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교과교실제, 진로선택과정 등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는 동시에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자유학기(학년)제 등을 확대 실시함으로써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을 꾀하는 정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는 국가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과는 달리 학생, 교사, 학교가 교육과정 개설 및 재구성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함의되어 있다. 우리 교육은 이제까지 국가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학교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는 익숙한 반면, 새로운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문화, 경험, 제도는 미흡하여 그 괴리현상이 크다. 에듀인뉴스는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를 키우는 데 있어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왜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좌담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왼쪽부터 김경자 이화여대 명예교수, 박하식 충남삼성고 교장,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사회] 허 숙 前 경인교대 총장

사회 | 오늘 세 분의 교육전문가를 모시고 요즘 이야기되는 학교교육과정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학교교육과정은 그 사회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전 세계적으로 맞이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말씀 좀 들어보겠습니다.

홍후조 | 모든 사람과 사물이 지능센서를 달고 교류하는, 이른바 모두 살아 움직이는 초지능·초연결·초융합의 네오애니미즘(Neo-Animism) 시대가 펼쳐질 것입니다. 세계화는 정치·군사적 이유로 축소와 확대를 반복하지만, 지능정보화는 지속해서 확대하는 일방향성, 불가역성을 보입니다.

점차 가속도가 붙는 변화로 인해 피로사회, 위험사회, 액체사회라 불리는 특징과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할 것입니다.

김경자 |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초지능 사회의 특징을 갖습니다. 인간이 지적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혁신이 혁신을 낳는 사회를 일컫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지구촌 사람들이 그 혁신을 공유하는 데에는 찰나의 시간조차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수십 개의 다양한 서로 다른 혁신이 융합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다보스 포럼 의장은 이를 일시적인 ‘유행’이나 ‘트렌드’가 아니라, 거대한 ‘문명사적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 기업, 사회의 행동과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사회제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에이앤비, 우버, 스마트 공장,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AI) 의사·약사·조교 등의 효율성과 효과성이 기존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사회 |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초지능 사회라고 정의해주셨는데요, 그러면 우리 교육은 어떻게 이러한 사회변화에 대응해 나가야 할까요?

박하식 |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평생학습자 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평생에 걸쳐 최소 3~4개의 직업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스스로 직업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 태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지난 2016년 우리나라에서 바둑 천재로 불린 이세돌 기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눈여겨봐야 합니다. 저는 인공지능이 우리 미래의 모습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따라서 국가적으로 인공지능의 역할을 규정하고 활용 방안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에 대한 중요성이 반대급부로 부상할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사람을 중시하는 인류애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중시하는 자연애를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경자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경자 |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진행중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변화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준비는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능력에 대한 교육적 대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기술혁신으로 인한 불연속적 변화를 겪게 되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더구나 인공지능 SW와 같이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인간 곁에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결국 인간의 정체성이 혼란해지는 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 어떤 인간을 길러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교육받은 인간상의 중심 특질을 ‘창의성’으로 규정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창의성 있는 인간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생성하며 계속 자기와 세계를 변형해가는 창조적 지성인’으로 정의하죠.

여기에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결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생성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앞서 클라우스 슈밥이 언급한 여러가지 혁신이 융합하여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와 상통하기도 합니다.

새롭게 규정된 인간상이 창의적 인간이라면, 학교에서는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데 필요한 학습 내용을 가르쳐야 하겠죠. 그러기 위해 현행 교과 교육과정을 창의적 인간을 기르는 데 적합하도록 개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불가역적’인 특징을 갖는다면, 평생학습이 가능한 교육제도로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초지능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언어와 기술혁신 활용 지식 등도 새로운 교육내용으로 포함해야 합니다.

홍후조 | 앞으로 맞이할 사회적 변화를 풀어갈 열쇠는 세계화에 따른 외국어와 지능정보화에 따른 C-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다문화, 다양화,  다원화, 세계화, 디지털화, 지능정보화 속에서는 가시적 언어와 비가시적 언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인생은 건강하고 즐거운 생활에서 시작하고 끝납니다. 그래서 학교교육에서는 학업과 직업을 영위하기 위해 바른 생활을 바탕으로 한 슬기로운 생활을 가르쳐야 합니다. 슬기로운 생활은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즉 문리(文理)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는 모두 현실, 사실, 증거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 쓰며 판단하고 행동하는 성숙한 지성인을 기르는 일입니다. 특히 대중영합주의의 선전과 선동에 흔들리지 않고 체제변경에 굴하지 않는 자유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 | 소위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이라 일컫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나 배경 또는 기본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개발연구 책임을 맡으셨던 김 교수님부터 말씀해주시지요.

김경자 |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융합과학기술의 고도화를 바탕으로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취약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데 개정의 목적이 있습니다. 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교육을 많이 반영한 개정이라는 자평을 하고 싶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필요한 창의·융합적 능력의 내용과 조건, 가르쳐야 할 내용, 가르치는 방법, 평가 등에 대한 심사숙고가 들어있습니다. 동시에 과도한 학습부담, 정답 맞히기식 문제풀이, 대학입시에 종속된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 학습의 흥미를 잃게 하는 교수학습 방법, 평가 등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개정의 비전을 말씀드리면,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과 ‘행복한 학습 경험’입니다. 학생들이 호기심을 갖고 학습에 몰입하여 자신이 꿈과 끼를 키우는 과정에서 학습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한 것이죠.

특히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고등학교에 공통과학, 공통사회를 편성하고, 204단위 중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고려하여 편성하는 자율편성 단위를 86단위로 하였습니다. 이 단위는 일반선택 과목과 진로선택 과목으로 편성하여, 사실상 학생의 과목선택권을 확대하고자 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 인재상, 핵심역량,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학습 내용 조직, 학습활동, 평가의 변화는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만큼 큰 규모의 개정입니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성공을 위해 민·관·학이 똘똘 뭉쳐 실행 가능한 방안을 찾아내고 개발해야 합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한국교육과정학회 회장)>

홍후조 | 김 교수님의 말씀처럼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려는 좋은 취지와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식의 체계적 전수와 습득을 통해 지혜, 지성 등의 지력을 개발하는 데 있어 강의·이론·설명 방식의 수업은 점차 효과가 줄어듦을 느낍니다. 또한 역량을 강조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구체화하여 실천에 이르게까지 하는 방식은 미진하다고 판단합니다. 혹자는 일련의 프로젝트 수행이라고 하나, 체계화하기 위해선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2015 개정 교육과정도 더욱 발전하기 위해 고쳐야 할 항목이 많습니다. 지향하는 사회상의 제시, 교과군이나 진로별 목표의 제시, 유-초 연계, 고교의 진로별 교육과정 제시, 학교와 학교구(School Cluster)의 실천 주체로서 역할 강화 등입니다.

고교에서 반드시 고칠 일이 있습니다. 고교에서 수학을 잘하면 이과, 못하면 문과로 보내는 일이 다반사인데, 문과보다 수학을 덜 하는 이과 전공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이공계 인력은 많이 부족하고 문과나 예·체계 인력은 과잉 배출되는 원인이 됩니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부와 진로에 커다란 왜곡을 가져오는 수학은 초·중·고교에서 일부 영재를 제외한 대다수 학생에게 생활수학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고교 수학은 미적분이 아니라 확률과 통계로 마무리하고, 대학 1, 2학년에서 전공 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도록 재설계해야 합니다.

사회 |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학교현장에 적용하다 보면 현장에 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긍정적은 부분도 있을 것이고 또 일부 마찰도 예상되는데 박 교장선생님께선 어떻게 보십니까?

박하식 | 고등학교장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은 창의·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문·이과 구별을 없애고 학생이 선택하도록 하는 구조라 봅니다. 공통과학과 공통사회를 필수 이수로 정하여 과학과 사회에 관한 기본 소양을 공통으로 배우도록 한 점이대표적인 것입니다.

이 부분을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의 선택 범위가 축소된 점은 아쉽습니다. 실질적인 선택이 1학년이 아닌 2학년부터 가능하게 된 것이죠. 어떤 진로로 나아가든지 관계없이 ‘과학과 사회 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라는 정도의 가이드라인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경자 | 통합사회, 통합과학의 교과 신설로 인해 과목 선택 범위가 줄어든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아직 우리나라 교과교육과정 개발자들은 분과주의 입장이 강하여 부득이하게 통합과목을 만든 것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길러주어야 할 능력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동의한다면, 앞으로는 교과 간의 자연스러운 통합이 가능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선 교과 개발자가 교과간의 융합, 통합에 있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교과를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에 융합, 통합 능력을 포함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홍후조 | 개정된 교육과정보다 내신 평가나 대입시 등에 의해 변화가 올 것입니다. 얼마나 느슨한 혹은 조이는 시험이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지필고사가 쇠퇴하면서, 초·중학교부터 서서히 학생 참여와 협동에 의한 프로젝트 수업이 확대될 것은 분명합니다.

사회 | 학교가 교육과정을 운영함에 있어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견해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여 점차 늘려가고 있다지만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과 관련해 국가교육과정과 학교교육과정의 역할이나 관계 설정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박하식 |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과 같은 교육과정 관련 법규와 시·도교육청에서 작성·배부하는 『교육과정 편성 운영 지침』은 너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단위 학교가 학교의 교육 목표에 맞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학교교육과정에 직접적 작용을 하는 상위 법규인 『초·중등교육법』 제23조 ‘교육과정 등’에서는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이 정한 범위에서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을 정할 수 있게 하였으며, 이 조항 시행령에서는 학교의 교과를 교육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교과에서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조항은 교육감에게 학교교육과정 및 교과를 정하도록 위임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교육감이 지역 교육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됩니다. 이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교육과정 운영의 근거로 작용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과정 편성의 원칙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는 공통 교육과정이고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선택 중심으로 편성·운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가교육과정 문서에 명시된 대로 고등학교에서 학생 중심의 실질적인 ‘선택’이 가능하도록 자율권을 더 많이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학교가 교육과정을 운영함에 있어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 자명합니다.

홍후조 | 박 교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나라는 분권, 자치라는 이름으로 교육청이 관내에서 너무 많은 역할, 비중,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권한의 남용을 낳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교육과정기준 총론 문서에서 위임, 이양한 사항을 교육청이 아닌 학교나 학교구에 주어야 합니다. 교육청의 주기능은 재정, 교원, 시설 등을 충원해주는 ‘지원’에 맞추어야 합니다.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청은 중앙이기 때문에 교육청으로 권한이 몰리게 되면 이 또한 중앙집권화입니다. 그 때문에 교육청을 현재처럼 광역별로 나눠 운영하는 것보다는 대도시, 중소도시, 읍·면, 섬 등 교육자원의 과부족에 비추어 그 자치와 분권을 지원하는 게 합당해 보입니다. 부족하면 더 지원하고, 풍부하면 모범과 우수 사례를 창출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김경자 | 저는 교사의 교육과정 문해력과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 관점에서 학교교육의 자율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교사의 교육과정 문해력과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강조합니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하여 성취기준을 개별 교과 영역에서 벗어나 교과 영역 간에, 교과 간에 재조직하여 학생의 자기주도적이고 탐구·체험형의 학습활동이 가능하도록 개발하였습니다. 그것을 위해 성취기준에 일련번호를 주어서 통합할 수 있도록 했죠.

물론 성취기준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현장의 볼멘소리가 있을 수 있으나 교사는 그것마저도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교과 간에 통합이 가능할 것입니다. 교사들이 좀 더 수월하게 교육 과정을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선 국가교육과정 수준에서 좀 더 일관된 방식으로 성취기준을 기술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됐든 교사가 성취기준을 비판적으로 읽고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때 학교교육의 자율성이 진정으로 보장될 것입니다.

사회 | 결국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란 국가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학교와 교사가 스스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운영하는 일이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자율성을 얼마나 보장해야 할까요? 또한 이들이 자율성을 확보하고 펼치기 위해선 어떠한 능력이 필요할까요?

김경자 | 학교교육과정 운영에 있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하나의 정답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예술, 체육 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당분간 가르쳐야 할 교과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의 진로, 진학 등 삶에 필요한 다양한 선택과목을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필수 교과의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학력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나타날 다양한 선택 주제를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학생이 원하는 과목이나 주제만이 아니라, 학생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주제들도 포함해야 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적어도 앞서 제시한 필수 교과군에 일정 단위시간을 배당해 진로와 진학을 위한 다양한 선택과목을 제공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필수과목을 고정하는 것은 바뀌어야 합니다. 필수 교과는 학교급이 올라가면서 유지되겠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필수교과 군에 선택 과목을 다양화하여 학교교육과정의 자율성을 좀 더 부여해야 합니다.

<박하식 충남삼성고 교장(교육학 박사)>

박하식 | 국가교육과정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학교 구성원들은 교육과정을 이해하는 능력과 자체적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학교 경영자는 어떤 교육 목표를 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하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향상해야 할 것입니다.

단위학교에서는 학교장의 학교 경영철학과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구성원들의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하는데 실제 국가교육과정에 맞춰 학교교육과정을 구상하고 실행할 때 교육철학과 교육과정의 논리보다는 행정적 준수사항을 더욱 중시하는 현상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홍후조 | 학교관리자가 국가교육과정기준 총론 문서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관리자는 모든 교과와 창의적체험활동에 대한 종합적, 균형적 이해를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육과정은 종합과 절충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교장, 교감 등 관리자는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교육과정 문해력과 리더십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회 | 학교현장에서는 국가교육과정과 학교교육과정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 교사들은 국가교육과정이 무엇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직 교과서만 가지고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요?

김경자 | 국가교육과정과 학교교육과정 운영의 괴리는 국가교육과정을 얼마나 충실하게 편성·운영하도록 할 것인가의 관점에서만 보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학생과 교실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여 국가교육과정을 교수에 적응시키는가의 관점에서 보면 괴리는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국가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핵심역량, 교과역량, 성취기준에 학생들이 도달하도록 다양한 매체와 경로 및 교수학습 방법 그리고 평가를 다양화하는 것은 괴리라기보다 학생 맞춤형으로 국가교육과정을 적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교사의 교육과정 문해력과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은 필요조건이며, 박 교장선생님의 말씀처럼 학교 경영자, 특히 교장, 교감선생님의 교육과정 리더십은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합니다. 학교 경영자는 교육과정과 수업전문가의 능력을 먼저 갖출 것이 요청됩니다.

홍후조 | 보편, 공통, 일반, 세계적인 사항은 국가교육과정기준에 녹이고, 특수, 구체, 실제, 지역적인 사항은 학교교육과정계획서에 녹여내면 됩니다. 현재의 시·도 교육청이나 시·군·구 교육청의 교육과정 관련 문서 만들어 일선에 하달하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에 불과하므로 폐지해야 합니다.

공교육은 어떤 시·도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의 애국심을 바탕으로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세계인을 기르기 위한 제도입니다. 지방 분권이나 자치라는 이름으로 민선교육감의 전횡이 심한 편입니다. 교육청은 말 그대로 학교를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합니다.

사회 | 정부가 바뀔 때마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특목고 및 자사고와 관련한 문제에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시는가요. 겉으로는 수업료 문제가 주목받고 있지만 근본적인 논의의 초점은 교육과정 운영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박하식 | 자사고는 교육과정의 운영에 있어 상대적으로 많은 자율권을 행사하여 선도적으로 미래지향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적으로 학교 교육 발전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런 실험적이고 글로벌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과목도 개설하고 세계적으로 인증받은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시도도 하는데, 이런 모든것이 교육청의 승인 사항입니다. 아직은 승인 절차가 까다롭고 이해할수 없는 이유로 승인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한편, 자사고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선발효과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교육과정에 의한 교육효과에 더 치중하여 학교를 운영하는 학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사고가 많다는 점도 국민들께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홍후조 | 공통필수 교육과정은 국가·사회적 결정권의 문제입니다. 반면 상이선택 교육과정은 학생 스스로 결정하는 문제이기에 학생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선택의 주체가 학생이긴 하지만 학생외의 환경에서 결정하는 것 모두가 학생에게는 필수가 됩니다. 즉, 학교나 교사의결정 사항이 학생에게 필수가 된다는 뜻입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은 교육과정과 수업이 활동 중심이므로, 고등학교는 학교 실정에 맞는 진로별 교육과정을 제공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많은 자율성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들 학교급에서는 교육과정기준 총론이나 각론 문서 내용의 대강화가 필요합니다.

특목고, 자사고도 자율성이 더 크게 필요합니다. 이러한 학교에서 자율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온 모범 사례, 우수사례가 계속 창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경자 | 교육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학교교육의 상향평준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나 일본에서는 공립학교에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 Program)를 도입하여 학교교육과정의 질을 국제적 기준에서 관리하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또 미국에선 대학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학문적 교과 이수를 강조하고, Honors, AP 이수 과목을 격려합니다. 이는 학교교육과정의 다양화를 허용하는 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학력격차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수업혁신을 통해 이룬 학교 성취를 ‘경쟁’의 결과로만 평가하여 자사고, 특목고를 점차 없애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다양한 혁신의 융합과 협력으로 매일 다른 혁신을 마주하는 시대에 학교제도의 단일화와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는 정책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회 | 말씀을 종합해보면 결국 각 학교는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과 학생의 특성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국가와 지역 교육청 그리고 각 급 학교 간에 역할과 권한의 행사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잘 정착이 되어 나가야 할 텐데요.

그렇다면 2016년부터 중학교에서 전면 실시하는 자유학기제와 올해 확대해 시행하는 자유학년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근본 취지와 목적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홍후조 | 학교교육이 실제 사회와 연계되어 운영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자유학년 또는 자유학기 이후에도 진로 탐색 과정을 더욱 확대·강화하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아직은 단절되는 느낌입니다.

1회성 이벤트의 성과 위주 제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학생들이 유용하게 활용하는 제도가 되길 바랍니다. 자유학기제가 진정한 의미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고교 교육과정은 진로별 교육과정, 수업, 대입시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김경자 | 자유학기는 중학교 교육과정 중 한 학기동안 학생들이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도록 토론·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수업을 개선하고, 진로탐색 활동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자유학기에는 중간·기말고사 등 일제식 지필평가는 실시하지 않고 학생의 학습과 성장을 지원하는 과정 중심의 평가를 합니다.

이러한 애초의 목적과 취지를 살펴보면, 자유학기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편성·운영의 중점과도 일관됩니다. 유독 자유학기에만 한정하여 수업을 학생 참여형으로 하고 다양한 진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중간·기말고사 등 일제식 지필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것을 자유학기의 중요한 성공적 운영 변수로 판단한다면, 다른 학기 교과 수업에서도 그 변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이에 더하여 진로탐색을 위한 주제가 학생의 관심과 흥미에만 한정되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교육청과 학교 차원에서 미래 사회, 기술 및 직업과 관련한 주제 발굴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회 | 학생들은 시험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학습하는 것에 만족해하지만, 많은 학부모는 아이들의 학력저하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자유학기제 또는 자유학년제가 정착되어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고교학점제 도입, 학생선택 교육과정 운영의 효율화를 위한 교과교실제 도입 그리고 진로 선택 과정 운영 등 교육과정 운영방식을 바꿔보고자 하는 시도가 여럿 있는데요. 이러한 제도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운영하기 위한 조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경자 | 우선 학점제가 무엇이고 2015 개정 교육과정에는 어떻게 담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학점제는 학생의 과목선택권 확대와 선택교과의 일정 기준에 도달했을 때 학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과목 이수만으로 졸업하는 현행 단위제의 업그레이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5 개정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학생에게 과목 선택권을 부여하고, 일정 기준을 달성하면 교과 이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학생의 과목 선택권에 기반을 둔 학점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이 어렵고, 선택과목 교사 확보가 어려우며, 과목 선택을 한 대부분 학생에게 학점을 부여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학점제를 별개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박하식 | 고교학점제는 우리 고교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는 진로선택에 직면해 있는 시기입니다. 진학계 고교 학생은 대학에서의 전공 선택 직전의 시기이고, 취업계 고교 학생은 자신이 종사할 직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익히는 시기입니다. 그 때문에 자신이 희망하는 진로에 맞게 스스로 수업을 선택하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홍후조 | 교육의 질 관리라는 점에서 필요합니다. 다만 사회 전체적으로 ‘공부 덜 해도 대학 간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질 관리가 어렵다고 합니다. 학년제든 무학년제든, 필수든 선택이든, 상대평가든 절대평가든 학점제의 핵심은 학습의 질 관리입니다.

김경자 | 미국의 경우 필수 교과군은 결정되어 있지만, 그 내에서도 과목선택이 가능하며 계열성이 있는 교과는 이수경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선택과목 군에 진로교과와 융합교과들도 다양하게 제시하죠.

대부분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는 고등학교는 필수 교과군 내의 계열성이 높은 교과인 경우, 높은 계열의 교과를 많이 선택하고,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교에서는 진로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대학 진학과 취업을 돕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별 학업성취도 수준에 차이가 없는 것처럼 고등학교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으므로 학교별로 다른 계열의 선택과목 개설을 가능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과목선택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경우, 학교 내에서도 학생의 선택으로 인해 자연적 차별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학점제로 인해 후행으로 나타나는 학력격차는 현행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과 일관되지 않은 결과입니다. 학점제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학교 내 학생 간 학력격차 그리고 학군에 따른 학력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있어야 합니다.

왼쪽상단 홍후조 고려대 교수, 왼쪽하단 김경자 이화여대 명예교수, 박하식 충남삼성고 교장, 오른쪽하단 허숙 전 경인교대 총장

사회 | 학생선택 교육과정은 진로 선택 지도와 연계하여 잘 운영되고 있나요?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요?

박하식 | 제가 알기로는 학교 시스템 자체가 이를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어 몇몇 학교를 제외하고는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이미 진로를 설정한 학생들과 그 학생들의 교육과정이 정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파악합니다.

진로 선택 지도와 잘 연계한 학생선택 교육과정을 운영하려면 우선 중학교에서의 자유학기를 본래의 목적대로 진로 탐색과 의사결정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고교 진학 전에 자신의 진로 설계와 선택에 따라 진학계 또는 취업계 학교를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각 고교에서 자신이 선택한 진로에 따라 과목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운영방식을 학급 기준에서 학생 총원 기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학생들의 교육과정은 개별 학생의 수강 선택을 기준으로 편성해야 합니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 학급을 기준으로 운영하면 선택형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의 수강 신청 조사를 기초로 하여 다음 학년 교사의 구성을 결정해야 합니다. 학생선택의 변화에 따라 교원 수급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존 교사 역시 기존 지도 과목 외에 유사 과목을 지도하는 역량을 키워야 하는 것도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홍후조 | 고교 교육과정을 지난 100년간처럼 공통필수로 처방하는 관례를 철폐해야 합니다. 획일성으로 인해 고교가 죽어갑니다. 고교부터는 계열별·과정별로 선택과 집중을 하도록 상이선택으로, 진로별 교육과정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고교 3학년 즈음에 학생이 선택하고 집중하는 몇몇 과목으로 구성한 과정을 운영하는 게 진로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예체능은 미술, 디자인, 음악, 연극, 영화, 문화콘텐츠, 개인 및 단체운동, 스포츠경영 등 10여 과목으로 40~50단위, 이공계는 공학, 보건의료, IT 등 5~6과목으로 20단위 전후, 인문사회계는 인문, 사회, 경상, 국제 등 3~4과목으로 15단위 정도만 규정해주면 됩니다.

소수 학생이 가는 길이지만 예·체계는 소질과 적성의 발현이 빠르고 전성기가 조기에 도래하므로 빠르면 초등 고학년부터 늦어도 중고교에서는 더욱 심화, 특수, 전문적인 학습을 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진로별 교육과정은 개별 학교에 맡길 것이 아니라 특성화고처럼 학교 간에 역할분담과 협력을 통해 학습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김경자 | 홍 교수님의 진로별 교육과정 운영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필수 교과군은 존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학생들은 다양한 교과 경험을 통해 기초소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결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기 위함입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꿈과 끼를 펼치도록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해야 하지만, 진로별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탐색의 기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학진학률이 높은 학교는 주로 학문적 교과를 자유롭게 이수하고, 대학진학률이 낮은 학교는 진로별 과목을 몇 개씩 선택하여 경험하도록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학점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학생 구성원에 따라 학교교육과정이 달라지는 것을 허용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필수 교과군과 최저이수학점만 규정하고, 필수 교과군에서도 학생의 과목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학점제의 취지에 좀 더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학교교육과정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대학입시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항간에 학교교육과정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교육과정이 아니라 대학입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교육과정과 대학 입시는 상보적 관계가 될 수 없을까요? 학교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를 도모할 방안을 함께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박하식 | 대학진학으로 이어져야 할 진학계 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의 목표는 대학 진학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그에 대한 솔직한 선언이 있어야 합니다. 진학교육을 하는 것이 비교육적인 교육활동이라는 인식을 개선해야 합니다.

고교 교육과정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능 등이 대학 교육과정 수행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스스로 수능, 논술, 면접 등의 전형 요소를 시행했습니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특성화 고교와 연계해 교육하듯이, 대학에서도 진학계 고교와 연계해 필요한 역량과 기능에 대한 교육을 요청하는 고교-대학 간의 교육과정 연계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전 세계 공통 교육과정의 결과인 IB 디플로마와 같은 국제적 수준의 고교 교육과정 결과를 국내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방식이 아직 없다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김경자 | 박 교장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에게 대학수학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당연하고도 명시적인 목표입니다. 아무리 감추어도 학부모는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대학 진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스스로도 목표를 대학 진학으로 설정합니다. 그래서 학교가 대학 진학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사교육기관에 가서라도 그 목표를 성취하고자 합니다.

이 말을 교과서를 달달 외우거나, 문제풀이에 매달리거나 EBS 교재를 풀라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현행 대입정책은 그런 오해를 충분히 불러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은 어떤 형식으로든 학생들의 대학수학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논술과 면접 등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대입정책으로 고등학교를 제도적으로 통제하고 고등학교 학력을 평준화하려는 것은 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SKY 대학에의 입학이 반드시 이 시대 성공의 증표가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가 곧 올 것입니다. 따라서 고등학교 교육과 대입정책을 규제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으면 합니다.

홍후조 | 고교-대학은 교육과정과 평가 그리고 진로별로 연계되어야 합니다. 진로별로 바탕학습이 필요한 것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계열과 과정에 따라 필요한 바탕학습이 다르기에 그 ‘종류’는 국가적으로 명확히 해주고, 그 ‘수준’은 대학별, 학생별로 다르게 하면 될 것입니다.

사회 | 얼마 전 대입수학능력시험에 대한 개편방안이 논의되다가 그 발표를 연기하였습니다. 교육과정 운영 정상화라는 입장에서 보면 대입수학능력시험은 어떻게 개선하면 좋겠습니까?

김경자 | ‘몇 개의 교과를 수능에 포함할까’에 대한 논의에 집중된 수능대책은 예정대로 발표되지 못하고 1년 연기되었습니다.

연기된 수능정책은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재상이 필요로 하는 핵심역량을 기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수능에서는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요? 수능에서는 핵심역량을 평가해야 하고 그것을 대학수학능력과 연결해 평가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교과의 큰 그림 속에서 교과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연결해 자기 주도적으로 실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는지, 해결한 문제의 결과를 바탕으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있는지를 대학수학능력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해야 합니다.

이는 현재 시행되는 수능에 포함된 교과의 EBS 교재 80% 반영이라는 편의적 수능정책과는 다른 것입니다. 수능을 보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박하식 | 수능이 고교 교육성과의 기준이 되는 상황이 더 지속하여서는 안 되고 진학계 고교 교육에서 도달해야 할 최소한의 학력을 확인하는 자격 고사 형태로 바뀌어야 합니다. 진학계 고교에서 성취해야 할 최고수준의 학력은 더욱 논술 지향적이고 학생들의 지식정보 창조 능력을 신장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홍후조 | 내신으로는 교과별 성취수준을 확인하고, 수능으로는 기초 공통의 수준만 확인하면 됩니다. 대학 입시는 대학에 맡기되, 대학의 계열별로 종류는 같고, 대학별로 그 수준은 다른 서술형․논술형 혹은 수행형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사회 | 학교교육의 개선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 결론은 대학입시에 모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입시제도가 바뀌어 왔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학교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대학입시의 방향은 어떻게 변해야 할지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박하식 | 대학진학을 위한 별도의 전형요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교 교육과정에 대한 대학 측의 이해를 바탕으로 진학계 고교 교육과 대학교육이 상호 영향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고교 교장과 대학 총장간의 교육과정 교류와 협력이 제도화되면 더욱 좋겠습니다.

홍후조 | 내신이든 수능이든 대학별 고사든 진로별로 유의미한 연계가 필요합니다. 대학은 대부분 진로별로 직업교육을 하고 있기에 이를 위한 바탕학습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고교도 학생부 종합이 아니라 학생부 교과 전형이 제대로 수행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경자 | 고등학교 교육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도록 학교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게 지원하고 돕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현행 수능을 포함한 대입정책은 그것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효율적이지 않은 수능에 종속되는 현상을 없애기 위해 글로벌 기준에 맞는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평가 방식, 예를 들면, IB와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공립학교에 적용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학교교육과정 혁신이 느린 일본에선 최근 IB를 공립학교에 도입하고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IB 본부의 평가와 질 관리를 받는 방식으로 공립 고등학교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IB 도입 학교의 학생 평가 기준을 인정해 주는 방안을 동시에 운영하죠. 호주 또한 국가교육과정과 IB를 동시에 운영하여 학생이 선택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이자 동시에 진학을 위한 대학수학능력을 기르는 국제 표준의 고등학교 교육과정 도입도 이제는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과정의 장점과 접목하여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숙 전 경인교대 총장>

사회 | 오늘 주신 말씀들을 들어보니 학교교육과정의 운영은 단지 국가교육과정의 문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학교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와 여건 그리고 교육 구성원들의 인식이 함께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교육과정이란 문서가 아니라 곧 우리 사회의 문화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이야기는 언제나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을 더 많이 듣고 싶은데 지면 관계상 이 정도에서 대담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바쁘신 일정 중에도 좌담회에 참석해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