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

"교육은 주로 철학과 소신의 문제다"

[에듀인뉴스]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 교사가 성 평등 주제의 수업 시간에 급진적인 페미니즘 영화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성 비위 교사로 몰려 직위해제 당하였다. 교육청의 과도한 행정 처분에 현재 전국도덕교사모임을 중심으로 교사들 사이에 공분이 일고 있다.

온건한 성향의 교사들조차 영상자료의 부적절성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교육청의 일방적인 행정 집행에 대해서는 심각한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교권 보호', '교사의 수업권', '사회 개혁'...직위해제를 철회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현장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사태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본다. 아울러, 이러한 이유에 따라 A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첫째, ‘교권 보호’라는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필자의 지난 글(에듀인뉴스, 2019.07.25)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학교교육의 위기는 ‘교사의 권위가 바닥에 내려앉은 것’으로 요약된다. 나는 교권 붕괴의 주된 이유가 민원인을 왕처럼 섬기는 공직사회 풍토에 있다고 본다.

교사의 수업방식이나 말 한마디를 문제 삼아 학생이나 학부모가 민원을 넣는 순간 교사는 죄인으로 전락한다. 민원처리 기관인 교육청에서는 교사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학부모의 고충을 중하게 여기며 민원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교육청이 민원인을 극진히 섬기면 섬길수록 교사의 위신은 한없이 초라해져간다.

둘째, ‘교사의 수업권’이란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교직은 전문직이다. 전문직 종사자에게 ‘자율성’은 생명과도 같다. 즉 자율성은 전문성이 유지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교직이 전문직인 까닭은 교육이 고도의 사상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천편일률적인 매뉴얼에 따를 것이 아니라, 교사의 전문적 판단에 기초해 교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교사에게 이 자율성이 부여되지 않으면 교육은 불가능하다. 교육은 주로 철학과 소신의 문제일 뿐이다.

셋째, 지금보다 덜 추한 세상을 위한 ‘사회 개혁’이라는 차원에서도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촛불’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강력히 대두하는 화두는 적폐청산 또는 혁신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급격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성 평등’과 관련한 이슈다. 이를테면, 미투운동은 그 본원지인 미국사회가 놀랄 정도로 위력적으로 전개되어 우리 사회의 직장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고무되어 페미니즘 운동도 가열 차게 전개되는 추세인데, 지금까지 여성의 신체를 속박해온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탈코르셋’ 운동이 좋은 예이다.

대낮에 젊은 여성들이 광장에 모여 웃통을 벗어 던진 채, “여성의 몸은 남성을 위한 눈요기 감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풍경은 지구상 마지막 유교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이 영화 ‘억압받는 다수(Oppressed Majority)’에도 비슷한 장면이 비슷한 의도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데,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교사는 중징계의 위기에 처해지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글에서 논했듯이, 여성이 웃통 벗고 조깅하는 장면에서 선정성은 전혀 없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사람 사는 세상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선결 과제, '성 평등'

흔히 교육을 ‘국가의 백년지대계’라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학교교육과 교사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을 말하는 것일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일까?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세상이 깜짝 놀랄 만큼 일취월장해 있다. 경제문제는 더 공평한 나눔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은, 더 많은 사람이 차별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장 시급히 혁신해야 할 문제가 ‘성 평등’이다.

인간 세상의 절반(Majority)이 나머지 절반(Minority)을 억압하는 문제를 외면하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는 것은 말이 아니다. 그런데, 국가의 밝은 미래를 위한 보루라 할 학교에서 혁신적인 양성평등 교육을 백안시 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은 전문직이고 전문직은 고도의 자율성을 생명으로 한다"

흔히 말하듯이, 권리의 이면엔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높은 수준의 자율성이 허용되는 만큼 우리 교사들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끊임없는 자기연찬을 해간다. 교사가 계속 연구하고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페미니즘 수업도 A 교사의 부단한 자기혁신의 소산으로 봐야 한다.

만약, A 교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교단에 처음 선 30년 전에 머물러 있어서, 이를테면 ‘집안의 중대사는 남자가 결정하고, 날씨가 더울 때 남자는 웃통을 벗을 수 있지만 여자는 절대 그럴 수 없다거나, 여성이 성폭행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아야 하고, 직장에서나 어디에서든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면 이런 고초를 겪지 않을 것이다.

국가 간에 치열한 경쟁으로 나날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교사는 위기를 감수해야 하고 구태를 답습하는 교사는 안일을 영위해간다면 이 나라의 백년지대계가 어찌 될지 걱정이다.

꾸준한 자기발전을 꾀하며 의식과 지성을 단련해가는 교사와 그러하지 않은 학부모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교육에 관한 비전문가가 전문가의 교육실천을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교육청에 민원을 넣으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비전문가의 판단이 전문가를 압도하는 게 우리 교육현실이다. 민원인은 왕이고 교사 목숨은 파리 목숨인 현실 속에서 교사가 어떻게 소신 있는 교육을 펼쳐나가겠는가?

민원인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교육 관료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성 평등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문제가 불거졌으니 해당교사를 성비위자로 몰아 직위해제 시키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빚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A 교사가 교단에 처음 선 군사정권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직위해제는 파면 또는 해임에 준하는 중징계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조치다. 만약, 성 평등한 세상을 위해 혁신적인 수업을 시도한 교사가 중징계에 처해진다면, 이 중대한 결과는 이 땅의 나머지 교사들에게 어떤 강력한 ‘학습’을 강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선 전문가의 생명인 자율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주로 철학과 소신의 문제이련만, 철학과 소신이 밥줄을 끊는 독약이라면 누가 그 독배를 기꺼이 들고자 하겠는가? 교사가 소신을 내려놓는 순간 교육은 망한다.

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
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