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지구 사업 등 '학교-지자체 협력 사업' 전국 확산
행정기관 편의 따라 수천 건 지출 건별 분류 등 불만 급증
실천교사 "지자체 예결산시스템 학교와 동일하게 운영을"

서울 한 지역의 교육경비 보조사업 신청서. 교사들은 행정 기관의 서식에 맞춰 신청서와 계획서를 작성해 정해진 기한 내에 제출해야 한다. 사진=지성배 기자
서울 한 지역의 교육경비 보조사업 신청서. 교사들은 행정 기관의 서식에 맞춰 신청서와 계획서를 작성해 정해진 기한 내에 제출해야 한다. 사진=지성배 기자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아이들에게 문제 풀어라, 그림 그려라, 독서해라 해놓고 온종일 공문처리만 하다가 하루가 끝난다. 교육격차는 사업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소화하느라 일상 수업을 못 하니까 생긴다.”

혁신교육지구 등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간 협력사업에 교사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계획 및 정산서 제출하느라 학교 수업은 뒤로 내몰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 협력사업인 혁신교육지구 사업은 서울의 경우 2012년 2개 자치단체에서 2019년 서울 전체 자치단체가 시행하고 있으며, 경기도는 27개 지역에서 혁신교육지구를 운영하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이하 실천교사)은 22일 지난 15~21일까지 전국 지자체 협력사업 업무 담당 경험 교사 351명 설문을 진행한 결과, 지자체 협력사업이 교육 수행을 저해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예산 경직성 높아 소모성 예산 집행 많아...낭비 초래 

먼저 교사들은 협력사업 예산의 경직성(72.3%)과 산출 근거의 세밀함(62.8%)을 대표적인 어려움으로 꼽았다.

학생과 지역 특성에 따라 가짓수와 변동성이 많은 학교 예산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고 일반 행정 기준이 적용돼 복잡하다. 이는 소모성 예산 집행(56.2%)으로 이어져 예산이 낭비되는 결과까지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사업예산 정산 시 어려움에 대한 호소도 많았다. 협력사업 정산이 학교 정산보다 복잡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80%에 육박한 것.

신동하 실천교사 정책위원은 “현재 협력사업의 정산은 일반 행정 양식에 맞추어져 있다. 수천 건의 지출을 건별로 정리하고 통장 잔액까지 스캔해 보내야 한다”며 “학교에서는 에듀파인을 사용하고 있고, 에듀파인 기준이면 회계 투명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므로 지나친 요구”라고 설명했다.

바쁜 3월, 12월 '교육사업'이라서...행정실 아닌 교사가 회계 처리 

특히 각종 교부금 회계의 경우 ‘교육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교사들이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행정실에서 관련 사업 회계를 담당한다는 응답은 10.9%에 불과했다.

신 위원은 “비전문가인 교사들이 회계처리를 하면 재정산 등이 이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며 “교사들은 그만큼 아이들 교육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침해받게 된다”고 말했다.

사업계획서와 정산서 제출시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65.2%가 지적했다. 보통 학교는 3월 학기 초와 12월 학기말이 가장 바쁜데, 같은 시기에 사업계획서와 정산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1년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학기 초, 입시나 학생부 마감 등이 이뤄지는 학년말에 학생들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져 교육력이 저하된다는 주장이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이 지난 15일(금)~21일(목) 실시한 지자체 협력사업 조사 결과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제공=실천교육교사모임
실천교육교사모임이 지난 15~21일 실시한 지자체 협력사업 조사 결과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실천교육교사모임

지자체마다 다른 강사비 책정도 문제로 떠올랐다.

서울 기준으로 일반적인 시간당 강사비는 2만2000원이다. 그러나 한 기초자치단체는 강사료를 8만원으로 책정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이는 강사가 필요한 다른 영역에서 구인난을 유발하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 학교가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실천교사는 교사들의 이러한 어려움이 업무 기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설문 결과 84.1%(매우기피-37.4%, 기피 46.7%)의 교사가 해당 업무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나 선호 1.8%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실천교사는 “지자체 협력 사업을 학교가 일반 행정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사업 자체에 매몰되게 만들어 교육의 본질을 흐릴 위험이 크다”면서 “지자체 예결산 시스템을 학교 시스템과 동일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사업 운영 전문 인력을 배치해 학교 행정실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자체 지원금은 목적사업비 혹은 개산급 방식으로 바꾸거나 실무 자체를 지자체가 이관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강사도 지자체가 채용 파견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