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 제안] 영재학교‧과학고 학생이 우수 이공계 인재가 되길 바라며
[에듀인 제안] 영재학교‧과학고 학생이 우수 이공계 인재가 되길 바라며
  • 김요섭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장
  • 승인 2021.01.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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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 졸업 의대생 이야기로 사과문을 실은 '유키즈 온더 블럭'

[에듀인뉴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제자들에게 연락이 올 때가 있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기뻐하는 학생도 있고, 무언가 뜻을 이루지 못하여 낙담하거나, 어느 고등학교에 다닐 예정인지 물으면 학교 이름 말하기를 괜히 주저하고, 때론 실패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기도 한다. 10대 중반 학생들이 감당하는 삶의 무게에 괜히 미안하고 괴로울 때가 있다.

그러던 중 한 예능프로그램이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영재학교인 OO과학고를 졸업한 출연자가 200시간이 넘는 의료봉사활동을 하며 고등학교 재학 중 꾸준히 의대 진학을 준비하여 서울권 6곳 의대에 합격한 이야기가 화제가 된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때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직업이자 사회‧경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진로 선택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듯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인지 여론은 들끓었고, 제작진은 부적절한 출연진 섭외였다며 사과문을 올리기까지 했다. 얼핏 보면 개인의 진로 선택과 성공 사례로 보이는데 왜 문제가 된 것일까?
 
우리나라 고등학교 체제와 제도를 알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고등학교는 일반고, 특목고(과학고, 외고, 국제고, 예고, 체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자율고(자율형사립고, 자율형공립고), 영재학교 등으로 다양화되어 있다. 이 중 영재학교(이하 영재고)와 과학고는 각각 이공계‧과학 분야 우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이다. 

국내에는 영재고 8개, 과학고 20개의 학교가 있으며 학생 수는 약 7000여명에 불과하다. 영재고와 과학고는 각각 전국에서, 광역시도에서 우수 학생을 선발하고 있는데, 두 학교의 최근 3년간 입학경쟁률은 각각 14:1, 3.5:1을 웃돌 정도로 치열하다. 학교별, 지역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입학하기 위해 많은 사교육비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학생의 쉼 없는 생활, 교육 기회 불평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영재고와 과학고는 과학 기술 분야 인재 양성이라는 학교 설립 목적을 가진다. 하지만 지난 4년간 해당 연도 졸업생 기준 345명(재수생의 정시 진입까지 더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이 의약학계열 대학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금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비단 학교의 설립 취지 훼손 문제만은 아니다. 이들 학교에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별로 수십억 많게는 백억 이상의 예산지원이 이들 학교에 이루어지고 있는데, 예산으로 학생들의 장학금과 우수 교원 배치, 각종 실험 연구 등을 지원한다. 

일반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혜택이기에 이러한 혜택을 다 누리고 과학 기술 분야가 아닌 의대를 진학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자 해당 교육을 받고 싶었던 다른 학생들의 기회를 빼앗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장 해당 고등학교에서 느끼고 있는 상황인데, 일부 영재고에서도 이런 사례가 많아지다보니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집 요강에 의학계열 대학 진학 시 교육비와 장학금을 환수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가 되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그냥 돈 내고 말지’ 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차원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내받고서도 편법으로 의대에 진학하는 모습은 개인의 선택권 차원이 아니라 공공성 훼손의 시각으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교육부 보도자료 캡처

교육부에서는 작년 11월 영재학교‧과학고 입학전형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영재학교 간 중복지원 금지’, ‘영재학교‧과학고 전형 기간 축소’, ‘평가 문항 개선’. ‘영재학교 지역인재 우선선발 확대’와 같은 대책은 내놓았으나 화려한 말잔치일 뿐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당장 이번 문제와 관련한 대책은 거의 없으면서 “영재학교‧과학고가 세계를 선도하는 우수한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선언만 하고 있다.

의학과 과학이 꼭 분리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과연 영재고와 과학고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적 지식을 융합‧활용하는 의료인을 양성하는 곳인가 의문이 든다. 의사가 되고 싶으면 목적성을 지닌 영재고와 과학고가 아닌 다른 고등학교에 가서 진학을 하면 될 것이다. 

고교체제 개편 등 교육 자체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 복지, 사회구조 등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 넓은 관점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로 왜곡된 고교 입시 현상, 설립 취지를 훼손한 편법적인 사례, 그리고 그것을 개인의 능력으로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풍토, 막대한 국민 혈세 낭비와 다른 학생의 기회를 박탈하는 문제는 명백히 드러난 것이기에 우리는 이 문제 앞에서 침묵할 수 없다. 

교육부 보도자료 캡처

가깝게는 영재고와 과학고 학생들이 졸업하는 해 의대 지원 시 졸업 학력을 부여하지 않는 방법, 의약학계열 지원자격 제한을 의무화하는 엄격한 제도화를 논의해볼 수 있다.

대학에서도 영재고와 과학고 학생들을 의대로 데려오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영재고와 과학고 출신 입학생 비율이 높은 의대 현황을 공개하고 해당 대학에는 예산지원 감축을 할 수도 있다.

또 정상적인 중학교 교육을 받으면 영재고, 과학고에 진학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입학해서도 사교육 없이 해당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영재고와 과학고를 위탁형식으로 운영하여 원 소속교에서 추천을 받아 검증을 거쳐 특정 교과목이나 프로그램을 수료하게 할 수도 있다. 동시에 과학고와 영재고의 교육과정을 지역에 개방하는 ‘공유 교육과정’ 내지는 ‘네트워크형 교육과정’을 구현하는 학교 모델도 상상해볼 수 있다. 

영재고 정원의 절반 이상을 3개 프랜차이즈 학원에서 배출하고 있다고 홍보되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게 입학한 이공계 인재 육성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의대에 진학하는 현상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설립 취지를 망각한 채 학교 간 서열화와 사교육 심화 등 불평등을 야기시켜 2025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교훈 삼아 영재고와 과학고의 내일을 성찰할 때이다. 

김요섭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 인천시교육청 파견교사
김요섭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 인천시교육청 파견교사

김요섭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장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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