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돈희 前 민족사관고 교장

토론 수업의 유형

토론대회에서는 주최 측이 대회의 형식과 규칙을 미리 공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수업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토론에서는 토론 시간, 참여 인원 등에 제약이 있어 미리 형식과 규칙을 정하기 어렵다.

수업에서는 가능하면 많은 학생이 토론의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몇몇 선수들이 주어진 시간에 시합의 목적으로 하는 토론대회와 같이 정해진 경직된 규칙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

토론대회를 위해 개발된 모형이나 규칙을 그대로 수업에 적용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수업상황에서 한 팀을 두 사람으로만 구성하면 네 사람 이외의 학생들은 구경꾼으로만 남는다. 물론 단순 구경꾼만은 아니겠지만 학습활동의 중심에 있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수업에서의 토론은 시합에서의 토론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 가능하면 많은 학생이 토론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참여하도록 계획해야 한다.

흔히 토론대회에서 채택하는 토론의 모형을 응용하고자 한다면 융통성 있게 변용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시간 배분은 발언 기회의 공정한 관리상 필요한 것이나, 수업의 진행 과정에서 허용되는 시간에 따라 단축하거나 연장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발제, 논박, 질의의 횟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교사 혹은 교사가 지명하는 학생들로서 심판진을 구성할 수 있고, 토론 후에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종합적 혹은 개별적 평가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발제나 논박이나 질의를 담당하는 학생은 몇몇에 한정된다고 하더라도 한 학급의 학생들 모두 어느 한 팀에 속하여 토론에 관련된 자료를 함께 조사하고,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데 참여하면 수업은 그만큼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토론에서 소수에게만 임무를 지우면 특별한 역할이 없는 다른 학생들은 토론 수업에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토론대회를 위해 개발된 모형의 어느 것을 선호하거나 어느 것에 고정해 철칙으로 삼고 그것으로만 토론교육을 하는 것은 토론의 본래 의미와 목적에서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토론의 필요성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혹은 수업의 상황에서 수시로 만나게 되고 반드시 어떤 형식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교사가 수업안을 구상할 때 학습 진도의 어느 부분에서 토론 수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면, 우선 논제를 명확하게 다듬고 그 논제하에서 토론의 진행구조를 결정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토론에 할애할 것인가, 어떤 모형 혹은 형식으로 진행할 것인가, 토론팀과 진행자를 몇 명으로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토론팀에 속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진행, 심판, 배심원, 청중 등의 임무를 어떻게 수행토록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토론은 여러 가지 방식의 구상이 있을 수 있다. 몇 가지의 가능한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형식적 토론과 비형식적 토론이다.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형식적 토론은 엄격한 공식 규칙으로 진행하는 토론을 말한다. 비형식적 토론은 팀의 구성, 진행자의 임무, 승자와 패자의 판별 등의 계획을 다소 느슨하게 정해 두거나, 아니면 그냥 상식적(암묵적) 규칙에 따라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업에서 하는 토론이 반드시 엄격한 형식적 토론일 필요는 없다. 그냥 가볍게 분위기를 조성하여 토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적 토론은 다소간의 형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의제의 성격이나 시간의 할당이나 학습 동기의 수준 등에 비추어 형식적 토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면, 엄격한 규칙을 정하여 절도 있는 토론을 하는 것이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의도적 토론이 아닌 우연적 토론도 있을 수 있다.

수업 진행 도중에 교사의 즉흥적 발상이나 학생들의 우발적 요구로 토론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대개는 규칙을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을 쓸 수 없기에 다소 느슨한 규칙 속에서 학생들이 토론 학습을 경험할 수 있다.

관련 자료의 사전 조사는 불가능하기에 학생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동원하여 토론을 진행한다. 의도적-형식적 토론보다는 체계적이고 공정한 토론을 하기는 어렵지만 수업의 현장에서 대두된 즉흥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셋째, 개방적 토론과 유도적 토론이다.

개방적 토론이란 어느 팀이 승리할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없을 정도로 결론이 개방된 것을 뜻한다. 반면에 유도적 토론이란 주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진행되는 것으로, 교사는 미리 결론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고 토론의 결과가 그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식의 토론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과 진행한 토론은 대개 이런 것이다. 어떤 지식을 그냥 주입하는 것보다는 유도적 토론의 과정을 통하여 분석적으로 검토한 연후에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면 학습된 지식은 더욱 깊고 더욱 확실한 것이 될 것이다.

넷째, 논쟁식 토론만이 아니라 난상토론(爛商討論)을 할 수도 있다.

엄격히 규격화된 규칙이 없이 한 주제를 두고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진행하는 ‘난상토론’도 때로는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있다. 수업의 진행 중에 교사는 의도적으로나 우연으로 난상토론을 하게 된다. 소극적인 학생은 시종 침묵하는 경우가 있으나 토론의 과정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물론 소극적인 학생은 참여의 발언을 하는 데 주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런 학생도 관심과 흥미의 여하에 따라서 혼자서라도 토론과 관련된 내용을 생각하는 학습을 하게 된다.

반드시 어떤 결론을 짓고자 하지 않지만 대체적인 의견의 경향을 확인하고자 한다든가, 어떤 문제에 관해서 학생들의 이해 수준을 파악하고자 할 때 유용한 방법이다.

토론 수업의 일반적 과정

여러 가지 토론의 형식과 모형이 있지만, 토론을 통한 학습, 특히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심도 있게 토론하고 그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논쟁식 토론이다. 다른 형식의 토론은 논쟁식 토론을그냥 느슨하게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토론이든 토론은 그 자체로서 흥미를 유발한다. 승부를 가리는 경기로 진행될 때는 승리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토론자들은 의욕만 차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토론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학습의 과정으로 수행되는 것이니 만큼, 교육적 목적이 최대한 실현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토론에 의한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과정을 충실하게 밟을 필요가 있다.

(1) 주제 이해의 단계

토론자들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며 그 주제가 왜 논쟁거리가 되는가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나 이론적 탐구의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쟁점으로 주목받은 내용과 관련된 학생 자신의 경험이 있으면 그것을 조직하고 정리하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제에 관한 학설, 이론, 사례 등에 관한 연구 과제를 개별 혹은 집단에 부과하는 것도 토론학습의 성과를 높이는 방법이 된다.

예컨대, ‘고교 평준화 정책은 유지되어야 한다’가 의제라면, 언제부터 그 정책이 시행되었으며, 그것을 입안할 당시의 교육상황과 정책결정의 사회적 배경은 어떠하였는가를 조사해 보게 한다든가, 현재의 각종 사회조사에서 나타나는 의견의 경향을 확인하는 과제를 부과할 수 있다.

혹시 그 정책을 시행할 최초의 사회적 여건과 현재 상황은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가를 확인해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2) 주제 연구의 단계

토론자들은 주제에 관련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가능한 한도 내에서 관련된 이론과 지식을 폭넓게 정리하여 소화하며, 쟁점의 논거를 분석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사는 이단계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토론이 단순한 ‘말 연습’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그 자체로서 주제와 관련된 지식을 획득하고 조직하고 분석하는 경험을 스스로 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자율적인 학습의 역량을 높이는 방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하여야 한다.

평준화 정책은 어떤 사회문제와 관련이 있는가를 심층적으로 연구한다면, 거기에는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 사교육비의 부담, 학교 교육의 비정상화 등의 교육적 문제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생활 격차, 사회경제적 계층구조와 교육의 관련성, 학력구조의 변천과 사회변동의 형태 등의 문제에까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연구는 구체적 문제의식과 강한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지기에, 유의미한 경험을 통하여 선택되고 조직된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학습한 학생들의 마음에 정리된 지식은 단편적으로 주입된 다양한 지식이 별로 활용성 없이 마음속에 그냥 내장된 상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3) 토론 준비의 단계

주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관련된 지식과 정보가 잘 정리된 상태에 있으면, 이제 토론을 어떤 전략과 기법으로 수행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논박할 수 없을 정도로준비해야 한다.

주장하는 바의 확실한 사실적 증거를 제시하고 완벽한 논리적 추론을 구사하는 전략을 세워야 하고, 심판진이나 방청인에 관해서는 주장하는 바가 최대한의 설득력을 지닐 수 있도록 논변의 기법을 동원해야 한다.

동원하는 지식의 확실성, 전개하는 논리의 타당성, 주장하는 논지의 설득력, 수행하는 전략의 효율성 등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교사는 토론자가 자신의 주장을 펴는 전략을 세우거나, 상대방의 반론에서 제시될 것으로 예상하는 논거나 이유를 사전에 검토하거나, 같은 편의 토론자들을 지지하는 논거를 검토하는 과정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4) 토론 수행의 단계

토론은 긴장과 흥미가 함께 엉클리면서 진행된다. 계획하고 준비한 그대로 완벽하게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때때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상대 팀의 비판이나 공격에 대응하는 순발력, 기동성, 적절성 그리고 자극적 발언에 대한 인내심과 자제력도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팀 구성원 간의 현장적 협동능력, 성공적 분위기의 주도력, 실수에 대한 관용성 등이 어쩌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적정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예상치 않은 위기의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토론의 수행과정에서 학습될 수 있다.

(5) 결과 검토의 단계

토론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돌이켜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토론 그 자체에 대한 종합적인 혹은 부분적인 평가도 필요하지만, 토론자가 발언한 내용, 방법, 전략, 기술 등에 관해서 개별적으로 평가해 볼 필요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토론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얻게 되었는가를 반성해 보는 일이다. 쟁점에 관해서 무엇을 알게 되었으며, 어떤 면이 주목받았던 셈이며, 결론은 어떻게 내려져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는 단계가 필요하다. 아마 이 단계에서는앞서 언급한 협의적 토론의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마무리하며

물론 교과에 따라서는 토론 수업이 잘 활용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이 토론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좋은 주제와 의제를 개발하는 데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거의 모든 교과에서 토론 수업은 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문학에서 예컨대, 이광수의 ‘단종애사(端宗哀史)’와 김동인의 ‘수양대군(首陽大君)’은 어느 쪽이 더욱 진실된 소설인가? 역사에서 만약에 학생들이 트루먼(Truman) 대통령의 각료였다면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일본에 원자 폭탄의 투하를 결정하는 데 찬성하겠는가? 수학에서 확률에 의한예측은 최선의 예측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학에서 생명공학에 의한 인간 복제는 허용되어도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업의 상황에서는 교사가 지도안을 작성할 때 다루는 단원에서 토론에 부칠 좋은 주제가 무엇일까를 두고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좋은 토론의 주제를 개발하는 것이 좋은 토론 수업을 하는 일차적 조건이다.

그리고 교사는 주제에 따라서 어떤 형식의 토론을 진행할 것인가를 구상하여야 한다. 물론 그 구상의 과정에서 교사 자신의 의견만이 아니라 학생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