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은 숨통이 트이는 것과 같다. 바둑에서의 훈수처럼 제삼자의 처지에서 바라보면 신기하게 양쪽의 상황이 읽힌다. 다른 사람의 사정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자기의 사정부터 말하고 싶겠지만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이 소통의 지름길이다.

<학생 이야기>

05. 먼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자.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복도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른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는 걸 보니 누군가 야단을 맞는 모양이다. 쉬는 시간이라 복도에 아이들이 많을 텐데 혼내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복도 한가운데 고개 숙인 두 명의 아이가 나란히 서 있고, 교사는 상기된 얼굴로 훈계하고 있었다. 해당 과목이 대학 입시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공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혼나는 상황은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나서야 일단락되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정해진 교과 시간에 집중하기는커녕 타 과목 과제를 하는 아이에게 좋은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수능 시험 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이다. 혼날 만한 이유였고 호통칠 상황이었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이라면 공개적인 호통이 흔치는 않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와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 교사에게 불리한 입장으로 반전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상처 입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하는 이유다.

각자 이유가 있는 일에 누군가 나선다면 오지랖 부리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재를 요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라도 개입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므로 불쾌한 기분을 갖기에도 충분조건이 된다. 그런데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 아이들 기분은 어땠을까? 혼난 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를 물어봐 주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복도에서 본 아이들의 표정이 불쾌와 죄책감, 창피함, 원망, 걱정, 미안함 등이 교차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후 담임 교사께 아이들을 만나 보고 싶은 의향을 전달했다.

첫 번째 만난 아이는 기가 죽어 있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알겠는데 이렇게 심각한 일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선생님에 대한 원망보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자신이 한 일로 인해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난 아이는 조금 달랐다. 차분하지만 당당해 보였다. 선생님이 화가 난 이유가 자신이 따지듯이 말대답한 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소 그 선생님과 사소한 갈등이 엉켜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더 화난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자기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두 아이의 공통된 의견은 그 당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혼을 낸 교사에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복도에 친구들이 많았고 옆에 담임 교사도 있었던 터라 차마 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말하고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전에 잘못한 일로 인해 담임 교사의 눈치만 보였고 이미 경고도 받은 바 있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고 했다. 따지는 듯한 말로 들렸을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가만히 있었으면 오해를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도 했다.

말을 들어 주자 품고 있던 생각을 풀어낸 아이들은 스스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 일로 선생님들이 안 좋게 보는 게 걱정이지만, 남은 학교생활을 잘해 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앞으로 혼을 냈던 선생님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나아질 것이라고도 했다. ‘괜한 중재에 나섰나?’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아이들 덕분에 한시름 놓아도 됐다.

재준이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아이다. 상담실에 오면 꼭꼭 싸매 놓은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마음 밖으로 꺼내는 말들 대부분은 화났던 일이나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전 친구에게 일어난 사건, 엄마에게 서운했던 일, 온라인에서 알게 된 모임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한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피드백을 받은 담임 교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속을 모를 만큼 교실에서는 조용한 아이라고 말했다. 상담실에 보낼 만큼 입을 꾹 다물고 묻는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는 재준이가 답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공감하는 사람이 없어서 말이 없는 아이로 지낸다. 정작 당사자에게 해야 했을 표현을 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 두었던 서운한 언어들과 우물쭈물하다 꺼내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 대인 관계에서 오는 짜증과 불만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친구가, 선생님이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간관계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에게 서운한 일들이 많아졌고, 섭섭한 일투성이였다. 게다가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언짢은 생각이 커졌고 원했던 따뜻한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자기 말을 잘 들어 주길 원했던 만큼 외로움도 깊었다. 조언이나 충고를 듣는 일이 더 많았으니 당사자의 입장에는 힘들고 억울했을 법하다.

일상에서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인내심을 갖기 어려울 만큼 학교는 바쁘게 돌아간다.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상대를 판단하며 자기 관점에서 먼저 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급급할 따름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듯 처지 바꿔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자기 생각대로 결론을 내리고 듣기 싫은 상대방의 이야기는 아직 세상 이치를 모르는 편향된 생각으로 간주해버린다. 되지도 않는 말을 듣느니보다 그냥 그 말을 끊어 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상황을 정리한다. 거기엔 격려도 경청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관점에서는 편리한 대화 방식이다. 합리적이고 현명한 조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대방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합리성을 앞세우면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다. 전후좌우를 따지고 들자면 한이 없고 복잡한 내용들이 부지기수지만, 그냥 말을 들어 주기만 해도 가슴 속 매듭이 느슨해질 때가 있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 베이커(James Pennebaker)의 저서 《털어놓기와 건강》에 억제된 생각과 감정을 언어화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유익하다.”라고 말한다. 단지 들어 주었을 뿐, 어떤 방책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잘 해결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일도 누군가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마법같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존중의 의미로 전달되는 까닭에 누군가 이야기를 경청하면 자신이 소중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자신을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은 숨통이 트이는 것과 같다. 바둑에서의 훈수처럼 제삼자의 처지에서 바라보면 신기하게 양쪽의 상황이 읽힌다. 다른 사람의 사정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자기의 사정부터 말하고 싶겠지만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이 소통의 지름길이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