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건....2014년 10건으로 늘어

- 학폭법 생긴 후 진학불이익 피하려 줄소송
- 교육문제도 법원서 다뤄야 하나…법조계 ‘부담’
 

(11월 27일 기준, 단위: 건)

경기도 수원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은 지난해 4월 반 친구들과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사진을 올렸다가 한 친구가 이 사실을 담임선생님께 알려 크게 혼났다. A양은 다시 “제보자를 찾으면 복수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고 두려움을 느낀 제보학생은 학교폭력 예방조치를 요청했다. 학교폭력 자치위원회는 A양에게 20일 출석정지 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A양과 보호자는 수원지법에 “자치위원회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제기하는 이른바 ‘학생소송’이 증가세다.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퇴학·출석정지·사과문 등 학교에서 받은 징계처분에 승복할 수 없다며 소송을 내는 사례가 늘어난 탓이다. 특히 2012년부터 학교폭력과 관련 징계내용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법으로 강제되면서 학생소송이 크게 늘었다.

판결문 검색시스템을 통해 2006년부터 최근까지 10년간 서울행정법원에서 판결이 나온 학생소송을 조사한 결과(지난달 27일 기준) 선고일 기준 2006년~2012년까지 매년 최대 2건을 넘지 않았던 건수가 2013년 9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0건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이미 9건(11월 27일 기준)이 선고됐다. 서울행정법원은 서울 소재 국·공립 초중고를 상대로 학생들이 낸 소송만 심리한다. 사립학교 대상 한 소송은 민사재판으로 진행된다.

학생소송의 대부분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징계를 취소해 달라는 요구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 등에 따르면 가해학생은 소속 학교의 자치위원회 심의를 거쳐 서면사과·접촉금지·교내봉사·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 등의 징계를 받게 된다. 또 징계를 받은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해야 한다. 생활기록부를 참조해 합격자를 가리는 상급학교 진학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지역의 한 교사는 “서면사과나 교내봉사 등 약한 수위의 징계는 졸업 후 삭제될 수 있지만 재학 중 원서를 쓸 때는 감출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이 때문에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이 소송까지 벌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포커스뉴스 제공


사건 발생 초기부터 변호사의 도움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관련 소송을 주로 다루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가해학생 학부모들은 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어떻게 하면 징계강도를 낮출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 측에서는 가해학생을 전학 보낼 수 있는 방법 등을 문의한다”고 전했다.

법원은 교육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법정다툼으로 비화하는 것에 부담스러운 눈치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징계절차 상의 오류라면 법원이 나서야겠지만 징계수위가 적절한지 등 교육적인 가치판단이 필요한 문제는 교육자들이 훨씬 잘 풀 수 있는 문제”라며 “법원이야 사건이 접수되니 판단을 내려야 하겠지만 이런 사례가 많아질수록 판사들의 부담도 크고 판결을 왜곡해 해석하는 시선도 많아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교육현장에서도 법보다는 학교 테두리 안에서 풀어야할 문제라고 보고 있다. 서울지역의 한 교사는 “학교폭력은 성인범죄와 달리 피해자와 가해자가 혼재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법원은 특정한 상황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맥락을 읽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법에 호소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지만 바람직한 것 같진 않다”고 설명했다.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서 "학교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규칙을 어기는 자는 퇴교시킬 권리를 가져야하며 그런 가능성을 가진 자를 거부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며 학교폭력의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의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학폭관련 소송 법원 판결>

법원 "동급생 때려 전치4주 상해 입힌 중학생 전학조치 정당"

동급생을 때려 전학 조치당한 중학생이 부당한 처분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청주지법 행정부(방승만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18일 김모(14)군이 자신에게 전학 처분을 내린 충북의 A 중학교 교장을 상대로 낸 '학교폭력 가해학생 전학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학교 조사 결과 지난 2월 11일 김군은 자신의 흉을 봤다는 이유로 동급생인 정모군과 전화로 말다툼하다 분을 삭이지 못해 친구 11명을 이끌고 정군의 집 앞으로 찾아갔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처음에는 말다툼이 계속됐지만 정군이 김군의 얼굴을 한 대 때리자 분위기는 곧 악화됐다.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것은 정군이었지만 이후부터는 김군의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졌고, 결국 정군은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학교 측은 학교폭력 대책 자치위원회를 열어 김군에게 전학 처분을 내렸다. 김군은 이에 불복, 충북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와 충북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 학생이 먼저 주먹을 휘둘렀더라도 원고의 폭행 정도가 훨씬 중하고, 피해 학생이 원고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에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는 점을 고려하면 전학 처분은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학교 상담보고서와 원고의 반성문을 보면 여전히 상황에 따라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폭력에 대한 반성의 마음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대화방 반말·욕설' 중2 여학생, 학교 상대로 징계취소 소송 승소

서울 도봉구에 있는 A중학교는 지난 1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를 열고 2학년에 재학 중인 B양에게 교내봉사 3일, Wee클래스(학생전문상담센터) 학생 및 부모 상담 이수 처분을 했다. B양이 같은 학교 친구들과 독서실에 갔다가 인근의 다른 중학교 1학년생 C양이 자신들을 기분 나쁘게 쳐다봐 근처 한 식당에서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또 SNS 대화방에서 C양이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학교에 알리겠다고 나오자 반말과 욕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박연욱)는 B양이 A중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B양에 대한 징계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지난 8월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B양 등이 C양에게 항의한 식당은 공개된 장소였고 통상적인 사소한 시비였다"며 "C양이 겁을 먹었다 하더라도 이 같은 '단순시비'를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며 B양의 손을 들어줬다. 또 "반말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 자체만으로 언어폭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학교폭력예방법상 폭행, 명예훼손·모욕, 따돌림 등과 유사한 수준으로서 학생의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반말’을 처분 사유로 삼은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B양이 SNS 대화방에서 C양에게 '진짜 내말이 X같지, 진짜 끝까지 마음에 안 드네, 시X년이'라는 등의 욕설 행위는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B양의 욕설은 부적절하기는 하나 그날 하루에 그쳤을 뿐이고 C양은 대화 중간에 얼마든지 나갈 수 있었다"며 "C양이 B양의 욕설로 정신적 피해가 중한 정도는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어 "B양의 가해행위는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학교폭력에 해당하고 징계처분을 받기 전 C양에 대한 사과편지를 제출했다"면서 "C양에 대한 서면사과 등의 조치에 의하더라도 향후 선도 가능성이 높다"며 학교의 처분이 가혹하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