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우 순천향대학교 교수, 한국교육평가학회 회장

현대사회에서 개인, 조직, 심지어 국가도 평가를 받는다. 교육분야에서 '교육평가'는 학생들의 교육 성취를 재는 활동이기도 하고 교육 기회를 학생들에게 적절히 배분하기 위한 절차나 수단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사실상 세계적으로도) 교육은 경쟁의 장이고 경쟁은 평가를 통해 판가름나야 한다. 이때 평가는 물론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에서 평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에듀인뉴스가 '교육평가를 평가한다'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전문가들의 교육평가에 대한 진단과 대안 제시부터 좌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준비한 기획에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정권 교체 초기에 대두되는 이슈 중의 하나가 대입 제도의 변화를 포함한 교육 평가 문제이다. 교육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교육과정을 어떻게 개정할 것이며,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등에까지 관심을 두는 일반 국민은 드물다.

창의·융합형 인재의 핵심 역량을 제시하고, 문·이과 구분 없이 이수하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교과를 신설하고, ‘많이 알게 하는 교육’에서 ‘배움을 즐기는 행복 교육’으로 전환하겠다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은 교육 전문가들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에 비하면 서운할 정도로 낮다.

그러나 수능의 점수 보고 방식이 어떻게 되며, 대입 전형 요소의 비중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에 대한 관심은 지나칠 정도로 높다. 그런데 교육 평가에 대한 일반 국민 의 관점은 자기 자녀의 처지에 초점을 둔 것이어서 민주적인 절차를 통 한 합리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us Knot) 과 같이 얽혀 있어서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알렉산더처럼 단칼에 베어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것의 본질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교육 평가의 측면에서 세 가지 점을 짚으며 교육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Ⅰ. 문제 진단

단일 실재냐 복합 실재냐?

교육 평가(評價; E-Value-tion)의 뜻을 살펴보면 ‘교육의 가치를 드러내기’ 또는 ‘가치를 매기는’ 것이다. 교육에 관련된 무엇의 가치를 드러내거나 매기는 것이 평가라는 것이다.

학교 교육 평가의 대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학업 성취도’ 일 것이다. 성취도는 지능이나 성격 등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실재가 아닌 심리적 실재이다.

길이, 무게, 온도 등과 같은 물리적 실재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 정해진 잣대로 오차 없이 측정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심리적 실재는 전문가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개념을 상정하고 그에 맞는 실재를 가정하고 있을 뿐이다.

물리적 실재는 다른 실재와 상관없이 그냥 존재한다. 단일 실재인 길이를 재는데 누가 재느냐가 문제될 리 없다. 얼마나 정밀한 잣대를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람의 키를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재지 않고 밀리미터까지 정밀하게 잰다고 해서 실재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잣대를 달리해서 쟀을 뿐이다.

그러나 성취도를 비롯한 심리적 실재는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알 수 가 없을뿐더러 전문가들이 어떻게 합의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복합 실재이다. 지능검사로 지능을 재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지능이 존재 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지능 지수까지 만들어 널리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능의 존재를 직접 드러낸 것은 아니다. 몇 개 문항에 대한 반응으로 얻은 간접적인 증거 들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만든 수치에 불과하다.

길이를 재서 얻은 수치와 지능검사를 통해 얻은 지능 지수는 전혀 딴 판이다. 길이를 눈대중으로 재는 대 신에 밀리미터까지 정밀하게 재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지능 지수나 성취도 수준을 정수 점수나 몇 개의 등급 대신에 소수점까지 포함해서 세밀하게 보고하는 것이 과연 더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세밀한 소수 점수보다는 성근 등급 점수가 더 바람직한 점수 보고 형태일 수도 있다.

가치 맥락 속의 인식

길이나 무게와 같은 물리적 대상은 단일 실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재는 사람의 가치 맥락을 고려할 필요 가 없다.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기계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정밀 하게 측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능이나 성취도와 같은 심 적 구인은 복합 실재이기 때문에 그 구인을 재는 평가자의 가치 맥락을 떠나서는 인식될 수 없다.

지능검사를 만든 심리학자의 지능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거나, 지능에 대한 평가자의 가치관이 맥락을 구성하지 않는 상태에서 지능이 평가될 수는 없다. 심리적 구인 중의 하나인 성취도도 마찬가지다.

즉, 복합 실재인 심리적 구인을 대 상으로 하는 한 평가자의 가치관이 배제된 객관적 평가는 가능하지 않다. 이른바 주관식 평가와 객관식 평가의 구분은 채점 과정에 채점자의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느냐에 따른 구분일 뿐이다.

따라서 객관식 평가는 비록 신뢰가 갈 수는 있어도 타당성이 부족하므로 그 효용성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낮다. 수능이나 대학별고사보다 고교 내신의 예언 타당도가 더 높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판정보다는 합의, 결정보다는 변증법적 지양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심리 평가는 물리 측정의 전통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그런데 우리는 아쉽게도 심리 평가와 물리 측정 간에 평가 대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일부는 오히려 이들 둘이 같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단일 실재의 평가 과정과 마찬가지로 복합 실재의 평가를 수행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의미가 있기는 어렵다.

물리 측정의 결과를 바탕으로 현 상태를 판정하고 미래의 사태를 예측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결정론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측의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현 상태를 함부로 판정할 수 없을뿐더러 그의 미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평가자간의 합의로 학생을 이해하는 것이고, 더 많은 증거로 변증법 적인 방법을 지양하는 것이다.

점수는 수치로 표현된 것이니 정확하고 믿을 만하다거나, 수치로 표현된 현재의 성취도를 바탕으로 미래의 성취를 정확히 예견하고 통제 할 수 있다는 믿음은 헛된 것이다.

왜 그렇게 답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등은 점수로 표현되기 어렵겠지만 심리적 실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방편 들이다. 소수점으로 표현된 점수보다 책과 노트에 끄적댄 학생의 낙서가 더 효용한 성취 증거일 수 있다.

Ⅱ. 개선 방향

좁은 지면에서 학교 교육 평가 전반을 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2021학년도 수능 개편 방안을 논의하는 시점에 맞추어 대학 입시에 한정해서 몇 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공교육 정상화를 지향하는 대입 전형

대입 전형의 주요 3요소인 대학수학능력시험, 학생부, 대학별고사는 각각 고유 기능이 있고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 전형 요소들이 공교육의 정상화를 돕는 방향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현행 대입 제도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다.

공교육은 사회적 약자의 안녕을 위해 탄생하였고, 현재도 그것이 존재 이유이다. 우리는 국가 교육과정으로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대입 제도도 예외가 아니다. 대입 전형의 3요소를 두루 포함하고, 각 전형 요소의 고유 기능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수립된 1994학년도 대입 제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공교육의 위기를 실감하고는 내신을 강조하는 쪽으로 개편한 2008학년도 대입 제 도도 좋은 예이다.

대학 교육의 자율화나 질 제고는 입시 제도의 자율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학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화 와 교수-학습의 자율화로 이룩할 수 있다.

대학이 고교 교육을 믿지 않듯 기업체는 대학 교육을 믿지 않고 있다. 대학의 다양한 학과에서 여러 과목을 수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입 사원 선발 전형의 주요 요소는 영어, 컴퓨터, 다양한 이름으로 표현되는 언어 추론능력뿐이다.

각 전공에서 얻은 학점은 각 개인의 학력(學力) 을 변별하지 못할 만큼 인플레이션 돼 있으며, 그저 학력(學歷)의 증거 일 뿐이다. 대학은 기업체의 입맛에 맞는 교육만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초래한 것은 대학인들 스스로가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서로 전혀 관계없는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대입 전형 제도를 통해 대학 교육의 자율화를 꾀하고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억지이다.

자율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북돋우는 방향의 대입전형

공교육의 정상화 노력에는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에서 최소한의 것은 학교가 특정 몇몇 대학의 입시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고, 교육과정에 입각한 각 학교의 자율적인 교육이 존중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학업성취도 또는 학업 성적에는 ‘능력’과 ‘노력’이라는 두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 능력은 이미 주어진 조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것은 오랫동안 부모 또는 조부모 지원의 불공정, 사회적 기회의 불공정이 누적되어 나타난 집약체로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공정한 응분의 몫 (Desert)이라는 기준으로서는 한계가 존재한다.

노력이라는 기준 역시 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배분적 정의의 기준으로서 정당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평가하려는 객체가 무엇이며, 그것을 결정하리라고 짐작되는 선행 변수 또는 선행 제약 조건이 공정하게 평가의 의사 결정 과정에 고려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권력 배분 갈등은 대학 입시에서 최고점에 이른다. 기득권층은 공권력까지 무시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려 한다. 그것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법칙이다.

그래서 공교육의 정상화가 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생각한다면, 대학 입시 제도의 결정을 대학 자율에 맡겨서는 안 된다. 각 전공의 적격자를 판단하는 주체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학문 공동체여야 한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일류 대학들에게 전공 적격자 선발권을 맡긴다면 이기적인 판단에 이를 수밖에 없다. 대입 정책을 꾸미는 각 대학의 보직자들은 전쟁터의 사령관들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동선의 실현이 아니라 전쟁에서 지지 않는 것이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지향하지 않는 그 어떤 전형 방법도 일류 대학의 것으로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각 대학은 경쟁적으로 다양한 전형 방법을 만들어 냈다. 이제는 그것들이 너무 많아 입시 전문가들조차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다.

이런 식의 변화가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형 방법(예, 지역균형전형)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한 오만함이 깃들어 있다.

고교 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잘 이수한 훌륭한 학생이 받아야 할 합당한 몫을 받은 것뿐인데, 이를 마치 구걸하듯이 받도록 하는 것은 공정성을 가장한 불공정 행위이다.

대학은 기업으로부터, 고교는 입시로부터 자유롭게

대학 교육의 자율성과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공교육 정상화의 일환이다. 여기에서 관건은 기업체의 요 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기업체의 입맛에 맞는 교육만을 강요당하지 않는 상태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소홀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학 또는 학과 본연의 학문 탐구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교 교육 정상화의 관건 역시 대입 전형 제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각 학교는 교육과정에 따라 각자의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교육하고, 대학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적격자를 선발하면 그만이다. 대입 제도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화 되어야 한다. 고교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 사람들의 대학 합격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아야 한다.

현재까지의 많은 실험과 노력을 종합해 볼 때, 고교 내신을 중시하는 대입 제도가 공교육의 정상화에 가장 부합한다고 본다. 내신 위주의 선발은 고교 간 격차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고교 간 격차가 있으므로 유의미하다고 본다.

교육과정의 개정 취지에 맞는 교육평가로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력, 서로 다른 지식을 융합·활용할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고 한다.

그런 취지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의 핵심 역량을 제시하고,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기초 소양을 갖추도록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과목을 개설한다.

이런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 수학 적격자를 선발하려 한다면 당연히 창의· 융합형 인재의 핵심 역량을 측정하는 평가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특히 수능에서 문·이과 구분 없이 통합과학과 통합사회가 필수적으로 부과되어야 할 것이다.

수능을 국가 수준의 절대기준평가로

개별 학교 단위의 경쟁 선발 시험에서 상대평가하는 것을 나무랄 것은 없다. 그러나 수능과 같이 국가 수준에서 거의 모든 학생에게 부과 하는 시험이라면 절대 기준 평가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비교육적인 경쟁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교육이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이 상대 평가 체제로 시행되면 교육과정이 정한 최고 목표 수준을 이미 달성한 학생이라도 남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무한 경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수학이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과목이라는 것을 안다면 인문·사회계를 지망하는 수험생이라 하더라도 향후 대학 공부에 필요한 국어나 사회 과목보다는 이른바 변별력이 높은 수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 할 수밖에 없다.

변별력이 낮은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것보다 변별력이 높은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대입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능과 같은 국가 수준의 평가에서 절대 기준 평가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각 수준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미리 수험생들에게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어 능력을 9개 등급으로 나누고 또 각 등급의 능력을 갖춘 학생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역량이 무엇인 지를 미리 공지한다면 최고 수준의 등급에 도달한 학생이 굳이 수능 영 어 시험 준비에 시간을 더 투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쓸데없이 비교육적인 경쟁 속에 매몰될 필요 없이 더욱더 의미 있는 공부에 시간을 할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입전형 3요소의 균형 잡기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입 전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표현과 비중이 달라질 뿐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국가 교육과정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의 국가 공통 시험 (우리나라의 경우, 수능),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 운영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의 고교 내신, 대학의 전공별 독특성과 고등 교육의 역사적인 자율 정신을 유지하려는 목적의 대학별고사 등이 그것이다.

고교 교육 정상화는 수능의 영역이나 과목을 늘려 해결할 것이 아니라, 고교 내신 성적의 실질 반영 비율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은 고교 교육의 파행을 재물로 얻을 것이 아니라,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수능은 국가 교육과정의 통제 목적에 덧붙여, 대학의 수준이나 학문 영역의 독특성에도 불구하고 대입 희망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질을 평가하는 것에 그 기능을 한정해야 한다.

필자는 수능 시험에 대한 세간의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거 어느 시험보다 훌륭한 대입 적격자 선발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문항 개발 전문가들이 그간 축적된 지혜를 모아 문항을 만들고, 모든 국 의 애정 어린 관심 속에서 시험이 치러지고, 모범 답안을 공개하며, 이의 제기 기간을 거쳐 결론을 내리는 민주적인 절차는 세계 어느 나라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물론 수능 시 험에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적된 결함들은 수능 시험 그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수능 시험에 부여한 지나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대입 적격자를 선발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수능시험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다. 예언 타당도 높은 대입 적격자 선발 도구로 기능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대입 전형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객관식 문항 위주의 시험으로 한정할 것을 기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새 교육과정의 정신을 구현한다는 명목으로 수능의 시험 영역이나 과목을 계속 늘려 가면서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해 줄 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게다가 사교육비 증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도록 시험의 난이도나 문항 내용을 제한하며 또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하다.

Ⅲ. 맺음말

대학 입시 제도에 관한 한 국민 간 의 합의 도출이 어렵고, 어떤 방안이 제시되어도 모두가 불만일 수밖에 없다. 각자 자기 자식의 처지를 바탕으로 제도의 장단점을 파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이 경쟁이 치열한 사회, 그리고 대학 입시가 일종의 권력 배분 장치로 기능하는 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대입 제도를 바꿔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교육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사회 유인 체계가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이미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쉽게 바뀔 수 없는 오래된 유산이다.

교육 제도는 교육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쪽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살 수밖에 없다 면 최소한 의미 있는 경쟁을 유도하고 무한 경쟁의 소굴에서 어린 학생 들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사교육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최소한 공교육을 정 상화하는 방향 즉,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그런 학 교에서 높은 성취를 이룩한 학생을 대학이 믿고 선발하는 방향으로 나 아가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시대의 소명을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 이는 지혜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