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서 주사 맞기 싫어요" 소아 당뇨 환자 “국공립 유치원도 안 받아줘”

보건교육포럼 “응급처치 시스템 마련부터 해야… 학생 안전 보장 안 돼”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나오지 않는 1형 당뇨병은 ‘소아 당뇨병’으로 알려질 정도로 15세 미만 어린이에게 주로 나타난다. 소아 당뇨 환자는 최소 하루에 7번 채혈해 혈당을 체크하고 4번 이상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준수(5·가명)군은 내년에 어느 유치원에 입학해야 할지 막막하다. 준수군을 받아 준다는 유치원을 아직 찾지 못한 준수 군의 어머니 김모(34)씨는 지난 20일 집 근처 국립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우선입학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하루에도 수차례 주사를 맞아야 하는 소아당뇨 영유아들에게 제도권 교육은 꿈꾸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루 수차례 혈당량을 체크해야 하고, 주사를 놓아야 하는 등 부담을 감수하는 게 싫은 유치원들이 입학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아청소년의 1형 당뇨병 발병률은 10만 명 당 3명꼴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소아당뇨 아이들이 보건교사가 있는 유치원을 비롯해 국공립 유치원에 우선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현재 우선입학 대상은 저소득층이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로 한정돼 있는데, 관리가 절실한 소아당뇨 아이들로 입학 대상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황주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30일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유아교육법’을 발의했다.

# 은경이(12·가명)는 화장실에서 몰래 주사를 놓는다. 2년째 당뇨를 앓고 있어 하루에 4번 이상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수시로 혈당을 체크하고 결과에 따라 주사를 제때 맞지 않으면 저혈당이나 고혈당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은경이는 친구들이 보는 교실 안에서 혈당 측정기를 꺼내고 주사를 놓기는 부끄럽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소아당뇨 환자 중 30.3%가 화장실에서 몰래 인슐린을 투약한다. 당뇨를 앓는 어린이 3명 중 1명은 친구나 교사의 도움 없이 혼자 혈당검사를 하고 화장실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당뇨병은 성인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췌장에서 인슐린이 아예 나오지 않는 1형 당뇨병은 ‘소아 당뇨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당뇨를 앓는 어린이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소아당뇨 환자는 하루에 최소 4번 이상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고 7번 이상 채혈해 혈당 검사를 해야 한다. 혈당이 낮아지면 갑자기 쓰러지고 합병증이 올 수 있어서 검사 시간, 인슐린 투약 시간을 잘 챙겨야 한다.

그러나 보건 교사가 소아 당뇨환자를 돌보기도 어렵다. 보건실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는 경우는 36.4%에 불과했다. 보건 교사가 인슐린 투약을 도울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선뜻 주사를 놔주기도 어렵다. 의사 처방 없이 주사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인슐린 주사는 스스로 주사할 수 있는 의료 행위로 일반인도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시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소속 양승조(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어린이집이나 학교 교사가 소아 당뇨를 앓는 어린이에게 인슐린 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학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11일 대표 발의했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소아 당뇨병을 앓는 영유아는 간호사가 배치된 어린이집을 우선 이용하고 ▲어린이집 교사가 부모의 동의를 받으면, 인슐린 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했다. 학교보건법 개정안은 보건 교사가 부모의 동의를 받으면, 인슐린 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을 낸 양 의원은 “소아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수시로 혈당 체크와 인슐린 주사를 놓는 별도의 보호가 필요하다”면서 “소아 당뇨 환자가 교사의 도움을 받아 혈당 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개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학교생활 중 학생에 대한 약물 투약을 보건교사가 보조하도록 하는 법안에 대해 보건 관계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단법인 보건교육포럼은 23일 "소아 당뇨 학생을 도우려는 선한 취지에는 공감하나 의료법 시각지대에서 학생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고 법적 직무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김미경 보건교육포럼 수석대표는 "보건교사에게 사실상 진료행위를 맡기는 법안인데 보건교사단체들과의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의사들이 문제없다고 하더라'는 식의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신민수 보건교사(동자초)는 "이 법을 보면 소아당뇨병 환자의 자가 주사를 의사 처방에 대한 간단한 주사행위처럼 오해한 듯하다"며 "초등 소아당뇨병 학부모의 경우, 대부분 교대로 24시간 예의주시하며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슐린 투약이 간단한 주사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세심한 관찰을 토대로 시술돼야 하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부모나 병원이 담당하던 인슐린 투약을 아무런 조정권한이나 응급대처 시설도 없이 보건교사에게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윤미 보건교사(봉수초)는 "보건교사에게 의사가 처방한 학생의 '자가 주사'를 보조하라고 하지만 사실상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라며 "보건교사가 직접 책임을 지고 주사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우 교사는 "의료기관내에서만 진료를 하도록 한 의료법을 개정해 의사가 학교를 방문해 주사하게 하거나 보건교사에게 진료권한을 주고 보건교사 2인 배치와 응급시스템 등을 갖추는 고려 없이 진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박상애 교사(산곡초)는 “(당뇨 환아의) 학교현장의 화장실 투약 사례는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증언했다. 보건교사의 지도가 있어도 학생환자 자신이 수많은 학생들이 찾고 있는 보건실 방문을 거부하고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공간을 찾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경기대 교수 A씨 역시 “의료적인 인프라가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보건복지부의 유권 해석을 들어, 학교장에게 소아당뇨 학생의 투약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의사처방 투약을 일임하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의 안전도 문제거니와, 국가교육공무원법과 학교보건법 등에 명시된 학교 보건의 역할 및 보건교사의 직무와 전적으로 상충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인 B씨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응급대책이 취약한 학교에서 막상 사고가 터질 경우 부모는 누구에게 하소연 하겠는가"라며 우려했다. 환자가 중태에 빠지거나 죽음에 이를 경우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소아당뇨 주사는 보건교사에게 허용하지 않고 있다. 보건교육포럼 김미경 수석대표는 "일본의 경우에도 학교에서 알러지 발생 시 응급 에피펜 주사 사용은 허락하고 있지만, 진료행위가 되는 소아당뇨 주사는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수석대표는 “현장의 보건교사 단체, 학부모 등과의 열린 토론을 통해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부처와 합의해 예산과 인력이 반영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