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규 칼럼리스트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치르는 2022학년도 수능시험 개편안을 놓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6월28일 '2022학년도 수능 과목구조, 출제범위 논의를 위한 대입정책포럼’을 개최하고 2022학년도 수능 개편시안을 공개했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강명규 칼럼리스트가 분석한 2022학년도 수능 개편안을 소개한다. 

<자료=스터디홀릭>

이번에 공개된 수능 개편안을 보면 2015 개정 교육과정 도입 취지에 맞게 문·이과 통합을 목표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에 문과는 사탐 2과목, 이과는 과탐 2과목이라는 식으로 문·이과가 철저히 나눠져 있었는데, 이번 개편안에서는 문·이과 상관없이 사탐 1과목, 과탐 1과목을 응시하도록 수능과목을 구조화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개편안이 정식으로 시행될 경우 탐구영역에서의 특정과목 쏠림현상은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료=스터디홀릭>

지금도 문과는 생활과윤리, 사회문화로, 이과는 지구과학Ⅰ, 생명과학Ⅰ으로 쏠리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현상이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요. 사탐과 과탐에서 한 과목만 응시하면 되는데 굳이 공부하기 어려운 과목을 택할 학생들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되면 일선 고등학교의 교육과정도 상당히 파행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응시할 수능 과목 위주로 수강신청을 할 테고, 학교 측에서도 공부하기 어려운 과목을 학생들에게 추천하지는 않겠지요.

이럴 경우 지방 일반고의 경우 과학Ⅱ 과목이 이름만 남은 명목상의 과목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학Ⅱ 과목을 아예 개설조차 안 하는 학교도 있겠지요. 개설한다 하더라도 신청인원이 너무 적어 내신관리가 극도로 어려워질 테고요.

따라서 앞으로 지방 일반고 이과 학생들의 경우 수시 학종에서 전공적합성을 어필하는 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물리학과에 지원하면서 물리Ⅱ를 공부하지 않은 학생, 의대에 지원하면서 생명과학Ⅱ를 공부하지 않은 학생을 대학이 좋아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물론, 배우기 싫어서 안 배운 것이 아니라 수업이 개설되지 않아서 못 배운 학생도 있겠지만, 대학이 개별적인 상황까지 세심히 배려하지는 않겠지요. 어차피 들어오고 싶은 학생은 차고 넘치니까요. 그래서 자칫하면 고교등급제가 심화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렇기에 만약 수능에서 기하와 과학Ⅱ 과목을 모두 빼려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아예 빼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게 되면 국가경쟁력까지 걱정해야 될 정도로 우리나라의 교육경쟁력이 하락하겠지만요.

그런데 교육부에서 이런 식의 수능 개편안을 발표한 진의는 무엇일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위한 수능 무력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대입개편 공론화위원회에서는 4가지의 대입개편 시나리오를 내 놓았습니다

<자료=교육부>

위의 대입개편 시나리오를 보면 총 4가지 안 중 3가지 안이 수능 상대평가 방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평소에 주장하던 수능 절대평가 방안은 1가지 밖에 없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서도 상대평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절대평가를 노린 대입개편 꼼수라고 생각합니다.

수능 절대평가 방안을 1가지만 발표한 것은 선거에서 표심을 한 쪽으로 모으기 위한 단일화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요. 상대평가 지지자들은 셋으로 나눠 힘을 분산시키고 절대평가 지지자들은 하나로 모아 힘을 응집시키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수능을 상대평가로 유지하고 정시모집 비율은 45% 이상으로 하는 1안에 대한 지지 목소리가 높아지자 교육부에서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어쩌면 정시확대를 원하는 여론이 너무 강하다 보니 애초부터 장기전을 노린 다단계 전략을 짠 것일 수도 있고요.

일단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1안을 던져주었지만, 그에 대한 방어책(?)으로 이번 수능 무력화 개편안을 준비해놓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한 번에 공개하면 논란이 발생할 수 있으니 시간을 두고 공개한 것일 수 있지요. 앞에서 달래주는 척 하다가 마음 놓고 긴장을 풀면 뒤통수를 후려치는 식으로 시간차 공격을 한다고 할까요.

교육부에서 진정으로 국가경쟁력을 고민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개편안을 고민한다면 이번과 같은 수능 개편안은 만들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수학에서 기하를 빼고, 과학에서 Ⅱ 과목을 빼버린 수능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런 식으로 수능이 무력화하면 대학은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기피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학은 수시모집에 더욱 집중하겠지요. 결국 수능 무용론까지 나올 것입니다. “차라리 그냥 절대평가해서 자격고사화 해버리자”라는 식으로요. 즉, 이번 수능 개편안은 절대평가 전환을 위한 과도기적 개편안이라고 보여 집니다.

‘수능 무력화 -> 대학의 정시모집 기피 -> 수능 무용론 대두 -> 수능 절대평가 -> 수능 자격고사화’

초·중 부모님들 중에는 수능이 사교육의 원흉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수능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수능은 학생의 의지만 있으면 사교육비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는 시험이지요.

영어와 한국사는 이미 절대평가로 전환됐고 수능의 EBS 연계율도 무려 70%나 되니까요. 그 뿐 아니라 인터넷강의의 발달로 전국 어디서나 최정상급 강사의 수업도 들을 수 있지요. EBS 강의는 무료로 들을 수 있고, 강남인강도 1년에 5만원만 내면 전과목을 들을 수 있으니 이제 수능 준비는 경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 의지의 문제입니다.

반면, 학교내신은 수시모집 강화로 인해 사교육의 필요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수능은 전국공통시험이다 보니 의지만 있다면 스타강사들의 인터넷 강의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만, 학교 내신은 학교별로 교과서도 다르고 선생님별로 출제경향도 달라 인터넷강의로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교육평등을 외치는 진보교육자라는 분들은 수능을 점수로 줄 세우기라며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어째서 내신은 점수로 줄 세우기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까요? 수능은 딱 한 번만 줄서면 되지만 내신은 고교 3년 내내 줄을 서야 되는 것인데요. 한 번 선 줄은 바꿀 수도 없고요.

어쨋든 이번에 발표된 2022 수능 개편안이 실제로 확정·시행된다면 고교 교육과정의 파행운영은 물론이고 고교등급제 심화로 인해 순진한 지방 일반고 학생들의 피해가 심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수능이 학생을 줄 세우는 입시제도라면 학종은 부모를 줄 세우는 입시제도입니다. 수능이 무력화되면 대학은 학종 강화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고 결국 학교와 부모의 풍족한 지원을 받기 힘든 지방 일반고의 평범한 가정 아이들은 입시준비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