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여행·사진 작가

마추픽추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에 섰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와이나픽추다

남미 여행 전 연말연시를 페루에서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행 중 지나온 날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기분은 매번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이런 기대 때문인지 여행자들은 고즈넉한 쿠스코를 열기로 몰아넣었다.

마추픽추까지는 오얀따이땀보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 내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산을 올라야했다.

숙소 근처 골목은 새해를 맞으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아르마스광장은 마치 서울 종각 주변을 연상시켰다. 자리를 잡고 새해를 기다렸다. 밝은 보름달이 떠있었다. 새해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상상마저 들었다.

분위기는 한층 뜨거워졌고, 개중엔 흥겨운 춤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이도 있었다. 달달한 맛이 일품인 쿠스케냐(페루 맥주)로 목을 축였다.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세련된 불꽃놀이는 아니었지만, 분위기를 돋우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화약이 자기 몸을 태우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자정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 4, 3, 2… 와~아!” 군중의 환호가 이어졌다. 커플들은 뜨거운 키스로 새해를 시작했고 그들의 뜨거운 숨을 눈으로 즐겼다. 1월 1일, 새해의 시작이었다.

새해 자정을 즐겁게 보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잠시 뒤 있을 산행을 준비해야 했다. 아쉽게 뜨거운 밤을 뒤로 하고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를 타고 올라야 마추픽추 정문이 나온다.

마추픽추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와이나픽추(Wayna Picchu)는 하루 400명으로 입장이 제한되어 예약이 필수다. 어렵사리 1월 1일 와이나픽추 입장권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표가 있다고 모든게 해결된 건 아니다.

하루짜리 맞추픽추 투어에 들어간 비용은 대행사 수수료가 포함된 기차표(왕복) 121 달러, 입장료 65 달러, 아구아스 깔리엔떼스(A-guas Calientes)에서 마추픽추 정문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비 약 20 달러까지 총 200 달러가 넘었다. 그 비싼 요르단 페트라 입장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세계일주 중 당일 투어로 가장 출혈이 심한 날이었다.

새해 맞이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시 눈을 붙였다. 2시간 정도 잤을까, 새벽 3시 30분쯤 잠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아르마스 광장은 새벽 늦게까지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불야성이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행 콜렉티보(미니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막 미니버스 한 대가 출발하고 있었다. 아뿔싸! 이게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은…

마추픽추행 기차를 타려면 쿠스코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오얀따이땀보로 가야했다. 그런데 하필 비 때문에 길이 유실돼 30분 정도 더 걸린다고 했다. 20솔짜리 미니버스를 탄 시각은 새벽 4시 10분. 정확히 기차 출발 2시간 전이었다. 마음은 급했고, 운전대는 내 것이 아니었다.

덜컹임에 눈을 떴다. 잠에 곯아떨어져 순식간에 2시간이 흘렀다. 오얀따이땀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정확히 오전 6시 13분, 정신없이 기차역을 향해 뛰었지만 있어야 할 기차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동중 몇 번이나 정시 출발했다고,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제때 마추픽추에 올라가지 못한 것보다 새해 첫 날부터 지각을 한 게 내심 더 마음이 쓰였다.

역무원은 토끼 눈을 한 내게 매표소에 문의해 보란 말뿐이었다. 미니버스 주차장 옆 매표소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수 있는 표를 내밀었다. 매표원은 기차를 놓쳤으면 다시 표를 사야 한다고 했다. 기차 삯이 무려 50 달러였다.

“What?” 매표원은 내 날선 한마디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표 가격이 50달러나 하잖아요! 그런데 이걸 다시 사라고요?” 가늘고 흥분한 목소리톤에선 분노와 절망감이 묻어났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매표원은 본부에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실낱 같은 희망이 보였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스페인어로 통화를 마친 매표원은 왜 늦었는지 물었다.

대화가 될 분위기였다. 있는 그대로 “비로 길이 유실돼 돌아오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고 설명했다. 매표원은 본부 사무실에 가서 다음 기차 좌석을 배정받으라고 했다.

사(死)에서 생(生)으로의 귀환이었다. “휴~” 지각으로 놀란 마음을 인스턴트 커피 한 잔으로 달랬다.

마추픽추까지는, 오얀따이땀보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 내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산을 올라야 한다.

막걸리 한잔과 일출은 없었지만 그렇게 ‘젊은 봉우리’란 뜻을 갖고 있는 와이나픽추에 올라 마추픽추 전경을 감상하며 새해를 설계했다.

산을 내려와 마추픽추를 둘러보고 오후 3시쯤 다시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오얀따이땀보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시작은 좋지 못했지만, 끝은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어 이게 뭐지!?’란 독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추픽추의 감동을 달달한 글로 느끼고 싶었던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얄팍한 양심에 감흥 없는 곳을 감흥 있게 쓰는 걸 허락지 않으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던 친구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진짜, 마추픽추에 오르면 눈물이 나와?”

어느 방송에서 출연자가 마추픽추에서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다. 글쎄… 내 경험은 솔직히 ‘그냥 여기 왔구나’ 하는 정도.

이 수수께끼 같은 도시는 1911년 미국 예일대학에서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가르치던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에 의해 발견됐다. 발견 당시 마추픽추는 풀 속에 묻혀 있던 폐허나 다름없게 보였다.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에서 새해를 맞는 기분은 태백산·북한산에 올라 한 해를 설계하는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청나게 많이 본 사진, 그 느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이처럼 여행은 너무 큰 기대에 아무렇지도 않은 덤덤함으로 가끔 새로운 이야기를 해준다. 여행이 여행답기 위해선 내 마음 속에 근거 없이 부풀어 오르는 기대를 조금은 줄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해당 여행지의 사진을 미리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여행은 조금 모자른 듯 할 때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