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학년 대상 고전 독서 글쓰기 대회 >

글 · 이순옥 안양동안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역량중심 교육으로의 전환

지식전달 교육에서 역량중심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과서 기반 내용을 설명하고 듣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학생이 듣기만해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 수동적으로 임하게 되면 잠이 오고 흥미를 잃게 된다.

그 이상의 산출물을 기대하기 어렵다. 교사의 지식이 점점 강화되는 만큼 학생의 지식은 비례하여 약화할 것이다. 뇌가동이 현저히 떨어져 ‘학(學)’은 될지언정 ‘습(習)’이 되지 않는다. 과연 그 지식을 어디에 쓸 수 있단 말인가?

지식이라는 정보를 전달하여 이해시키는 것으로 교육의 목표가 설정되어서는 역량을 강화할 수 없다. 교육의 평가 또한 지식의 이해 정도를 확인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질문이 있는 수업을 하고 그 고민의 흔적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가야 한다. 사고의 확장을 유발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역량중심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한다.

역량교육 강화하기

알파고로 대변되는 시대의 도래로 경험 기반으로 우리 인간이 해왔던 일자리는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결국 일자리 경쟁이 인간 대 로봇으로 재설정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한다.

OECD는 이러한 시대를 맞아 청소년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으로 DeSeCo 프로젝트의 핵심역량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도구의 상호작용적 이용이고 둘째는 이질적 집단 내에서의 상호작용, 셋째는 자율적으로 행동하기이다.

학생들이 향후 사회에서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으로 학교 교육에서는 이러한 역량을 교육하려는 방법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아래에서 우리나라도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통합사회, 통합과학 등 문·이과 공통과목을 신설하고, 인문·사회·과학기술의 기초 소양 교육을 강화하며, 교과별 핵심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학습 내용을 적정화하고 학생 활동 중심의 교실 수업을 위한 교수·학습 및 평가 방법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공지하였다.

학교 현장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교육의 체질도 바뀌어야 한다는 국내·외적 선전포고로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장이다. 이러한 외침에 맞춰 얼마나 발 빠르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을까?

아무리 교육 분야가 보수적이라 해도 로봇이 일자리를 잠식하게 될 가까운 미래 사회로 우리 아이들을 내보내야 하는데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허접하기 짝이 없다. 다시 말해서 무기 없이 전쟁터로 내모는 아들을 보는 부모의 심경이랄까. 그 이유는 학교가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정보 활용을 위해 스마트폰처럼 좋은 기기가 없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들이 게임이나 메신저를 하고 노래를 듣는다는 등의 이유로 등교 후에는 수거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 중에 정보검색 등이 필요해 활용하려 해도 할 수 없다.

학교의 컴퓨터실 또한 3차 정보화 혁명기에 보급된 것이 많아 성능이 부족하여 소극적인 형태로 기술시간 정도에만 활용할 수밖에 없다.

학교 현장은 참으로 학교 밖 변화의 역동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만큼 담이 높다는 의미이다. 아직도 폐쇄적으로 기존의 틀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래서 OECD의 핵심역량인 도구의 상호작용적 이용과 이질적 집단 내에서의 상호작용하기의 역량 개발에 한계를 보인다. 폐쇄성이 강한 집단의 규격화된 일상에서 자율적 행동하기의 역량 개발은 어렵다. 우리 교육이 대폭으로 시스템의 변화를 꾀하지 않는 이상, 아이들의 경쟁력을 높이기는 어렵다.

고전 독서 글쓰기를 기획하다

인지 시대에는 지식의 전달과 이해의 측면보다는 표현의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으며 나도 강하게 공감한다. 기존의 교육이 표현하기를 간과했기에 오늘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질문할 기회를 한국인에게 부여했을 때 말 못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표현하는 것은 창작이며 창의적 사고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역량개발과 연계된다. 표현하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뇌의 활동을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교육활동 중에 표현하기에 해당하는 활동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지식, 안목, 교양 그리고 학습역량 함양을 위하여 ‘독서와 글쓰기 활동’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게다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검증 받아온 고전을 엄선하여 진행하는 ‘고전 독서 글쓰기’야 말로 진로 잡고 인성도 잡을 수 있는 고품격 콘텐츠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첫 번째 고전으로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의 《의무론》을 선정했다.

이 책은 용어가 낯설고 라틴어를 번역한 글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런데도 국가적 리더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정의와 용기 그리고 인내와 지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의무론》은 참으로 가치 있는 책이다.

‘진로job고 인성job기 고전 독서 글쓰기 프로그램’

학생의 역량은 교사의 역량을 지렛대로 삼아 커진다. 나는 올해 ‘진로job고 인성job기 고전 독서 글쓰기’라는 프로그램을 야심 차게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나의 담당 부서가 진로 인성 부이므로 부서 업무와 연계하여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이 활동을 위하여 1월 초부터 매주 1회 고전독서모임을 하였다. 책 한 권을 선정하여 일정 분량을 읽고 핵심 내용, 핵심 개념(Key Concept) 그리고 시대적 배경 등 각자 정리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전이라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내용 면에서 공감되는 경우가 많아 상황별로 적용되는 예시를 생각하며 의미 있게 출발했다.

고전에 대한 선입견은 ‘어렵고 재미없다’ 이다. 분명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책은 틀림없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값진 것이다. 사색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는 점에서 고교 시절에 고전 한 권의 완독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4월에 자율동아리로 ‘《의무론》 고전 독서 글쓰기 활동’에 참여할 학생을 홍보·모집하였다.

<고전 독서 글쓰기 자율 동아리>

1학년 2명, 2학년 4명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중상위권 학생들이었고 성실한 아이들이라 성공 예감이 들었다. 3월 29일에 처음으로 모여 운영방식에 대해 회의를 하였고, 참여 학생 모두의 시간을 고려해 매주 목요일 오전 8시에 모여 1시간 동안 제출한 과제를 중심으로 발표시간을 갖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1학기에 고전 1권을 모두 읽기 위해 매회 40쪽의 분량을 읽고 단락별 핵심주제문장을 정리하여 모임 전날 메일로 보내도록 하였다. 한 주, 두 주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더욱 고무되고 있음을 느꼈다. 자신들이 읽고 엄선해서 정리해오면 모두가 돌아가면서 발표를 했다.

발표하면서 서로 다르게 주제 문장을 써왔음을 확인하였고 이는 다른 관점에서도 정리할 수 있음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자율동아리의 특성에 맞게 나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교육적 목표에 도달하도록 소극적으로 학생들을 도와주는 역할만 하였다. 일주일에 한 시간으로는 부족했지만 학생들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왔기에 아쉬운 대로 목표에 도달하고 있다.

자율동아리 외에 ‘진로job고 인성job기 고전 독서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대회를 개최했다. 이름하여 ‘고전 독서 글쓰기 대회’다. 3월 말에는 고3 학생을 대상으로 하였더니 16명이 신청하였고, 1, 2학년을 대상으로 한 5월 19일에는 54명이 신청하였다.

대회 글쓰기 방식은 50분 동안 A4 용지 2장의 앞뒤에 정리한 내용과 함께 자신의 의견을 기술하여 키케로의 의무론에서 말하는 도덕적 선과 유익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대회의 목표는 첫째, 의무론의 내용을 읽고 진로를 생각하고 인성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고전을 읽을 기회를 주기 위한 ‘고전 독서 글쓰기 운동’의 저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올해가 처음이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이 상시로 작동되면 가랑비에 옷 젖듯 학생들의 역량은 서서히 높아지고 양질의 교육력을 갖는 전략이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교사도 함께 ‘고전독서 전문적 학습공동체’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학생들이 작성한 ‘비전 설계 작성’ 원고를 보면글쓰기 방법을 가르칠 필요성이 절실해 보인다. 어떤 학생은 문단 나누기를 전혀 하지 않고 통으로 작성하기도 하였고 어떤 경우에는 한 문장에 상반되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했다.

내용의 빈약함도 학생들에게 독서 교육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글쓰기 작성법부터 다양한 글쓰기 활동이 요구된다. 초·중·고에서 수준에 맞는 독서 글쓰기 활동은 무엇보다도 유의미하다. 그나마 독서 후 글쓰기 활동은 소재를 찾기가 수월하고 자신이 읽은 내용을 요약하고 문단별로 정리하거나 주제를 잡아 써나가고 자신의 의견을 담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다.

글쓰기 전에 읽은 내용을 가지고 서로 토론을 거쳐도 좋다. 그럴 경우 읽기-토론-글쓰기 과정을 거치면서 내용과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 효율성을 꾀할 수 있어 좋다.

고전 독서 글쓰기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적은 의견을 읽어보았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어렵고 딱딱하여 읽는 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도덕적 선과 유익함에 대한 키케로의 정의와 예시를 접하게 되었고, 저자가 집필할 당시의 시대상과 현재의 시대상을 비교하여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읽기 시작할 때의 중압감이 점점 호기심으로 바뀌었다고 했으며, 의미 있는 활동을 하게 해 준 학교에 감사한다고 한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의 잠재력은 교사의 의지와 지도 그리고 시스템 구축으로 개발할 수 있다.

기존의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깊게 사고하도록 하는 교육의 방향성을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데 도전적으로 참여하는 교사로 거듭나야 한다.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교육현장의 주체가 해야 할 의무다. 자율동아리 학생 6명은 배움의 자세로 매주 목요일 아침 8시에 가벼운 설렘의 발걸음을 재촉해왔다. 우리 교사는 그러한 학생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본다. 자존감을 얻는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