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미루고 미루고”...교육자치의 그늘, 돌봄 중식 급식 제공 논란

2020-08-27     지성배 기자
(이미지=아이클릭아트)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코로나19 창궐로 원격으로 전환된 1학기 논란 중 하나는 '긴급 돌봄 시 학교 구성원에서 급식을 제공해야 하느냐'였다.

이 문제의 핵심은 학교급식 대상을 규정한 학교급식법4조에 ‘학교 또는 학급에 ‘재학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하나의 문장 때문이었다.

결국 학교는 원격 수업으로 전환돼 학교 급식을 제공할 법적 명분이 없을 뿐더러 학교 급식을 제공하면 밀집도가 높아져 감염 위험이 있다는 반대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듯했다.

그러나 학교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와중에도 학교급식 조리원은 출근을 하였으며 청소를 한다는 이유로 급여를 받아가는 등 학교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갈등은 쌓여만 갔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은 학교 급식 제공 대상을 ‘학급에 재학하는 학생’에서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학생과 그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변경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2학기를 앞두고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또다시 수도권 학교는 9월 11일까지 원격수업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돌봄서비스는 제공하는 등 1학기와 비슷한 모습으로 흘러가면서 해결되지 않은 학교 급식 제공 문제는 다시 점화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25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수도권 지역 유초중고특수학교 전면 원격 수업 전환을 발표하며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끼지 돌봄서비스를 운영하고 중식 급식은 제공한다. 구체적 운영 방식을 학교의 장이 결정하라”고 했다.

박백범 차관은 27일 '초등돌봄 운영 방안'을 발표하며 "원칙적으로 돌봄 학생에게도 학교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시간이 필요하거나 학생이 적을 경우 외부 도시락 등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은혜 장관 발표 이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교육청들은 이미 서둘러 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중식 지원 방식 등을 결정했다. 학교의 장이 결정하도록 말이다.

결국 최종 결정자는 학교의 장이 되었다. 겉으로는 학교 자치의 아주 표본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부 사정은 달랐다.

학교 장들은 학교 급식 제공 관련 논의를 위해 급식종사원과 협의를 해야 했고 그들의 입장은 1학기와 변하지 않았다. 또 서울의 경우 학교 급식 식재료를 납품하는 서울친환경유통센터에서 마진 등을 이유로 식재료 제공 여부를 3차례에 걸쳐 번복, 현장은 손 놓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서울교사노조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 돌봄을 신청한 학생은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200명이 넘었다. 소규모로 식재료를 학교 현장에 공급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 업체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죽했으면 농산물꾸러미라는 것을 만들어 가정에 배포했을까.

결국 급식을 제공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시장에서 장을 봐야 하는 학교 상황을 예상한 서울시교육청은 공문을 통해 '비리가 없으면 문책하지 않는다'고 명시까지 했다.

교육 주권을 학교 현장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지속돼 왔다. 이에 맞춰 많은 권한이 학교 현장으로 넘어가 학교 자체적으로 협의를 통해 진행하는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이를 교육자치라 명명하고 실행해왔다.

그러나 자치가 모든 것을 옳고 적절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이끌지 않음이 돌봄 중식 급식 제공 사안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논의 테이블에 앉는 사람의 이해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특정 조직에 속해 있을 경우 조직의 결정 사항을 따라가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왜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일까.

한 교육계 인사에 따르면 “시도교육청마다 공무직의 입김이 다르다. 교육감이 누가 되냐에 따라, 선거에 얼마나 관여를 해 영향을 미쳤냐에 따라 사정이 다른 것 같다”며 “명문화한 법이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나서 일제히 지시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월 경기도 양주에서는 돌봄 아이에게 종이컵에 밥을 줬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긴급돌봄 관련 책임이 고스란히 학교에 전가된 것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이같은 소모적인 논란이 다시 나오지 않을 리 만무하다.

등교개학이 순차적으로 이뤄진 지난 1학기 공식적으로 학교 급식실에서 감염된 사례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새겨보자. 본질은 급식이고 방역은 방법론이다.

강민정 의원의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에 급식 관련 구성원이 오직 급식 대상자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전향적 결정을 하는 것은 어떨까.

열심히 쌓아 올린 교육자치의 금자탑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기 전에 말이다.

지성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