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억압받는 페미 교사① '억압받는 다수'와 교사, 누가 누굴 억압하는가
[기고] 억압받는 페미 교사① '억압받는 다수'와 교사, 누가 누굴 억압하는가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8.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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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

A 교사, 프랑스 영화 '억압받는 다수' 틀고 성비위 직위해제
수업 자료 부적절로 성비위 처분?..."공명정대한 결론 다다르길"
프랑스 영화 '억압받는 다수'의 한 장면. 최근 광주의 한 교사가 수업 중 페미니즘 영화로 알려진 이 영화를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성비위로 직위해제됐다.
프랑스 영화 '억압받는 다수'(Oppressed Majority, 2010)의 한 장면. 최근 광주의 한 교사가 수업 중 페미니즘 영화로 알려진 이 영화를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성비위로 직위해제됐다.

[에듀인뉴스=정하늘 기자]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A 교사는 성평등 교육자료로 페미니즘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다가 중징계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성평등을 주제로 한 영화이기에 당연히 성 문제를 소재로 삼는데, 직설적인 표현양식에 불편을 느낀 학생이 부모님께 얘기를 했고 학부모가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여 문제가 불거졌다.

황당하게도 광주교육청은 A 교사를 ‘성비위 교사’로 몰아 직위해제 시켰다. 여학생과 약간의 신체 접촉이라도 있었거나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발언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 사안을 성비위 문제로 몰아가는 것일까?

교육청의 논리는 단순 명료하다. 교사가 보여준 성 관련 영상 때문에 학생이 불편을 느꼈으니, 학생은 피해자 교사는 가해자가 되고, 가해의 죄목이 성비위로 규정된 것이다. 사고가 미분화된 어린 아이에게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단순한 형식논리라 하겠다.

영화 '억압받는 다수'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적잖은 사람들은 문제의 영상물이 중학생들이 보기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무릇 교육이란 고도의 사상 행위이기 때문에 교사의 교육실천에 대한 평가는 철학적 접근이 요구된다.

더구나 A 교사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도덕과(科) 교사다. 따라서 A 교사의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적 접근이 필요하다.

철학적, 사회학적, 미학적 관점에서 이 영화를 들여다보면 그 비범한 작품성에 감탄하게 된다. 이 영상물은 A 교사를 직위해제로 몰고 간 유일무이한 근거로 작용한 만큼, 보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을 느낀다. 영화의 작품성은 교사의 교육실천의 정당성을 보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영상물은 11분 분량의 프랑스 영화인데 제목이 영어로 ‘Oppressed Majority’이다.

한글자막 영상에서는 ‘억압받는 다수’로 옮기고 있는데 내가 볼 때 오역이다. Majority는 ‘주류’ 혹은 ‘사회적 강자’를 의미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남성을 지칭한다. 반대로 여성은 보봐르의 표현대로 제2의 성(Secondary Sex), 즉 비주류이고 사회적 약자이다. 현실 속에서는 사회적 강자인 남성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억압하지만, 이 영화는 거꾸로 여성으로부터 억압 받는 남성(Oppressed Majority)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억압-피억압이 전도된 가상현실로 남녀 성평등의 문제를 생각해보자는 매우 신선하고 독창적인 내러티브가 이 페미니즘 영화의 탁월성이라 하겠다.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는 최선은 그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직접 그 입장이 될 수 없으면 간접적으로나마 생생한 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장애이해교육의 방편으로 몇 분 동안만이라도 안대를 쓰고 시각장애인이 되어 그 고통과 불편을 느껴보게 한다.

이 영화는 가상의 여성지배적(Feminist) 사회 속에서 한 젊은 남성이 겪는 질곡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그 서술 방식이 너무도 창의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장면들로 점철되어 폭소를 자아내는 한편 진지한 성찰을 요청하면서 평소 우리가 놓치고 있던 많은 성적 불평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이를테면, 성폭행 피해 남성이 여성 경관의 시선을 의식하며 허벅지가 노출된 반바지를 손으로 끄집어 내리는 모습은 너무도 우스꽝스럽지만(성별의 전환이 있을 뿐) 우리 일상에서 흔한 풍경이다. 이를 통해, 우리네 여성들이 얼마나 큰 불편을 겪고 있는가 하는 각성이 찾아든다.

아내가 남성의 옷차림을 나무라는 장면에서는, ‘야한 옷 입은 여성은 강간당해도 싸다’는 남성지배적(Masculinist) 사회(현실 사회)의 진부한 수사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 속에서 남성 옷차림에 대한 여성의 관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평소 여성의 옷차림에 대한 우리 남성들의 관점은 그저 ‘보수적인’ 사고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나름 진보적인 남성 페미니스트라 착각했던 내 의식의 한계를 이 영화가 일깨운다.

영화 '억압받는 다수'의 한 장면
영화 '억압받는 다수'의 한 장면

논란의 그 장면, 페미니즘 교육 자료로는 어떠한가

나에겐 이 영화가 내 내면의 식민지적 사고를 각성시키는 계몽적 축복으로 다가오지만, 우리 청소년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충격으로 다가갈 우려가 예상된다. 사회통념상 중학생이 소화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몇 군데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런 장면들로 인해 지금 A 교사가 심각한 고초를 겪는 것인데, 크게 주인공 남성을 향해 던지는 불량배 여성들의 성폭력 발언 부분과 웃통 벗고 조깅하는 여성이 나오는 부분이다.

여기서 전자는 내가 봐도 문제가 많다. 프랑스는 몰라도 한국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에서 이 영화를 그대로 투입하기엔 무리가 있다. 차라리 자막(영어든 한글이든)을 제거하고 영상만 보여주면서 중간 중간에 교사의 해설을 덧붙이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더라면 별 문제 없이 성공적인 성평등 수업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자 언어가 주는 불편을 제외하면 이 부분에서 문제가 될 것은 거의 없다. 이를테면, 성폭행 장면에서 적나라한 부분은 경찰이 작성한 조서를 피해자에게 읽어주는 방법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계속해서, 웃통 벗고 조깅하는 여성이 나오는 장면을 살펴보자. 영화에 대한 약간의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성의 신체 노출’과 관련하여 할리우드 영화와 프랑스 영화의 차이를 알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여체를 남성의 음욕을 자극하기 위한 관음적 맥락에서 카메라가 포착하지만, 프랑스 영화는 그냥 리얼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 결과, 노출의 정도는 후자가 전자보다 심하지만 선량한 관객이 느끼는 성적 수치심의 강도는 전자가 훨씬 심각하다.

이 영화 속 문제의 노출 장면은 할리우드식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며 차라리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여성을 찍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야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영화보다 초등학생들도 즐겨 보는 걸 그룹의 뮤직비디오가 몇 곱절 더 심각하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론이 아닐까?

수업에 참가한 학생이든 일반 성인이든 이 장면이 충격적이고 불편하다고 느꼈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페미니즘 교육자료로서 이 영화는 더욱 가치를 발한다.

만약, 더울 때 남성은 젖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성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학생이 있다면, 이러한 의식 자체가 ‘양성평등’의 이름으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이 영화를 수업자료로 쓴 수업자의 의도를 생각할 때, 이 장면은 일종의 ‘충격요법’이라는 전술적 방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초등학생이 야영장 장기자랑이나 학예회에서 걸그룹의 선정적 안무를 그대로 따라 해도 별 문제를 못 느끼면서 여성이 웃통을 벗은 장면을 성평등 교육자료로 제시하는 교사는 엄벌에 처하는 이 나라 교단은 정상이 아니다.

시련 있어야 진화..."공명정대한 처리를 바란다"

도처에 룸살롱과 퇴폐향락업소가 즐비하고 키스방이니 대딸방이니 하는 듣기조차 민망한 영업행위는 허락하면서, 성 평등한 세상을 위한 혁신적인 수업을 시도하는 교사는 엄벌에 처한다면, 이 나라가 이슬람세계와 뭐가 다를까?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대한민국이다. 특히 양성평등에 관한 요구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뜨겁게 일고 있다. 요컨대, 남녀 성역할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기존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한 사회든 개인이든 의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통은 불가피하다. A교사의 용기 있는 실천이 밑거름이 되어, 이 나라에서 교사들이 페미니즘을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란다.

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우리 학생들이 충격과 혼란의 진통을 겪으며, 건강한 성역할 의식을 내면화하여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
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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