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물에 대한 부담 갖는다면 학생도 교사도 도전할 수 없어

학생들은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온라인도구를 이용해서 의견을 정리한다.(사진=김승호 교사)
학생들은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온라인도구를 이용해서 의견을 정리한다.(사진=김승호 교사)

[에듀인뉴스] 내가 프로젝트 수업을 처음 접한 것은 2년 전이다. <프로젝트 수업 어떻게 할 것인가?>의 번역자 중 한 명인 김병식 선생님의 3시간 연수를 들었다. 연수에서 책을 받아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나 선뜻 프로젝트 수업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1년 뒤 김병식 선생님의 연수를 또 들었다.

그래도 바로 프로젝트를 시행하지 못했다. 이유는 바로 프로젝트 수업 주제를 정하는 것의 막연함 때문이었다.

프로젝트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의 구조화 정도이다. 앞서 언급한 <프로젝트 수업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에는 프로젝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적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은 처음 프로젝트를 계획 하는 교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계속해서 프로젝트 수업을 계획하는 것을 미뤄왔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가르칠 내용에는 윤리적 소비와 환경 문제 등이 있었다. 기후환경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며 전세계 청소년들이 출석 거부 파업을 하고,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문제가 연일 기사에 나오는 시점에 이런 상황을 안내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수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환경 문제는 지식으로 아는 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대안은 프로젝트였다.

환경 문제를 프로젝트로 다루기를 결심했지만, 어떤 방식의 주제를 만들지 고민이 많았다. 부끄럽지만 나조차도 환경 문제를 교과서 속 지식으로만 대해왔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적절한 주제를 만들어 주기가 어려웠다.

또한 내가 급히 공부한 지식과 문제의식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공유가 될지 의문이었다. 그 결과 나는 환경과 소비라는 두 가지 키워드만 던져준 채 학생들이 스스로 주제를 정하도록 했다.

단지 키워드만 가지고 주제를 정하는 것에 학생들은 막막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주제를 정하는 데에만 사실상 4시간을 할애했다.

2시간은 학생들에게 환경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줬다. 다큐의 내용은 음식, 기후변화, 플라스틱 문제 등을 다뤘다. 그리고 이 다큐에 대해서 감상문을 작성하게 했다.

세번째 시간엔 모둠별로 주제를 자유롭게 마인드맵하도록 했다. 인터넷 검색을 허용하게 하고 주제를 찾을 시간을 주었다. 나는 순회지도를 하면서 다양한 주제들을 조금 더 프로젝트 주제에 어울리게 수정해주었다. 한편으로는 각 모둠원들의 진로와도 연관시켜 주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네번째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프로젝트 계획서를 주고 프로젝트 목표와 주제, 문제의식 등을 작성하게 했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활용해서 질문을 만들어봄으로써 다루고 싶은 주제들을 선정한다.(사진=김승호 교사)
학생들은 교과서를 활용해서 질문을 만들어봄으로써 다루고 싶은 주제들을 선정한다.(사진=김승호 교사)

그 결과 우리 학생들은 놀랄만한 문제의식들과 창의적인 해법 등을 주제로 제시했다.

한 모둠은 우리 지역 하천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EM이라 불리는 유용미생물군이 담긴 흙공을 만들어 하천에 넣는 봉사활동을 계획했다. 어떤 모둠은 지역 내 학교들의 환경교육 실태를 조사해서 교육청에 환경 교육을 요구하는 요구서를 작성해보겠다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또 다른 모둠은 분리수거에 관한 스크래치 게임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결과물 역시 제한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정한 주제에 어울리는 결과물을 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UCC제작, 우드락 홍보판넬 제작, PPT를 이용한 발표, 게임 제작, 홍보 및 마케팅 하기 등 각자 주제에 어울리는 결과물을 생각해냈다.

문제는 너무 많은 주제로 다양한 형식의 활동이 열리다 보니, 교사가 적절한 피드백을 하거나 필요한 수업과 비계 및 안내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또한 학생들이 적절하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어보였다.

그래서 프로젝트 계획서에는 차시별 계획과 학생별 활동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순회지도 하는 방식이 아닌, 개별학생과의 5분 면담을 계획했다.

학생과의 면담을 통해 현재 진행상황과 자신의 역할, 그리고 어려운 점들을 이야기하게했다. 이를 통해 학생이 제대로 프로젝트를 참여하고 있는지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실 이러한 과정이 올바른 프로젝트 즉 이른바 GSPBL(Gold Standard Project Based Learning)은 아니다. GSPBL의 요소인 ‘어려운 문제 또는 질문’을 나는 그저 키워드만 주고 학생들이 적절한 문제를 찾도록 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스스로 어려운 문제 또는 질문을 찾기 위해서 애를 썼다면 나는 이번 학기에도 프로젝트 수업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수업은 프로젝트 수업의 원형과는 다르다. 강의식 수업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강의가 있듯이 프로젝트 수업 역시 다양한 수업 형태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다. 나는 가끔 수업의 목적이 적절한 결과물이 되버리는 주객전도 상황을 마주하곤 한다.

요즘 학생들은 자료수집도 네이버와 구글 등을 이용하던 이전과 달리 유튜브를 적극 활용한다.(사진=김승호 교사)
요즘 학생들은 자료수집도 네이버와 구글 등을 이용하던 이전과 달리 유튜브를 적극 활용한다.(사진=김승호 교사)

프로젝트 수업을 앞두고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안내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여러분이 조사하려고 했던 주제의 답이 여러분의 생각과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진행 과정에서 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시간 내에 적절한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의 결과를 평가할 생각이 없다. 나는 여러분들이 조사하면서 생겨나는 모든 질문의 가치를 인정할 셈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계획에 맞춰 진행해가는 과정을 평가할 셈이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결과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았다. 나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의문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가는 과정을 돕기 위해 이 수업을 기획했다. 따라서 과정에서 실패가 나올 수도 있고 원치 않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학생들은 소극적이고 안정적인 탐구를 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학생들에게 명확히 얘기할 수 있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이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에 어울리는 적절한 소비방식을 고민하며 미래에 다가올 사회문제들에 깊은 고민을 하길 바란다. 소극적이고 안정적 탐구방식으로는 깊은 고민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초기 계획을 과정에서 실패한 모둠들을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 적절하게 문제를 수정해가며 계속해서 과제를 이행해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원하지 않은 모습이라도 그것을 결과물로 만드는 작업을 도울 것이다.

이 기획의 첫 글에 FAIL(실패)은 First Attempt Is Learning(첫번째 배움의 시도)의 약자라고 했다. 그것은 나에게도,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그렇다. 결과물에 대한 부담을 갖는다면 학생도 교사도 도전할 수 없다.

만일 결과물이 부담스러웠다면, 나처럼 스스로 학생들에게 결과물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것만으로도 도전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 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 리포터