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쉘 위 아트 2. 자연에서
다르게 발견하는 아름다움
예전에 제가 신문사 다닐 때 선배 한분이 페이스북에 사진을 한 점 올렸습니다. 작년 이맘때입니다. 제목은 낙엽. 사진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4.11.8. 남산야외식물원, SONY DSC-RX100M3 by 김구철.’
‘좋아요’를 누른 다음 “아무나 못 찍는다는...”이라고 댓글을 달자, 이런 답글이 왔습니다.
“그렇지. 본 사람만 찍을 수 있지.”
이분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며 지금은 종합일간지에서 일합니다. 사진기자가 사진을 잘 찍는 건 당연하겠지요? 드리고픈 말씀은 ‘본 사람만 찍는다’는 선배의 촌철살인. 너무 뻔해 하품이 다 나오는 이 말씀이 실은 오늘의 핵심이랍니다.
“본 사람만 찍는다”는 건 선배가 겸손하게 말씀하느라 그런 거지요. 앞에 ‘다르게’라는 부사가 빠져 있습니다. ‘다르게 본 사람만이 다르게 찍는다’가 완전한 원래 문장입니다. 첫 시간에 “다르게 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이번엔 자연에 대해 몇 말씀 드릴까 합니다.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입니다. ‘자기 스스로 거기 있다’는 뜻이지요. 제멋대로이고 무질서하지만, 다르게 보면 정말 다릅니다. 모양과 색깔에 어떤 규칙과 질서가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지요.
오래전부터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보고 느낀 감동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해왔습니다. 자연물에서 발견한 아름다움과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작품에 나타난 모습은 동서양이 약간씩 달랐습니다.
먼저 동양.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연관을 작품에 반영합니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요. 당연히 선과 여백을 선호하겠지요?
다음은 서양. 자연에서 어떤 공통요소를 슥 끄집어냅니다. 보통 ‘인공미’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사람이 일부러 꾸며낸 아름다움’이란 뜻이겠네요.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동양과 달리 비례, 균형 따위를 선호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동양은 정신세계, 서양은 물질세계를 추구.....’와 같은 식의 구분은 썩 좋은 편이 아닙니다. ‘동양, 서양’이란 표현도 그렇긴 한데 그냥 넘어가지요.
오늘날엔 동서양이 모두 자연에 대해 비슷한 관점을 가집니다. ‘환경’이라는 이름이 그것이지요. 미술에도 유행처럼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요. 이른바 ‘자연과 교감하는 미술’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좀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강의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다들 애쓰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계속)
* 선배가 찍은 사진을 한 장 더 올립니다. 사진정보는 아까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