입경쟁을 완화하려고 했던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흐름과 배치되는 정책이 되었다.

1974년 고교평준화 정책은 소위 일류고 입학을 위한 과중한 고입경쟁을 완화하고, 경쟁에 따른 사교육비 문제를 해소하고자 도입되었다. 고입경쟁은 중학생 시기에 겪기에, 어떤 면에서 학생 고통과 심리적 어려움은 대입 경쟁보다 더욱 컸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고입경쟁 완화와 고입 사교육비 축소, 중학생의 입시 고통 경감은 고교평준화 정책이 지금도 지지를 받는 이유가 되었다.

반면 고교평준화 정책에 대한 반발도 컸다. 무엇보다 고교평준화 정책이 교육과정의 획일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마치 고교평준화 정책이 수월성의 가치를 무시한다고 오인되어 지속해서 학력저하 논란을 겪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시행 초기부터 고교평준화 정책이 근거리 추첨 배정과 함께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다양성을 추구했다면 지금과 같은 반발과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교평준화 정책은 전국적으로 퍼지지 못하였다. 현재 고교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은 같은 시·도에서도 복잡하게 섞여 있다. 무엇보다 고교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겠다고 한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 등의 정책 결과, 영재학교, 과학고, 외고, 자사고가 난립하여 고교평준화 정책 이전의 고입경쟁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이제 고교평준화 정책을 확산시키는 것만으로는 현재의 고입경쟁과 고교서열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므로 새로운 고교평준화 정책 시행이 필요하다

Ⅱ. 고교체제 현황과 문제점

1. 영재학교·특목고·자사고의 과도한 비율

2016년 8월 발표된 교육부의 ‘2016년 교육기본통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2,353개 고등학교 중 특목고와 자율고의 수는 311개로 무려 13.2%를 차지한다. 이를 좀 더 세분화하여 과학고, 영재고, 외국어고, 국제고, 자사고(자공고 제외) 등 소위 고교서열화에서 일반고 위에 있는 학교로 제한해도 그 수는 112개로 4.8%에 달한다.

영재학교, 과학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이하 ‘영재학교 등’)가 전체 고등학교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4.8%는 매우 높은 비율이다. 이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는 주요 대학의 모집정원 수를 비교하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8학년도 기준으로 서울 주요 8개 대학(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중앙대)의 모집정원은 2만 5,504명으로, 2017학년도 수능 응시생 55만 2,297명의 4.6%에 해당한다. 즉 아주 단순화하여 쉽게 표현하면, 정시전형으로만 대입 전형을 치른다고 가정하면, 상위 주요 8개 대학의 모집정원 정도는 영재학교 등의 학생으로만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중학생들이 고입경쟁을 치르며 영재학교 등에 진학하지 못하면, 이미 대학입시에서 실패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 서열화된 고교체제로 인한 입시사교육 유발

2015년 9월, 교육시민운동 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은 박홍근 국회의원과 함께 시행한 ‘고교유형별 중고교 사교육 실태 설문조사’를 통해 일반고보다 영재학교 등에 진학을 희망하는 중3 학생들의 사교육 부담(사교육비, 사교육 참여율, 사교육 시간, 사교육 선행 정도 등)이 심각하게 높은 것을 확인하였다.

특히 영재학교등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사교육비 지출은 일반고 희망 학생보다 매우 높았다. 예를 들어 월평균 100만 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학생 비율만 살펴봐도 일반고 희망 학생은 4.9%였으나, 광역단위 자사고 18.8%, 전국단위 자사고 28.6%, 과학고·영재학교 35.0%, 외국어고·국제고는 15.3%의 비율을 보여 큰 차이가 있었다.

 

지난 3월에 발표한 ‘2016 사교육비 통계’도 고입경쟁에 따른 중학생의 사교육비가 과도함을 보여준다. 중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7만 5,000원으로 초등학생 24만 1,000원, 고등학생 26만 2,000원보다도 많았다. 과목별로 보면 영어의 경우 중학생은 월 10만 1,000원을 지출해 초등학생 6만 7,000원, 고등학생 7만 7,000원보다 많았다.

수학도 중학생이 10만 8,000원으로 초등학생 4만 원과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10만 4,000원보다도 비용 지출이 많았다. 이렇듯 고교 서열이 심각해지고, 그에 따라 고교입시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중학생들의 사교육비가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의 사교육비보다 높은 것을 확인하였다.

Ⅲ. 고교체제 개편을 위한 네 가지 정책 방안

1. 고입전형 개선 : 모든 고교의 선발 시기를 일원화하고, 영재학교는 입학사정관제 선발로, 나머지 모든 고교는 무시험 ‘선지원-후추첨’ 방식으로 전환

심각한 고교서열화를 가져오는 핵심요인은 고입전형에 있다. 현재의 고입전형은 일반고에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 고등학교의 서열이 명문대 진학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고, 진학이 대부분 학교의 교육 효과보다는 선발 효과에 기대어 있는 상황에서, 불공정한 고입 전형은 일반고와 영재학교 등과의 격차를 더 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고입전형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선발 시기의 문제다. 중학교 3학년의 고입전형은 4월 영재학교 입시부터 시작해서 전기학교라고 불리는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가 먼저 학생을 선발하고, 전기학교 입시가 끝난 후 후기학교 중에서 전국단위 자율학교와 과학중점학교가 다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일반고와 자공고가 학생을 추첨받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렇게 선발 시기가 나뉘어 있는 구조 때문에 일반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영재학교 등의 진학에 실패한 학생이라고 낙인 찍히는 심리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둘째, 선발방법의 문제다. 영재학교등은 지원 학생의 중학교 내신성적, 면접, 자기소개서, 기타 서류 등을 활용하여 학교가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지만, 평준화 지역의 일반고는 대부분 추첨으로 학생을 배정받고 있다. 한마디로 영재학교 등은 우선선발권을 가지고 성적을 반영해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고는 후기에 그냥 배정해 주는 대로 학생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는 불합리한 구조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고입전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재학교를 포함하여 특목고, 자사고 등 모든 고등학교의 입학전형 선발 시기를 일원화해야 한다. 선발방법에서도 영재학교는 입학사정관제 선발로, 나머지 모든 고교는 무시험 ‘선지원-후추첨’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 영재학교

학년 초에 시작되는 영재학교 선발 시기는 1) 중학교 학사운영의 어려움, 2) 무분별한 지원으로 인한 준비의 어려움, 3) 지역별로 다른 평가내용에 따른 사교육 유발, 4) 학년 초 선발로 인한 우선선발 등의 실질적인 특혜, 5) 이로 인한 고교서열화 강화 등의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따라서 영재학교 선발 시기도 다른 고교와 같이 시작되어야 한다.

선발 방법에서도 사교육 등으로 이미 갖춰진 지식을 측정하는 지필고사 위주의 다단계 시험을 폐지하고, 입학전형 전문가를 이용한 서류 및 면접 평가로 영재를 발굴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사교육 기관을 이용해야 하는 영재성 입증자료(스펙) 제출을 금지해야 한다. 지원 방식에서도 거주지 우선 원칙을 적용하여 광역시 또는 해당 시·도 단위로 지원을 제한하고 중복지원을 금지해야 한다.

영재학교 입학전형의 지필고사가 폐지되면 중학교 교육과정을 과도하게 벗어난 사교육이 줄어들게 되며, 자동으로 학교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영재성 입증자료 제출을 금지하면 이 자료를 만들기 위한 별도의 사교육 역시 줄어들게 된다.

또, 영재학교의 중복지원이 금지되면 해당 시·도의 영재가 선발되기 때문에 전국 지역별 영재가 골고루 영재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영재학교 입학 경쟁률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과도한 경쟁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단계 전형을 줄일 수 있다.

2) 특목고와 자사고

특목고와 자사고는 일반고와 차별하지 않기 위해 우선선발을 할 수 없도록 선발 시기를 일원화하고, 선발 방법에서도 선발 효과를 배타적으로 누릴 수없도록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희망자 중심의 ‘선지원-후추첨’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선발의 시기와 방법을 바꾸는 고입전형의 변화만으로도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추첨제 또한 생소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선진국과 일부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법이다. 특목고와 자사고의 고입전형을 시험 없는 ‘선지원-후추첨’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고입과정에서 과도한 입시 사교육을 없앨 수 있으며, 특권학교 입시로 인한 중학교 교육의 왜곡도 막을 수 있다.

2.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다양성 확보 : 고교학점제 도입 검토

앞서 고교평준화 정책의 한계로 교육과정의 획일성을 지적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단위고등학교의 학생 교육과정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즉 학생 맞춤형 학교 교육을 ‘다양한 고교체제 방식’으로 풀려 하지 말고,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다양성’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핵심 교육공약이 고교학점제 도입이었고,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도 학점제 도입 또는 수강신청제 도입을 주장하여 그 필요성에 공감하였다.

고교학점제나 수강신청제 도입은 일반고 교육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특목고의 역할을 대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수학과 과학에 적성과 소질이 많은 학생이 관련 수학과 과학 교과를 많이 신청하여 이수한다면 이는 과학고를 가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고, 어학 관련 수업을 많이 수강한다면 외고나 국제고를 진학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이렇듯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모든 고교에 확대된다면 자사고는 자연스럽게 그 특성이 소멸해버린다. 물론 고교학점제 도입은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이 정책의 실행 방안은 지면상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3. 고교체제 단순화 : 고교체제를 일반고, 특성화고, 영재고로 대폭 단순화

고입전형 개선과 일반고 교육과정 다양성 확보를 통해, 일반고와 영재학교 등의 교육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하고, 과고는 숫자를 대폭 줄여 영재학교로 변경하는 등 고교체제는 대폭 단순화할 수 있다(줄어든 과고는 일반고 전환).

또한 전문계 고교안에서의 서열화를 만드는 마이스터고와 특목고로 분류되었던 예술고와 체육고 역시 특성화고로 통합하여 고교체제를 단순화한다.

4. 비평준화 지역 평준화 전환

고교체제 개편을 위한 마지막 네 번째 정책은 고교평준화 정책을 전국 모든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고교체제가 단순화되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따른 수업을 일반고에서 충분히 받을 수 있고, 소수의 영재학교 운영을 통해 우수 학생의 수월성 교육을 보완한다면 소위 명문고 진학을 위한 비평준화 지역의 고입경쟁도 무의미하다.

현재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는 특별한 학교 고유의 교육과정 다양성이 아니라, 입시 위주의 교육을 통해 일류 대학 합격생을 다수 배출하는 것으로 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한 경쟁은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과도하게 치열해 비교육적이라는 점이다. 사실, 위의 세 가지 정책 변화가 없더라도 비평준화 지역의 고입경쟁은 무의미하여 평준화 지역으로 전환이 필요하지만, 계속되는 학력저하 논란과 고교 획일주의 교육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이 정책을 마지막 단계로 제시하였다.

Ⅳ. 나가며

우리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겪으며 급격한 고교서열화와 이에 따른 치열한 고입경쟁의 부작용을 충분히 감내하였다. 이런 무의미하고 해로운 경쟁 고통을 어린 학생들에게 계속 겪게 할 수는 없다. 새로운 정부는 특별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다만 1974년 고교평준화 정책이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다양성 측면을 간과하여 학력저하 논란에 따라 전국에 퍼지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소위 평준화를 보완한다는 명분 하에 지금의 고교서열화 사태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한다.

그래서 새로운 평준화 정책은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고입전형의 개선- 일반고 교육과정 다양성 확보 - 고교체제 단순화 - 평준화 지역 확대의 단계적 접근을 통해 치밀하고 꼼꼼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적어도 새로운 정부는 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임기 내에 최대한의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고교 교육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가치관 정립을 강조하고 싶다. 대학교육이 보편화하고, 고교교육의 무상화, 의무화가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에 고교 교육은 대다수 학생에게 제공하는 보통 시민교육의 성격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특수목적을 위한 고등학교를 통해 소수의 잘하는 학생을 선별하여 그들만을 위한 교육을 하기보다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 못하는 학생이 다양하게 섞여 자신의 적성과 소질, 수준에 따라 교육과정을 함께 이수하며 사회성을 키우는 교육이 바람직하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는 고교체제 문제를 풀어가는 중요한 공감대와 철학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