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의 역사 속 교육] 1978년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정재걸의 역사 속 교육] 1978년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 지성배 기자
  • 승인 2017.08.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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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교수

 

Ⅰ. ‘우리의 교육지표’

1978년 6월 27일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은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한 뒤, 이는 우리의 교육지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대학인으로서 우리의 양심과 양식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교육의 실패는 교육계 안팎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자발적인 일치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민주주의에 우리 교육이 뿌리박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은 바로 그러한 실패를 집약한 본 보기인 바, 행정부의 독단적 추진에 의한 그 제정경위 및 선포절차 자체가 민주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며 일제하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강조되고 있는 형태의 애국애족 교육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날의 세계 역사 속에서 한때 흥하는 듯하다가 망해버린 국가주의 교육사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부국강병과 낡은 권위주의 문화에서 조상의 빛난 얼을 찾는 것은 잘못이며, 민주주의에 굳건히 바탕을 두지 않은 민족중흥의 구호는 전체주의와 복고주의의 도구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또 능률과 실질을 숭상한다는 것이 공리주의와 권력에의 순응을 조장하고 정의로운 인간과 사회를 위한 용기를 소홀히 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에 우리의 교육자들은 각자가 현재 처한 위치의 차이나 기타 인생관, 교육관, 사회관의 차이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은 우리의 교육지표를 합의하고 그 실천을 다짐한다.

1. 물질보다 사람을 존중하는 교육, 진실을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위하여 교육의 참 현장인 우리의 일상생활과 학원이 아울러 인간화되고 민주화되어야 한다.

2. 학원의 인간화와 민주화의 첫걸음으로 교육자 자신이 인간적 양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적 정열로써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배워야 한다.

3. 진실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며, 그러한 간섭에 따른 대학 인의 희생에 항의한다.

4. 3·1 정신과 4·19 정신을 충실히 계승 전파하며 겨레의 숙원인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민 족역량을 함양하는 교육을 한다.

이 성명서가 발표되자 그날로 11명의 교수는 중앙정보부 전남지부로 연행되었다. 이들은 이틀간씩 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그 가운데 송기숙 교수는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물론 풀려난 교수들도 전원 해직되었다.

당초 이 성명은 연세대 해직교수인 성내운 교수와 전남대 송기숙 교수가 작성하여 전남대 교수들뿐만 아니라 광주 및 서울의 각 대학 교수들에게 서명을 받아, 내외언론에 동시에 발표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서명 작업이 늦어지고 또 기관에서 눈치를 채는 바람에 전남대 교수들만의 서명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서울에서 서명에 참여한 이화여대의 이효재 교수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으며, 성내운 교수도 마침내 1979년 1월 체포되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 자체로 구속되고 해임되는 사태가 초래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송기숙 교수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에 기록되어 있듯이 ‘국민교육헌장과 현재의 교육제도를 비방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일까?

Ⅱ. 국민교육헌장의 제정과정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6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이 권오병 문교부 장관에게 제정을 지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설정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생활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은 민족만년의 대계를 위해 중요하니, 각계각층을 총망라해서 민족주체성의 확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연구하라”고 지시하였다.

국민교육헌장 제정을 위한 기초 작업은 박성탁, 김동욱 장학관 및 은용기, 김종빈, 편수관 등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기초 작업을 통하여 바람직한 인간상 내지는 국민상의 정립에 필요한 덕목들이 범주별로 분류되어 정리되었다.

이 덕목을 근거로 박종홍, 이은상, 이인기, 유형진, 정범모 등 26인의 헌장초안 기초위원들은 약 1주일간의 작업 끝에 초안을 완성하여 7월 26일 청와대에서 박정희 주재 아래 첫 심의회를 열었다.

한편 문교부는 7월 23일 44명의 국민교육헌장 심의위원을 발표하였다. 심의위원은 교육계·문화계·종교계·언론계·경제계·정계·정부대표를 망라하는 인물로 구성된바, 결코 박정희 개인에 대해 호의적인 인물만을 선정한 것은 아니었다. 헌장 심의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교육계 | 박종홍, 이인기, 최문환, 임영신, 이종우, 김옥길, 이선근, 엄경섭, 한흥수, 고황경, 권오익, 유형진, 백현기, 정범모(이상 14명)

문화계 | 이병도, 박종화, 김팔용, 이은상, 안호상(이상 5명)

종교계 | 한경직, 최덕신, 이청담, 김수환(이상 4명)

경제계 | 박두병, 홍재선(이상 2명)

언론계 | 고재욱, 장기영, 장태화, 최석채(이상 4명)

정 계 | 이효상, 윤제술, 길재호, 박순천, 육인수, 백남억, 김성희, 고흥문(이상 8명)

정부대표 | 정일권, 박충훈, 권오병, 이석제, 홍종철, 김원태, 박희범(이상 7명)

※ 헌장 심의위원 명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즉 유형진은 50명이라고 하고(‘국민교 육헌장 제정의 비화’, 《교육평론》 1978년 11월, 23쪽) 국민교육협의회의 《국민교육헌장의 자료총람》(22~23쪽)에서는 44명, 한국청년문화연구소의 《한국교육 2000년사》(377 쪽)에는 48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위의 명단에서 보듯이 국민교육헌장은 당시 각 분야의 지도급 인사들이 참여하여 작성하였다. 이들은 6차에 걸친 수정작업에 참여하여, 11월 26일 정기국회 본회의에 수정안을 상정, 마침내 국회 24차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은 12월 5일 시민회관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전 국민에게 선포하였다.

국민교육헌장은 제정 직후 그 실천을 위해 강력한 행정조치가 내려졌다. 우선 전국의 학생, 공무원에게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도록 하는 한편, 필요한 곳에 반드시 이를 게시하고, 행사 때에는 이를 반드시 낭송하도록 하였다.

학교 교육에도 국민교육헌장 실천을 위한 강력한 조처가 내려졌다. 첫째, 교육과정 개편시 헌장이념 구현을 기본 방향으로 하고, 둘째, 헌장이념을 기반으로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재검토하여 개편하고, 셋째, 모든 장학자료를 통해 헌장이념 구현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넷째, 학생들의 일상생활도 반드시 헌장의 규범에 입각하도록 하였다.

물론 새마을 교육을 위시한 사회교육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강력한 시행조치가 내려졌다. 그리고 문교부는 《국민교육헌장 독본》 265만 부를, 그리고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헌장 그림책》 130만 부를 제작·배포하였고 또 헌장이념을 담은 영화와 음반을 제작·보급하였다.

Ⅲ. 유신교육

헌장 속에 들어있는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국민교육헌장은 1994년 초 모든 교과서의 속표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폐지의 이유는 ‘우리의 교육지표’에서 주장하였듯이, 국민교육헌장이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국가주의적 교육이념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국민교육헌장이 국가주의의 교육이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국민교육헌장 선포 1주년 기념식에서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의 제정 의의를 “우리 민족이 지녀야 할 시대적 사명감과 윤리관을 정립한 역사의 장전이며, 조국 근대화의 물량적 성장을 보완·촉진해 나갈 정신적 지표이며, 국가의 백년대계를 기약하는 국민교육의 실천지침”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2주년 기념사에서 “고도성장의 추세를 보완·촉진해 나갈 정신사의 혁신과 우리 고유의 정신적 전통의 재현 그리고 70년대 우리들의 사명감을 간결히 집약한 국민교육의 지표”라고 재정리하고, 3주년 기념사에서는 “근대화의 물량적 성장을 이끌어 나아갈 올바른 윤리관과 민족을 규정한 정신계발의 지침”으로 전개했다.

이처럼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을 점차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정신의 개조’로 재해석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재해석의 결론은 그가 창안했다고 주장되는 ‘제2경제’의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러한 사실을 박정희는 결코 숨기려하지 않았다.

······제2경제라는 용어 자체는 확실히 정신이, 물질적 가치를 뜻하는 경제보다 앞서야 되리라고 보는 측에서는 아무래도 ‘제2’라는 표현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고 그만큼 물의도 있었다.

이리하여 더욱 순화된 표현 내지 좀 더 구체적인 교육지표의 설정제시가 요망케 되자 그것이 ‘국민교육헌장’의 제정·공포로 발전했다.

실로 제2경제는 그 용어의 표현 이상으로, 당시 한국교육계 및 국민 일반사회에 팽배해 있던 가치관의 혼란, 교육 이념의 부재현상이라는 것의 대증요법으로서 정부가 취한 긴급조치였다는 점에서 그 교육사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국민교육헌장은 그 수많은 개념과 덕목의 압축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개념은 ‘근대화’이고, 또 근대화를 위한 ‘국민의식의 개조’였다.

즉 교육을 국가발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보는 ‘발전교육론’의 구체적 장전이었다. 따라서 국민교육헌장은 70년대의 안보교육, 국적있는 교육, 민족 주체성 교육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72년 10월 유신의 선포 후,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 선포 4주년 기념사에서 “10월 유신의 정신이 국민교육헌장의 이념과 그 기조를 같이하는 것이며, 이 헌장 이념의 생활화는 곧 유신과업을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첫 길”이라고 선언하여 ‘10월 유신=국민교육헌장’의 등식을 완성하였다.

따라서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비판은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여, 송기숙 교수는 당연히 유신헌법에 대한 어떠한 ‘부정·반대·왜곡 또는 그 개정·폐기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를 금하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것이 되었다.

1993년 7월, 야당 국회의원들이 오병문 문교부 장관에게 국민교육 헌장의 폐지 용의를 묻자, 오 장관은 “폐지 쪽으로 방향을 잡고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답변하였다.

다음 달 오 장관은 서울대 교육연구소에 국민교육헌장 폐지의 타당성 여부를 연구토록 의뢰하였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에 관계없이 1994년 이후 모든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삭제하였다.

Ⅳ.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과 교육 민주화 운동

송기숙 교수는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의 1심 공판에서 당시의 교수들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4월 19일에 우리 교수들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가? 4월 19일은 물론 그 앞뒤로 며칠간을 - 그리고 바로 지난 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도 그랬다 - 교수들은 마치 강의시간표를 짜듯이 누구는 도서관 앞에서 몇 시부터 몇 시, 누구는 사범대학 벤치 옆에서 몇 시부터 몇 시, 이런 식으로 보초를 서서 학생들을 감시해야만 했다.

그뿐만 아 니라 학생들이 학원 안에서 진실을 들을 기회가 없어 교회나 강연회 같은 데에 소위 문제 인사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러 가면 교수들은 또 시내에서조차 지정된 시간, 지정된 장소에서 보초를 서야 한다.

서 있다가 자기가 맡은 학생이 오면 어떻게든지 그를 붙들어 서 강연이 끝나는 시간까지 딴 데서 시간을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나도 YMCA 앞에서 보초를 섰다가 내가 맡은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저녁을 사주었고 술도 사주었다.”

8월 28일 광주지법 합의 3부는 송기숙 교수에게 징역 및 자격정지 각 4년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은 광주지역의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하여, 2년 후 광주 민주항쟁의 씨앗이 되었다.

또한, ‘자유실천문인협회’, ‘양심수가족 협의회’, ‘한국인권운동협회’, ‘한국기독교협의회 인권위원회’ 등 수많은 민주단체가 이를 ‘한국교육사의 새로운 장’을 연 사건이라고 지지 성명을 발표하여,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은 1980년대 교육 민주화운동의 이념적 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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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배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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