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은미 교육학 박사,

중학생과 고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다.

카이스트에 다니는 학생 중에서 과학고나 영재고 출신 학생들의 성적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일반고 출신의 학생들보다 떨어진다는 신문기사가 최근에 보도되었다.

그 기사에 의하면 2013년 카이스트 신입생의 경우, 1학년 때는 과학고와 영재고 출신 학생들의 성적이 일반고 출신 학생들보다 높지만, 3, 4학년이 되어서는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과학고와 영재고 출신 학생들을 추월한다고 한다.

또 해당 대학교수의 말에 따르면, 많은 학생이 어려운 문제풀이는 잘하지만 개념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경우가 많고,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공 학습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고도 한다.

이 기사에서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사교육에 의존한 선행학습으로 지목하고 있다. 즉 영재고나 과학고에 진학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고도의 선행학습에 시달리다보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소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선행학습에 덜 매달리는 일반고 출신 학생들은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있어서 고학년이 되어도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더 적게 할 것이라는 추측을 전제로 영재고·과학고 출신 학생들과 일반고 출신 학생들의 학습 패턴을 과도하게 단순화하여 비교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고 학생이라고 해서 사교육을 적게 했을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카이스트에 진학할 정도의 대한민국 최상위권의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선행학습을 했을 것이고, 사교육도 받을 만큼 받았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사교육이나 선행학습 없이도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학생들은 극소수의 진정한 영재 또는 천재이므로 예외로 놓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교육과 선행학습의 양으로 그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영재고나 과학고 학생들은 학기 중에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주말 외에는 사교육을 받을 시간이 없다. 이는 일반고 학생보다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니다.

또 일반고 출신 학생이라고 해도 모두 처음부터 일반고를 가려고 했던것은 아닐 수 있다. 초·중학교 시절에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사교육을 통해서 영재고나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일반고에 진학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즉 출신 학교에 따라 사교육과 선행학습의 양이 달라져서 그렇다는 것은 설명력이 떨어진다.

그 기사는 아직 전문적인 학문과 연구의 세계에 온전히 입문하기도 전인 학부 단계의 학생들을 마치 그들의 최종적인 업적을 이미 다 이루기라도 한 것인 양 섣부른 일반화로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 된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의 대학 신입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 과학고 출신, 일반고 출신 할 것 없이 공부에 대한 피로도가 높다고 본다.

특히 고등학교 시기부터 대학 과정에 해당하는 내용을 미리 학습하는 과학고·영재고 출신 학생들은 전공에 집중하는 고학년으로 의 진입에 있어서 더욱더 신선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우수하고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만들어져 가는 성장의 과정 중에 있으므로 슬럼프도 겪을 수 있다.

그동안 한 방향으로 달려왔던 학생들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처음으로 곱씹고 있는지, 학점의 하락 이면에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그들만의 뒤늦은 성장통이 있는지도 모른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영재고나 과학고 출신 학생들을 학점에서 앞지르고 있다는 것은 어찌 됐든 흥미로운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추후의 실증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두 집단 간에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의 영향력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나는 그 요인을 ‘학교’에서 찾아보고 싶다.

이것은 일반고를 옹호하고 특목고를 폐지하자는 부류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다만 무엇이 학생들을 학습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며 창의적이고 유의미한 학습 결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지 그 교육학적 동력을 학교 안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이다.

학교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공부도 있고 시험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있고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친구관계도 있고 상하관계도 있다.

잘 사는 아이들도 있고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도 있다.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원치않는 상황을 견뎌내야 할 때도 있다. 주요과목이 있고 입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비인기 과목도 있다. 칭찬도 있고 훈육과 벌도 있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놀기도 한다.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이 일에 평생을 헌신하리라 결심한 어른들도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지만, 그 일의 효과에 의문을 갖는 눈빛을 견뎌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학교는 학습과 생활의 다양한 관계와 경험의 양상들이 매일같이 펼쳐지는 곳이다.

학교에서의 교육활동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통제된 조건 하에서 필요한 자원을 투입하고 결과물을 뽑아내는 수단적 행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학교에서의 수업을 유명 입시 강사의 동영상 강의로 대체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어도 초중등학교는 전문적 직업 세계로의 진입 이전에 통합적이고 보편적인 역량과 경험을 재구성해나가고 그 기반을 형성하는 곳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능력, 계획을 세워서 실행에 옮기는 능력, 좌절과 희망을 다룰 줄 아는 능력, 자신과 전체의 관계를 깨닫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능력 등을 배우는 곳이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인내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힘을 길러주기 위한 곳이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가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이러한 기능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학교는 본래 이러한 소임을 맡은 곳임이 분명하고, 여전히 오늘도 본분을 다 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고 믿는다.

다시 카이스트 학생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두 학생 집단 간에 나타난 성적의 전복은 분명 ‘뒷심’ 부족 때문이다. 그런데 이 뒷심은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학교를 통해서 얻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고는 영재고나 과학고보다 과학교과에 특화된 깊이 있는 수업과 교내활동이 약하지만 대신 더 다양하고 폭넓은 학교 활동과 풍부한 인간관계는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고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과학과 관련된 교과학습 능력은 영재고나 과학고 학생들보다 떨어질지 모르지만 다양한 교과와 관심분야에서의 경험의 통합 능력은 더 탄탄하게 갖출 수도 있다.

이것이 일반고 출신 학생들의 뒷심이 되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치지 않고 전공 공부에 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학생들 스스로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 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나의 가설이다. 그러나 개연성 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